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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43,401
추천수 :
1,474
글자수 :
1,693,659

작성
22.09.19 22:00
조회
76
추천
2
글자
21쪽

9. 천마대전 1

DUMMY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묻지 않소! 장자!!!”


천마가 시연한 봉황후(鳳凰吼)에 겨우 메꿔진 담벼락이 무너지고 기와장이 전부 깨져나갔다.


“아닐 거라 믿고 싶었소... 모든 이가 스승이 무림을 배신했다고 해도 아니라고 믿고 싶었소. 그 미소는 진실이며, 당신께서는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했다고... 진실로 우리를 제자로 여겼다고 그리 믿었소.”


목을 잡힌 여아가 피운 불꽃에 팔이 화상을 입고 짓무르기 시작했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천마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실이었소? 무림을 배신하고 역천을 위해 치우가 미치도록 유도하였소? 무림이 불을 얻지 못하도록 역천에 불의 신을 빼돌리려 하였소?”


사실 무극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자신을 계속해서 속여 왔을 뿐이다.


언제나 마음은 그녀의 곁에 있었기에 리버스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이전부터 그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스승이 처음부터 무림에 적을 둔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어쩌면 다른 세력에 속해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았다.


알았지만 무시했다.

그럼에도 믿고 싶었으니까.


무림을 떠난 그녀를 감시하는 인원들이 이와 관련된 보고를 올렸고 리버스와 은밀히 정보를 교환하는 장면을 포착했더라도 이를 무시하고 은폐했다.


장자는 자신의 제자를 속이고 세상 전체를 속였다고 믿고 있었지만 천마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한 것이었다.

무심한 제자가 스승을 뵐 면목이 없어, 일이 너무 바쁘단 핑계를 들며 의도적으로 만남을 피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본좌는, 본좌는... 나는...!!”


무극은 더 이상 자신을 본좌라 칭하지 못했다.

그를 지탱하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슬픔이 둑을 뚫고 터져 나왔다.


“스승이 말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처럼 스승이 균형을 위해 왔다고 생각했소.”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처절한 울부짖음...

청명의 목을 쥔 채로 천마는 장자를 향해 걸어갔다.


─덜덜덜.


‘무슨 목소리만으로...’


그 기파(氣波)에 온 몸이 저릿저릿 떨려왔다.

그리고 그것은 한바탕 대련을 치르고 온 우리보다 장자가 더욱 심했다.


마치 세상의 종말을 목도한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장자는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덜덜 떨기만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유피와 미나가 앞으로 나서서 그를 막았다.


“우리는 그대들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른다. 허나!”

“청명에게서 그 손 떼! 이 대왕 버러지야!”


유피가 먼저 주먹을 뻗어 천마의 시야를 가리고 미나가 옆으로 돌아 부르트강으로 청명의 목을 쥔 팔을 베었다.


─쩌엉!


하지만 완전히 베지 못했다.

오히려 부르트강의 마디가 기괴하게 꺾였다.


─주륵...


한 줄기의 피.

그것이 미나가 가한 회심의 일격이 얻은 결과였다.

천마의 굵은 팔에 고작해야 손톱만큼 파고든 미나의 검은 그의 뼈에 닿지도 못했다.

그저 피부를 얇게 베어냈을 뿐이다.


“막았다고?! 인간의 뼈와 살로 광명의 신검 부르트강을?!!”


상정 외의 사태에 어찌나 놀랐는지 미나는 천마의 팔에 박힌 검을 뽑아낼 생각조차 못하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외쳤다.


“정신 차려라!”


이에 서둘러 유피가 달려들어 미나와 바닥에 처박힌 데미안을 데리고 그곳을 벗어났다.


─콰아아아아-!!


천마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강기의 파도에 장자의 집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그것이 마치 둘 사이의 완전히 무너져버린 관계를 이야기하는 듯했다.


“무아(無兒)야. 아가... 내가 다 설명할게요. 우선 청명의 목을 잡고 있는 그 손부터 놓고.”


장자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무릎으로 기면서 천마에게 애원했다.

그 애처롭기까지 한 모습을 가증스럽다 여기며 무아는... 스승이 준 이름을 버렸다.

