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소파앤피자 님의 서재입니다.

엘 누에보 문도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완결

소파앤피자
작품등록일 :
2022.12.25 16:12
최근연재일 :
2023.05.26 06: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6,122
추천수 :
158
글자수 :
804,680

작성
23.04.30 06:00
조회
23
추천
1
글자
12쪽

124화

DUMMY

“으..! 으!!!”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여자는 미친 사람처럼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바닥을 마구 발로 차기 시작했다. 심지어 옆에 있던 군인을 때리기까지 하면서 미친 듯이 화풀이를 하던 헤이즐은, 어느 정도 진정을 했는지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땠다.


“지금 이곳에 있는 군인들이 보이지 않아?!”


리암은 그 격분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렇게 헤이즐이 감정을 들어내면 들어낼수록 상황을 바꿀 가능성은 늘었다. 벌써 자포자기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헤이즐의 시선이 여자에게서 리암으로 옮겨지자, 몸을 숨기고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본 더 많은 사람들이 여자와 리암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그녀가 했던 것처럼 가면을 주워서 얼굴 위로 덮었다. 리암은 지금 이 변화가 여자의 덕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리암이 비웃는 표정으로 헤이즐을 향해 말했다.


“미안하지만 역효과 났네.”


물론 지금보다 속을 더 긁어내고 싶지만, 이미 리암의 입 꼬리가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그 끝이 방금 전의 손가락처럼 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또 다른 흥분감 때문이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귀까지 도달하고, 가슴은 먹먹하게 벅차오른다. 이건 예상했던 것보다도 좋은 상황이었다. 로단이 이곳에 있었다면 그 또한 같은 것을 느낄 터였다. 그들이 정말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엄청난 수의 지민이 그 많은 군대를 한 번에 둘러쌓았다.


아무리 군력이 많더라도 이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적을 수밖에 없다. 물론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기 때문에 무모한 행동이지만, 바옌시나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리암 밀러.”


그때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리암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은 그 시선을 따라갔고, 리암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처럼 넋을 놓았다.


“이라셰마?”


그녀를 보고 놀랐다기 보다는, 그 뒤에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라셰마의 뒤에 서있는 이들은 본래의 포르테뿐만이 아니었다. 포르테와 비슷한 무기를 가지고 긴장된 얼굴로 서있는 그들은 모두 일반인이다. 하지만 그들의 어깨나 팔에는 커다랗게 포르테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모르는 새에 포르테의 수가 많이 늘어난 모양이었다.


헤이즐은 갑자기 튀어나온 또 다른 불청객이 반갑지 않았다.


“넌 또 뭐야! 이것들이 진짜-”


그러자 이라셰마는 그녀의 말을 망설임 없이 끊어내며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곳은 내 구역이다. 떠나라.”


위협적인 말을 시작으로, 포르테는 즉시 위협적인 자세를 잡았다.


바옌시나 또한 그 움직임을 경계하며 헤이즐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위치로 이동했다. 주위의 눈들이 완전히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이라셰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ENM의 로단이 나에게 이 땅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나 또한 이곳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지. 이곳은 나의 구역이다. 이곳에 있는 인간도 나의 소유다. 그러니 떠나라.”


아무런 표정 없이 고요한 분노를 흘러 보내는 그녀의 얼굴은 한층 더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이라셰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오래 되었던 리암은 화를 폭발하지 않고 담담히 말을 이어가는 목소리가 낯설었다. 물론 성격은 그때와 비슷했지만 조금 더 위압감이 느껴졌다.


“아, 이제 못 참겠어!!! 이 벌레들은 지긋지긋해! 그냥 죽-”


그녀의 명령이 끝마치기도 전에 세 명의 군인이 갑자기 바닥으로 쓰러졌다.


놀란 헤이즐의 시야에, 목에 화살이 박힌 채 쓰러져있는 세 구의 시체가 들어왔다.


다시 획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이라셰마의 뒤에서 석궁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건 경고다.”


이라셰마의 손짓에 모든 포르테가 싸울 준비를 끝마쳤다. 리암의 주변에 있던 일반지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가져왔을지 모를 삽이나, 식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이라셰마는 말했다.


“이 이상 다가온다면 우린 전쟁을 할 것이다. 우리 부족에는 ‘전쟁을 두 손에 쥔다.’는 말이 있지. 한 번 싸움이 일어나면, 마지막 한 명까지 찾아 시체로 만들어야 한다. 전사의 영혼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어줄 양식을 그렇게 구하는 것이지.”


