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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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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9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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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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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8쪽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4

DUMMY

“가온이라고?!”


망각이 없는 나는 그 스스로가 별자리가 되어버린 짐승을 아직 잊지 않았다.

잊지 못했다.


홀로 고독의 숲을 불태우고, 그 말뚝 같은 다리로 홀로 도시 하나를 괴멸시킬 수 있는 괴물들을 짓밟아죽이던 그 경이로운 광경을 어찌 잊겠는가.


“너희 괜찮은 거야? 제길, 그러고 보니 가온의 서식지가 고독의 숲 아래였잖아...!”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는데... 그걸 기억하지 못하다니, 내가 이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내가 도망갈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장담했지만 전언철회다.


풍백과 동급의 이형.

이치를 벗어난 짐승.


내 곁에 유피와 미나가 함께 있어도 이길 자신이 없다.


“젠장! 부주의의 대가가 목숨이라니! 무림에서 천마랑 목숨 걸고 싸운 게 불과 몇 달 전이란 말이야!”


당분간 어떤 대련도, 싸움도 하지 않고 몸을 사릴 생각이었는데 지금 내 발로 사지로 걸어 들어가게 생겼다.


기본적으로 고독의 숲의 충왕종들은 정말 미친 듯이 강하다.

서로를 잡아먹으며 점점 자라나 나중에는 자색의 위에 도달한다.


자색에 도달한 충왕종은 그 하나하나가 단신으로 도시 하나를 괴멸시킬 수 있는 괴물.


이를 막는 것이 바로 가온이다.


고독의 숲의 벌레들을 잃어버린 자기 자식으로 착각한 걸까?

가온은 그들이 숲을 벗어나 자신의 품을 떠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차라리... 제 손으로 죽이기를 선택할 정도로.


그렇게 이 숲의 벌레들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숲을 벗어나려고 할 때쯤이면 가온이 깨어난다.

여기까지 1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나는 보았다.

가온이 깨어나는 그 순간을.


나조차 이곳의 생태계를 망가뜨릴 자신이 없는데 가온은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이 숲에 불을 질렀다.

그 거대한 덩치는 정말이지... 굳이 권능이 아니더라도 막대한 질량은 그 자체로 비할 데 없는 강대한 무기가 된다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한차례 청소가 끝날 때쯤이면 풍백이 나타난다.

그는 비를 내려 불길을 잠재우고 그를 다시 땅속으로 돌려보낸다.


수천 년의 세월동안 이어져온 순환.

자연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이들이 펼치는... 인간은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순환.


그렇게 가온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수없이 졸여진 고독(蠱毒) 그 자체가 됐다.


그런데 ‘명왕(明王)’이라니!

그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화독(火毒)을, 광룡(狂龍)을...! 이들은 고독(蠱毒)이 아닌 명왕(明王)이라 칭했다.

마치 자신들의 신이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젠 저희의 마을 터가 되어버린 가온 님의 둥지를 저희가 찾았을 때, 이미 그분은 사라지고 없었으니까요. 자신의 둥지 한 가운데 그 무엇보다 따뜻한 백색의 불꽃을 남긴 채 그렇게 사라졌죠.”


나는 이들이 정녕 미친 게 아닐지 고민했다.

머리가 돌연변이 기생충에게 감염된 게 아닌 이상, 이런 생각을 할 리가 없는 것이다.


“보통 맹수의 굴에서 맹수가 보이지 않으면 잠시 떠나갔나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야지, 왜 거기에 마을을 세우고 지랄인데!!!”


죽으려면 자기들끼리 죽을 것이지 왜 나까지 끌고 가는가.

그들이 나를 태운 수레가 마치 저승길로 떠나는 가마처럼 느껴져 소름이 끼쳤다.


“하아~ 갑자기 욕해서 미안... 하지 않아!”


히히후- 히히후- 열심히 심호흡을 해봐도 짜증이 도통 진정되질 않는다.

그들의 행동은 그야말로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누군가 침을 뱉어도 쳐맞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리라.


내가 수레 위에 앉은 채로 이 안전불감증에 찌들은 드워프 중 하나의 멱살을 낚아채어 분풀이삼아 흔들어재끼고 있을 때 다른 드워프가 그 말을 이어받았다.