그는 더 이상 장자의 제자 무아가 아니었다.

우의 친구 무가 아니었다. 맹주이자 천마, 현 무림의 절대자, 천무극이었다.


“가져가시오! 그리고 내 이름은 더 이상 자신조차 없다는 뜻의 무아(無我)가 아니오! 무(武)의 극의(極意)에 오른 자... 무극(武極)이오.”


청명의 목을 잡고 그대로 던져버리는 천마.

나는 앞으로 튀어나가 청명이 최대한 다치지 않게 받아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목이 졸린 탓일까, 청명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뭐 저딴 괴물이 다 있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위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강함.

그것이 천마에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억압(抑壓)과 압제(壓制)의 표상.

모든 위정자가 바라는 모습이 저곳에 있었다.


자격 없는 이들은 내 눈을 마주했을 때 정신이 아득해지는 공포를 느낀다고 했던가?

지금 난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피도, 미나도, 거인도, 하티도, 심지어 풍백마저도... 내게 이런 전율을 선사해주진 못했다.

처음에는 손끝에서부터 이어서 팔, 어깨, 몸 전체로 떨림이 번져나갔다.


‘떨지 마... 지금 우린 싸울 수 있는 다음세대가 무려 셋이라고!’


나는 우리가 다수라며 떨리는 몸을 다그쳤지만, 그것은 내게 어떠한 위안도 전해주지 못했다.


‘그런데... 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 건데!’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한 차례 격전을 치른 우리는 이미 모두 상처투성이, 외상은 전부 나아도 대련의 여파로 인한 내상이 거의 그대로 남았다.


더욱이 상대는 그 천마였다.

베스트 컨디션의 유피와 정면에서 맞붙어 승리를 따낸...


지닌바 힘의 크기는 엇비슷할지라도 그걸 운용하는 이가 다른 것이다.


뭐가 잘못 됐는지 천마의 안정되어 있어야할 내기가 폭주해 마기가 그의 몸 밖으로 나와 넘실거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길 자신이 없었다.


‘10번 붙어도 7번 이상 진다.’


셋이 붙는데 승률이 3할에 불과하다니.

설령 우리의 몸 상태가 정상이라 한들 승률이 7할을 넘지 못하리라.


“하하하하! 다음세대는 역시 다음세대끼리 어울린다는 건가? 이거 나약한 인간으로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콰아아아!!


천마가 손을 뻗자 검은색 강기의 폭풍이 그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었다.


“주화입마?”


*주화입마(走火入魔): 심마(心魔)에 먹혀버린 폭주상태.


“뭘 멍청히 서있는 거야!”


천마가 가장 먼저 노리는 대상은 당연하게도 그를 배신한 장자였다.

나는 서둘러 장자를 데리고 날개를 펼쳐 하늘 높이 피신했다.


“미ㅇㅎ... 미아ㅎ... 미안해... 미안해...”


죄책감이 심한지 장자는 끝없이 미안하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


아아, 그의 스승이 다시금 그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미안하다......


그 목을 베기 전에 그의 친우가 그러했던 것처럼.


-미안하여요...... 미안하여요.


그의 스승이 피폐한 모습으로 그를 떠나기 직전처럼...


“사과하지 말고 제대로 된 답을 달라고!!!!”


목소리가 갈라져 그의 말은 마치 비명처럼 들렸다.


귓속에서 끝없이 메아리치는 그 사과의 말에, 그 어떤 추한 변명보다 역겹게 느껴지는 말에...


[개화 특성, ‘불완전한 천마지체’에 부정 특성, ‘무아’가 통합됩니다.]


[주화입마가 새로운 특성에 영향을 끼칩니다.]


[당신은 미궁 속에서 길을 잃은 우두인신(牛頭人身)의 괴물입니다.]


[계승 특성: 미궁의 괴물(Minotauros)(Rank:A+)을 획득합니다.]


그는 더 이상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콰아아아앙!!!


무언가 잘못된 건지 장자의 사과에 천마는 끝내 이성을 잃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천마의 말은 마치 비명과도 같이 들렸다.


