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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앤피자 님의 서재입니다.

엘 누에보 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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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소파앤피자
작품등록일 :
2022.12.25 16:12
최근연재일 :
2023.05.26 06:00
연재수 :
1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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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3
추천수 :
158
글자수 :
804,680

작성
23.05.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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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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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43화

DUMMY

어느 순간, 갑자기 바옌시나가 모든 행동을 멈추고 일제히 반으로 갈아지기 시작했다.


위험한 무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한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하지만 로단과 이라셰마의 얼굴은 조금 달랐다.


흰 베일을 쓴 남자가 조금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잭슨 테일러였다.


문도의 옷을 입은 그를 보고, 잠시 긴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 사람이 문도라는 것을.


“모두 들어라!”


잭슨은 하나의 고고한 신처럼 오만한 목소리로, 군중을 하나로 묶어둘 만한 연설을 이어갔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 연설이 나오는 곳은 이 교전 지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바옌시나에게 둘러 쌓여, 그 누구보다 제대로 된 안전을 보장받았다. 심지어 본래 인력이 있어야할 곳도 비어있다. 그런데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은 위험해도, 문도의 안전은 당연한 것처럼.


미처 대피하지 못한, 혹은 도움을 거부했던 지민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기쁜 환호성을 질러댔다.


문도를 이렇게 직접 목격한 것은 그들에게 난생 처음이었다. 그건 바옌시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밖의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건물 안에서, 오드리는 말없이 잭슨을 응시했다. 그리고 곧 뒤돌아섰다. 이제는 방주의 준비가 거의 끝났을 테니까.


잭슨의 등장에 ENM을 향한 주변의 시선이 한층 더 위협적으로 변해갔다. 적군을 넘어서, 감히 신을 넘보는 어리석은 자를 보는 눈이다.


그동안 로단은 잭슨의 뒤에 있는 전달자를 보았다. 루카스가 넘겨준 나머지 자료덕분에 이미 그녀의 얼굴을 알았다.


한나 밀러.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불같은 복수심이 차올랐다.


문도 모두가 그의 적이나, 막상 눈앞에서 직접 마주하니 지금까지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에이스도, ENM도, 표정을 완전히 드러내는 일이 적었던 로단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잭슨 또한, 그 격분을 알아차렸다.


잭슨은 그런 로단이 어이가 없었다. 지금 화를 내야할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 다만 이 지위를 더욱 단단하기 위해서 참고 있을 뿐.


난 신이야.


적어도 신에 가장 가까운 자라고, 본인은 생각했다.



***



데이지는 직접 로단과 대화하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루카스와도.


정말로 그 분이 안전한건지. 정말로 살아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대로 ENM이 무너진다면, 루카스의 목숨은 또 다시 위태로워질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앞에서 웃고 있는 저 인간의 말을 한 번 더 믿어야 할까?


그녀는 의심 가득하게 아셀을 바라봤다.


당연히 아셀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항상 오만한 삶을 살던 문도가 그런 눈치를 볼 리가 없다.


데이지는 이미 그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선택권이 없다. 그녀에게는 루카스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니까. 지금 이 갈등보다도 훨씬 중요한 사람. 그래서 이번만큼은 먼저 조건을 내밀었다.


“그 분을 제 앞에 데려오십시오. 정말로 살아계신지 확인해야겠습니다.”


아셀이 흥미로운 눈을 했다.


“그래? 윌리엄이 정보를 얻겠다고 너를 버렸는데, 그건 아무렇지 않아?”


조용히 그는 데이지의 반응을 예상해봤다.


슬퍼할까?


처음으로 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자신의 멱살을 잡아 주먹질을 할지도.


하지만 그녀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루카스를 이해하는 것처럼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긋지긋한 악연일 지라도, 지금 아셀의 저 말이 거짓이 아님임을 알았다.


루카스님.


루카스가 아무리 자신을 원망해도, 이미 신용을 잃었다 해도, 그녀는 그를 지켜야만 했다. ENM은 너무 아슬아슬한 존재였다.


“상관없습니다.”


그 단호한 말투만큼이나 강인하게 번뜩이는 눈을 보고, 아셀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저런 눈을 하면 이번에도 즐거울 것 같았는데, 순간 불쾌감이 치고 올라왔다가 도로 내려갔다. 그래도 금세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이미 시간은 얼마 안 남았어. 먼저 가야해.”


