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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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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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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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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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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수학여행

DUMMY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학창시절 마지막 이벤트 수학여행.

여행지는 경주다.

입시의 스타트 라인에 섰다는 사실을 알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어디 있을까?


[불국사에서 자유시간있데. 그때 사진 같이 찍자.]


소영이의 메시지. 오랜만이다.

같은 반이 아니면 자유시간 밖에 만날 시간이 없다.


[ㅇㅇ]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일까?

작년엔 항상 붙어 다녔는데 지금은 별로 허전하지도 않다.

친구란 환경변수라는 녀석의 말이 아프게 와닿는다.


"승연아, 수학여행때 불국사에서 같이 사진 찍자."


"응. 신경 써줘서 고마워."


"사진 찍는데 신경은 무슨."


승연이는 2학년이 되어서도 친구를 못 사귄걸까?

평범한 권유가 무신경한 질문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수학여행 재밌겠다! 나도 놀러 가고 싶어."


연주가 부러운 듯 큰소리로 끼어든다.


"아무데나 버스타고 1시간 나가서 2시간 정도 걷고 돌아오면 가상체험 가능해."


연주가 부실에서 이상한 동물이라도 발견한 듯 차한솔을 바라보았다.

수학여행 계획표를 꺼내서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이동. 식사. 관람. 이동. 식사. 관람. 이동. 숙소.

계획표를 보니 차한솔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된다.


"이동이 너무 많은 거 아냐?"


"선생님들 마음 같아서는 차에서 안 내리고 싶을걸?"


인솔자의 입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왕 가는 거라면 좀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해주면 안되나?


"그래도 그렇지. 자유시간도 한 번 밖에 없고."


"자유시간이 있어서 뭐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잖아?"


차한솔이 피식하고 웃는다.


"계획표 다시 봐봐."


이동. 식사. 관람. 이동. 식사. 관람. 이동. 숙소.

다시 봐봤자 일정이 변할 리는 없었다.

내가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니 차한솔이 힌트를 준다.


"박물관 관람이나 한옥 마을 구경을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해?"


"선생님을 따라 다니겠지?"


"그건 단체 관광이고. 입구에서 풀어놓고 정해진 시간까지 버스로 오라고 할 거야. 차에서 내리면 전부다 자유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돼."


듣고 보니 매년 수학여행에 참가하는 선생님들은 새로울 것 하나도 없는 관광지를 다시 돌아볼 것 같지 않다.


"그래도 마음대로 못 돌아다니잖아?"


"왜? 정해진 시간까지 버스에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한솔의 한 마디에 내 머리 속에서 막혀있던 뒷공간이 열린다.

시간만 맞춰서 버스에 돌아오기만 한다면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구나!


"선배, 범생이인줄 알았는데 땡땡이도 쳐요?"


한솔의 뜻밖의 면모를 발견한 연주가 눈을 반짝인다.

연주의 질문에 한솔은 시큰둥하게 답한다.


"수업을 안 듣는다는 점에서 땡땡이 치는 거나 마찬가지네."


"거짓말. 내가 항상 보고 있는데 수업 시간에 눈도 깜빡하지 않던데?"


연주가 무언가 눈치를 챈 듯 음흉한 눈빛으로 묻는다.


"항상 보고 있어요?"


"옆 자리라 저절로 눈에 들어와서..."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구나."


한 번은 받아 넘겼는데, 연타 공격이 들어오니 더 이상 변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승연이가 읽던 책을 내려 놓고 한 마디 한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공부하나 보고 싶을 수도 있지. 나라도 봤을 거야."


"그...런가...요?"


이해하기 힘들 다는 듯이 나와 승연이 한솔을 번갈아 바라본다.


"두 분이 사귀는 거 아니었어요?"


연주가 거침없이 돌직구 질문을 날린다.

이미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또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


강하게 부정을 하고 나니 심장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지난번 답변에 떨어져 나간 심장의 일부분이 아직도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을 텐데.

연주가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묻는다.


