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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하루에 헛소리 하나씩

확률과 로맨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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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믹스
작품등록일 :
2019.06.19 23:01
최근연재일 :
2019.07.23 06: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100
추천수 :
1
글자수 :
160,615

작성
19.06.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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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넓은 공간

DUMMY

"딩동~ 딩동~"


부활동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끝나고 소영이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깜빡하고 어디서 만날지 정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서 문자를 보낼까 하고 있었는데, 교실문이 살짝 열리더니 소영이가 얼굴을 빼꼼 내민다.


"어? 소영아!"


"좀 일찍 끝나서 찾아왔어."


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소영이가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온다.

내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오면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짤막한 소감을 전한다.


"교실에 둘 뿐? 완전 전세네 전세."


"넓어서 좋긴 해."


마치 내 집이라도 되는냥 너스레를 떠는데 동거인(?)의 눈치가 보인다.


"가자가자. 시간 괜찮으면 요 앞에 카페에 들를래? 학생은 할인이래."


소영이와 데이트 약속을 하고 가방을 들어 교실을 나선다.

교실을 나서려다 한솔을 슬쩍 보았다.

종은 쳤지만 가방을 싸려는 기미도 없고 평소보다도 더 느긋해 보인다.


"나 먼저 간다."


소영이 앞에서 '내일봐.'라고 하는 게 쑥스러워서 통보에 가까운 인사를 해버렸다.


한솔은 참고서를 덮고 안경을 고쳐 쓰며

"응."하고 짧게 응답한다.

쓸데없는 말은 길게도 하더니 인사말은 참 짧기도 하네.

의미가 전달되기만 하면 되니까 짧을 수록 '효율적'이라는 건가?


'어이휴.'소리가 입에서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교실 밖으로 향했다.

소영이는 나와 한솔을 번갈아 보다가 나를 따라 교실을 나섰다.

소영이가 내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교문에 다다러서야 묻는다.


"누구야? 혹시... 남친?"


"뭐어? 아냐. 아냐. 어딜 봐서?"


생각지도 못한 오해에 생각보다 강하게 부정해 버렸다.

소영은 '흐음'하고 바로 수긍하지 못한 듯한 반응이다.


"4반 차한솔이라고 친구도 없는지 혼자 자습부3에 남았더라."


강하게 부인하려고 하다 보니 마음에도 없는 인신공격을 해버렸다.

자습부3에 남은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마음속이 뒤죽박죽이다.


"쟤가 차한솔이구나."


"차한솔 알아?"


서랍 속에 숨겨둔 일기장을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석현이가 분해하더라구. 우리반에 감독이 없어서 졌다고."


"감독? 쟤는 선순데?"


"그래? 석현이가 감독이라고 했는데? 그럼 플레잉 코치?"


뭔가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녀석이라면 머리를 쓰는 쪽이 어울리지.


"머리 좋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왠지 내가 으쓱해져서 자랑스레 한 마디 했다.

소영이가 나를 보며 웃는다.


"잘 아나봐?"


"참, 아니라니까. 교실에 둘 밖에 없으니 알기 싫어도 알게 되는 것 뿐이야."


알았다고 말하면서도 히죽거리는 소영이에게 끊임 없이 아니라고 부정해보지만 소영이는 알았다고만 말할 뿐 내가 납득할 만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참, 여기 공책. 하마터면 집에 가지고 갈 뻔 했네.

고마워. 잘 썼어."


학교 앞 카페에 들어가자 마자 미처 돌려주지 못한 공책부터 꺼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는 게 친구잖아."


"아. 그렇지."


차한솔이 말했던 친구의 정의가 생각나서 어색하게 웃는 표정을 지어버렸다.


"남친 만들 생각 없어?"


"그런 거 아니라니까?"


"차한솔 이야기가 아니라. 소연이도 남친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주말에 더블 데이트도 할 수 있고. 응?"


누가 갑자기 나타나서 고백하기 전에는 어떻게 남친을 만들 수 있을까?

하긴 소영이는 그렇게 남친이 생겼으니까 할 말은 없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면 누가 연애 걱정을 하겠어?


"남친이 하늘에서 떨어지니?"