“그 불꽃을 발견했을 때의 감동이... 저희는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햇빛이 두려워 이렇게 땅굴 속을 전전하던 저희에게 그건 마치 ‘신의 이적’과 다름없었죠. 정말... 정말로 따뜻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저희를 구원한 그분을 기리고자 그분의 둥지를 마을의 터로 잡고, 그분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방문해주실 그분을 기다리면서요.”


‘만약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너흰 모두 죽어.’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이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신앙만큼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이 없음을 알기에.

신으로서 지내며 나는 이런 이들을 적지 않게 보아왔다.


“쯧!”

“케흑!”


어차피 화를 내봤자 말이 통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숨이 막히는지, 필사적으로 내 팔을 때려대는 드워프의 멱을 나는 거칠게 놔줬다.


“허윽, 허억!! 이렇게 꽉 조르시는 게 어디 있습니까! 어후, 죽는 줄 알았네...”


그가 바닥에 엎어져 숨을 고르는 동안에도 수레가 멈추는 일은 없었다.


“아, 인간적으로 사람이 쓰러져 있으면 기다려달라고요!”


아쉽게도 이곳에는 인간이 한 명도 없다.

그는 이 깊은 지하미로의 유일한 불빛을 놓칠까 싶어 푸념을 늘이다말고 서둘러 우리의 뒤를 쫓아왔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네요. 역시 그분에 대해 알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추한 외모로 인해 세상에게 버림받고 이리저리 떠돌던 저희에게... 영원의 겨울로 추위를 이기지 못해 얼어 죽어가던 저희에겐...!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저희를 살린 그분의 불꽃이 진정 구원 그 자체였으니까요. 이 목숨을 원한다면 내어드릴 수밖에요. 물론 쉽게 죽어드릴 순 없으니 최선을 다해서 자비를 구걸해볼 생각이랍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온이 파괴의 화신과 다름없는 존재라는 걸.


“감사는 마음을 전하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하지요. 아마 신앙 또한 이와 같으리라고 저희는 믿고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자신들의 마을을 포기하지 않을 거다.

가온이 온다면 그저 덤덤하게 자신들의 최후를 받아들이리라.

감히 자신들의 신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다만 자비를 구걸하겠지.


“그래도 이 정보를 숨긴 건 잘못됐어.”

“그래서 저희는 자격 있는 자의 의뢰만을 받지요.”


그런 답이 돌아오자 나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애초부터 의뢰자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설마 내가 있는 사이 가온이 오지는 않겠지...’


그래도 혼자서 도망가는 것뿐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도망갈 자신뿐일까? 도망가기 직전 잔뜩 약을 올릴 자신도 있다.


난 아직도 내가 열심히 사냥하여 모은 충왕종의 소재들과 마석들을 전부 집어삼킨 가온을 잊지 않았다.


‘그때는 확 배탈이나 나라고 저주했었는데... 설마 이쪽에 자리 잡은 게 진짜 나 때문에 배탈이 나서 머물렀던 건 아니겠지?’


내가 생각해도 너무 허황된 생각이라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원래 지하에서 생활하던 녀석이니 한바탕 몸을 움직인 뒤 밑에서 좀 쉬려고 했을 거다.


‘그렇겠지? 그래야하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그런데 가온을 신으로 섬긴다면 내 불꽃을 사용하는 순간, 너희 모두 이단이 되어버리는 거 아냐?”

“코르 님도 좋은 분이고 가온 님도 좋은 분인데 꼭 그렇게 나누어야하나요?”


정말 궁금하다는 듯 내게 되묻는 미아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 뭐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일신교를 지향하는 것은 보통 기독교의 영향으로, 다른 종교에선 수많은 신들을 함께 섬기곤 한다.


“그냥 농담한 것이니 그렇게 얼어있진 말아주세요. 단지 저희가 신앙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목숨을 포기해도,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는 것. ‘장인 정신’이라고도 하죠. 고집이나 아집이라 이르셔도 좋습니다. 그래도 오직 이것이 저희들의 유일성이자 차별점입니다. 보다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 약간의 유연성은 발휘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 말하는 미아는 마치 이 세상에 자신의 작품을, 위대한 흔적을 남기는 것을 사명으로 받았다는 듯, 마치 구도자와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후에도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이 있어 물어봤다.