***


“젠장, 정신이 나갔어.”


지금의 장자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전력이 되지 못했다.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정신이 나간 건 저쪽도 마찬가진가...”


이성을 잃은 건 천마도 마찬가지인지 그는 우리를 노리지 않고 장자의 터전을 부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이 내겐 장자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부수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천마와 싸워서 발생하게 될 세력 간의 항쟁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목숨이 위협받는데 무엇이 더 중요할까.

우린 모두 저 괴물로부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했다.


여기서 우리가 진다면... 리버스는 단숨에 다음세대의 신 다섯을 잃는다.


“이제 막 대련이 끝났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고~!!”


저 아래에서 미나의 한탄이 들려온다.

나 역시 미나의 말에 공감했다.

분명 무슨 마가 낀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면 가는 곳마다 이렇게 사건이 터질 리가 없는 것이다.


“크허허헝!”

“미친?”


한 번의 울부짖음, 그 여파로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된 장자의 집은 이제 터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툭


그때 바람을 타고 무슨 상자 같은 것이 내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중요한 것일 수도 있으니 일단 챙겼다.


그 사이, 천마의 머리에서 뿔이 자라나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은 가히...


“악마? 아니야... 천마는 염제신농씨의 대리인이라 했으니 그를 따라 우두인신(牛頭人身)의 괴물이라도 되어가는 건가?”


신화 속 염제신농은 소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한 괴물이었다고 한다.

저기 크레타의 미궁에서 살았다는 미노스 왕의 황소처럼 말이다.


천마의 변화는 고작 뿔이 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검은색 강기가 천마의 몸을 뒤덮고, 검은 채찍 같은 꼬리가 자라났다.


‘높은 곳에 피신했다고 안심하면 안 되겠어.’


모든 변화가 끝나고 그곳에 자리한 건 그저 한 마리의 마수(魔獸)...

천마는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때 ‘그것’이 우리가 있는 하늘을 봤다.

위기감을 느낀 나는 재빨리 공중을 선회했다.


─삐이이이이임!


‘그것’이 입을 벌리자 기(氣)로 이루어진 에너지 줄기가 길게 뻗어 나가며 저 멀리 있는 산등성이부터 그 위에 걸린 구름자락까지 베어냈다.


“주화입마에 빠진 게 맞긴 한 거야?!”


그 모습에 밑에 있던 미나가 경악하여 외쳤다.

그도 그럴 것이 천마의 몸을 뒤덮은 검은 강기는 음기로, 방금 쏘아낸 흰색의 레이저는 양기로 이루어졌으니까.


굉장히 섬세한 작업이라 우리도 사용할 때 정신을 집중해야하는데 천마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음과 양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과연 천마. 명불허전이다.”

“넌 뭘 또 감탄하고 있는 건데!”


미나와 데미안을 안고 뒤쪽으로 물러난 유피는 천마의 위용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에 불만을 느낀 미나는 자신을 들고 있는 유피의 볼을 발로 밀면서 짜증을 냈다.


“이, 이러면 안 되는데!”


그 변화에 장자가 소리 질렀다.

소리 지르는 것까지는 좋지만 내 귀에 대고 지르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이제 정신이 들어? 어떻게든 해봐!”

“안 돼! 내 아가! 너 마저 잃을 수는 없어!”


아직 완전히 정신을 차린 게 아닌지 내 품에 안긴 장자가 다시 발작하기 시작했다.


“쯧!”


─짜악!


나는 청명을 등에 업고 장자를 한 손으로 든 뒤 뺨을 후려쳤다.

제발 정신 좀 차리라는 의미에서.


“.....”


장자가 조용해졌다.


“설마 죽은 건 아니지?”


입술이 터지긴 했지만 다행히 숨을 쉬고 있다.

앞으로 또 시끄럽게 굴면 다시 때릴 생각이다.


솔직히 우리는 피해자니까.

장자가 일을 벌였고 우리는 치우는 입장.

그간의 정이 있기에 버리고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모든 도리를 다했다.


“키르륵! 키에에에엑!”


그 사이, 한때 천마였던 마수는 눈에 보이는 걸 모두 파괴하고 있었다.