"석현이한테 부탁해 볼까? 석현이 친구들 중에 훈남들 많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누군가 소개해주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까지는..."


"아니 왜? 시험 삼아서 사귀어 보는 것도 괜찮잖아? 혹시 알아 진짜로 괜찮은 애일지?"


내가 사양할 말을 찾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으니 소영이가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만날 수 있는 남자애들이 다 거기서 거기잖아.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어."


한정된 만남의 풀, 만남의 확률을 높여주는 효율적인 소개팅 시스템.

녀석에게 들었던 익숙한 이미지가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지 않아도 한정된 풀(pool)에서 그렇게 확률까지 높여가면서 억지로 남자를 만나고 싶지는 않아."


"???"


소영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아마 한솔의 말을 듣고 난 후의 내 표정이 저렇지 않았을까?

소영이를 통해서 나의 모습을 보았더니 웃음을 참기가 힘들어서 "푸하하하."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로맨틱하지가 않잖아. 때가 되면 너처럼 왕자님이 찾아오겠지.

안 찾아오면 내가 왕자님이 갇혀있는 탑으로 기어 올라가던지."


소영이가 홍차를 한 모금 머금고 맛을 음미하다가 조용히 넘긴다.


"털털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녀 같은 면이 있었네."


"저도 꿈 많은 소녀랍니다."


하하호호 웃으며 잡담을 나누다 보니 벌써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소연, 빨리 왕자님을 구해내. 응원할게."


소영이의 말투는 사뭇 진지했다.


"역시, 왕자님이 나한테 찾아오지는 않겠지?"


딱히 비꼬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현실이 그러니까.

소영이처럼 미인이 아니라면 왕자님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보디가드가 있으면 힘들지 않을까?"


알들 모를듯한 질문에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이전의 대화 때문에 의식 되는데 다시 답변을 했다가는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게 될 것 같았다.

지금은 마음이 조금 싱숭생숭하지만 자고 나면 언제나 그렇듯이 아침밥 생각 뿐이겠지.

여고생은 항상 배고픈 존재니까.


그래도 집에 갈 때 까지는 이 감정을 조금 음미해보자.

언젠가 필요할지 모르는 연애 세포에 가끔 물을 주는 것도 필요한 일이잖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로션은 바르고 나가니?"


"늦었어. 그냥 갈께요."


엄마에게 붙잡히기 전에 후다닥 문을 나섰다.


꿈을 자주 꾸는 편이 아닌데 어제는 정말로 이상한 꿈을 꾸었다.

평소처럼 부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교실에 나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말고 누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누군지 모르겠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실이 얼마나 넓은지 끝없이 펼쳐진 빈 책상들을 아무리 헤치고 지나가도 아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름을 불러 찾고 싶었다.

하지만 이름을 모르겠다.

답답함에 몸부림을 치다가 정말로 나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잠에서 깨어났다.


뭐였을까?

사춘기 소녀의 막연한 불안감이 꿈으로 형상화된 것일까?

찝찝한 느낌을 가진 채로 학교로 향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오늘도 반복되는 하루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냥 개꿈이었나 보다.'하고 열심히 쳇바퀴를 돌리다니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자습부3 교실문 앞에 서자 어제의 꿈이 떠오른다.

손잡이에서 어스름한 기운이 느껴져서 언뜻 손이 가지 않는다.


교실문을 지나 창문을 통해 교실 안을 들여다 보았다.

어제와 또 그제와 마찬가지인 교실 풍경.

차한솔이 앉아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여 힘차게 교실문을 열고 들어간다.


"안녕."


"안녕."


수 많은 책걸상 중에 짝을 찾은 자리는 단 둘 뿐.

빈자리 만큼의 고독이 이 교실을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교실을 가득 채운 고독이 나를 삼켜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가 느껴졌다.


녀석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보디가드라...'


소영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른 의미지만 녀석이 나의 보디가드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보디가드가 아니라 소울가드라고 해야 하나?


"여친 안 만들어?"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녀석은 절대 당황하지 않는다.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여친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면."


"하하하하."


뭔가 통했을까?

내가 소영이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듣게 되다니.


"시기가 별로 좋지 않잖아? 중학생이라면 몰라도 이제 곳 수험생이니까.