“그런데 너희가 추한 외모라고? 다들 잘생긴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가끔은 예쁘단 칭찬도 받고 싶지만 잘생겼단 칭찬도 듣기 좋네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마을에 도착하면 저절로 아시게 될 겁니다.”


그때 저 멀리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확인한 이들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어찌나 밝은지 여태까지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준 내 불꽃은 마치 별이 야경에 먹히듯, 순식간에 집어삼켜져 은은하게 빛을 발할 뿐이었다.


“다 왔다!”

“와 씨! 꼼짝없이 얼어 죽을 줄 알았는데!”

“이곳이 바로 저희들의 마을! 드워프들의 고향, 땅굴마을 드베르그입니다! 드워프가 아니면서 여기까지 오는 분은 코르 님이 처음이세요. 이번 내기는 결국 승자 없이 끝나게 되었군요.”

“오면서 듣긴 했지만, 진짜 신을 대상으로 내기까지 한 거냐, 너흰...”


그동안 많은 이들이 이곳에 와 드워프들에게 의뢰를 맡기고자 했지만, 모두 중간에 도망가 버렸기에 그들은 내가 언제 도망치는지를 두고 내기를 했다고 한다.

다만 내가 끝까지 남아 이곳에 도달할 거라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뿐.

그렇게 내기는 무산됐지만 그들은 그리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잃은 것이 없기 때문일까?

도박에선 잃지 않은 것만 해도 이긴 것과 다름없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나 이전의 의뢰자들을 향해 겁쟁이라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미아였지만 나는 중간에 몸을 돌려 도망간 이들을 이해했다.


‘당장 나만해도 몇 번이고 되돌아가고 싶었는걸...’


그도 그럴게 여기까지 오는 길, 대부분이 비스듬한 내리막길이었으니까.

수 시간을 걸었는데 계속계속 내려갔단 말이다.


그런데 기온이 계속 올라간다.


나야 그렇다 치겠지만, 다른 이들은 과연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지옥의 입구로 발을 들이는 느낌이라도 들지 않았을까?


두려움이란 그 실체를 확인하기 전까지 끝없이 증식하는 것, 처음에는 그저 불안에서 끝났겠지만 이 길은 너무나도 길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침묵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두려워지는 거다.

그렇게 공포가 쌓이고 쌓여 마침내 한계에 임박했을 때엔 두려움이 그들 안에서 실체를 가지고 뒤돌려 달려갈 수밖에 없었을 거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더 깊은 곳은 사지(死地)라고 뇌에서 인식해버렸을 테니.


“그런 이들을 몇이나 본 거야?”

“네?”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간 이들 말이야.”

“많죠. 수도 없이 있었습니다. 사냥꾼들 중에서 자력으로 세계수에 도달하여 ‘도착자(Arrival)’의 칭호를 받은 이들이 저희가 만든 무구를 탐내어 렌에게 소개를 부탁하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결과는... 뭐, 그들도 결국 공포에 취약한 인간이더군요.”


‘파 시어’라는 칭호는 이제 더 이상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시간도 많이 흘렀고 정보공유도 활발해졌으며 세계수가 생김으로 인해 그곳까지 도달하는 인원이 많아지며 ‘멀리 보는 자(Far Seer)’가 더 이상 ‘멀리 보는 자’가 아니게 되자 협회에서는 차별성을 두고자 ‘파 시어’의 칭호를 이전에 얻은 자들에게만 남겨두고 새롭게 DMZ의 끝에 도달한 이들을 ‘도착자(Arrival)’라 이름 붙였다.


그래도 아직 그 칭호를 얻은 자는 전체 비중에서 1할도 채 되지 않는다.


“포기할 거면 빨리 할 것이지. 중간에 돌아가면 십중팔구 길을 잃습니다. 처음에야 빛이 있으니 괜찮지만 절반 이상 왔는데 돌아갈 경우 결국 꼼짝없이 어둠 속에 갇히게 되죠. 그들은 그렇게 굶어죽거나 얼어 죽거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만약 뒤늦게 발견하여 돌려보낸다고 해도 그땐 이미 공포에 먹혀 제정신이 아니죠.”