"그럼 삼각관계에요?"


거침 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예 뇌에 필터가 없을 줄은 몰랐다.

갑작스럽게 폭탄이 터진 부실에 일순간에 정적이 감돈다.

승연이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다.

난관을 타개해줄 유일한 사람도 당사자라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한다.


삼각관계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하지만 정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일까?

내가 승연이와 한솔의 코스프레 사진을 찍을 때 가슴이 쓰렸던 것은 왜 일까?

나보다 더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사진이라서?

그 뿐만이 아니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연이 한솔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좋아한다는 감정은 의외로 잘 드러난다.

꼭꼭 숨겼다고 생각한 나의 마음은 소영이는 물론 연주도 금방 알아차렸다.

내 마음을 승연이도 모를 리 없다.

좋아하는 감정은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나는 한솔의 여친도 뭣도 아닌데.

마음 약한 승연이는 우정과 연심 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가 위태로운 관계는 아니었다.

한솔에게 다가가려고 하면 느껴지는 마음의 벽.

그 보이지 않는 벽이 한솔과 모두와의 관계를 적당하게 벌려주었다.

누군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면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을 그런 관계였다.


"조연주. 분위기 좀 읽지?"


뜻밖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얘가 막장 드라마를 너무 봐서 뇌 구조가 좀 이상해요."


주현이의 말을 듣자 연주의 고장난 브레이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너무 생각 없이 말해버렸네요. 사귀냐는 이야기는 수백 번 들었고, 부부싸움 그만 하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얼마 전에는 남친이 바람난 것 같다는 소리까지..."


마지막 질문을 받은 날이 언제였는지 예상이 된다.

개인적이고 민감한 질문들.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질문들이다.

하지만 연주에게는 그 질문이 연주와 주현이를 묶어주는 동아줄 이었기에 언제나 반가운 말이었을 것이다.


연주의 이야기에 이번엔 연주와 주현이의 분위기가 싸해진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신입부원들이 들어온 이후 특활부의 존립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정말 제대로 뽑은 거 맞아?

부원을 뽑는데 가장 큰 힘을 쓴 장본인에게 눈치를 주었다.


"남녀 사이에 우정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두 사람 좀 어떻게 해보라는 뜻은 전달되지 않았는지 엉뚱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녀 사이에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그럼 뭐가 존재한다는 거야?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킬 새도 없이 더욱 놀라운 말이 들려온다.


"그건 사랑이거나..."


사랑이거나?


"철저한 이용 관계인 거야. 서로 얻을게 없는 남녀가 이유 없이 만나는 법은 없으니까."


극단적 흑백논리에 낭만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내다 보면 우정이 싹틀 수도 있거든요."


주현이가 자신과 연주의 관계를 설명하듯 이야기한다.


"2차 성징 전까지는 그렇겠지. 이성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면 연인이 될 것이냐 남사친 여사친의 관계가 될 것이냐의 선택을 강요 받게 되거든."


잠시 침묵이 흐르자 차한솔이 다시 입을 연다.


"그 관계가 꼭 쌍방향일 필요는 없어. 한 사람을 호감을 가지고 다른 한 사람은 필요에 의해서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지.

한 사람은 일방적으로 주고 다른 한 사람은 일방적으로 받는 관계."


주현이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관계를 원해?"


부실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차한솔이 정의한 기묘한 관계성이 부실 안의 모든 사람을 구속한다.


"저는 못해요."


주현이가 항복을 선언한다.

차한솔이 부드럽게 웃으며 주현이를 격려한다.


"넌 그런 이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기엔 너무 착해."


그리고는 차가운 한 마디를 던진다.


"그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딘가 망가진 사람이겠지."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한 마디가 나의 가슴을 옥죄어 온다.

내 앞에서 언뜻 비친 격한 감정들.

무언가를 파괴하려고 하는 듯한 깊고 어두운 그림자.

그 파괴의 대상이 차한솔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등골에 찌릿하고 전기가 오른다.