수험에 실패를 해지 조건으로 하는 연애 계약을 할 필요가 있을까?"


전혀 통하지 않았다.

혼자 착각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하늘에서 떨어지면?"


뭔가 긍정적인 말이라도 들으면 기분이 나아질까 싶어 다시 한 번 물었다.

한솔은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 창밖의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얼마전까지 이맘때면 석양이 내리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벌써 해가 길어졌는지 하늘은 파랗기만 하다.


"연애하고 싶어?"


"응."


얼마 전까지 연애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스스로도 놀랄 만큼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

봄도 끝나가는데 이제야 늦 봄을 탄 것일까?

한솔은 안경을 벗어 입으로 '하아~'하고 불더니 꼼꼼하게 안경을 닦아낸다.

그의 눈동자에서 비치던 녹색 기운이 금세 안경 알의 광택 속으로 사라진다.


"아쉽네."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참고서를 넘길 뿐이었다.

가슴에서 저릿한 아픔이 느껴졌다.

더 대화를 나누었다가 혼자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도 책을 펼쳤다.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핸드폰을 꺼내서 뭐 재미있는 것이 없나 인터넷을 뒤졌다.

화면이 너무 밝아서 그런지 눈이 시리다.

핸드폰의 화면 밝기를 최소로 줄였다.

이미 명반응이 완료되었기 때문일까?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게 아니었다.

뿌연 무언가가 내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손으로 방울이 맺힐랑말랑하는 눈물을 훔쳤다.

뜨거운 액체가 손끝에 닫자 눈물을 막고 있던 마개가 뽑힌 것처럼 눈물이 왈칵 쏟아질것만 같았다.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태연하게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지금 그에게 위로 받는다면 그 감정을 감당할 수 있을것 같지 않다.


시작하지도 않았으니 끝난것도 없다.

시작할 수 있을 것같은 기분이 잠시 들었을 뿐이다.

별로 진지하게 생각한 것도 아니었는데...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 이렇게 아프다니.


“웃어. 최소연.”


화장실 거울을 보고 웃는 표정을 지어봤다.

평소와 다르지 않다.

나만 평소와 같이 행동한다면 이전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소영이의 부추김에 머리속이 잠시 꽃밭이었나보다.

3년간 공부 열심히하고 좋은 대학에 가면...


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

좋은 일들이 생기겠지.


교실문 손잡이가 차갑게 느껴진다.

이를 꽉물고 손에 힘을 준다.


문을 열자 한솔과 눈이 마주친다.


“이제 여름인가봐. 더워져서 세수 좀 하고 왔어.”


“아. 그래.”


잘 해낸것 같다.

그래.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거야.


항상 편안하게 느껴지던 교실이 오늘따라 을씨년스럽다.

교실이 참 넓다.

빈 책상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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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수학여행 19.07.22 34 0 12쪽
28 문제 있는 신입부원들 19.07.19 25 0 14쪽
27 선거의 왕자 19.07.18 22 0 12쪽
26 첫 번째 겨울 19.07.17 28 0 13쪽
25 셜록 19.07.16 19 0 13쪽
24 축제 준비 19.07.15 20 0 12쪽
23 비오는 날 19.07.13 22 0 11쪽
22 하트 여왕 19.07.12 22 0 11쪽
21 민폐녀 여사친 19.07.11 61 0 12쪽
20 누구를 위한 세레나데? 19.07.10 29 0 12쪽
19 1+1+1+1? 19.07.09 33 0 12쪽
18 1+1+1 19.07.08 30 0 11쪽
17 자상부 스타트 업! 19.07.06 3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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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안경과 신데렐라 19.06.30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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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문의 그녀 19.06.27 38 0 13쪽
7 카레와 커피 19.06.26 58 0 11쪽
6 봉사활동 19.06.25 27 0 12쪽
5 에니그마 19.06.24 44 0 13쪽
» 넓은 공간 19.06.23 39 0 11쪽
3 니가 왜 거기서 나와? 19.06.22 34 0 12쪽
2 효율과 로맨틱 19.06.21 50 0 12쪽
1 확률과 로맨틱 +2 19.06.20 20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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