생각하기만 해도 화가 치미는지 미아의 목소리가 점차 올라갔다.


“그래서 자격을 본다는 거였구나. 마치 시련 같네.”

“예. 처음의 무례는 이렇게 사죄드립니다. 저희도 저희와 함께 여기까지 와서 의뢰를 할 수 있는 자인지 자격을 확인해야했기에.”


자신의 도구와 공방이 있는 곳에서 의뢰를 받아야 제대로 된 맞춤형 물품을 완성할 수 있는데 여기까지 오는 족족 죽어나가니 그들로서도 곤란했으리라.


“요즘 사냥꾼들 사이에서 난쟁이가 사람을 지하로 끌고 들어가 죽인다는 소문이 돌아 정말 난감합니다. 저희 때문에 렌이 곤란해지는 게 아닌가 해서요. 아인종에 대한 인식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네요.”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계속하며 마을에 입성했다.

그때 그녀 옆에 있던 드워프 남성이 마을 안에 들어서자마자 크게 소리 내어 외쳤다.


“야! 이 번데기들아! 하던 일 멈추고 이리 나와! 누가 왔는지 보라고!”


드워프들은 마을에 들어가는 것부터 떠들썩했다.


“뭐? 뻔데기~? 이 자식이 미쳤나!”


격하게 반응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무척 심한 욕인 것 같다.


“어차피 생필품 받아가라는 얘기겠지. 그런데 저 새끼는 말을 저따위로밖에 못하나?”

“저 놈은 언제 임자 한 번 만나야해.”


그리고 초면에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이지만 마을의 주민들은 진짜 번데기 같았다.


‘첫 인상이란 게 초면에밖에 형성되지 않는 거긴 하지만...’


쭈글쭈글한 게 진짜 못생겼다.


“못생겼죠?”

“죄송합니다!”


사실 난 생각이 얼굴로 다 드러나는 편이었던 건가!!

유피가 비슷한 말을 하긴 했지만 안 믿었는데!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기 아이들을 보면 나름 평범하게 생겼을 거예요.”


수레에 뛰어들어 간식거리들을 자기 입에 집어넣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확실히 나름 평범하게 생겼다.

여전히 남녀 분간은 안 됐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계수에 거래를 하러 온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어른들은 전부 쭈글쭈글했다.

서로 평대하는 걸 보니 황혼을 앞둔 노인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엘프는 개화의식에서 번데기 기간이 굉장히 짧지만 저희는 무척 긴 편이거든요.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보통 1년 이상 저런 상태를 유지한 뒤에나 성충으로 성장하곤 하죠. 아아, 정말 힘들었습니다. 대격변 이후 갑자기 외모에 변화가 와서 사람들이 저주받은 거 아니냐고 돌을 던지는데 모두가 혼란스러운 와중 어디 기댈 곳이 있었겠습니까?”


대격변 초기, 그때는 정말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었다.

돌연변이 문제도 있고, 광인들이 정신을 되찾은 것은 물론, 각성자와 비각성자 사이의 갈등까지...


지금은 거대세력들의 중재로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생물의 종이 아주 변해버린 경우.

아인종이 되어버린 경우에는 그런 이들을 위한 것이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 수가 전체 인구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으니까.


“그때 TV에서 렌이 나왔습니다. 그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고 저희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함께 우리들에 대해 알아보자고 말해주더군요. 기생오라비 같은 엘프들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만큼은 정말 존경할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 말하며 슬며시 볼을 붉히는 미아.


‘렌을 좋아하는 건가?’


기존의 인연을 모두 버리고 이곳에 와 새로운 시작을 해야 했을 이들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을지 예상이 갔다.

그 마음까지도...


“어라, 인간이잖아? 인간이 여기 어떻게 왔지?”

“멍청하긴. 자기도 원래 인간이었으면서.”


하나 둘씩 집밖으로 나와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하나같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아까 들어오자마자 번데기 발언으로 광역도발을 시전한 그는 마치 간신배처럼 내 앞에 다가와 두 손으로 공손히 나를 가리키고는 외쳤다.


