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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앤피자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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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소파앤피자
작품등록일 :
2022.12.25 16:12
최근연재일 :
2023.05.26 06: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6,140
추천수 :
158
글자수 :
804,680

작성
23.05.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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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0화

DUMMY

오전에 수헤르와 훈련을 하고, 몸을 씻고, 작전실에 들어가서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그러다 새로운 보고를 받으면 그에 따라 행동한다.


특별한 날이 없으면 항상 그 패턴을 유지했다.


내심 앤드류와 수헤르, 두 명을 모두 데리고 훈련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하지만 앤드류는 그 미친놈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은 호의적이지만 사람을 세뇌시키던 사이비 집단인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때와 성격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면 더더욱. 그래서 그의 이미지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수헤르와 훈련을 마치고 몸을 씻고 나오는데, 패드에서 알람이 울렸다. 줄리에에게 연락이 와있다.


[도움이 필요해.]


갑자기 웬 도움인가 싶지만, 일단 로단은 젖은 머리를 대충 뒤로 넘긴 후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미 심드렁하게 느껴지는 말투처럼, 얼굴도 똑같았다.


[우리의 거래는 끝났어.]


쓸데없는 일로 더 엮기지 말자는 의미였다. 그랬더니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느그네 포르테가 우리 고문실에서 늙은 독수리네 새끼 빼간 거, 내가 모르는 줄 알아?]


...모르는 줄 알았는데.


보아하니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써먹으려고 조용히 있던 모양이다. 그 증거로 그녀가 덧붙였다.


[맞아, 우리의 거래는 끝났지. 네게 빚이 남아있을 뿐. 나랑 전쟁 하실래? 아니면 그냥 조용히 도와줄래?]


선택권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옅은 한숨을 내쉰 그가 답장을 보냈다.


[무슨 도움.]


그러자, 저절로 두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문장이 보인다.


[C7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죄다 탈옥했어. 외부에서 누가 도와줬거든.]


X발.


[근데 그 주동자가 누군지 알아?]


알고 싶지 않았다.


[무법자, 닐슨.]



***



수색대에게서 연락이 도착했다. 그들은 그 섬에 있는 자들의 일부를 발견했고, 뒤를 추적해서 본거지에 가까운 지역까지는 찾아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도로 돌아오는 길이 번거롭고, 그 길을 따른 함정들 또한 존재한다.


[여기까진 쫓아왔지만, 더 이상 추적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전에 보냈던 정찰대는?”

[잡혀있는 것은 확실한데, 더 자세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확한 그들의 위치도 파악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대장의 목소리는 착잡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되돌아가야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그건 로단도 마찬가지지만, 지금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게 낫다. 이준의 무인기가 부서진 것도 그렇고, 이번 보고로 알 수 있듯이, 분명 상대는 전투적으로 뛰어난 이들이다.


“일단 돌아와.”

[알겠습니다.]


이내 연결이 끊어졌다.


무인정찰기로 대략 만들어진 지도에 그들의 경험까지 더해져, 제법 괜찮은 상태의 지도가 생겼다. 이준이 도움으로, 현재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자동으로 표시됐다.



***



이준은 위험지역으로 떠날 준비를 시작하는 로단에게 물었다.


“이제 출발하려고?”

“응.”


줄리에는 탈옥수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이제 ‘어크트’로 불리기 시작한 위험지역은 아직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위험지역 출신이 많은 탈옥수를 혼자 상대했다가는, 그 이미지가 더 아래로 추락할 터였다.


나름 건전한 국가를 만들 생각이기에 어크트는 ENM의 힘을 빌리고 싶어 했다.


요즘 들어 평판이 안 좋다지만, ENM은 여전히 지민을 위해 행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은근슬쩍 그 명성에 묻어가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덕에, 로단은 직접 지민들에게 얼굴을 보이며 함께 탈옥수를 잡아야 했다.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방금 입은 방탄복의 끝을 잡아당긴 다음에, 옆에 내려놓은 총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준에게,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말했다.


