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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앤피자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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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소파앤피자
작품등록일 :
2022.12.25 16:12
최근연재일 :
2023.05.26 06: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6,121
추천수 :
158
글자수 :
804,680

작성
23.05.21 06:00
조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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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145화

DUMMY

그때 마침내 칼집을 쥔 바네사도, 잭슨 뒤에서 병풍처럼 서있던 한나도, 패드의 진동을 느끼고 화면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동시에 입을 열었다.


“문도님.”

“문도님.”


화면 안에는, 제이든이 난생 처음 보는 형태의 무기를 들고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일단 총의 형태지만, 대포처럼 커다랗고 부수적인 기능이 함께 붙어있다.


잭슨이 오드리를 설득하고 홀로 지민의 앞에 모습을 보인다했을 때, 제이든은 아주 신이 나서 따로 준비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 가벼워 보이는 행동이 언짢았지만, 앞으로의 일에 집중하고 있던 잭슨은 자신에게 먼저 언질을 달라는 말로 쉽게 넘어갔다.


그러나 저 꼴을 보아하니, 너무 흥분해서 그 약속을 까먹은 모양이었다. 방주에도 제이든이 보이지 않기에 아셀을 의심했는데, 분위기를 고려하면 그들은 서로 상관이 없는 듯 했다.


잭슨의 얼굴이 바로 험악하게 일그러지고, 아셀은 결국 못 참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그가 저렇게 웃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바네사는 내심 놀랐다. 그리고 잭슨은 더욱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네가 하는 짓이 뭐든 간에, 앞으로의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쉽게 넘어갈 수 없을 거다.”


그럼에도 딱히 지금 당장 방주로 돌아가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아셀의 경고 때문일 수도 있고, 오히려 여기서 죽는 걸 바랄지도 모른다. 아마 후자일 거라고 아셀은 여겼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나 싶었다. 하지만 아셀은 잭슨을 더 골치 아프게 만들고 싶었다. 이럴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여전히 웃음기가 섞인 말투로 말했다.


“폭탄이 있어.”


발걸음을 재촉하던 잭슨이 다시 고개를 돌려 아셀을 바라보았다.


‘또 무슨 개짓을 하려고?’하는 얼굴이다. 아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나노기술로 만들어진 작은 폭탄입자들이 프레스코의 곳곳에 있어. 그리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 신호를 받아들인 입자들이 폭발을 일으켜.”


받아들이는 것만큼은 빠른 잭슨이, 깊게 가라앉은 어조로 물었다.


“...네가 만들었나?”

“그럴 리가. 그런 짓을 할 만한 미친 인간이 누구 있겠어?”


그 말에, 잭슨은 패드를 쳐다봤다. 제이든이 마침 ENM을 향해서 다시 한 번 폭탄물을 쏘고 있었다. 그 꼴을 보니 골이 미치도록 아파왔다. 그러나 그 분노를 삭히기도 전에, 아셀은 또 한 번 말했다.


“그리고 그걸 로단도 알고 있어.”


그건 거짓말이었다.


“제이든에게 빨리 버튼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는 게 좋을 거야.”


당연히 그는 아셀을 당장이라도 제거할 것처럼 사납게 노려봤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군.”


능글맞게 어깨를 까닥이며 대답했다.


“이 지경이 될 줄 알았나.”


잭슨의 속을 뒤집어 놓은 아셀은 유유히 지하로 내려갔다. 어차피 그를 쫓아오진 않을 것이다. 그에게 분노를 터트리기에는 아주 급한 일이 생겼으니까.


문도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대비한 차선이 방주였다. 그럼에도, 이 건물이 눈앞에서 폭발한다면 문제는 생긴다. 프레스코가 완전히 사라지면, 지금까지 쌓아온 세뇌와 같은 신뢰가 사라지니까.


그런 아셀의 뒤를 따라가며, 힐끗 잭슨과 한나를 확인한 바네사가 물었다.


“지금이라도 죽일까요?”


다른 전달자와는 달리, 자신의 문도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경외심이 없는 그녀가 퍽 마음에 들었다. 아셀은 싱긋 웃었다.


“내버려둬, 알아서 자멸할거야.”


