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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앤피자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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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소파앤피자
작품등록일 :
2022.12.25 16:12
최근연재일 :
2023.05.26 06: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6,142
추천수 :
158
글자수 :
804,680

작성
23.05.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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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48화

DUMMY

자파르의 부하들과 ENM이 아직 건물을 떠나지 못한 프레스코 직원들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폭탄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직 몰랐지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눈치 챈 상태였다.


로단은 분명 ‘대피’를 명령했으니까.


그동안 에이스는 여전히 시볼드와 대적하고 있다. 제이든의 폭탄 때문에 피해를 많이 입어서, 적어진 인력으로 힘겹게 버티는 중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각자 할 일을 하는 사이, 로단은 잠자코 이준의 지시를 따라갔다.


[이제 승강기를 타.]


문도들의 거주지로 가는 층은 전달자와 문도밖에 사용하지 못했지만, 그 거주지로 이어지는 복도까지는 해킹으로 안내해줄 수 있었다.


이준의 원격조종으로 인해, 로단이 직접 버튼은 누를 필요도 없이 승강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문도용 승강기는 아주 깔끔했다. 먼지투성이에 구석구석이 작은 타박상인 로단은 그 공간에서 이질적이었다.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들에게서 벗어난 고요함 또한 어색했다.


로단은 조금 초조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의 올라가는 숫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승강기가 멈추었을 때, 이준을 불렀다.


“이준?”

[제일 오른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


그는 잠자코 그 앞으로 다가갔다.


스르륵-


이내 칩을 인식한 문이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그대로 새로운 복도가 이어져있다.


하지만 도로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더 이상 이준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문도들의 보안은 서로에게도 가차 없었다.


아직 이준은 아셀의 방에 있으니, 로단 또한 제이든의 것으로 다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단 한번 연결된 신호는 이준이 해킹할 수 있었다. 혹시 폭탄을 원격으로 터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원격으로 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조용히 마른 침을 삼켰다. 어쨌든 몇 발걸음이 남아있지 않는 이곳 앞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 남아있었다.



***



“억!”


갑작스런 충격에 달린이 비명 소리를 질렀다.


이준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바네사의 칼날의 끝이 순식간에 목에 닿았고, 동시에 잠시 나가떨어졌던 달린이 바로 그녀의 발목을 차 넘어트렸다.


“미친!”


짧은 욕을 외치며, 그는 스크래치가 난 목을 부여잡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 다음으로는 달린이 악에 받혀 소리쳤다.


“이 개X이!”


이번에는 달린이 그녀와 뒤치락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달린은 베브만큼의 실력이 없었고, 그 앞에 있는 바네사는 아주 뛰어난 전사였다.


그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달린에게 있던 총은 금방 바네사의 손으로 넘어갔다.


바네사는 바로 달린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달린은 그 위협 앞에서 두 팔을 반쯤 들어 올린 상태로 긴장에 몸을 굳혔다. 그러면서 반격을 할 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그 순간 바네사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이준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저 인간을 먼저 끝내야만, 잠수함을 다시 장악할 사람이 없어진다.


달린은 즉시 바네사에게 달려들었으나, 그때에는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이준이 멍하니 자신의 배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붉은 피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곧 크게 비틀거리면서 바닥으로 무너졌다.


절박해진 달린이 바네사의 위로 올라타서 도로 총을 빼앗았다. 그 다음 손가락을 움직이려 할 때, 갑자기 또 다른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탕-!!!


이제 막 주먹질을 하려던 바네사가 바닥으로 축 늘어졌고, 달린은 문 앞에 서있는 베브를 발견했다.


어딘가 쓸모 있을까 해서 살려뒀더니.


일을 다 망쳐놓은 바네사를 노려보며, 베브는 미세하게 인상을 구겼다.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즉사한 바네사의 위에 달린은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 상태로 나지막이 베브에게 물었다.


“...너 괜찮아?”


분노에 휩싸였었던 베브가 걱정됐다.


그는 왜 달린이 이런 상황에서 저런 물음을 던지는 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직후 이준에게 달려갔다. 달린은 그제야 지금의 상황을 다시 기억해냈다.


“이런 씨-”


스스로에게 욕을 중얼거린 그녀는, 베브가 이준의 상처를 압박하는 동안에 모든 서랍을 뒤져서 응급상자를 가져왔다.


그렇게 일시적인 치료라도 시작하려했지만, 갑자기 이준이 만지고 있던 컴퓨터에서 알람이 울렸다.


로단이 제이든의 방에서 아셀의 것으로 연결한 모양이었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본 이준은 고통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단 둘은 먼저 가. 응급처치만 해주고.”


베브는 그 결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달린을 힐끗 바라봤다.


역시나 그녀는 이 상황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윌 때와는 달리 아무 반항이 없다. 그저 묵묵히 이준의 앞에 앉아서 붕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베브도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준은 한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더니, 연결버튼을 눌렀다.


“로단.”

[지금 제이든의 방에 들어왔어. 아주 역겨운 곳이야.]


그의 역겨움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말투였다. 그러자 이준이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물었다.


“진짜? 어떤 곳인데?”

[난 고문기계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도 몰랐어. 괴상한 도구들도 많아. 피도 아직 묻어있고. 여기서도 ‘취미생활’을 한 모양이지. 어쨌든, 거기서 여기를 해킹할 수 있어?]

“당연하지. 다 되면 연락 줄게.”


그리 말하는 그는 목소리도, 얼굴도 담담했다. 결국 달린의 손이 멈칫했다. 복잡한 감정이 가슴 속에서 울컥하고 올라왔다. 그래도 지혈제를 바른 상처 위로 붕대를 감고 있는 손길은 곧 다시 움직였다.


