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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앤피자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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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소파앤피자
작품등록일 :
2022.12.25 16:12
최근연재일 :
2023.05.26 06: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6,129
추천수 :
158
글자수 :
804,680

작성
23.05.20 06:00
조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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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44화

DUMMY

바옌시나는 잭슨을 보호하고, 그들조차 알지 못했던 폭탄을 피해 움직였다. 마찬가지로 놀란 자파르는 그들을 침착하게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잭슨은 순간 욱하고 올라온 분노를 참지 못하며 외쳤다.


“계속 싸워!!!”


지금 이렇게 뒤로 물러나면, 거리만 벌여주는 꼴이 됐다. 하지만 그의 옆으로 또 다른 폭탄이 터졌을 때는,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잭슨의 눈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루카스가 아무리 독한 인간이라고 표현했어도, 결국 단 한 번도 실패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온실 속 화초였다. 그리고 그 앞으로 글러이비치가 미친 듯이 바옌시나를 처리하는 것을 보았을 때, 잭슨은 충격을 숨기지 못했다.


그들은 동료가 폭발에 휘말려 죽든 말든, 바옌시나의 제지로 목숨이 끊기든 말든,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오로지 잭슨을 향해서.


그렇게 뛰어가던 수헤르는 제 앞을 막아 세우는 군인을 발견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는 잭슨에 닿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적어도 몸은.


그 몸에 총알이 박히고 칼이 들어와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옛 신을 목격한 흥분감과, 거짓된 신을 직접 처단할 수 있다는 희열감 때문에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


두려움이 없는 손이 총을 잡고, 그 상태로 잭슨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잠시 후 붙잡힌 수헤르가 그대로 바닥에 얼굴이 처박혔다. 그 얼굴은 로단이 난생 그에게서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실망감이 느껴진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수헤르가, 제 신념을 지키지 못한 듯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한 곳을 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을 따라가면, 잭슨의 팔을 따라 뚝뚝 떨어지고 있는 핏줄기가 보였다.


잭슨은 보이지 않는 베일 뒤에서 이를 갈았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 뇌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금방 곳곳이 몸을 세운 잭슨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는 전혀 흔들림이 없이, 이번에는 아주 반듯한 말투를 쓰면서 외쳤다.


심지어 고통을 참고, 총을 맞은 어깨를 움직이며 아무렇지 않게 양팔을 들어올렸다.


“프레스코는 ‘우리’의 집입니다. ‘우리’가 만들었고, ‘우리’가 발전시켜왔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가장 뜻이 깊은 곳입니다. 그렇기에 문도는 끝까지 여러분과 함께 할 겁니다!”


광기어린 환호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 후 잭슨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직전에 로단이 공격을 지시했지만,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그렇게 완전히 모습을 감추기 전에, 그는 뮬러에게 분노가 억눌린 목소리로 명령했다.


“처리해.”


뮬러는 제 문도가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평소처럼, 쓸데없는 말대답 없이 바로 움직였다.


수헤르에게 다가서자, 그의 살기어린 시선이 위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 억울해서. 속으로 덤덤히 생각한 뮬러가 입을 열었다.


“감히 문도님을 해치려고 ‘시도’한 범죄자를 즉결 처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 한 마디가, 잭슨이 피를 흘린 사실 따위를 모두 잊게 해주었다. 그건 전혀 부상이 아니고,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은 것처럼.


잠시 후, 수헤르의 목에 붉은 줄이 그어졌다.


그것에 멈추지 않은 뮬러는 그대로 칼을 안쪽으로 쑤셔 넣어 목뼈를 분리하고, 그대로 얼굴을 뜯어냈다. 그 모든 행동에 야만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자에게 내밀었다.


수헤르의 머리를 건네받은 바옌시나는 크게 팔을 올려, 감히 문도를 해치려한 어리석은 자의 얼굴을 모든 이에게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로단도 보고 있었다.


“.......”


귀중한 기회였다.


바옌시나의 일부를 처리하고 거리도 좁혔으니 득이 없진 않지만, 수헤르의 머리 대신, 잭슨의 머리를 분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조용해진 이유는 오직 그 실망감 때문만이 아니었다.


수헤르는 도저히 그가 좋아할 수 없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주 조금은, 수헤르가 원했던 끝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순수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표정 없이 건물로 돌아온 뮬러가 침착히 주변 사람들을 물렸다. 그리고 가만히 서있는 잭슨에게 다가갔다.


“치료해도 되겠습니까?”


이런 일은 처음이실 텐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뮬러의 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데 잭슨은 대답 없이 발을 움직였다. 치료를 해도, 여기서는 아니라는 뜻처럼 보인다. 그래서 또 그 뒤를 잠자코 따라가기 시작했다.



***



로단은 루카스에게 아셀의 조건에 대해 말했다. 여전히 로단의 목소리에는 의문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루카스도 마찬가지였다.


왜 아셀이 데이지를, 그리고 데이지는 루카스를 데려가고 싶은 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분명 한번 그 섬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루카스의 행방을 알지 못할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아셀은 아주 치밀한 놈 같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루카스는 많은 고민을 거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전해주세요.]

“...확실합니까?”

[ENM이 희생시킨, 제가 희생시킨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럴 때 망설이는 건 비겁한 일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반대로 로단을 달래는 듯한 말투였다.


로단은 대답 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그를 잃는 건, 가까운 친척을 잃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또 물었다.


“마지막에 아셀의 말을 듣지 않는 수도 있습니다.”