헤이즐의 신념 없고, 줏대 없는 광기가 혐오스러웠다.


누군가는 포르테를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민족이라고도 부르지만, 그곳에는 항상 상대 전사를 향한 배려와 존경이 있었다. 그 마지막 자비가, 고통 없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저 여자는 오직 재미로 목숨을 거두고, 아무런 존경심도 보이지 않는다. 본인의 말처럼 마치 벌레를 보듯 했다.


“네 년의 목을 딸 때가 가장 기대가 되는 군.”


써늘한 눈과, 짙게 깔린 목소리에 헤이즐은 뒷목에 오싹한 서늘함이 기어 올라왔다. 처음으로 그녀가 말문이 막힌 채 입을 다물었다.


그 상태로 고요한 대립은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하지만 먼저 입을 여는 사람도, 다른 행동을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이라셰마는 계속해서 헤이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그녀는 그 시선에서 전신을 덮치는 것 같은, 짙은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어느 순간 다시 무전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ㄹ-암!]


마침내 헤이즐에게서 눈을 돌린 이라셰마가 그를 힐끗 보았다. 잠시간이라도 시선에서 벗어난 헤이즐은 자신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쉬었다.


리암은 왠지 이라셰마의 눈빛에서 허락을 느꼈다. 그녀에게서 명령받을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리만큼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리암이 무전을 받았다.


“로단! 어디야! 어떻게 연락한 거야?!”

[이준이 어느 정도 해결했어! 지금 가고 있는 중이니까 조금만 더 버티고 있어!]


그 후 무전기는 다시 잠잠해졌다.


그 말을 들은 건 리암 뿐만이 아니었다. 헤이즐은 크게 씩씩거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울상을 지었다.


제이든이 이 꼴을 만든 자신을 어떻게 볼지 두려웠다. 그녀는 제 문도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몇 명의 인질이라도 데려가야 할 것 같았다. 제이든의 장난감용으로.


“두 명 아니, 세 명은 잡아!”


그건 현명한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군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 중 한명이 슬쩍 되물었다.


“확실합니까?”

“세 명이라도 잡으라고!”


그리고 이라셰마의 써늘함이 다시 그 혼란을 깨트렸다.


“전쟁인가?”


이라셰마는 이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건 자비로운 미소보다는 파괴자의 것과 비슷했다.


곧 일어날 살상을 기대를 하는 듯한 모습에 헤이즐의 붉었던 얼굴은 이번에는 하얗게 창백해졌다. 저 무서운 년! 그 말조차 속으로만 하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이윽고 귀가 좋은 이라셰마는 가까이 다가오는 소란스러운 소음을 들었다. 로단이 거의 도착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저 멀리서 차량 소리가 들려왔다.


곧 무기를 들고 있는 ENM들 또한 함께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작게 보이는 로단의 얼굴까지 확인한 헤이즐은 더 열이 받았다.


하지만 이 흐름은 전혀 좋지 않다.


아아, 안 돼. 분명 내 문도님이 실망하실 거야.


결국 눈물이 맺힌 얼굴로 작게 탄식한 그녀는, 다급하게 철수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심정으로 그 결정을 내렸든, 지민들의 눈에는 바옌시나가 로단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로단은 무사히 도착해서 발을 내딛자마자 그를 둘러싼 함성소리에 의아했다. 분명 질타를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일이야?”


어리둥절한 얼굴로 리암에게 묻지만, 리암은 그저 로단의 어깨를 두드리며 기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즐겨!”


그렇게 말하는 리암의 얼굴은 마냥 기분이 좋아 보이기도 했고, 뭔가를 결정한 듯 결연해 보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로단은 리암이 무사한 것에 안심했다.


그에 한순간에 풀어진 얼굴로 리암을 한 번 강하게 끌어안고, 곧장 이라셰마를 향해 걸어갔다. 그를 걱정했던 것에 비해 짧은 포옹이었으나, 아직 이라셰마와 할 얘기가 많았다.


리암은 대체 언제 로단이 포르테와 이런 계획을 세웠는지 의문이면서도, 착실히 사람들을 불렀다. 그리고 사체들을 하얀 천으로 덮은 후에, 하나씩 묻어 줄 준비를 시작했다.


그 과정을 리암은 복잡한 얼굴로, 단 하나도 빠짐없이 바라보았다.