잠시 후 이준을 제외한 두 사람은 바깥으로 나왔다. 그렇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이번에는 베브가 물었다.


“...괜찮아?”


달린은 그를 힐끗 바라봤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도 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그의 희생이 몇 명의 부상자들을 죽음에서 돌려보냈다. 그렇기에 이준의 희생도 의미가 있기를 마음 속 깊이 바랐다.



***



다시 이준에게 연락을 받은 로단은, 어쩐지 그가 지친 것 같다고 느꼈다.


“괜찮아?”

[괜찮아. 좀 피곤해서 그래.]


그런 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며, 담담한 위로를 던졌다.


“곧 끝날 거야.”


제대로 끝나길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지금과 무게가 다른 피곤함을 느낄 것이다.


이미 많은 과정을 걸쳐왔다. 자파르의 행동도 큰 변화였다. 지민도 그렇고, 프레스코도 그렇고, 이곳에 변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이번에 제대로 끝마치지 않는다면, 그만큼 혼돈만 남게 될 터였다.


이준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곧 입을 열었다.


[제이든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를 검사했어. 신호발사버튼은 제이든의 책상 아래에 있어. 위력에 비하면 아주 간단한 방법이지. 그 돌대가리를 생각하면 별로 이상하지 않긴 해.]

“원격으로도 가능해?”


그는 또 다시 조용해졌다.


“...이준?”


아직 로단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열심히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았다. 그는 그 화면을 보면서 이걸 솔직히 말해야할지 말지 고민에 빠졌다.


그럼에도 결국 사실을 말했다.


[...불가능해.]

“...그럼 대체 제이든은 어떻게 하려고 한 거지?”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로단의 머릿속에 잠시 잊혀져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명단.


다른 전달자와 달리, 칩의 명단에 헤이즐의 이름은 없었다.


제 문도처럼 정신이 이상했던 그 여자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인간이었다.


로단은 머릿속에서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빠르게 말했다.


“일단 넌 돌아가.”


유독 피곤해보이던 이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쉴 틈 없이 떠들던 그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사실, 그가 피곤한 것 자체도 드물었다. 항상 기운이 넘쳤으니까.


그들과 달리 자리에 앉아서 하는 일이 대부분인데도, 체력이 뛰어났다.


로단은 여기서 가장 넓은 방으로 들어가, 사무실 전용으로 보였던 책상 아래로 손을 더듬거렸다. 이내 네모난 무언가가 만져졌다.


얼굴을 숙이고, 그곳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았다. 유리 안에 들어가 있는 빨간 버튼이 있었다.


“...찾았어.”


이 말을 하는 것이 쉬운 게 아니지만, 다시 한 번 말했다.


“넌 일단 돌아가.”


여전히 아무 응답이 없다. 이준이 이 말을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저 말을 이어갔다.


“건물 내에 대피해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지?”

[......최대 십 분만 있으면 모두 대피할 수 있어. 이미 그러고 있고.]


뒤늦게 들려온 목소리가 은근한 물기에 젖어있다. 그는 단 한 번도 저런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로단은 일부러 조금 가볍게 말했다.


“그 사이에 너도 나가면 되겠네.”


도저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본래의 목적에서 조금 벗어나긴 했다. 문도가 언젠가 돌아올지는 몰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몰아냈으니까.


하지만 잭슨이 이대로 오랫동안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들은 결국 다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것도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문도는, 사람들이 가장 믿음이 필요할 때에 구원자처럼 등장하는 걸 좋아했다.


게다가 지금이 아니면 안 됐다. 나중에 뒤늦게 무너트려봤자, 이 거대한 흐름을 놓치면 문도에 반항하는 세력에서 끝나게 된다.


지금처럼 그들이 모두 의문에 쌓여있을 때, 그들이 모두 이 변화에 휩쓸릴 때가 아니면.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니,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충동을 느꼈다.


제 죽음으로 슬퍼할 이는 오직 이준 뿐만이 아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던 이준도 애써 밝은 목소리로 거짓을 말했다.


[...그럼 이제 나도 나갈게.]


베브가 해둔 강한 압박으로도, 이미 정신이 희미해져갔다. 그는 더 이상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


살고 싶어서 사실대로 말할 까봐, 그만 연결을 끊으며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다음에 보자고, 친구.]


로단은 그저, 이준이 그를 위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서로를 위한 인사임을 몰랐다.


“그래.”


그리고 연결은 끊겼다.


한참동안 통신기를 만지작거리면서 고민했다. 리암과 에밀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지를. 하지만 그랬다가는, 그들 모두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다.


에밀리는 에이스와 함께 시볼드를 상대하고 있고, 리암은 RT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패드가 결국 고장 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 메모를 남겼다.


많은 내용을 썼다. 특히 그의 형제들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클로이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녀에게 연인이 쓸법한 말은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왔으니까.


잠시 후 패드의 전원을 끄고, 제이든의 금고를 열었다.


한 번도 쓰지 않았는지 잠금도 되어있지 않다. 안도 텅 비어있는 주제에 꽤 단단했다.


그 안에 패드를 넣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도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오직 이 날을 위해서였다.


비록 무너지는 걸 눈앞에서 보지는 못할지라도, 그것을 온전히 느낄 것이다.


만약 그 다음에 가게 될 또 다른 세상이 있다면, 노라가 마중 나와 주기를,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도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단 한 번도 그런 미신을 믿지 않았음에도 바라게 됐다. 이것을 ‘끝’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로단은 조용히 푹신하고 감촉이 좋은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불쾌하고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아래를 보지 않고, 천천히 유리커버를 벗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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