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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앤피자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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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소파앤피자
작품등록일 :
2022.12.25 16:12
최근연재일 :
2023.05.26 06: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6,125
추천수 :
158
글자수 :
804,680

작성
23.05.01 06:00
조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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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5화

DUMMY

대답을 피하고 싶었던 로단이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가만히 넘어가줄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입을 열었다.


“클로이가 가져왔던 거야. 근데 그거 얘기하러 온 건 아니잖아?”

“이름이 뭔데?”

“기억 안나.”


매화 중에 하나라고 했던 것 같지만, 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은 졸지에 전 애인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걸 들켜버렸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리암은 다행히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는 로단과 클로이의 마음이 둘 다 이해가 갔다. 같은 일이 있었다면 아벨도 그를 떠났을 것이다. 이런 일에 있어서는 에밀리가 가장 현명할 지도 몰랐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로단의 물음에 리암은 잘만 말하고 있던 입을 고집스럽게 다물었다. 많이 심각한 일인가 싶어서 로단의 얼굴도 덩달아 굳었다. 그러다 나온 목소리는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미안, ...이제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단호했다.


속으로 조금 당황했지만 그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그러나 저 문장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뭐가?”

“내가 계속 여기에 있는 거.”


이번에는 혼란스러웠던 속이 오히려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로단은 그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시간이 그 생각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 말을 받아들이는 게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이런 일이 올 거라고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예상하고 있던 기분이다. 그래도 설득은 해보자는 생각으로 말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런 일은 항상 있었잖아. 앞으로도 번번이 그럴 테고.”

“그래, 항상 있었지. 근데 항상 안 괜찮아. 그거 때문에 나가려는 것도 아니고.”


더욱 깊어지는 의문에 미간이 파였다.


그 때문이 아니면, 대체 왜?


이 상황을 조금은 예상했어도, 로단에게는 여전히 그의 곁에 있는 리암이 당연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국 가족은 함께 하는 것처럼.


리암이 설명을 이어갔다.


“난 체제를 바꾸는 것만큼이나 지금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오해하지 마. 네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니까. 우리 둘은 다른 것뿐이지. 하지만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더라도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같을 거야.”


로단은 그가 이미 결정을 내린 것을 느꼈다. 이건 고민 상담이나 설득이 아닌, 일방적인 통보였다. 게다가 저 말투와 얼굴도 모두 어색하게 느껴졌다.


순간 노라가 생각이 났다. 그가 그녀를 닮았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그동안 리암은 덧붙였다.


“결과를 노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과정을 지켜주는 사람도 필요한 거잖아? 날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만 데려갈게. 그리고 적어도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은 노력할 거야. 아벨도 당연히 나와 함께 갈 거고.”


그 답지 않게 오랫동안 고민한 문제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한다면, 로단은 더 이상 그를 막을 수 없었다. 한다면 하는 인간이니까. 리암의 진심어린 말에 그와의 갈등이 완전히 끝났음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서운했고, 씁쓸했다.


그저 머릿수가 줄어드는 것보다도, 이것으로 야기될 남은 ENM의 혼란을 진정시켜야 하는 것보다도, 가족이 곁을 떠나간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었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 서운한 말만 나올 것 같아서, 아무 대답 없이 리암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리암도 온 힘을 다해 마주 안았다. 로단은 완력이 무척 센 편인 리암의 강한 포옹에 숨이 조금 막혔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자신의 팔에 더 큰 힘을 주었다.


곧 리암이 한숨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그에 대답하는 대신 한참을 안고 있다가, 서로의 팔을 풀고 뒤로 물러나며, 침착하게 물었다.


“에밀리는?”

“...같이 갈 건지는 물어봤는데, 엄청 화났어. 아마 일단은 여기 남아있을 거 같아. 그 후는 걔가 직접 정하겠지.”


에밀리도 스스로 자신의 길을 정한지 오래였다. 재능은 크게 없어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지금 그녀의 자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과한 보호를 받아온 소녀는 더 이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이번의 선택도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원래 로단은 상황이 더 위험해지면, 그들을 억지로라도 D지역에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전보다 그들을 향한 신뢰가 더 두터워지고, 그들의 능력을 더 믿었다. 그래서 괜찮았다. 항상 걱정하겠지만, 그래도.



***



리암이 떠났을 때, 화가 단단히 난 에밀리는 그 자리에 없었다.


생각보다 ENM의 많은 수가 리암을 따라갔다. 그럼에도 계속 이어지는 작고 큰 전투들 때문에 그들의 군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매일 파이퍼의 보고를 들을 때마다 그 점이 현저하게 드러났다.


그 날에도 방으로 돌아온 로단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생각해야 한다. 놓치는 것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용하면서.


그렇게 곰곰이 이 상황을 해결할 방안을 떠올리고 있는 데, 잠시 후 에이스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딱히 그들이 마음대로 들어오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간부들만 따로 잠금을 풀어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막 들어오면 짜증은 났다.


“노크 좀 해.”


짜증스러운 말에도, 에이스의 얼굴은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형식적으로 건넸을 뿐 정말로 궁금하진 않았다. 심지어 약간의 비꼼까지 들어있었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무시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에이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마 후자의 가능성이 클 것이다.