너는 망가지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1박 2일의 수학여행이 시작되었다.

작년 이었다면 소영이와 머리를 맞대고 고백 이벤트 따위를 기획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현재의 미묘한 관계를 망가트리지 않고 무사히 졸업을 했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대절한 관광버스에 올라서자 맨 앞자리에 앉은 이지아와 김진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당연한 두 사람이었지만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매우 부자연스러운 배석이다.

공인 커플이라면 모를까 썸타는 남녀라 하더라도 이목 때문에 섣불리 같이 앉지 못한다.

하지만 이 두 사람 덕분에 버스 안에는 기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남녀가 같이 앉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 되었으니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는 청춘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앞에서 버스 안쪽으로 들어가던 여학생이 머뭇거리다가 남학생의 옆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붉힌다.


수학여행 고백 1호 커플을 뒤로 하고 적당히 빈 자리에 앉았다.

내 옆자리에는 누가 앉게 될까?

이런 것은 미리 교감을 나누기 마련이지만 우리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쉬는 시간에 옆자리의 차한솔과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따로 친구를 만들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 주 원인이다.

그나마 자주 이야기하는 아이는 차한솔에게 수업과 관련된 질문을 하러 오는 정효영 정도?

잘 모르는 남자아이가 앉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자 버스 안이 매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앉아도 돼?"


다행이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물론이지."


차한솔이 거의 텅 비다시피한 가방을 선반 위에 올리고 자리에 앉는다.


"손해 보게 해서 좀 미안하네."


"무슨 손해?"


"남자라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잖아. 여자끼리 앉으면 더 편하게 갈 수 있었을 텐데."


물리적인 공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런 경우에는 정서적인 문제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는 사람이 앉아서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는 낫지."


"그럼 윈윈인가? 그래도 내가 더 이득인 것 같은데?"


"왜?"


"자리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니까. 네 옆자리가 완벽한 자리야."


나도 방금 전까지는 마음이 편했었는데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학교에서도 옆자리, 버스에서도 같이 앉은 적이 있는데 왜 매번 가슴이 뛰는 걸까?


"나도 네 옆자리가 좋아."


말을 하고 나니 고백이라도 한 것 같아서 당황스러워 진다.


"그러니까. 전에도 같이 앉았으니까. 익숙해서 편하다는 말이야."


부자연스러운 부연 설명을 하고 그냥 가만히 있을걸 하고 후회를 한다.

어색함을 타파하고자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 뜯었다.


"과자 먹을래?"


"멀미 할 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너 멀미해? 난 멀미 안 해."


감자칩을 한 웅큼 집어다 한솔의 손바닥에 놓아 주었다.

생각해보니 한솔이 군것질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과자를 먹는 한솔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니 피식 웃으며 한 소리 한다.


"동물원이냐?"


"으응?"


"과자 정도로 재주는 안 부려."


썰렁한 농담에도 웃음이 터진다.

뻔한 여행지를 돌아볼 뿐인 수학여행.

하지만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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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여행 19.07.22 35 0 12쪽
28 문제 있는 신입부원들 19.07.19 25 0 14쪽
27 선거의 왕자 19.07.18 22 0 12쪽
26 첫 번째 겨울 19.07.17 28 0 13쪽
25 셜록 19.07.16 19 0 13쪽
24 축제 준비 19.07.15 20 0 12쪽
23 비오는 날 19.07.13 23 0 11쪽
22 하트 여왕 19.07.12 22 0 11쪽
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1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30 0 12쪽
19 1+1+1+1? 19.07.09 33 0 12쪽
18 1+1+1 19.07.08 30 0 11쪽
17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16 웰컴 홈? 19.07.05 26 0 12쪽
15 새로운 시작 19.07.04 25 0 12쪽
14 작은 왕국 19.07.03 27 0 12쪽
13 워터파크 19.07.02 23 0 12쪽
12 커버업 19.07.01 23 0 11쪽
11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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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넓은 공간 19.06.23 3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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