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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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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9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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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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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3

DUMMY

비행기는 한국에 먼저 도착했다.

유피와 미나는 따로 갈 수도 있었지만 나를 배웅해주기 위해서인지 끝까지 같은 비행기에 남아있어 주었다.


나는 눈물범벅인 채로 그들과 작별인사를 했고 친구가 아닌 다른 인간들에게까지 우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도망치듯 용으로 변해 집으로 날아갔다.


코르가 떠나버린 공항에서... 한참을 벗이 떠난 하늘을 바라보던 유피는 생각했다.


‘하, 모순적이군. 한없이 가라앉으면서도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 들다니.’


그건 정말이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자신이 유영하는 것이 창공인지, 아니면 심해로 추락하며 느끼는 기묘한 부유감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특별한 이에게 받는 특별한 감정은 분명 각별했으나, 그 눈물에는 해선 안 된 짓을 한 것 같은 죄악감을 받았다.


‘뭐 상관없다. 내가 머무는 그곳이 곧 하늘일 테니.’


그것이 천공의 주인인 그가 내린 답이었다.


‘내 곁에 머무는 이가 곧 별빛일 테니.’


다만 이것이 벗에 대한 답인지는 끝내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사랑도 여러 종류가 있듯이 우정 역시도 여러 종류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쯧! 유피, 너 코르 우는데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겠어?”


옆에서 이러한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미나는 유피를 타박했다.

그는 이 남자와 가장 오랜 연을 이어간 이들 중 하나로 같은 신이자 또 다른 친구로서 그의 이해자이기도 했다.


“난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가 전투광이라는 사실은 숨겼지. 코르가 걱정해주길 바란 거 아니야?”

“구태여 언급하지 않았을 뿐. 벗도 사실 알고 있었을 거다. 그 눈은 모든 것을 비추니.”


비록 그때 그 결투 날처럼, 달이 태양을 미처 다 가리지 못할 때나 생겨나는 광륜(光輪)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감히 비할 데 없는 광채다.


“그나저나 확실히 나쁜 기분은 아니더군... 전에 벗이 그대의 상대를 해주던 뱀을 죽이자 그 뱀을 걱정하는 걸 보고 생각했다. 저 마음이 나에게 오면 좋을 것 같다고.”


아무도 감히 그에게 ‘걱정’을 표할 수 없었다.

그는 너무 강해서 걱정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다.

설령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있다 하더라도, 동등하다 인정받지 못한 이가 보내는 걱정은 동정이며 그에겐 모욕이 될 뿐이었다.


오직 코르만이.

자신과의 결투에서 승리한 그만이.

두 번이나 자신을 죽기 직전으로 몰아간 벗만이 그를 걱정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이 변태새끼! 코르는 너가 이런 놈이라는 걸 알아야 해!”


미나는 유피의 어깨를 퍽퍽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이번 전쟁에 참여하면 최소 1년은 못 만날 텐데 꼭 그래야 했어? 이 이기적인 자식아!”

“그럼 말리지 그랬나.”

“그, 그건...”


미나는 언제나 누군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주기를 바랐다.

그것은 ■■를 ■■ 온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루미나 폰 덴브리던을 봐주는 친구의 존재는 미나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다.

그래서 말리지 못했다.


그 눈물에는 자신 역시 담겨있었으니까.


“그대는 벗이 아니더라도 그대를 걱정해주는 이가 존재한다. 허나 어째서 말리지 않았지?”


이제 추궁하는 이와 추궁 받는 이가 바뀌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번 추궁하는 이의 말에는 추궁 받는 자를 향한 조금의 힐난이나 비난도 섞여있지 않다는 점, 있는 것은 그저 순수한 의문뿐이다.


“엘레나 미스틱블루, 그대의 대모인 그녀라면 설령 그대가 세상을 멸망시킨다하더라도 끝까지 그대의 편을 들어줄 것이다. 그대 하나를 위해 세계를 적으로 돌릴 각오가 되어 있는 여인이다. 그 기상은 가히 웬만한 사내 이상, 실로 존경할만하다.”

