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소파앤피자 님의 서재입니다.

엘 누에보 문도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완결

소파앤피자
작품등록일 :
2022.12.25 16:12
최근연재일 :
2023.05.26 06: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6,128
추천수 :
158
글자수 :
804,680

작성
23.05.04 06:00
조회
26
추천
1
글자
12쪽

128화

DUMMY

아셀은 은근한 미소와 함께 티스푼으로 앞에 놓여있는 차를 저었다. 전달자인 바네사가 그 옆에 장식물처럼 미동 없이 서있고, 아셀의 앞자리에는 데이지가 마주 앉아있다.


이준이 더 이상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제 데이지는 바옌시나의 장군이 아닌, 아셀의 경호원으로 함께 있으니까. 물론 오직 아셀의 의지만이 반영된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방 안에서만 대기하는 것뿐이기에 거의 감금이나 다름없었다.


로단에게서 루카스의 폭죽을, 정확히는 ‘루카스와 자신’의 폭죽을 본 이후 그가 살아있다는 걸 확신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셀은 루카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더욱 확신할 수 있다.


나름 같이한 세월이 길다. 분명 아셀도 데이지가 루카스에 대해 알아차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목구멍 아래까지 복잡한 분노가 적대적으로 차올랐다. 그걸 증명해주는 것처럼, 두 눈도 그만큼 살벌하게 번뜩였다.


바로 스스로의 숨을 끊거나 앞의 아셀을 죽이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 있을, 루카스에게 돌아갈 수 있는 아주 낮은 가능성 때문이다. 하지만 아셀은 여전히 찝찝한 미소와 함께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데이지는 그 입 꼬리를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충동은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 오히려 아셀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변태 새끼.


두려움이 아닌 분노로 몸을 떨며, 과거를 떠올렸다.



***



아론이 사망한 이후, 즉 루카스가 문도가 된 이후에 자연스럽게 전달자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어느 날 비밀리에 문도의 부름을 받았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따금씩 직접 타 문도의 전달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 있긴 했다.


그런데 그녀를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아셀이었다.


제이든이나 다이아나처럼 완전히 정신을 놓은 것 같지는 않으나, 언제나 어딘가 꺼림직한 남자였다. 그리고 그는 뜬금없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버그가 아직도 이곳에 남아있다지?”


순간 속이 가라앉았지만, 머릿속은 그만큼 복잡하게 엉켜들었다. 제발 아셀의 입에서 루카스의 이름이 나오지 않기를. 하지만 상황은 처음과 같이 그녀가 바라는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윌리엄도 그 중 한 명이고?”


데이지는 가능성을 계산하는 시선으로 아셀의 뒤에 서있는 바네사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아셀을 눈에 담았다.


어떡해야 하지?


지금 두 사람을 제거한다고 하더라도, 루카스가 그 사이 안전할거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나 아셀이 이어간 말은 또 의아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무사히 빠져나가도록 도와줄게.”


여전히 데이지의 경계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웃음에는 어떠한 활기참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론 윌리엄이 만든 지하통로로 나가는 걸 눈감아주겠다는 소리야.”


.......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 당시의 버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아셀은 알고 있다.


대체 그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누가 알고 있는지도.


하지만 그녀가 걱정하는 것처럼 그 문의 존재에 대해 아는 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오직 아셀 본인과 전달자인 바네사만이다.


아셀은 항상 작은 정보라도 캐내서, 낱낱이 시설을 관찰하고, 보고하라 명했다. 그 보고를 했던 정보원들은 이미 바네사가 처리했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이들은 없다.


“...뭘 원하십니까.”


속으로는 온갖 욕지거리가 서로 싸우듯이 치고 올라왔다. 그러나 아직 그러면 안 됐다. 루카스의 목에 칼을 댈 수 있는 사람이 이 인간일 때는 참아야 한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물론 다른 문도들이 그를 찾지 못하도록 막아줄 수도 있어.”


질문의 대답은 하지 않고, 자신을 놀리듯이, 떠보듯한 말이 이어진다. 분노가 치솟은 데이지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죄송하지만, 뭘 원하시는지 물었습니다.”


예의바르지만 단호했고, 또한 묘하게 적대적이었다. 아셀의 히죽거림이 점점 거슬렸다.


“난 ‘그’를 찾지 못하게 막아준다고 했잖아?”


그 말에 데이지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셀이 자연스럽게 덧붙였다.