***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천마는 어릴 적 자신들을 무와 우라고 불렀던 장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는 그저 스승님이 자신들에게 무공을 가르친다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먹으면서 스승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단순한 무공이 아니었음을... 그것은 인생이었음을, 삶이었음을 깨달아 갔다.


스승을 향한 무한한 감사.

그리고 지금 천마가 여태까지 버틸 수 있도록 해주었던 유일한 버팀목이 부러졌다.


“저 괴물... 도시로 가면 어떡하지?”


대학살(大虐殺)...!

그 여파로 무림은 십중팔구 멸망할 것이다.


그렇다고 저것을 막는다?

저것을 막다가 우리 중 누가 죽으면 무림이 의리를 지킬까?

그럴 리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어떻게든 보복하겠지.


그렇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안 돼! 무가 또 죽이게 둘 순 없어!”


장자가 다시 발작하기 시작했다.


“그럼 뭐라도 해보지 그래요?”


나는 계속 말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는 장자를 비아냥거렸다.


─짜악!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뺨을 때려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장자 스스로 손뼉을 치면서 난 소리.

장자는 내가 혹시 몰라 챙겨든 상자 안에서 특이하게 생긴 족자를 꺼내들더니 손뼉을 쳤다.


“술법전개! 태평요술(太平妖術)-깨달음의 장. 영역(領域), 자승자박(自繩自縛)!”


그와 동시에 주위 풍경이 변했다.

어딘가 익숙한 공간이다.


“여기는 분명 그때의...”


이곳은 장자가 우리의 수준을 알아본다며 데려간 그곳이 분명했다.


“키에엙?”


천마는 더 이상 인간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처음 형태가 흔들리던 불안정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강기에 뒤덮인 모습은 그 자체로 안정되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가히 기괴했다.

온몸에서 뿔이 돋아난 마치 이형의 존재.


마치 누구도 더 이상 자신을 상처 입히게 두지 않겠다는 듯, 천마는 그런 흉악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천마(天魔)라기보다는 지마(地魔) 아니야? 땅강아지가 따로 없네.”

“안 돼! 우리 무아가 땅강아지라니!”

“좀 닥쳐욧!”


나는 일부러 그를 낮잡아 부르며 두려움을 떨쳐내려 했지만, 장자를 안아든 손이 덜덜 떨리는 것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아름답군.”


유피의 말이었다.


“아름답다고? 저게?”

“보아라. 저 기능미(技能美)를! 상대를 죽이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의 모습이다. 더럽고, 추악하며, 하지만 또한 아름답다.”


저런 살육기계 같은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 말하다니 유피에게 눈이 아름답다 칭찬받았던 기억이 떠오르며 기분이 묘했다.


꼭 내 눈이 사람 잘 죽이게 생겼다고 말했던 것 같아서.


“흐윽, 치우에 이어서 무아도 폭주한다니... 안 되어요... 이럴 수는 없는 거여요.”

“스승이라며! 이럴 때 활약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스승이야!”


내 말에 장자는 금세 흥분을 가라앉히고 평온을 찾았다.

그 모습이 가히 섬뜩했다.

아예 한 바퀴 회까닥 돌아버려 정상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스승이여, 해결책은 무엇이지? 아무 생각 없이 그대들의 일로 우리에게까지 민폐를 끼치려는 건 아닐 거라 믿는다.”


유피는 냉정했다.

무림을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을 할 생각은 없다며, 마땅한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면 이 영역을 뚫고 나가겠다 선언했다.

이번 대의 천지무쌍으로서 영역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유피에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여러분은... 제가 전에 설명 드렸던 마공과 신공의 차이에 대해 기억하시나요?”

“분명 마공은 상단전을 열고 신공은 중단전을 연다는 거였지.”

“기억하고 있으니 방법을 말하라고!”


미나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말이 길어지는 장자가 답답한지 소리쳤다.


“그게 지금 중요한 질문인가? 지금 이렇게 떠드는 동안 낯선 공간에 대한 확인이 끝났는지 저 녀석... 우릴 다시 의식하고 있다.”