“엘레나는 나를 봐주지-”

“변명은 집어 치워라. 그대는 오늘 확실히 이상했다. 나는 지금 여기에 대해 답을 들어야겠다. 벗에게는 내숭을 떠느라 보여주기 껄끄러워도 나는 그대의 밑바닥을 아는 존재, 거리낄 게 없겠지. 그대 역시 내 밑바닥을 봤을 테니.”

“......”


유피의 추궁에 미나는 굳게 입을 다무는 걸 택했다.


“그런가... 침묵도 하나의 답이 될 수 있겠지.”


침묵은 생각보다 많은 답을 대변해주곤 한다.

그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온갖 감정들 따위로 인해 이내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침묵으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그대의 말은 틀렸다.”


그때 누군가 먼저 입을 열어 그 모든 상념들을 깨부쉈다.

바보 같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듯이.

말하기 어렵다면 더 캐묻지 않겠다는 듯이.


“어디가!”

“1년이 아니다.”

“그전에 전쟁을 끝낼 생각이야? 아무리 너라고 해도 그건...”

“그게 아니다. 벗이 우리를 만나러 올 것이다.”

“설마 코르가 아카데미를 자퇴라도 한다는 거야? 너...! 코르가 그곳에 가는 걸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면서도!”


그 말에 유피는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음 지었다.

코르에게 보여준 미소와는 그 결이 다른 사악한 웃음이었다.


“아카데미에는 ‘학도병’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다더군. 아무리 벗이라도 폐쇄적인 아카데미에서 5년 내내 있고 싶지는 않겠지. 빠른 진급을 하려면 성적뿐만 아니라 실적이 필요하다 들었다. 사냥을 하거나 논문을 작성하거나 빼어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제외한다면 학도병은 좋은 실적 수급처지.”

“와, 이 치밀한 새끼.”


미나는 유피의 치밀한 계획에 탄식과 함께 감탄을 토했다.


“물론 벗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실적을 쌓을 수 있겠지마는 벗의 성격이라면 우리를 쫓아올 거다. 아카데미를 포기한 게 아니니 상관없지 않느냐면서.”


그 말을 들은 미나는 어깨를 감싼 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그러니 그대도 최선을 다 해라. 뺀질거리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 설마 벗이 찾아왔는데 서로 시간을 보내기는커녕 전쟁터만 전전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어느 정도 정리는 해두어야 한다.”


그저 보여주기 식으로 전쟁에 참여하고 뒤에서 일반 병사가 아닌 1급 헌터 이상의 고급인력들의 부상만 치료하며 편히 보낼 생각이었던 미나는 유피의 치밀한 계략에 치를 떨었다.


“그게... 내기에서 이긴 코르에게 주는 너의 최선인 거야?”

“그대의 최선은 좀 다른 듯 보이는 군.”

“어차피 너도, 나도 내기에서 이길 생각 따위 전혀 없었잖아. 코르의 실망한 표정을 못 이겨서 내기를 명목으로 선물 하나 쥐어주려고 했던 거면서...”

“우리에게 있어 첫 번째 체험은 중요하니까.”


첫 생일, 첫 만남, 첫 경험.

신에게 있어 모든 첫 경험은 언제나 각별하다.

자신들이 사실은 이 세계의 모든 체험을 하기 위해 영원한 수명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언젠가 모든 처음이 사라지고 지루한 되새김질을 해야 하는 그들에게 있어 첫 기억을 추억으로 장식하는 건 그들을 살게 하는 이유를 하나 더 늘리는 것과도 같았다.


‘그래. 그랬지... 그걸로 인해 나는 모든 처음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미나는 그때 그의 장단을 맞춰준 것을 후회했다.