***



거의 그 과정의 막바지가 될 때쯤에야 돌아온 로단은 말없이 그의 옆에 섰다. 리암이 어떤 기분일지 예상이 간다. 본인이 직접 골라 온 사람들인 만큼 많이 착잡할 것이다. 그래서 위로 삼아 리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무언의 위로에 리암은 고개만 힘없이 끄덕였다. 그가 이렇게 힘이 빠진 모습은 익숙지 않았다.


한곳에 몰려있는 지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돌려보내고, 열여섯 명의 ENM과 일반인 사망자들을 함께 묻어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끝이 나서야, 리암은 뒤늦게 로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전과는 달라진 포르테와 지민의 방향에 로단은 리암이 그랬던 것처럼 성취감이 벅차올랐다. 그 흥분을 조금 더 만끽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럴 여유는 없는 듯 했다.


“수고했어. 이제 돌아가서 푹 쉬어, 수습은 나랑 에이스한테 맡기고.”


그렇게 말하는 로단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무게가 덜했다. 그만큼 안심하고, 이 상황에 기뻐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와 다르게 리암은 오히려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은근한 흥분으로 상기된 로단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 나중에 봐.”


금세 침착해지는 로단이 그 차이를 알아차릴까봐, 그는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



많은 희생양들이 있었던 만큼, 수습에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민에게도 얼굴을 보여야 했고, ENM의 사기도 놓여야 했고, 프레스코에게 대응하는 메시지도 보내야 했다.


웬만하면 본진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로단이 지금까지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기간이기도 했다. 적어도 실종 사건을 제외하고는.


로단은 폴트의 관리를 루카스에게 맡긴 채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간부를 포함한 다른 ENM들 모두 그러했다는 의미였다.


이번에도 로단은 기진맥진해진 몰골로 걸어갔다.


오래간만의 휴식시간이지만 아쉽게도 내일 아침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 피곤함을 증명하는 것처럼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로단!”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마찬가지로 피곤에 초췌해진 리암이 서있었다.


“잠깐 할 말이 있어서. 시간 괜찮지?”


간만에 심각한 얼굴이기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다음에 얘기하자고 하고 싶으나, 리암이 저런 모습을 보일 때는 별로 많지 않았다. 그래서 로단이 작게 하품하면서 말했다.


“내 방에서 얘기하자.”


두 사람이 로단의 방에 도착하고, 방 가운데에 있는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그가 처음 보는 마른 꽃 한 송이가 올라가있다. 촘촘한 노란 꽃잎이었다. 이미 때가 지났는지 건조시켜놓은 후에 유리 사이에 넣어있었다.


리암의 시선을 느낀 로단은, 자연스럽게 그것을 집어 들어 서랍에 넣었다. 어제 청소하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잠깐 가지고 있던 건데, 이걸 리암이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물어보지 않길 바랐건만, 리암은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그건 뭐였어?”


그나마 클로이와 연인 관계였을 때는 로단의 방도 생기가 도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소피의 물건을 제외하고는 방 안은 다시 삭막해졌다. 그런 장소에 로단의 취향도 아닌 물건이 있는 것이 이상했다. 게다가 소피도 꽃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엘 누에보 문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0 150화 (완결) 23.05.26 33 1 13쪽
149 149화 23.05.25 22 1 13쪽
148 148화 23.05.24 22 1 12쪽
147 147화 23.05.23 21 1 12쪽
146 146화 23.05.22 23 1 12쪽
145 145화 23.05.21 24 1 12쪽
144 144화 23.05.20 21 1 11쪽
143 143화 23.05.19 23 1 13쪽
142 142화 23.05.18 21 1 12쪽
141 141화 23.05.17 22 1 12쪽
140 140화 23.05.16 23 1 12쪽
139 139화 23.05.15 23 1 12쪽
138 138화 23.05.14 22 1 13쪽
137 137화 23.05.13 22 1 11쪽
136 136화 23.05.12 21 1 12쪽
135 135화 23.05.11 21 1 12쪽
134 134화 23.05.10 21 1 12쪽
133 133화 23.05.09 23 1 12쪽
132 132화 23.05.08 22 1 12쪽
131 131화 23.05.07 25 1 13쪽
130 130화 23.05.06 25 1 12쪽
129 129화 23.05.05 27 1 11쪽
128 128화 23.05.04 26 1 12쪽
127 127화 23.05.03 26 1 12쪽
126 126화 23.05.02 28 1 12쪽
125 125화 23.05.01 25 1 12쪽
» 124화 23.04.30 24 1 12쪽
123 123화 23.04.29 25 1 13쪽
122 122화 23.04.28 25 1 12쪽
121 121화 23.04.27 24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