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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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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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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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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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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축제 준비

DUMMY

이제 날씨도 제법 쌀쌀해졌다.

1학년의 마지막과 함께 축제가 다가온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이 대충 꾸며 놓은 부스를 한 바퀴 쓰윽 돌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번엔 우리가 그 부스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 만들어진 우리 자상부의 유일한 홍보 기회야! 이번에 부스를 잘 만들어야 내년에 신입부원 모집에도 유리하다구!"


그 동안 일 없이 놀고 먹었지만 이번엔 목적이 명확하다.

간만에 의욕이 넘쳐 힘주어 말했다.


"축제에 중학생들이 단체 관광이라도 오는 게 아니라면 신입부원 모집과 상관없을 텐데?"


그리고 녀석은 한 마디로 의욕을 꺾어 버린다.

차한솔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말을 잇는다.


"생각해보니 아예 관계 없지는 않네. 내용은 필요 없고 사진이 잘 나올만한 컨텐츠로 정하자. 어차피 남는 건 사진밖에 없거든."


얄팍하다.

그래도 뭔가 해보려는 의지가 있으니 1포인트.


"상담부인데 사진이 잘 나올만한 컨텐츠가 있을까?"


"코스프레라도 할까?"


승연이가 대담한 제안을 한다.


"흥미를 끌기 충분하겠네. 그림도 나오고."


차한솔이 승연이의 아이디어에 맞장구친다.

승연이가 기분이 업 되었는지 머리를 풀어 헤치며 시범을 보인다.


"마녀의 점술집 같은 거?"


"점술도 상담이라고 할 수 있나?"


"축제인데 그 정도 베리에이션은 괜찮겠지."


"그런데 승연아 괜찮겠어?"


마녀라는 별명을 개의치 않는 것 같긴 하지만 기분 좋게 붙은 별명은 아니다.

그런 이미지를 그대로 끌고 가도 괜찮은 걸까?


"재밌잖아?"


"아니 내 말은..."


"걱정하지 마. 오히려 이미지 쇄신에 도움이 될 거야. 같은 단어라도 그 쓰임새에 따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거든. 경외심을 갖게 될 정도로 완벽한 마녀의 모습을 보여주면 돼."


나의 걱정을 눈치챈 한솔이 상황을 정리해준다.

한솔이 흐음 하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더니 말을 잇는다.


"너는 뭔가 맞는 이미지가 없네."


"나? 뭐. 나도 코스프레 하라고?!"


"그럼 친구만 사지로 몰 생각이었어? 혼자서 하면 쪽팔릴 뿐이지만 같이 하면 좋은 추억이 될 수도 있다구."


"될 수도 있다니? 안 될 수도 있다는 거잖아?! 난 그런 거 절대 못해! 안 해!"


나는 보았다.

차한솔이 들릴 듯 말듯 한 소리로 '쳇'하고 혀를 차는 것을.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그럼 코스프레는 내가 할게. 너는 뭐 할 거야?"


"나? 글쎄 관리 감독?"


"이게 자상부 리더십의 현실인데 어떻게 생각해?"


"푸하하핫."


승연이가 뭐가 웃긴지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린다.

나와 한솔의 대화가 승연이에게는 만담으로 들리나 보다.


"일 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그게...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완전 쪽팔린다.

오늘부로 자상부 부장은 공석입니다라고 선언하고 싶다.


"일단 의상은 스튜디오에서 내가 빌려올게. 승연이는 카드 점치는 법 공부하고. 타로 카드 같은 것도 빌릴 수 있을지 알아볼게. 그 외에 부실 입구에 입간판, 정문에 타이포그래피, 약간의 인테리어 정도네. 손재주는 좀 있어?"


순식간에 할 일을 정리했다.

그리고 두 명의 주인공과 한 명의 일꾼도 정해졌다.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으니 방과 후에 바로 재료 사러 가야겠네."


"오늘? 축제 날까지 아직 시간 좀 있잖아? 글자 오려 붙이는 건데 뭐."


한솔이 나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일꾼이 별로 미덥지 않아."


"눈 앞에서 비난 하면서 웃지 마!"


비꼬는 말을 들었는데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가 뭐지?

나 혹시 M이었나?

설마 조련된 거야?

얼굴이 새빨개 져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으니 승연이가 빵 터져서 부실을 웃음소리로 가득 채운다.


"이번엔 내가 사올게."


인테리어 할 때의 갑질 드립이 떠올라 자진해서 나섰다.


"돈 있냐?"


삥이라도 뜯을 기세라 본능적으로 없어요라고 대답할 뻔했다.


"색종이 살 돈 정도는 있어!"


"색종이가 아니라 색지겠지. 이상한 거 사올까봐 두렵다.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 주머니에서 지출이 되면 나중에 정산하기 귀찮아."