유피의 말대로였다.

‘그것’이 우리를 인식했다.

달을 보고 짖는 개처럼 타액을 질질 흘리며 우리를 노려봤다.


“빠르게 설명하겠습니다. 신공은 자신 안의 신을 찾는 무공이어요. 가슴을 열어 그곳에 있는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고 이것이 대성으로 이어져 중단전을 열죠. 그리고 마공은...”

“알았으니 본론만!”

“천마신공은 신공이자 마공.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을 모두 개방하여 인간 본연의 잠재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며 종국에는 ‘태고의 육체’에 도달하여요. 먼 과거 인간과 신의 구별이 의미가 없었다는 그때와 다름없는 힘을...!”


전에 분명 유피가 천마를 상대로 무공을 익힌 신과 다름없다고 했던 것이 다시 한 번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게 끝이야?”


만약 정말 이게 끝이라면 나는 곧장 내 품의 장자를 저기에 던져버리고 저것이 제물(한때 장자였던 것)을 씹고 뜯고 맛보는 동안 친구들을 데리고 도망갈 거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청명과 데미안도 챙겨 갈 거다!


어차피 이번 임무의 목적은 청명을 데리고 복귀하는 것이었으니 쓸모없는 염소를 제물로 불의 신에 더해 술의 신까지 추가로 데려왔다고 하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다.


“우, 우선 상대의 위험에 대해 설명한 거여요.”


말이 길어지는 게 어떻게든 시간을 끌면서 해결책을 찾는 게 눈에 보였다.


“이제 방법을 설명할게요. 우선 이곳은 저의 영역,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곳이어요. 이곳의 법칙을 쉽게 설명하자면 자신이 믿는 데로 이루어지는 공간.”


그래도 시간을 끈 보람은 있었는지 나름 해결책을 찾긴 찾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에게 점혈을 걸 수 있었던 거군.”


그때 갑자기 유피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점혈?”

“그때 벗은 먼저 기절했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를 거다.”


아무래도 장자가 내 몸에 원심분리기를 사용한 여파로 기절한 뒤로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만약 이 공간에서 상대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에게까지 제약을 걸지는 않을 테지만 저 짐승은... 그렇지 않죠. 그러니 부디! 저 난폭한 짐승에게 겁을 주세요.”

“끝내 살리겠다는 거구나.”

이게 얼마나 민폐인지 아는 장자는 슬슬 우리의 눈치를 봤고 우리는 분노보단 체념의 의미로 한숨을 쉬었다.


‘어울려줘야지. 뭐 어쩌겠어...’


장자의 협조가 없으면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이 더욱 가중될 텐데.


“즉, 우리보고 허세를 부리라는 거군.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연기해야 한다.’라...”


마치 짐승들이 자신의 털을 부풀려서 덩치를 키우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라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도 이건 꽤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뭘 하든 간에 저 괴물이 우리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우리의 승리


지성을 잃은 것 같은 천마는 말 그대로 짐승이 되었는데 짐승만큼 겁이 많은 존재가 또 있겠는가.


더욱이 상대를 압도하는 것.

우리 신들은 자연계의 경이 그 자체였다.


“그건 우리 전문이지!”


생각나는 게 있는지 빠르게 대답하는 미나는 어딘지 신나보였다.


“마나만 충분하다면...”


나도 여기까지 와서 뺄 생각은 없었다.


계획을 세운 우리는 몸을 풀었다.

이 영역의 힘인지 몰라도 내상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갔다.


“냐하하! 내 골렘술을 제대로 보여줄 때가 왔구나~!”

“벗이여, 우리 먼저 가지.”


─고오오오오!


<신성마법-진체현신(眞體現身), 불완전한 천공의 주인(Imperfect Caelus)>


유피는 하늘 높이 올라 나와의 대련 마지막에서 사용한 구름거인이 되었다.

상대를 위압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거대한 덩치임을 그는 아는 것이다.


그걸 제외하고도 유피의 구름거인은 주변의 구름을 모아 끊임없이 재생하기에 한 번에 끝내지 않는 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무서운 기술이었다.