그 내기를 한 것을 후회했다.


‘가장 슬픈 건...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나는 반드시 같은 선택을 할 거란 거야.’


추억은 위에도 이빨이 달렸다.

그래서 이미 삼킨 기억들이 그 안에서 끝없이 되새김질 되며 더욱 깊은 맛을 자아낸다.


미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유피는 그 미소가 내심 신경 쓰였지만 친구를 배려하여 비감(悲感)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감히 동정하지도 않았고 감히 그의 감정을 제 것인 것 마냥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몸을 돌려 기댈 곳을 마련해준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꼼짝없이 전력을 다하게 생겼네. 그런데 코르 혼자만 아카데미에 보내도 괜찮겠어?”


마치 시련이 찾아와도 역으로 조각나고 부서질 것 같은 그 방파제 같은 등에 미나는 이마를 기댄 채 너는 괜찮은지에 대해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되묻는 유피의 말엔 감히 누가 다음세대의 신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담겨있었다.

함께 무림의 절대자마저 물리친 벗이 고작 아카데미의 학생에게 당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설령 그곳의 교사를 맡는 기사나 마법사들도 감히 벗을 이기기는 힘들 것이다.


“코르라면 평범한 인간하고도 친구가 되려 할 텐데 우리 자리가 위험하지 않겠냐고 묻는 거야.”


그러나 미나의 물음은 약간 다른 방향의 질문이었다.


“어차피 찰나의 존재다. 졸업 이후에도 관계를 지속하긴 어렵겠지. 위치가 있는 법이니.”


이에 유피는 마치 이미 예상한 문제라는 듯 자신감 있게 답했다.


제 아무리 아카데미에서 친해진 관계라도 졸업 이후까지 관계를 지속하는 건 어려운 일임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사회적인 지위 이외에도 리버스에 머무는 신과 졸업 이후 아발론에 취직해야하는 아카데미생 사이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거리가 존재했다.


서로 동등한 위치의 학생이던 때와는 다르게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나는, 자신이 친구라 여겼던 이를 보고 기가 죽어 알아서 떨어져나가리라.


‘어떻게든 콩고물을 받아먹으려는 기생충 같은 이들은 남을 테지만 벗이 이들을 분간하지 못할 리는 없겠지.’


하물며 그의 곁에는 그가 머물러 있다.

벗의 검, 나머지는 그가 알아서 걸러낼 것이다.


“그리고 벗은 이미 꽤나 변화했다. 우리의 관계는 결코 일방적이지 않나니, 벗과의 만남이 그대와 내게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듯, 벗 역시도 우리를 만나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자각하기 시작했다.”


코르는 이제 인간을 자신과 동등하게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전과 많이 달라지지도 않았다.

유피는 이에 대해 ‘변화는 있으되 변함은 없는 것인가.’라고 짧게 되뇌며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변했지만 변함없는 친구라는 모순점이 그는 마음에 들었다.

그는 변함없는 친구가 좋았다.


“그렇다면 상관없는데... 아, 이번에 걔도 아카데미에 입학한다더라.”

“걔?”

“‘걔’인지, ‘개’인지는 너도 알 거야. 케빈 토트, 그 우매한 헤르메스의 환생 놈 말이야. 여동생 빠돌이 자식. 전에는 목줄을 차고 끌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예 코뚜레를 뚫었어야 했어.”


한때 미나에게 사도 뺏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패배하여 한 달간 그의 개가 되었던 이.


“알고 있다.”


그가 벗이 가는 아카데미에 간다는 말에 유피는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래 역시 알고 있... 뭐?!”

“다음세대의 신이라면 누구나 이번 전쟁에 필히 참석해야 한다. 인간들에게 신앙을 받는 대가이자, 더 많은 신앙을 받을 기회이지. 이런 상황에서 그를 이번 전쟁에서 빼내 아카데미로 보내줄 수 있는 게 누구라고 생각하나?”