[분명 그럴 때를 대비해 생각해 놓은 것이 있을 거예요.]


착잡해 보이는 로단이 신경 쓰였는지 루카스가 덧붙였다.


[물론 데이지와 함께 벗어날 수 있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테니 걱정마세요.]


연결이 끝났다. 잠시 고민에 빠진 로단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잭슨이 서있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정했다.


이건 타협이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다. 루카스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더 이상 문도가 원하는 대로 휘둘려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버튼을 눌렀다.


아셀이 신호의 차단을 풀었는지, 이번에는 제대로 무전이 도착했다.


“이준.”

[뭐야, 이제 되네? 왜?]

“해주었으면 하는 게 있어.”



***



아셀이 소유한 섬의 시설은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있었고, 오직 그의 신체 신호를 통해서만 운영되는 섬이다. 모든 것이 그가 원해야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의미였다.


만약 로단이 정보를 받았음에도 루카스를 보내지 않는다면, 그 결정에는 루카스의 의견도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지는 순순히 포기할 터. 혹여 그렇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그녀는 빠져나가지 못한다.


로단이나 루카스가 이 조건을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아셀에게 루카스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웬만하면 데려오는 편이 좋긴 했다. 오직 데이지를 위해서. 그에 로단의 답을 들었을 때에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떠나기 전에 아셀은 베브에게 순순히 칩을 넘기고, 현재 그들이 숨어있는 창고는 더 이상 쓰지 못할 것도 일러주었다. 프레스코 직원들에게 오래된 물품도 한 번 더 확인하라고 명한 오드리의 결정 때문이었다.


특히 잭슨이 지금 프레스코에 들어온 쥐새끼를 찾겠다고 아주 난리였다. 게다가 이제는 그도 방주에 들어가는 시늉을 해야 했다. 이미 필요한 물품은 모두 잠수함과 섬에 들어가 있지만.


당연히, 베브는 칩을 받은 후에도 그를 끝까지 신뢰하지 못했다.


“칩이 네 것이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지?”


달린은 베브의 뒤에서 아셀과 바네사를 살벌이 노려보고 있고, 아셀은 그녀의 시선을 여유롭게 받아치며 귀 뒤의 흉터를 보여주었다. 치료받은 지가 얼마 되지 않은 상처였다.



***



데이지는 아셀, 바네사와 함께 잠수함으로 내려갔다.


...루카스님.


지금 자신이 얼마나 휘둘리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괴감은 더욱 강해지기만 했다.


하지만 이내 세 사람의 앞을 가로 막는 이가 있었다. 아욱세시아였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곧 방주가 시작 돼.”


아셀은 간섭하는 일이 가장 적었던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뒤늦게 대답했다.


“그래서 내 짐도 옮기고 있잖아. 근데 넌 왜 여기에 있어? 내가 이곳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고.”


그에 대한 반응은 다른 사람에게서 나왔다.


잭슨이 아욱세시아의 뒤에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언젠가 네가 선을 넘는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보아하니 신경질이 날 때는 미친 듯이 일하는 경향이 있는 잭슨이, 결국 자신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좀 짜증나네.


아셀이 속으로 생각했다.


슬쩍 보니 잭슨의 어깨에 혈도 묻어있다. 꽤 많은 양의 피가.


이번에 지민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더니 사실인 듯하다. 게다가 다치기까지! 짜증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이제 조금만 더 지하로 내려가면 잠수함이 있는 곳에 도달했고, 로단에게 그 ‘정보’를 전해주기 전에 빠져나가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그 길을 방해하고 있었다.


아욱세시아는 둘째 치고, 잭슨이 가장 큰 문제였다.


드디어 아셀이 입을 열었다.


“그냥 이제 마지막이니까, 구경 좀 하러 나왔어.”


그가 공식적으로 소유했던 영역은 지하시설이었다. 인적이 드문 만큼 그곳에서 아주 많은, 비밀스러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설명에도, 잭슨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아셀은 언제나 뒤에서 일을 벌였기 때문이다. 하긴, 언제 그렇지 않았냐만은.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하에 뭐가 있지.”

“지금 상황이 이 지경이 됐다고, 우리들의 규칙까지 깨지마.”


아셀은 침착하게 말했다. 잭슨이 아셀을 찾길래 함께 온 아욱세시아는 그 분위기를 보고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먼저 갈 테니, 알아서들 해결해.”


그렇게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고, 곧 다섯 사람만이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아셀의 단호한 경고에 공기가 그만큼 써늘해졌다. 데이지 앞에서는 나름 상냥했던 탓에, 데이지조차 조금 긴장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녀가 전달자였을 때도, 문도끼리 이만큼 부딪힐 일은 없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 온갖 기술과 체술을 익힌 바네사가 허리 뒤로 천천히 손을 옮겨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였다. 그녀는 데이지만큼이나 실력이 있으나, 잭슨의 한나는 그렇지 않았다.


잭슨과 아셀은 형형한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다 잭슨이 먼저 입을 열었다.


“멍청한 짓은 여기서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거다.”


그러자 아셀은 기분 나쁜 내색도 없이, 그저 재밌어하며 되물었다.


“‘멍청한 짓’?”


‘지금 여기서 가장 멍청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게 누군데?’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잭슨의 이어진 말에는 벙이 졌다.


“그 단순한 제이든을 교활하게 이용할 놈은 너밖에 없으니.”


엥?


드물게 당황한 아셀은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곧 나지막이 말했다.


“...걔를 왜 나한테서 찾아?”


비슷한 표정들 사이로 정적이 흘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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