“가야지 어쩌겠어.”


진짜 가기 싫다.



***



보란 듯이 ENM의 군대를 이끌고 위험지역의 게이트에 도착했다. 로단은 잠시 제 자리에 멈춰 서서 앞을 바라보았다.


분명 있으나마나 할 정도로 허름했던 게이트는 새롭게 바뀌어있다. 위험지역에 있던 여러 ‘물건’들로 새로운 게이트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저분해보이진 않는다. 그저 그들의 특색을 표현한 것 같았다.


ENM의 가면과 로단의 얼굴을 본 경비원이 그 게이트를 열어주었다.


여기에 경비원이 있는 것도 처음 봤다. 당연히 폴리티에 소속된 경비원이 아닌 어크트의 일원이지만, 어쨌든 생소한 모습이다.


로단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자, 나머지도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원래 건물이 많이 없었고, 모든 것이 낡은 티가 났었다. 그런데 게이트가 그랬던 것처럼, 크게 부족한 느낌이 나지 않도록 바뀌어있다.


줄리에가 하는 행동이 점점 지민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여기서는, 로단은 항상 좋지 못한 시선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건 위험지역 지민끼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이용하는 것을 먼저 배우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눈빛이 많이 유순해져있는 걸 눈치 챘다.


이렇게 잘 할 줄은 몰랐는데.


솔직히 조금 감명 받은 상태였다.


그렇게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줄리에가 로단을 반겨주었다.


“안녕, 내 친구! 도와주러 와줬네?”


속을 긁고 싶어서 안달이 난 얼굴에 장난기가 그득했고, 로단의 감명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래서 평소처럼 딱딱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친구라고 하지 마.”

“지금 보니까 네가 내 친구들 중에 부끄러움을 가장 많이 타는 거 같아. 존나 찐따 같지만, 난 마음이 넓으니까 괜찮아. 자, 들어와.”


벌써 짜증이 난다.


다른 ENM은 그들이 제공한 쉼터로 향하고, 로단만이 줄리에를 따라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단 둘이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가끔 헛소리를 늘어놓아도, 꽤 빠르게 본론에 들어가는 편인 그녀가 말했다.


“일단, 포르테의 도움을 청해도 소용없겠지?”


그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이라셰마는 우리를 제외하고는 협업하지 않을 거야.”


여기서 ‘우리’는 당연히 ENM이었다. 그런데 줄리에가 놀리고 싶은 충동을 참지 않고 말했다.


“잠깐! ‘우리’라면... 너와 나? ENM과 어크트? 그럼 문제없네!”

“.......”

“알겠다, 알겠어. 재미없는 새끼.”

“짜증나게 하지 마.”

“넌 유난히 나한테 예민하게 굴더라? 하지만 존나 하찮으니까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정말 괜찮다는 것처럼 자비롭게 말한다. 폴트로 돌아가고 싶었다.


당연히 그 다음에는 도로 본론에 돌아갔다.


“좋아. 포르테는 우리를, 내 말은, ‘어크트’를 못 도와주고,”


얄미운 소리를 단 한순간이라도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건가.


“그냥 너희와 우리가 알아서 해결해야 된다는 건데, 일단 지금 상황을 설명해줄게. 어차피 그 여자 성격상 자세한 설명도 해주지 않았을 거 아니야?”


사실이었다. 이라셰마와의 정보 공유는 항상 일방적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로단도 이라셰마의 성향을 알고 있었고, 포르테가 힘을 키울수록 이득이었기에 불만을 가지지도 않았다. 게다가 정말로 상황이 좋지 않으면 그때는 그들도 제대로 설명했다.


“얘기해봐.”

“포르테가 무법자를 거의 다 끌어내렸어. 정확히는 거의 다 죽여 놨지. 그러니까 결국 불안했는지 닐슨이 교도소를 건든 거야. 근데 그걸 이라셰마가 봐줬겠어?”