쓸모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서 시무룩해졌다.


"실제로 제작할 사람의 의견도 반영하는 게 좋으니까 같이 가는 게 좋겠네. 방과 후에 시간 있지?"


"응."


지난번에 이어서 둘이서 쇼핑을 하게 되었다.

옆을 보니 승연이도 같이 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승연이도 같이 갈래?"


"나는 학원 때문에 안 돼."


"그렇구나."


성적을 유지하려면 학원도 다녀야 하겠지.

그런데 이 인간은?


"너는 학원 안 다녀?"


"왔다 갔다 시간 뺐기고 귀찮잖아."


"하긴 너는 책을 보고 있으면 글자가 떠올라서 막 머리 속으로 들어가고 그러겠네."


"푸핫! 콜록. 콜록."


차한솔이 사래가 들렀는지 마시던 녹차를 뿜어낸다.

희귀한 장면이었는데 사진으로 남겨 놓을걸.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똑 같거든? 정보를 습득할 때 카테고리를 잘 분류하고, 정보들 사이의 연관 관계를 명확히 해서 까먹지 않도록 하는 것 뿐이야."


녀석의 뇌 속에서 물류센터처럼 지식이 분류되는 모습이 상상 된다.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승연이를 돌아보았다.

너는 어느 쪽이야?

승연이가 말 없이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내 편이다.

2 대 1.

구석에 몰린 차한솔이 자신의 '평범함'을 어필하기 시작한다.


"학원은 안 다녀도 인강은 들어. 시각과 청각 자료가 포함된 정보는 특별한 노력 없이도 더 오래 기억되니까."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수사를 해볼 가치가 있다.


"무슨 과목을 듣는데?"


"전 과목."


"전 과목을 들을 시간이 있다고?"


"필요한 부분만 들으니까."


"필요한 부분이 어딘지 어떻게 알아?"


"8배속으로 들으면 금방이야."


차한솔이 주장하는 평범함의 실체가 드러난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승연이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표정을 보니 살짝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너는 절대로 평범하지 않으니까 평범함까지 노리지 마. 그건 내 몫이라구."


비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빛을 발하는 나의 평범함.

자상부 내에서는 내가 비범한 거 아닌가?

사실은 그냥 열등한 거겠지.



자상부는 축제 준비 모드로 들어갔다.

갖은 색상의 색지를 오려 타이포그래피로 만드는 것이 1차 목표.

컴퓨터로 크게 인쇄해온 글자를 종이에 붙이고 그대로 오려내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다.

오랫만에 친구들과 가위질을 하고 있으니 초등학교 미술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차한솔 너는 왜 안 해?"


"나름 배려하고 있는 거야."


"무슨 배려? 참고서 보면서 농땡이 치고 있잖아?"


참고서와 농땡이.

참으로 안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즐거워 보이길래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내버려 두질 않으니 할 수 없지."


참고서를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머리를 쓱하고 넘기더니 본격적으로 지적질을 시작한다.


"너희가 즐거운 건 좋은데 잘라 놓은 글자도 즐거워 보이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냐? 아무리 초보라지만 불량률이 50%를 넘어가면 사보타지를 의심할 수 밖에 없거든? 그리고 잘못 자른 글자를 다시 자르는데 그것만 다른 색지를 쓰면 어쩌자는 거야? 빵구난 옷을 기울 때도 색은 맞추는 법인데."


"그렇게 잘하면 네가 좀 도와주면 되잖아? 이 폰트 구불구불해서 자르기 힘들다고."


차한솔이 가위를 잡고 색지를 하나 잡는다.

집이라는 글자를 만드는데 인쇄된 폰트는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오리기 시작한다.


"너야 말로 사보타지하고 있잖아?"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한솔이 다 오린 타이포그래피를 내려 놓는다.

언뜻 보기에는 마녀의 성처럼 생겼지만 집이라는 글자가 분명했다.


"내가 하면 내 마음대로 다 해버릴 테니까 재미있게 만들어 보세요. 재료 낭비는 이제 그만 하자?"


어린이집 선생님?


"이런 건 어떻게 만드는 거야?"


"이미지를 잡고 그대로 오리면 되잖아?"


"아. 그래."


참 쉽죠?

밥 로스 선생님의 지휘 아래 곰 눈깔 붙이듯 색지를 한땀 한땀 잘라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축제는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 진다.

하나는 축제기간 중 상시 전시하는 부스.

딱히 부스를 세우는 것은 아니고 부실과 교실을 전시실로 꾸미는 것이다.

특활부는 특활부대로 부스를 준비하고, 자습부 학생들은 반으로 돌아가서 반 별로 부스를 준비한다.


다른 하나는 대강당에서 하는 발표회.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신청부서에 한한다.

