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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앤피자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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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소파앤피자
작품등록일 :
2022.12.25 16:12
최근연재일 :
2023.05.26 06: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6,123
추천수 :
158
글자수 :
804,680

작성
23.05.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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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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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40화

DUMMY

ENM의 침입 소식은 빠르게 프레스코 내에 전해졌다. 마침 회의실에 모든 문도가 모여 있을 때였다.


가장 먼저, 잭슨은 자신의 영역인 B지역이 침범당한 것에 강한 분노를 느꼈다.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이내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그가 탐탁지 않은 얼굴은 본 적이 있지만, 저렇게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존재감이 크고, 그만큼의 권력이 있던 사람인만큼, 타 문도와 전달자들이 은근한 기괴함을 느낄 정도였다.


심지어 제이든과 다이아나조차 조용히 있다.


제이든은 크게 당황한 듯 했다. 사실 그건 잭슨보다는, 이 상황 자체 때문이었다.


이럴 리가 없잖아? 이런 일이 생길 리가 없잖아?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동안 가만히 앉아있던 아셀은 조용히 혀를 짧게 찼다. 모두 아셀 또한 화가 나서 그런 줄 아는 듯 했지만, 그저 순수한 안타까움 탓이다.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아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결국 이렇게 됐네.


그 묘한 이질감은 오드리만이 알아차렸다. 평소 같으면 똑같이 눈치챘을 잭슨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래서 오드리는 담담히 자신의 전달자에게 물었다.


“바옌시나는?”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는 것은 전달자였으므로, 그들 모두 바쁘게 패드를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미 맞서고 있습니다. 방금 자파르 장군도 움직였다고...”

“시볼드도 보내렴. 자파르가 있는 곳으로.”


잭슨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스스로의 화를 식히려는 것 같다. 다이아나는 무표정으로 다리를 정신 사납게 흔들다가, 이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는 가벼운 말투로 그들에게 물었다.


“우리 죽어?”


그러자, 즉시 그 물음에 답한 건 잭슨이었다.


“아니.”


다시 문도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잭슨의 눈에 표독한 살기가 씌어졌다. 다이아나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그렇구나~”


그러더니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때, 아셀이 갑자기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의문어린 시선에도 평온하게 말했다.


“난 전투에는 약해서. ‘방주’를 준비하고 있을게.”


그 말에, 아욱세시아가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그럼 나도 도울게.”


이기적인 면이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 그걸 누가 비난 할 수 있을까? 이곳에 있는 ‘문도’가 모두 ‘이기적’의 대명사인데. 아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것을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진 않았다.


“그래 그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아셀의 뒤를 그녀가 다소 다급하게 뒤쫓아 갔다. 전달자 둘도 마찬가지였다.


글로리아는 전달자 마일스에게 A지역 지민을 대피시키라고 명했다. 이왕이면 바옌시나 중 신입위주로 구성한 부대로. 당연히 중요인물은 모두 이곳에서 그들을 지켜야 했다.


엘레노어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매만지다가 곧이어 본인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주 당당하게, 전달자에게 자신의 모든 돈과 재산을 최우선으로 챙기라고 말했다.


그 꼴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올리버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제 뭘 할까?”


혼잣말에 가까운 대상없는 물음이었지만, 잭슨이 기다렸다 듯이 대답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모습을 보여야 할 때야.”


내내 침묵을 유지한 오드리가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방주가 있어.”

“그만큼 우리의 세상은 좁아 질 테지.”


오드리도 그가 말하고 싶은 바는 잘 알았다. 하지만 방주는 애초에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문도가 더 이상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없는 때를 위해.


제이든은 언제 의기소침해졌냐는 듯이 금방 소리쳤다.


“나도 가도 돼?!”


언제나 이런 일은 회의를 통해 정해졌으니 한 말이다. 그러나 이미 아셀와 아욱세시아, 엘레노어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제이든의 말에 반응하지 않은 잭슨은 당당하고 강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이곳에 ‘좁은’ 세상은 없어.”


그들이 언제나 모든 것을 가졌으니, 세계를 소유했으니, 그 정해진 운명을 잃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오드리는 망설임 없이 반박했다.


“그래서 지민의 신뢰를 깨트리겠다는 거야?”


딱히 그녀가 영웅의 심리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문도에 대한 지민의 신뢰가 깨졌을 때, 엄청난 혼란이 찾아올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세상의 안정이 그들이 존재하는 목적이 아니었던가?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악행들은 모두 그를 위한 비료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미 오드리가 알고 있었듯이, 잭슨은 그딴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미 많은 믿음이 깨졌지. 안 그래?”


그리고는 그제야 제이든의 물음에 대답했다.


“이번만큼은 회의를 생략하지. 어차피 이미 대부분이 방주로 넘어갔고, 시볼드나 자파르는 뒤늦게 따라오는 걸로 되어있으니.”


시볼드와 자파르는 문도의 결정에 크게 흔들릴 인간들이 아니었다. 특히나 자파르는. 그들은 나름 그들만의 신념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니까. 잭슨은 오드리에게 말했다.


“저놈들이 얼마나 버틸 거 같지? 정말로 그들이 원하는 것처럼, 프레스코가 무너지면, 마침내 평화가 찾아올까?”


상대는 조용했다. 잭슨이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저 미개한 것들은 서로를 죽이고, 뜯고, 빼앗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갈 것이 뻔해. 처음 국경이 사라졌을 때와 뭐가 다르지?”