“난 ‘널’ 원해.”


그렇게 말하는 아셀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날 대체 언제 만났다고. 나에 대해 대체 뭘 안다고.


그런데 차마 이유를 물어볼 수 없다. 아셀의 눈에 들어가 있는 짙은 욕심과 소유욕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깊고 복잡한 고민에 빠진 그녀에게 그가 독촉했다.


“고민할 거리가 있나?”

“.......”

“루카스가 그렇게 소중하진 않은 가봐?”


부러 그의 이름을 들먹이는 아셀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맞았다. 이건 그 누구도 아닌 ‘루카스’에 대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입에서 나올 대답은, 이미 루카스가 언급되었을 때부터 정해져있었다.



***



며칠 후, 그의 방에 들어오는 데이지를 발견한 루카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심하게 굳은 얼굴에 걱정을 드러냈다.


“괜찮나요?”


안 그래도 요새 반쯤 정신을 놓고 있는 그녀가 걱정이 됐는데, 역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다.


“데이지?”


지금까지 질문을 외면해온 데이지에게, 이번만큼은 확실한 대답을 듣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먼저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뜬금없었다.


“도망치십시오.”

“...네?”

“도망치십시오, 루카스님. 버그인 것이 들통 났습니다.”


그 순간 루카스는 아론이 내내 걱정해왔던 일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데이지는 그 다음으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이곳에 남을 테니 미련 없이 떠나십시오.”


같이 세워놓은 탈출계획을 떠올리던 루카스가 바로 인상을 쓰고 되물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대체 무슨 일-”


그녀는 즉시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당신과 함께 갔다가 저까지 목숨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당연히 루카스는 그 일방적인 결정을 거부했다.


심지어 데이지가 일부러 상처 주는 말을 골라해도 소용없었다. 그의 단호한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강한 신뢰를 지니고 있다.


“당신을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영원히 도망 다니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왜 계속 거짓말은 하는 거예요?”


결국 조용히 입의 안쪽을 세게 깨물었다. 이 사람은 정말. 얼마나 자신을 믿고 있는 건지. 안 그래도 찢어지는 것 같은 가슴이 더욱 아려왔다. 그렇기에 루카스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루카스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주먹을 휘둘렀다.


처음이었다. 그에게 이런 식으로 손을 댄 것은.


단 한 번도 그에게 폭력적으로 행동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루카스는 정말 예상외의 공격에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마침 데이지의 부름을 받았던 세르지오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있는 그를 보고 깜짝 놀라서 급하게 달려왔다.


루카스의 몸을 살펴본 후에 설명을 요구하듯이 데이지를 바라보자, 그녀는 자신이 루카스를 배신했으며, 어서 그를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라고 말했다.


세르지오는 루카스와는 가까웠지만, 데이지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데이지의 말을 사실로 여겼다. 그저 일말의 정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고.


잠시 자신들을, 루카스를 배신한 그녀를 살벌한 눈으로 노려봤다. 하지만 곧 루카스를 등에 업고 감금실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항상 깜짝 방문을 즐기는 제이든 덕에 사람들이 더 기피하는 그곳으로.


그는 아론의 문을 만들었던 엔지니어 중 한 명이었다.



***



데이지가 일시적으로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아셀은 타 문도들에게 데이지를 그의 경호원으로 이용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이건 언제나처럼 넘어갈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오드리에게 잭슨의 힘이 더해졌다. 그 두 사람이 한 뜻을 모은다면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자 아셀은 이미 그 반응을 예상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다른 제안을 건넸다. 그렇다면 그녀를 바옌시나의 장군으로 만들겠다는 소리였다. 그러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난 그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내가 말했잖아. 그 전달자가 나한테 와서 윌리엄의 정체에 대해 털어놓았다고. 그 정도면 충성심은 증명된 거 아닌가?”


그리고 여전히 떨떠름한 얼굴들에게 덧붙였다.


“참고로 전투능력은 아주 뛰어나.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글로리아가 한숨 쉬듯이 말했다. 언제나 중립을 지키려는 그녀다운 말이었다.


“그럼 내 전달자를 감시 역으로 붙이는 것에는 불만 없겠지?”


글로리아의 말에 잭슨이 미간을 좁힌 채 말했다.


“루카스 윌리엄은? 이대로 순순히 도망가게 둘 수 없어.”