본래라면 코르 역시도 그들과 같이 이 전쟁에 참여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5년 정도라면...

아카데미에서 보내는 5년 정도라면 판테온의 최강자로서 군림하는 그의 권한으로 어느 정도 참작이 가능하다.


‘만약 벗이 영영 오지 않는다면 귀찮아지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그 전에 전쟁을 끝내도 좋고.’


뒤늦게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울고 있는 벗에게 역시 이 얘기를 해줬어야 했다.


벗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자신은 이 말을 해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대부가 자신에게 해준 말.


비록 자신은 그때 그에게 답을 주지 못했지만 만약 벗이라면 이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듣고 싶었다.


‘신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를 위해 존재한다지.’


그저 신이라는 종족이 가진 ‘응답하는 자’로서의 성질일지도 모르지만... 벗이 자신을 필요로 함을 안다.

그렇기에 떼어두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벗은?


‘내가 벗을 원한다면 그대는 나를 위해 존재해줄 수 있는가.’


그는 과연... 자신을 위해 응답해줄 것인가.


유피는 그 대답을 듣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론 어렸을 적, 오지 않을 미래를 생각했던 때만큼 두려웠다.


견딜 수 없을 정도였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만 두려워했다.


‘처음 겪는 전쟁. 오래 즐기려했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군.’


친애하는 벗이여, 부디 인간을 사랑하지 마시게.

그들의 찰나가 우리에겐 영원한 것으로 남는다네.


“너... 내가 그 새끼랑 어떤 관계인지 알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우선 눈앞의 잔뜩 뿔이 난 또 다른 친구를 달래줘야 했다.

고운 입술을 짓씹으며 불만을 토해내는 이 오랜 친구에게선 사무치는 배신감이 눈에 보일 듯 넘실거렸으니까.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그는 제 여동생을 끔찍이도 아끼니, 아카데미로 가고자 했고 나는 벗이 평온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게 뒤를 봐줄 인물이 필요했다. 이것이 내가 벗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다. 그대의 답은 어떠한가?”


그 모습에, 자신을 전혀 배려해주지 않는 유피의 모습 위에 무언가가 겹쳤다.

있어서는 안 되는 미래가...


-벗을 버리는가... 네 선택을 존중하마. 다만 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라! 넌 더 이상 나의 친구가 아니다. 네가 모욕당할 때 나는 이제 더 이상 나서지 않을 거다. 네가 수치를 당할 때 그 속에서 너를 건져내는 일 따위 다신 없을 거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또한 오지 않아야할 일이었다.


미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어느 정도 대가는 예상했지만 이런 대가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저가 행한 최선은 그 대가가 너무나 가혹했다.


그 부담까지 상대에게 내모는 그와는 다르게...


“미안하다. 역시 친구인 그대에게는 먼저 얘기해주는 것이 옳았던 거겠지... 뒤늦은 사죄지만 받아주겠나? 아무래도 내기의 승자가 벗이니만큼 그쪽의 우선권이 더 높아서 말이다.”


걱정이 묻어나오는 따스한 목소리에, 진심이 담긴 사과에,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행동에, ‘너’가 아닌 ‘그대’라고 존중하는 말투에 미나의 떨림이 차츰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아직 일어나지 않았어. 모든 것은 가능성의 하나일 뿐이야...’


미나는 어떻게든 아무렇지 않게 미소 지으려 했다.

웃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 하고 자조했다.

그래,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일지라도 당장 웃을 수 있으면 된다.

이렇게라도 웃을 수 있으면 된다.


“뭐, 걔는 약하니까. 치근덕거리면 시리우스 씨 선에서 정리되겠지.”

“강자를 이기는 것에 필요한 것은 꼭 힘만이 아니다마는... 그도 그이니만큼 긴밀한 관계를 가지거나 하지 않을 것에 확신이 있지만 그대의 반응을 보니 역시 약간 불안해지는군.”