그 독불장군은 줄리에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 심지어 그녀는 로단보다 이라셰마를 더 경계했다. 그 위압감과 무자비함은 생각보다 강력한 분위기를 풍겼으니까. 그리고 짧은 대화 끝에, 그녀의 성격도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탈옥수도 죄다 죽여 버렸어. 솔직히 말할게. 나 그때 좀 반한 거 같아.”

“헛소리로 넘어가지마.”

“차갑긴. 어쨌든, 그래서 도저히 포르테의 영역과 가까운 데에 있을 수가 없었나봐. 도망치고 도망쳐서, 그 새끼들의 고향으로 온 거지. 근데 여기는 어크트가 차지하고 있네?”


재수 없게, 포르테는 건들 수 없으면서 여기서는 희망을 본 모양이다. 줄리에는 꽤 열이 받았다. 예전에는 어크트라고 하면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던 새끼들이, 햇빛 하나 못 받는 교도소에 오랫동안 갇혀있더니 그 시절도 모두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녀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로단은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같이 그놈들을 죽여 달라고?”

“응. 어차피 너도 우리랑 오랫동안 연관되기 싫잖아? 굳이 제압하고, 납치하고, 처벌해봤자, 해결해야할 기간만 늘어질 뿐이야.”


그 말에는 동의했다. 그 기색을 읽은 그녀가 덧붙였다.


“어차피 이곳을 한 번 더 공격하려 올 테니까, 그때 같이 쓸어주면 돼. 우리 쪽 사람 수가 좀 부족하거든.”


애초에 교도소가 그렇게 쓰레기처럼 운영되던 것도, 모두 죄수의 수에 비해 운영비가 턱 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흉포한 놈을 억지로 잡아두려면 그 이상의 공포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비인간적이지만.


“왜 먼저 공격하지 않고?”


딱히 그들에게 동정심은 없는 줄리에가 비웃음을 숨기지 않으면서 말했다.


“교도소에 익숙한 박쥐새끼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잘 숨어 다니더라고. 그 새끼들이 모이는 순간은 단 하나 뿐이야. 공격할 때.”



***



어크트에서 제공해준 공간은 나쁘지 않았다.


비록 음식은 폴트에 비해 질이 떨어졌지만 익숙한 맛이다. 그래서 착실히 입에 넣으면서, 로단은 이준에게서 받은 보고를 확인했다.


로단의 부재는 이제 자연스럽게 클로이가 맡고 있고, 그녀가 같은 수색대를 다시 한 번 보냈다는 보고였다.


한번 그의 자리를 경험해본 사람이니 더 좋은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답장을 쓰려는데, 갑자기 경보음이 곳곳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바로 로단은 줄리에가 말한 때가 왔음을 알아차렸다.


로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훈련된 군대가 무기를 손에 쥔 채, 착실히 사령관의 뒤를 따라갔다.


게이트의 바로 안에 위치한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로단이 온 것을 확인한 줄리에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로단.”


줄리에의 시선을 따라가 앞을 보자, 이미 시작된 전투가 시야에 들어왔다.


“.......”


제대로 미친 인간들처럼 보였다.


입에는 침이 줄줄 흐르고, 두 눈은 빨갛게 충혈이 되어있다. 말을 잊은 짐승처럼 허공에 울부짖으면서 무기만 휘둘렀다. 동료의 죽음도 본인의 상처도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 제일 미친놈은 수헤르였는데, 그 생각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일단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전히 무법자들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은 상태였다.


“공격!!!”


ENM은 기다렸다는 듯이 함성을 지으며, 다시 열린 게이트 사이로 튀어나와 어크트의 전투에 참여했다.


그때 로단과 줄리에를 향해서도 총알이 날아왔고, 그들은 동시에 울타리 아래로 몸을 숙였다. 그런 로단에게, 그녀가 웃음기가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교도소에 가면 미치거나 죽는 다더니, 사실이더라.”


그게 가장 위험한 적이었다. 죽는 게 무섭지 않은 적.


고개를 돌리자, 농담을 할 때처럼 웃고 있는 줄리에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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