한낱 전달자 따위 관심 없다. 그 배신자 놈을 제거하는 게 더 중요했다.


데이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서로의 간섭을 지양하는 평소의 규칙덕분이었다.


그 후 오랫동안 이어진 회의는 일단 루카스의 행적을 조사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사실은, 그의 행적을 가장 먼저 알아낸 사람도 아셀이고, 그것을 감춘 사람도 그였다.


아셀은 루카스가 C후반지역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찾아냈고, 그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위증된 증거를 다음 회의에 들고 갔다. 루카스의 의도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막기 위해서였다.


그 증거는, 루카스가 이미 C후반지역에 거짓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셀에게서 나온 증거물에 대부분의 문도는 믿는 듯했다. 적어도 ‘대부분’은.


잭슨과 오드리는 요즘 따라 수상한 그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던 중, 갑자기 잭슨이 제안했다.


“배신자를 이대로 살려 보낼 수는 없지. 버그도, 니티도 문도의 영역에 침범했던 전적이 있고, 이번에는 그 가능성을 완전히 막아버릴 필요가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 극단적인 방법도 필요하고.”


가장 마지막 말이 잭슨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그걸 인식한 오드리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방법?”


그러자 그는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바이러스. 마침 실험 중인 게 있으니까 말이지.”


일반 지민 또한 죽어가겠지만, 겨우 위험지역과 C후반대의 인간들이다. 게다가 절대 문도의 명령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잭슨은 스스로가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덧붙였다.


“내가 책임지도록 하지.”


문득 보면 프레스코를 위해 정한 일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그가 루카스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잭슨은 언제나 자신의 권위에 닿는 도전을 혐오했다. 배신도 그 도전의 하나였다.


이미 생각해둔 것이 많았던 것처럼, 바이러스에 대한 긴 설명이 이어졌다.


심각하지만 변종이 일어나지 않는 바이러스여야하고, 동시에 A지역이나 다른 지역에도 피해가 들어갈 것을 염려해서 대량의 백신을 생산해두어야 한다. 잭슨은 일 년의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라 말했다.


그래도 가능하면 백신을 배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같은 지민이 서로를 격리하고 혐오할수록, 일은 더 쉬워질 테니. 루카스는 죄책감을 느낄 테고, 그 때문에 꼬리를 드러낼 터였다.


그렇게 또 다른 회의가 끝나고, 바로 나가려는 아셀을 잭슨의 부름이 붙잡았다.


“얘기 좀 하지.”


잠시 무시하고 나갈까 고민했지만, 지금 그랬다가는 뒷수습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의자에 앉았다.


오드리는 회의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전달자를 밖으로 내보내더니, 이미 둘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그녀 또한 자리 잡았다.


두 사람의 시선에도 단호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목석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는 의심하는 것이 생기면, 그것을 알아서 실토할 때까지 집요하게 쳐다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엘 누에보 문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0 150화 (완결) 23.05.26 33 1 13쪽
149 149화 23.05.25 22 1 13쪽
148 148화 23.05.24 22 1 12쪽
147 147화 23.05.23 21 1 12쪽
146 146화 23.05.22 23 1 12쪽
145 145화 23.05.21 24 1 12쪽
144 144화 23.05.20 21 1 11쪽
143 143화 23.05.19 23 1 13쪽
142 142화 23.05.18 21 1 12쪽
141 141화 23.05.17 22 1 12쪽
140 140화 23.05.16 24 1 12쪽
139 139화 23.05.15 23 1 12쪽
138 138화 23.05.14 23 1 13쪽
137 137화 23.05.13 22 1 11쪽
136 136화 23.05.12 21 1 12쪽
135 135화 23.05.11 21 1 12쪽
134 134화 23.05.10 21 1 12쪽
133 133화 23.05.09 23 1 12쪽
132 132화 23.05.08 22 1 12쪽
131 131화 23.05.07 25 1 13쪽
130 130화 23.05.06 25 1 12쪽
129 129화 23.05.05 27 1 11쪽
» 128화 23.05.04 27 1 12쪽
127 127화 23.05.03 27 1 12쪽
126 126화 23.05.02 28 1 12쪽
125 125화 23.05.01 26 1 12쪽
124 124화 23.04.30 24 1 12쪽
123 123화 23.04.29 25 1 13쪽
122 122화 23.04.28 26 1 12쪽
121 121화 23.04.27 24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