참고로 케빈은 봄의 여신이자 코르의 누이인 코레에게 고백을 한 전적이 있었다.

아니, 사실상 판테온에 속한 신들은 대부분 그녀에게 한번쯤은 고백한 적이 있다.

사내든 여인이든 구분 없이 말이다.


이르기를 리버스 공식 첫사랑.

그녀의 마음을 사기 위해 제 보물 중 하나인 ‘사자의 서’까지 선물했더랬다.

그런데 그가 그녀의 동생인 코르와 만난다면?


‘케빈이 사내를 혐오하는 건 알지만...’


유피는 제 눈앞에 있는 케빈이 사내를 혐오하게 된 계기가 된 친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 둘은 마치 쌍둥이처럼 꼭 닮았으니.’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매라고 들었는데, 둘은 어째선지 꼭 쌍둥이처럼 닮아있었다.

더군다나 코르의 그 눈.


유피 자신도 가끔 코르의 눈을 볼 때 그 눈이 자신을 영원한 것으로 삼으라고, 꿈에서도 그려보라고, 나를 갈구해달라고 유혹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흐음... 역시 실수였는가.”


그 코르를 걱정하는 유피의 모습에 미나는 자신이 있는 곳이 현재임을 자각하며 조금씩 진정해갔다.


“뭐야, 그게... 너답지 않잖아. 꼭 어린 동생을 걱정하는 큰 형 같다고 너.”

“비슷할지도 모르지. 벗에게 날 걱정할 자격이 있듯, 나 역시 벗을 걱정할 자격이 있는 게 아니겠나.”


정확히는 형제보다는 조카와 삼촌에 더 가깝겠지만, 유피는 그 사실을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벗의 아버지인 이강현 원로가 그의 대부인 그레고리 원로의 양아들이었으니, 그의 형제는 코르가 아닌 이강현 원로라고 보는 게 사리에 맞았다.


‘하아, 전생도 그렇고 이번 생도... 나는 아무래도 족보가 꼬이는 운명을 타고난 모양이다.’


심지어 코르와는 서로 동갑이긴 했지만 삼촌인 자신 쪽이 오히려 생일이 늦었다.


“만약 케빈이 정말 선을 넘으면 어떻게 할 거야?”


약간의 침묵이 이어지고 미나는 마지막 걱정을 담아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미나는 그가 어떻게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지 알았다.


그를 상대할 땐 우선 혀부터 잘라내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목을 쥐어 터트리던가, 성대를 뜯어내야 하리라.


“하긴, 벗이라면 미친 척하고 그럴 가치가 있겠군.”


지금까지 대화에 있어 한 번도 질문에 답을 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던 유피가 처음으로 침묵에 잠겼다.

그 침묵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침묵이었다, 가장 끔찍한 최후를 생각하게 하는 침묵이었다.


“......그때는 나에 대한 도전이라고,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있다고 받아들여야겠지.”


마치 어떻게 될지 상상에 맡긴다는 듯 그 존재감만으로 대기를 어그러트리는 유피의 그 변함없는 모습에 미나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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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5 22.11.21 79 2 16쪽
214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4 22.11.20 49 3 17쪽
»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3 22.11.19 52 2 18쪽
212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2 22.11.18 61 2 16쪽
211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22.11.15 62 2 18쪽
21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6 +2 22.11.14 55 4 18쪽
20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5 +1 22.11.13 62 3 13쪽
20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4 22.11.12 60 2 14쪽
20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3 22.11.11 75 3 16쪽
206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2 22.11.08 68 3 19쪽
205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1 22.11.07 62 2 19쪽
204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0 22.11.06 61 3 11쪽
203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9 +1 22.11.05 91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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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7 +2 22.11.01 93 3 12쪽
20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6 22.10.31 80 4 13쪽
19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5 22.10.30 75 2 15쪽
19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4 22.10.29 76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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