“그렇다고 해서-”


오드리의 말을 망설임 없이 끊어버렸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올 테지. 그들은 우리를 다시 숭배할 거고. 평화는 다시 돌아오겠지. 이 모든 건 그걸 위한 밑거름일 뿐이야.”


그 말까지 들은 그녀는 다시 입을 다물었고, 잭슨은 그녀를 설득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동안 올리버는 이제는 그의 존재를 잊은 것 같은 그들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주 안이나 구경해봐야겠어.


그는 이 상황에 대한 어떠한 생각도, 의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



지민을 최대한 멀리 떨어트리면서, 로단을 포함한 ENM은 서서히 앞으로 전진해갔다.


당연히 로단이 가장 선두에 있고, 모든 ENM의 전투원들이 묵묵히 그를 따라 가고 있기에,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바옌시나가 도착하기 전에는 먼저 폴리티가 그들을 막아 세웠지만, 짧은 전투를 끝으로 금방 처리되었다.


그런 그들에게 시선이 쏠려 있는 동안, 베브와 이준은 이미 급한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시선 분배를 이용한 작전은 그만큼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그것이 침입하는 것에 최적인 베브가 이 역할을 맡은 이유였다.


하지만 베브는 누구를 호위하는 것에는 조금 익숙지 않았다. 그래서 막바지에 추가된 인원이 달린이었다. ENM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알리야의 사건 이후, 중요한 일에는 거의 배재 당하다시피 하던 달린은, 골치 아프게도 주변의 평판이 아주 좋았다.


내심 베브는 그 정치적인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로단은 그걸 효율성과 집단성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결국에는 그랬다.


어쨌든 그들은 각자의 작업에 아주 탁월한 사람들이다. 그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들이 맡은 일을 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로단은 리암이 C지역의 바옌시나의 기지에 폭탄을 터트렸다는 걸 전해 들었다.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전투기가 파괴되었다는 소식 또한 얻을 수 있었다.



***



얼마 되지 않아, 순식간에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자파르가 바옌시나 군대와 함께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그가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도, 주변의 사기가 엄청나게 끌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옆에는 시볼드 또한 함께 있었다.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던 그는, 잠시 후 에이스를 발견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이를 갈았다.


에이스는 그 꼴을 보자마자 보란 듯이 비웃었다. 일부러 더 열 받게 하려는 것처럼. 그럴수록 시볼드가 더 흐트러질 것을 알지만, 오직 그 이유뿐 만은 아니다. 단순히 개인적인 화풀이기도 했다.


전의 전투에서 에이스가 앗아갔던 한쪽 팔에는 의족이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의족을 개선 시켰는지, 무기의 종류를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기계가 손과 팔뚝자리에 대신 있었다.


“팔 한번 멋진데. 감사인사는 됐어.”

“저 X발놈이-”


이어진 에이스의 도발에, 그 즉시 화가 치밀어 오른 시볼드가 분노로 몸을 떨어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자파르가 나지막이 명령했다.


“진정하게.”


몹시 무겁고 근엄한 목소리였다.


시볼드는 그 제지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총대장의 말이었기에 입을 억지로 다물었다. 그러나 아직 이 분노는 가라앉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받은 탓에 그 크기가 더욱 커지기만 했다.


에이스를 죽여 버릴 것처럼 노려보는 시볼드를 보며, 로단은 그 모습이 조금 의아했다.


의외로 말을 잘 듣네?


그렇다고 자파르에게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다. 에이스를 향했던 날카로운 시선이 잠시 자파르에게도 닿았기 때문이다.


사실, 자파르는 ENM의 존재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솔직해지자면 그들이 내심 마음에 들기도 했다.


분명 군대는 일반지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건 현재 문도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바옌시나는 오직 문도를 위해서만 존재했다.


그렇기에 이런 조화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자신 역시 누가 옳은 지는 알 수 없었다. 로단이 옳은가, 문도가 옳은가. 그저 신에게 뜻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스스로 최선의 선택을 할 뿐.


목걸이를 쥐고 기도문을 읊다가, 이내 그곳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고 내려놓았다. 그것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시볼드는 벌써 지긋지긋하다는 얼굴이었다.


다시 한 번 자파르와 로단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 후에, 자파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좋은 날씨군. 그렇지 않은가?”


그 뜬금없는 소리에 로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좋은 날씨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안타까워.”


로단도 그에 대한 첫인상이 나쁘지는 않았다. 전에 처음 마주했을 때에, 군대를 이끌고 되돌아가던 모습은 인상 깊게 보았다. 그래서 늦게나마 대답했다.


“그렇군.”

“자네도 이런 일을 겪기에는 너무 젊네.”


그러나 이어진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그는 도로 입을 다물었다. 헛웃음을 겨우 참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지막이 물었다.


“당신은 어느 지역 출신이지?”


자파르는 로단의 목소리에서 서서히 적대심이 드러나는 걸 알아차렸다. 방금 자신의 말을 굉장히 언짢아하고 있다는 것도. 그러거나 말거나, 로단은 말을 이어갔다.


“그쪽 지역에서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굶주림을 알기에는 너무 젊었고, 상실을 알기에도 너무 젊었지.”


그는 금방 로단이 하고 싶은 말을 깨달았다.


“여기서 나이는 아무 소용없어.”


그에 자파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A지역에서 나고 자라왔다. 그것부터가 상류층이었다. 그래서 로단의 말에는 진정으로 완전히 동감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 시선에 섞여있는 분노는 이해하기 충분했다.


“내가 실언을 했군.”


로단의 얼굴이 풀어지는 듯하다가 또 다시 굳어졌다. 자파르가 명령을 내릴 것처럼 한 쪽 손을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바로 전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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