“왜 그렇게 툴툴대는지는 아는데, 내 말 들으면 정신 차려질걸?”

“뭔데.”

“그 X친년이 거기서 날뛰어준 덕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 알아?”


일단 저 분위기와 표정만 보면은 좋은 일이 틀림없었다.


“무슨 일이야?”


그제야 로단은 흥미를 느끼며 상체를 조금 일으켰다. 에이스의 목소리는 이제 한층 더 진지해졌다.


“우리한테 가담하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왔어.”


이미 그들에게 가담하겠다는 사람은 꽤 있었다. 그 때문에 지민들 사이에서도 ENM지지자와 문도숭배자와의 갈등이 심해진 거니까.


하지만 저리 말한다는 것은, 그것에도 변화가 생겼음을 뜻했다.


로단의 얼굴 또한 에이스처럼 심각해졌다. 숨길 수 없는 기대심이 엿보였다.


“얼마나?”


그런데 곧 귀를 의심하게 되는 소식이 들려왔다.


위협지역부터 시작해, 심지어 C-3지역까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건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숫자는 그들이 쉽게 믿을 수 없는 수였다.


문도는 그들이 지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에 비해 ENM은 대부분 그들에게 진정성을 줬다. 물론 그들 때문에 위험이나 혼란이 야기된 적도 있었지만, 문도와는 많이 달랐다.


자신이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는 로단에게, 에이스는 다시 진지함을 벗어던지고 말했다.


“지금 바로 C4집합지로 가서 직접 봐보자고.”



***



그곳에 도착을 했을 때, 끝이 보이지도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로단을 향해 환호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잠시 귀가 멍멍하고, 막연한 현기증이 일으켜질 정도다. 그 군중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헤집어놓는 느낌마저 들었다.


가슴이 먹먹히 벅차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도.


리암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마 이것보다는 덜 했을 것이다.


여전히 넋을 놓던 로단은 이 즐거운 벅참과, 이성을 유지해야한다는 냉정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갈등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에이스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현재 프레스코에 파악된 군대의 수는 얼마나 되지?”

“지금 저 사람들까지 합치면, 우리의 약 1.5배야. 아마 밝혀지지 않은 놈들까지 생각하면 두 배정도 되겠지.”


또 다시 말문이 막힌 로단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이준이 패드를 살펴보며 담담히 덧붙였다.


“그래도 못해볼 수는 아니야.”


그 다음에 들어 올린 이준의 얼굴에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띄어있다. 전쟁은 항상 가까이에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바로 앞에 도달하고 있었다.



***



수많은 군중이 그들을 환영했던 그 날 이후로, 또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들의 부풀어있던 기대심과 달리, 줄줄이 이어진 결과는 참혹하기만 했다.


바옌시나는 그들의 무자비함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곳곳에 있었던 집합지는 본진만 제대로 남아있을 정도로 쑥대밭이 되었다.


ENM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은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조차 오직 정보 수집을 위해서였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조용히 지민을 돕는 데에만 집중했다. 조금이라도 모습을 들어내면 금세 들켜버렸으니까.


한번 드높게 올라가던 ENM의 이미지는 그대로 가라앉았고, 당연히 리암이 만든 단체인 RT(recovery time)와 포르테를 마음 편히 도울 수도 없었다.


ENM을 떠나겠다는 리암의 일방적인 결정에 에밀리는 기분이 많이 상했었다. 그리고 동시에 많은 고민을 했다. 무고한 민간인이 학대와 학살의 대상이 되고 있고, 그것을 막는 건 ENM만으로는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암은 지민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가진 단체를 설립했다.


하지만 결국 에밀리는 로단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결정했다. 리암의 일이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로단은 지민의 보호보다도 더 어려운 일을 하고 있어서였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진 상태에서는 더욱. 그리고 리암은 그런 에밀리를 이해했다.


화해하고 난 후에 하는 오래간만의 통화에서, 에밀리가 리암에게 말했다.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그래도 되는 거 알지?”


그는 죄책감과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에 부러 장난스럽게 대답해줬다.


[그 말한 거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 후 리암에게서 이따금씩 외지어 통역을 부탁하는 연락이 오고는 했다.



***



포르테의 이라세마는 여전히 그녀가 인정한 사람이 아니면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타 지민을 보호하기는 하지만 거부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행동에 ENM과 마찬가지로 복합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전 지역에서는 문도와 별개로, ENM과 포르테의 손을 드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들로 나누어졌다.


하지만 RT는 나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두 단체와 달리 오직 지민의 보호만을 목적으로 했기에 그랬다. 그들은 최근 D지역보다 남쪽지역으로 이주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D지역을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곳조차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다.


프레스코는 ENM의 본진을 찾겠다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방치하던 지역에 군대를 배치시켰다. D지역의 지민은 최선을 다해 방어했지만, 손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존슨박사는 그 일에 대해 죄책감과 우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프레스코로 진입하기 위해 D지역을 드러냈던 것이 이 참사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로인해 D지역은 모두 프레스코의 감시 하에 놓여졌다. 그러나 D주역의 주변까지 낱낱이 살펴볼 만큼의 인력은 아니었고, 리암은 더 늦기 전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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