그는 잭슨이 아주 욕심이 많음을 알았다. 잭슨은 언제나 타 문도를 탐탁지 않아했다. 오직 효율성을 위해 그대로 두었을 뿐. 그것이 그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그는 그렇게 오만하면 안됐다.


이제 제이든까지 합세해 난리가 났으니, 아셀은 로단에게도 예상보다 더 빨리 정보를 알려주기로 결정했다.


“설명과 같이, 버튼이 있는 장소를 보내. 그리고 그쪽 연결은 이제 완전히 끊어버려.”

“예. 지금 바로 보낼까요?”

“아니. 출발할 때.”


재밌네.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에 히죽거렸다. 저들은 이제 서로를 무너트릴 터였다.


패드를 보았다. 제이든이 쏘아댄 정체불명의 폭탄의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앞에 있던 ENM의 균형과 배열이 완전히 흐트러지고, 그대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이미 승세가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또 생각했다.


물론 ENM이 그 버튼이 있는 곳까지 올 수 있을 때의 얘기지만.


이내 잠수함의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바네사가 먼저 들어가 안이 안전한지를 확인했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그제야 아셀이 천천히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데이지는 한층 복잡해진 얼굴로 입구에 우뚝 서있었다. 그러자 앞서 들어간 아셀이 그런 그녀에게 다정하게 손을 내밀었다.


“윌리엄을 생각해.”


잠시 망설인 데이지의 얼굴 위로 순수한 경멸이 드러냈다. 그리고 그 손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무시당한 그의 웃음은 오히려 전보다 더 짙어진다.


바네사를 제외한 두 사람이 먼저 자리에 앉고, 이제 잠수함을 움직일 일만 남아있었다. 그러나 잠수함의 벽에 있는 커다란 화면을 만지고 있던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작동이 되지 않습니다.”


아셀이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갑자기 화면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란 바네사는 몇 발자국 뒷걸음질을 치며 그 모습을 한 눈에 담았다. 아셀과 데이지도 마찬가지였다.


곧이어 그 화면에는 뜬금없이 한 인사말이 떠올랐다.


[안녕?]


그리고는 바로 다른 말로 이어졌다.


[니네 망했음.]


범인은 이준이었다.


[이 천재님이 그러기로 결정했으니까!]


이준은 그 칩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결정했고, 문도의 거주지로 이어지는 복도의 입구와 칩이 서로 신호를 보내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왕 방주를 만드는 김에 더 실용적인 결정을 내린 듯 했다.


게다가 루카스는 문도의 네트워크가 하나로 되어있다고 말했으니, 한 번 진입에 성공하면 다른 문도의 컴퓨터에도 접속할 수 있었다. 그것은 중앙컴퓨터만큼,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바로 칩을 들고 아셀의 방으로 찾아가 모든 시스템의 권한을 자신에게로 돌려버렸다.


아셀의 섬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건물과 잠수함은 가능했다.


잠수함은 이제 움직일 수 없었다.


로단의 명령이었다.


단 한 명의 문도도 내보내지 마라.


정보는 얻을 대로 얻었고, 아셀 또한 잭슨과 다를 바가 없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잭슨을 직접 목격하며 더욱 견고해졌다.


그들은 프레스코를 무너트리러 온 것이 아니라, 문도를 무너트리러 온 것이다.


상황을 이해한 아셀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이가 없네.”


그에게 가까이 다가온 바네사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순간 긴장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그는 편하게 등을 기대며 말했다.


“처리해.”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반지를 빼서 내밀었다. 칩이 만들어지기 전, 문도의 통행권이었다. 바네사는 그것을 건네받은 후, 아셀을 향해 절도있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조용히 기억을 되살렸다. 그들이 어떤 몸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를. 다른 두 남녀는 어렵지 않겠지만, 아마 ‘베브’라는 그 남자는 처리하기가 조금 번거로울 듯하다.


그리고 아셀은 바네사가 떠나기 직전에 물었다.


“내가 명령한 정보는 보냈어?”

“...아직 출발하기 전이라 보내지 않았습니다.”


분명 승세가 뒤집힐 정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걸 포기하고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친다고? 하지만 그는 아직 문장이 남아있는 화면을 보고 깨달았다.


설마 저런 인재가 있었을 줄이야.