솔직히 용의 숨결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나도 저기에 대항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자연 그 자체이기에.


‘전처럼 구름을 모을 시간이 모자랐을 텐데... 장자의 영역의 도움을 받은 건가? 아니면 신물의 보조?’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

나와의 결투에서 썼을 때와 달리 지금의 그는 천둥검 케라우노스를 쥐고 있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유피의 경지가 더 올라 불완전한 진체가 좀 더 완전한 형상을 띠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우웅.


미나는 품에서 특이하게 생긴 못을 꺼냈다.

푸른색이 은은하게 빛나는 신비한 못이었다.

나는 곧장 그것의 상세정보를 확인했다.


[소유: 탈로스의 못(Nail Of Talos)(Rank:S)]


「청동거인 탈로스의 발뒤꿈치에 고정되어 있던 못으로 혈관의 밸브로서 신의 피 이코르(Ichor)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탈로스(Talos).

세계최초의 로봇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은 헤파이토스가 만들었으며 제우스가 자신의 아들인 크레타의 왕 미노스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 청동거인은 크레타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으며 선박이 보이면 바위를 들어서 던지고, 상륙한 적에게는 자신의 몸을 뜨겁게 달구어 끌어안아 없앴다.


그리고 그 최후는 마녀 메데이아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아르고 호 원정대에 참여한 메데이아가 잠시 크레타에 멈춘 아르고 호를 공격하려는 탈로스에게 크레타의 노예에서 벗어나 진짜 불사신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속이고 그를 잠재운 뒤 이 못을 빼내어 죽인다.


이 못이 탈로스에게 인격을 부여하기 위해 주입된 신의 피 이코르가 나오지 못하게 막는 장치인 것이다.


미나는 이 못을 자기 가슴에 박아 신화 속 탈로스를 재현해냈다.


‘말 그대로... 신화 속의 한 장면이네.’


천공의 신, ‘제우스’의 환생인 유피.

제우스의 아들이자 크레타의 왕인 미노스가 가진 청동거인 ‘탈로스’와 미노스의 아내인 파시파에가 해신에게 제물로 바쳐야할 소에게 욕정하여 낳은 아이인 ‘미노타우로스’까지...


장자의 영역이 ‘미궁’의 역할을 대신했고, 남은 것은 이제 미노타우로스의 목을 벨 ‘테세우스’뿐이었다.


작가의말

테세우스와 돛의 색에 관한 이야기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와도 닮은 점이 많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17 wh******..
    작성일
    22.09.19 23:12
    No. 1

    만악의 근원 장-자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8 아함(阿含)
    작성일
    22.09.24 21:19
    No. 2

    “재앙은 그 과정이 달라도 처음과 끝은 같으리라...”

    5장 9화에서 강현이 하는 말이죠.

    피로 시작한 재앙은 장자의 죽음으로 끝난다.
    여기서 과연 장자의 역할을 맡게되는 건 누구일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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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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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6 +1 22.11.29 81 2 18쪽
220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5 22.11.28 54 3 19쪽
219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4 +1 22.11.27 58 4 16쪽
218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3 22.11.26 50 5 17쪽
217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2 22.11.25 53 3 14쪽
216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1 22.11.22 58 2 21쪽
215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5 22.11.21 79 2 16쪽
214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4 22.11.20 49 3 17쪽
213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3 22.11.19 51 2 18쪽
212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2 22.11.18 61 2 16쪽
211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22.11.15 61 2 18쪽
21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6 +2 22.11.14 55 4 18쪽
20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5 +1 22.11.13 62 3 13쪽
20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4 22.11.12 59 2 14쪽
20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3 22.11.11 74 3 16쪽
206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2 22.11.08 67 3 19쪽
205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1 22.11.07 62 2 19쪽
204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0 22.11.06 60 3 11쪽
203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9 +1 22.11.05 90 3 17쪽
202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8 22.11.04 67 2 9쪽
201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7 +2 22.11.01 93 3 12쪽
20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6 22.10.31 80 4 13쪽
19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5 22.10.30 74 2 15쪽
19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4 22.10.29 76 4 18쪽
19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3 22.10.28 77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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