“우매한 놈! 그래서 너희가 뻔데기라고 불리는 거다! 여기 있는 이분은 인간이 아니야. 신이다!”


‘자기도 몰랐으면서...’


그 모습이 마치 광대같이 유쾌했기에 나는 두 팔을 벌려 태양만세 자세를 취해주었다.

마침 마을 중앙에 놓인 가온의 불이 진짜 태양처럼 나를 비췄다.


“신?”

“분명 다음세대라고 리버스에서 진짜 신들을 데리고 있다고 듣기는 했지만.”


그들은 의외로 신을 눈앞에 두고도 시큰둥한 반응으로 보였다.

순식간에 자신감을 상실한 나는 다시 팔을 내렸다.


‘하긴, 신이라고 해도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지. 소원을 이루어주는 자도 아니고.’


아마 그렇기에 각 신마다 다른 영역을 권능으로 둔 것일 거다.


‘팔 다리가 없는 이에게는 이를 재생시키는 미나가 신으로 보일 거고, 감당할 수 없는 적을 눈앞에 뒀을 때엔 마치 기둥처럼 기댈 수 있는 유피가 신으로 여겨질 테지.’


그리고 나는-


“이분은 보통 신이 아니야! 자그마치 불의 신이다.”


대장장이에게 불을 내려주는 그런 신이었다.

내 불은 변화의 불꽃.

대장장이가 사랑해마지 않는 용광로를 달구는 불꽃이다.


“불의 신이라면 불의 벽, 이코르...?”

“나 영상으로 봤어! 확실히 저 금안은 이코르 님의 상징이야!”

“로키 신의 환생!”


신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자신감을 회복한 나는 다시 태양만세 자세를 취했다.


“오오! 신이시여! 이 공물을 받고 저희에게 불을 내려주십시오.”


한 쭈글쭈글한 드워프 하나가 내게 어여쁜 반지 따위를 바치며 불을 요청했다.

나이는 굉장히 많아보였지만, 아직 성충이 되지 못했는지 번데기 단계에 머무르는 이였다.


“허하노라!”


용광로마다 가온의 백색 불꽃이 담겨있었지만 불이 꺼진 용광로 하나, 청명의 잔향이 느껴지는 그 용광로 앞에서 나는 힘껏 불을 일으켰다.


“오오! 뜨거워!”

“이 정도 불꽃이면 강철도 삽시간에 녹아버릴 거야!”


지하에서 광물만 만지던 이들이라 그런지 이런 거 하나하나에도 반응이 격해서 재밌다.

마치 불을 모르는 원시인들에게 불을 전파해준 선지자가 된 듯한 느낌이다.


“저, 저도...”


그때 몰려드는 인파로 멀찌감치 서 있던 드워프들의 공주 미아도 계속 기다리다가는 자신의 차례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우물쭈물하며 자신에게도 불을 달라 수줍게 요청했다.


공주로서 체통보다는 장인으로서의 욕망이 더 중요한 모양이다.


“허한다!”


특정 몇몇을 제외하고 이렇게 다수가 한꺼번에 신 대접을 해준 것은 처음이라 잔뜩 흥이 오른 나는 금화를 뿌리듯 주변에 불씨를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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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5 22.11.28 55 3 19쪽
219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4 +1 22.11.27 59 4 16쪽
218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3 22.11.26 50 5 17쪽
217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2 22.11.25 54 3 14쪽
216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1 22.11.22 58 2 21쪽
215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5 22.11.21 79 2 16쪽
214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4 22.11.20 50 3 17쪽
213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3 22.11.19 52 2 18쪽
212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2 22.11.18 62 2 16쪽
211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22.11.15 62 2 18쪽
21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6 +2 22.11.14 55 4 18쪽
20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5 +1 22.11.13 62 3 13쪽
20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4 22.11.12 60 2 14쪽
20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3 22.11.11 75 3 16쪽
206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2 22.11.08 68 3 19쪽
205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1 22.11.07 63 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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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6 22.10.31 80 4 13쪽
19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5 22.10.30 75 2 15쪽
»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4 22.10.29 77 4 18쪽
19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3 22.10.28 77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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