아무리 일찍 말한다고 한들, 루카스가 와야 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시간이 오래 지체됐다. 방주의 준비가 한창일 때에 사라지는 것이 최적이다. 타 문도들이 자신 때문에 남아있을 성격도 아니니.


그렇게 발을 재촉하려는 아셀에게 데이지가 물었다.


“왜 방주에 타지 않습니까?”


아셀은 데이지가 방주에 대해 아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루카스가 도망간 이후로,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했으니까.


“네가 칩이 없잖아.”

“문도라면 모든지 가능한 줄 알았습니다.”


절대 방주에 타기를 원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을 아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오드리는 깐깐한 편이라.”


간단하게 대답한 그는 바네사에게 건네받은 패드를 내려다보았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 준비는?”


그에 바네사가 간결히 대답했다.


“전부 준비되었습니다.”


그대로 로단에게 마지막 연결을 하려다 멈칫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어쩌면 처음부터 물었어야 할 질문을 던졌다. 잊었던 것이 문득 생각난 것처럼.


“넌 날 따라 갈 거야?”


즉시 바네사의 단호한 답이 들려왔다.


“예.”

“왜?”


전달자는 누구보다 그들을 신으로 여기는 것과 동시에, 그들이 신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함께 하게 해주십시오.”


엄청난 충성심이지만, 아셀은 딱히 감명 받은 것 같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할 뿐이었다.


“내려가기 전에, 로단에게 선물을 주도록 하자.”


곧 그는 바네사에게 작은 칼 한 자루를 꺼내 내밀고, 그 후 귀 뒤쪽을 보여주었다.


“갈라.”


그 행동에 바네사는 잠시 멈칫했다. 이 칩을 제거하는 것은 완전히 문도의 권한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었다.


보통 문도는 잭슨이나 오드리처럼 프레스코의 존재에 대한 의견이 명확하거나, 제이든과 다이아나처럼 아무 생각이 없거나, 나머지처럼 상황에 흘러가듯이 행동했다.


아셀은 그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제멋대로인 사람과 생이 끝날 때까지 함께할 생각이었다.


비록 데이지의 충성심에 집착하는 아셀이, 이미 그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신경조차 쓰지 않을지라도.


바네사는 그의 귀 뒤에 붉은 선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칩을 꺼냈다. 그동안 아무런 신음도 없이 뒤를 맡기는 아셀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확신을 느꼈다.


비록 데이지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는 여전히 자신을 곁에 두고 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대부분의 문도는 전달자가 쓸데없는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싫어했다. 특히나 잭슨은 더욱 그랬다. 하지만 아셀은 언제나 묻고, 말하라고 명령했다. 그렇다고 주도권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 물었다.


“왜 칩까지 빼내서 그들에게 주시려는 건가요?”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문도가 내가 배신한 사실을 알면 날 편히 놔둘 거 같아?”


바네사는 의료기기를 대고, 상처를 한 번에 보기위해 아셀의 귀 끝을 약하게 잡아당겼다.


“아프실 겁니다.”


그 경고에 아셀은 대답대신 말을 이어갔다.


“특히 테일러는 이를 갈고 나를-”


그러다 상처가 지져지기 시작하자 입을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붉은 자국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사라졌을 때에 말했다.


“-끝내려고 하겠지.”


아직도 아프게 따끔거리는 귀 언저리를 쓰다듬다가, 뒤를 돌아서 바네사를 마주했다. 그는 바로 그녀가 더한 설명을 원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또 이런 일이 생기게 하겠어? 이번에는 단 한명도 빠짐없이 끝내려고 할 거야. 그 중에는 도망간 문도도 포함돼있겠지. 윌리엄을 잡으려고 한 것처럼.”


그리고 히죽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그럴 기회도 없이 그들 또한 끝장난다면, ENM에게도, 나에게도 좋잖아.”



***



한창 전투 중일 때에 아셀에게 연락이 왔다.


로단은 앞에 있던 저격수에게 위치를 명령한 후에, 높은 곳에서 내려오면서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아셀은 연결이 되자마자 다짜고짜 선물이 있다고 말했다.


일단 그 말에 울컥했다. 안 그래도 보라는 듯이 안전한 곳에 박혀있는 잭슨 때문에 화가 나는데, 이번에는 다른 문도가 신경을 긁고 있다. 그러나 능숙하게 참아내고 물었다.


“신물?”

[칩.]