합창부, 취주악부, 검도부 등 뭔가 보여줄 게 있는 특활부에서 한다.

그런데 무엇을 보여줄 것이 있어서 발표를 신청 한 것일까?


사람을 모으려면 발표회에 참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차한솔의 말에는 백번 동의 한다.

그렇다고 해도 수백명의 학생들 앞에서 학생 상담이 어쩌고저쩌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늘어놔 봐야 역효과다.

앞에 나가서 토크쇼라도 하려고?

그 녀석이 말해봤자 웃어줄 사람이라고는 나랑 승연이 정도 뿐일 걸?

그런 걸로 근거 없는 자신감을 얻어버린 건가?

흑역사를 쓰더라도 차한솔의 흑역사다.

나는 사관으로써 그대로의 사실을 하나도 빠짐 없이 기록할 뿐.


축제의 아침이 밝았다.

딱히 준비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부장이니까 일찍 집을 나섰다.

이른 아침이라 학생들은 별로 안 보였지만 여기저기 붙어있는 간판들을 보니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꽤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부실 자물쇠는 열려 있었다.


"드르륵. 굿 모닝!"


"굿모... 닝?"


문을 젖히고 들어가자 반라의 차한솔이 태연하게 대답한다.

당황하는 와중에도 나의 눈은 그의 몸을 세세하게 훑어 보고 있었다.

수영장에서도 본 적 없는 초콜릿 복근.

나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지 태연하게 와이셔츠 단추를 채우고 양복 조끼를 걸친다.

그의 코스프레 테마는 셜록.

자상부 축제의 테마는 마녀의 점술 상담과 셜록의 추리 상담이었기 때문이다.

케이프를 두르고 셜록의 트레이드 마크 디어스토커를 머리에 쓴다.

그리고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의견을 구한다.


"어때?"


어디서 빌려온 코스튬인지는 몰라도 프로의 제품이었다.


"완벽하네. 안경만 벗으면."


한솔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두 손을 뻗어 안경 다리의 양쪽 끝을 잡았다.

안경을 벗기려고 했지만 안경 다리가 귀에 걸려 안경은 벗겨지지 않고 얼굴이 끌려 온다.

코가 스칠 듯이 얼굴이 가까워졌다.

갈색 눈동자에 언뜻 비치던 에메랄드 빛이 선명하게 눈에 새겨진다.

코 끝을 간지르는 그의 숨결만이 시간이 정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둘이 뭐해?"


그때 승연이가 부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솔이 안경을 잡고 있는 내 두 손을 천천히 잡아 올린다.

안경을 벗은 한솔이 승연이의 물음에 답한다.


"코스튬 확인 중이야."


내가 심장을 진정 시키는 동안 승연이는 한솔의 코스튬을 이리 저리 둘러본다.


"멋지네. 내 건 어딨어?"


"저 가방 안에."


"난 나가 있을 테니까 다 갈아 입으면 말해줘."


"밖에서 문 두드리지 마!"


"옷 갈아 입는데 문을 두드린다고? 누가 그런 몰상식한 짓을?"


우와! 눈 하나 깜빡 안하고 거짓말 한다.

노래방 간 날 있었던 일을 밝힐 수도 없고.

갑자기 그날 있었던 일이 생각나자 겨우 진정 시킨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한솔이 부실을 나가자마자 승연이를 껴안았다.


"소연아 왜?"


"몰라. 나 이상해졌나 봐."


승연이가 내 등을 토닥인다.


"괜찮아. 이상해진다는 거 꼭 나쁜 건 아닐지도 몰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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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수학여행 19.07.22 35 0 12쪽
28 문제 있는 신입부원들 19.07.19 26 0 14쪽
27 선거의 왕자 19.07.18 22 0 12쪽
26 첫 번째 겨울 19.07.17 29 0 13쪽
25 셜록 19.07.16 19 0 13쪽
» 축제 준비 19.07.15 21 0 12쪽
23 비오는 날 19.07.13 23 0 11쪽
22 하트 여왕 19.07.12 22 0 11쪽
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1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30 0 12쪽
19 1+1+1+1? 19.07.09 34 0 12쪽
18 1+1+1 19.07.08 30 0 11쪽
17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16 웰컴 홈? 19.07.05 27 0 12쪽
15 새로운 시작 19.07.04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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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워터파크 19.07.02 23 0 12쪽
12 커버업 19.07.01 23 0 11쪽
11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1 0 11쪽
10 대체 현실 (2) 19.06.29 28 0 12쪽
9 대체 현실 19.06.28 26 0 13쪽
8 소문의 그녀 19.06.27 38 0 13쪽
7 카레와 커피 19.06.26 58 0 11쪽
6 봉사활동 19.06.25 2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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