가장 꼼꼼히 숨겨놓은 것을, 그 정보마저 들춰졌다. 고작 한 인간의 손가락으로. 아셀이 그녀에게 명령했다.


“확실하게 처리해. 특히 저 짓을 한 놈은.”



***



이준이 아셀의 컴퓨터를 샅샅이 뒤적거리는 동안, 베브는 한쪽에 설치되어있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밖에 수상한 기색이 있는지 살펴보는 중이었다.


분명 바네사가 오거나, 문도의 명령으로 수많은 인간들이 몰려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을 비밀리로 두려는 아셀을 생각하면, 전자일 확률이 높았다.


“이것 봐봐.”


한참을 키보드를 두드리던 이준은 완전한 권리를 얻고 나서야 화면을 내밀었다. 바깥의 모습이 보인다. 제이든이 폭탄을 던지고 난 후에 로단이 꽤 애를 먹고 있는 듯했다. 그 광경에 베브가 물었다.


“이 칩으로 다른 문도의 방으로는 못가고?”

“못가.”


간결하고 단호한 목소리에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다시 화면을 봤다. 이상하게 생긴 무기를 들고 폭탄을 쏴대던 문도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그 해맑은 소리와 기괴한 분위기를 보자마자, 베브는 그때 감옥에서 보았던 놈인 것을 기억해냈다. 저절로 속에서 올라오는 혐오감에 미간이 좁혀온다.


화면 속의 문도가 그 폭격기의 반동으로 흔들릴 때마다, 얼굴을 둘러싼 베일도 덩달아 흔들거렸다.


그리고 결국, 어느 순간에는 완전히 드러났다.


베브는 그 짧은 순간에 제이든의 얼굴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



대체 저 무기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거치대 없이 사람이 들고 있는데도 반동에 비해 피해가 엄청났다. 순식간에 ENM이 죽어나갔다.


그를 어떻게든 처리하기 위해 로단은 총공격을 지시하지만, 바옌시나가 그 틈을 노리기 않고 공격을 해대는 통에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그러나 우스운 점은, 잭슨이 나왔을 때에는 자신만만해진 놈들이 지금은 마치 광기의 신을 본 것처럼 경악과 공포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적어도 폭탄을 아군이 있는 방향에 쏘지 않았더라면 다를지도 모르지만, 정확한 목적 없이 미친 듯이 학살하고 있는 그는 그저 큰 소리로 깔깔 웃기만 했다.


로단은 베브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미 제이든을 알아보았다. 그러기가 힘든 미친 새끼니까.



***



그동안 베브는 화면에 있는 제이든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다음으로 행복하게 웃고 있는 광기어린 미소를 보았다.


그리고 문득,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를 기억해냈다. 흐릿하게 기억해온 그를 비웃듯이 아주 세세하게. 마침내 맞지 않았던 퍼즐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분위기에 가까이 다가온 달린은 그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 적어도 그녀가 봐왔던 모습 중에서, 저렇게 차가운 표정은 처음이다. 아주 깊은 분노가 느껴졌다.


저 놈만은 죽여야 돼.


막 그렇게 생각했을 찰나에 문이 열렸다. 이준은 기겁하며 바로 소리쳤다.


“이 칩만으로만 되는 게 아니었어?!”


바네사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금방 이성을 되찾은 베브는 그 즉시 총을 꺼내 들었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달린은 빠른 속도로 이준을 의자에서 끌어내려 테이블 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탕-! 탕-!


순식간에 총성이 겹치면서 베브는 소파 뒤로, 바네사는 문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모습을 드러내 서로를 저격했다.


달린은 그 사이 이준을 수납장 뒤로 옮기고, 함께 맞사격을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 한 발이 남은 베브가 달린에게 고갯짓으로 신호를 보낸다.


계속 쏘고 있어.


그녀는 잠자코 그 말을 따랐다.


베브는 바네사가 장전을 위해 다시 모습을 가리려고 할 때 마지막 탄알을 썼다. 저 쪽에서 같이 대응을 하고 있으니, 머리를 정확하게 노리는 것은 힘들다. 그러니 성공할 가능성이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이 최우선의 목적이다.


그렇게 바네사를 노린 총알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가 들고 있는 총에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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