로단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아셀이, 그들이 미처 알아내지 못한 칩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윌리엄이 도망갔을 때, 우리는 계획B를 만들기로 결정했어. 그게 ‘방주’, 거대한 지하기차지. 그건 프레스코에서부터 G지역의 끄트머리까지 가.]


방주는 아무런 전자신호를 보내지 않고, 오직 그 안에서의 에너지로만 이동할 수 있다. 게다가 심해의 충격에서도 최대한 보호될 수 있었다.


[그 기차 안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이 ‘칩’이야.]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의문이 남아있다. G지역?


“...그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아니었나?”

[맞아. 그런데 그렇지 않은 곳도 있어. 범죄자를 추방한 곳은 전반지역이었고, 후반은 그렇지 않아.]


솔직해 말하자면, 조금 놀랐다. G지역이 나눠져 있는 것조차 몰랐으니까.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무도 생각지도 못했기에 가장 안전한 장소가 나오거든.]

“추방된 사람들이 그곳으로 가지는 않나?”

[전반이 얼마나 넓은데. 절대 불가능하지.]


방주의 목적지.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로단이 여전히 써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정보가 선물인가?”

[아니, 더 있어. 당연히 문도에게는 칩이 있고, 그 말은 나도 있다는 말이야. 그러나 난 방주를 타지 않지, 이해해? 그러니 그 칩을 줄게.]


로단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아셀은 그가 듣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로단의 답을 기다리며 생각했다. 어차피 끝낼 거라면, 확실한 것이 낫다고.


다른 문도에게는, 심지어 잭슨에게도 악감정은 없지만, 이기적이어야 살아남는 세상인데 누가 자신을 탓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잠시 후, 아셀이 덧붙였다.


[하지만, 그 전에 조건이 하나 더 있어.]


그럼 그렇지. 로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윌리엄은 어디에 있어?]


당연히 데이지에 관련된 일인 것을 알지만 말했다.


“왜 그걸 물어보는 거지?”


대체 이 문도는, 왜 이토록 그녀에게 집착하는 건지. 목소리나 말투에서는 문제가 보이지 않지만, 전체적인 행동이 그랬다.


[데이지가 윌리엄과 함께 가고 싶어 해. 그렇다고 기다리지는 않을 건데, 다만 나중에 데려올 수 있을지 묻는 거야.]


로단의 눈이 주위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자주 자리를 비우는 건 좋지 않다.


그때 앞쪽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것을 뒤따라오는 끔찍한 비명소리까지도. 그 광경은, 로단에게 지금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에 대한 인식을 한 번 더 일깨워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헛소리하지 말라며 욕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보 하나하나가 절실할 순간이다. 만약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무너트릴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어떡해서든 손에 쥐어야했다. 특히 이럴 때에는 더욱.


로단은 내키지 않는 속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답을 줘야 하지?”

[이제 곧 출발이야. 적어도 그와 대화는 나눌 시간을 줄게. 그 직후에 바로 연락해. 어디로 해야 할지는 알고 있겠지.]


데이지는, 베브가 말했던 대로 이미 한 번 배신한 사람이다. 배신한 것이 로단이 아니라, 루카스라고 하더라도.


고개를 돌려, 다시 한 번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잭슨을 한층 더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고고히 서있는 잭슨의 근처로 폭탄이 날아왔다. 거대한 굉음소리에 한나와 잭슨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흠칫 몸이 떨릴 정도였다.


잭슨은 분명 그 범인일 터인 로단을 눈에 담았다. 물론 로단은 싸늘한 얼굴로 그 시선을 받아쳤다.


그 순간, 세이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으며 말했다.


[찾았어!]


더럽게 알기 힘들었지만, 폴트에서 열심히 주위를 관찰하던 게 도움이 많이 됐다. 이런 기계류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수 있었으니까. 로단은 잭슨을 노려보는 눈을 돌리지 않으며 말했다.


“지금 해.”


그 다음, 바로 수헤르에게 소리쳤다.


“수헤르!!!”


그 이름 하나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감한 것처럼 수헤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주위에 있는 글러이비치들도 마찬가지였다.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 수헤르는 이 순간을 그 어느 때보다 기다려왔을 테니. 그래서 로단은 그때가 왔음을 알려주었다.


“들어가서 죽어.”


그들의 약속을 떠올린 수헤르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세이가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곳곳에서 무시할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났다.


혼란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 건물의 거의 모든 기능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잭슨과 한나만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다. 그들은 생각했다.


건물 안에 쥐새끼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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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138화 23.05.14 2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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