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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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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9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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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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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3

DUMMY

“여기 펌킨 스프도 먹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내 이름은 히미코 팬드래건. 너는?”


내 불편함을 느낀 것인지 그래도 상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와 줬다.

아무래도 나를 경계하는 건 그만두기로 한 것 같다.


“고마워, 내 이름은 이코르야.”


나는 건네받은 펌킨 스프를 퍼먹으며 답했다.


‘뭐지? 왜 이리 맛있지?’


굉장한 풍미.

단순히 ‘맛있다’라는 짧은 한 마디로는 이 스프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다.


‘만족’이라는 단어 그 자체를 형상화시키면 이 호박죽이 되지 않을까?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신이라는 허명을 벗어던지고 숟가락을 입에 쑤셔 넣는 기계가 되라는 천명을 받은 것이라고.


그릇에 코를 박다시피 하며 허겁지겁 호박죽을 해치우는 코르의 모습에 사바나는 역시 ‘다그다의 솥’의 효과는 굉장하다며 고개를 주억였다.


“에엑!! 네가 이번 대의 불의 신이었어?!”


내 정체를 듣고 경악하는 히미코를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얘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나보네.’


원로를 후견인으로 둔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아마 알지 못하는 듯했다.


‘리버스의 원로의 수는 총 아홉. 따라서 그들의 피후견인이 될 수 있는 신도 아홉이야.’


어떻게 보면 참으로 고독한 자리다, 함부로 인연을 맺을 수도 없는 위치니까.

심지어 자신의 피를 이은 아들을, 심지어 신으로 태어난 아들을 조직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치해야했을 만큼...

그렇기에 나는 사바나에게 이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바나, 이렇게 다음세대가 아닌 존재를 마음대로 대녀로 삼아도 되는 건가요?”

“질투하는 거니?”

“그래서 뭐 불만이라도 있는 거야?”


와, 그동안 친구들하고만 지내서 몰랐는데 여자 둘을 동시에 상대하니 그 피로감이 장난 아니다.


“말 돌리지 마요, 나는 딱히 불만이 없지만 다른 애들은 분명 다를 거라고요.”


그렇게 당당할 입장이 아니라는 내 말에 사바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웃었다.

다음세대의 신을 부려먹었다고 장자를 반쯤 죽음으로 몰고 간 유피랑 미나를 봤으면 아무리 최고원로라도 저렇게 뻗댈 수는 없을 텐데 말이다.


“확실히 사무엘 군이 듣는다면 히미코를 죽이러 올지도 모르겠구나. 다음세대의 명예에 크게 신경 쓰는 아이니까. 하지만 문제없다, 너는 리버스의 원로 사바나 위치엔드의 대자이고 히미코는 아카데미의 이사장, 모르간 르 페이의 대녀이니.”


궤변이다, 모르간 르 페이라는 이름으로도 악마의 지식을 계승받은 이상, 두 이름 모두 리버스의 원로라는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뭐, 그렇다면야...”


하지만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이로 인해 내 주변이 시끄러워지지만 않으면 상관없다.


“더군다나 히미코는 이미 사무엘 군과 안면이 있단다.”

“네?”


다음세대들은 기본적으로 은둔생활은 이어간다.

생활에 문제가 없으니 보통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다.

집에 틀어박힌 채로 무언가를 연구하거나, 배우거나, 그조차 아니면 매일같이 파티를 이어간다.

그럴 만한 재력도, 체력도 있는 게 바로 다음세대의 신이다.


“사무엘이면 분명 이탈리아를 점령한 마피마 조직, 아퀼라(Aquila)의 보스였죠? 그 독수리들하곤 사업차 몇 번 접선한 적이 있긴 해요. 비록 동맹은 파투났지만.”

“사업? 동맹?”

“나도 나름 큰 조직의 수장이었으니까. 다 한때의 이야기지만... 그 놈을 만나고 갑자기 다 의미 없어져서 조직을 버리고 나왔는데 그때 대모님을 만났지.”

“히미코, 네가 만든 조직이 귀도(鬼道)라고 했던가?”

“네, 맞아요. 대모님.”


그 여상한 말투에 나는 속으로 빽! 소리를 질렀다.


‘야! 네가 마피아 조직에 대고 뭐라고 하면 안 되지! 귀도는 야쿠자 조직이잖아!!’


언젠가 마석병 환자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을 거다.

마나에 저항력이 없는 일반인이 고위의 마석에 닿을 때, 이따금 걸리곤 하는 병, 체내의 마나가 안 좋게 응집되어 결정을 맺는 증상.

이들은 그릇이 없기에 숨을 쉴 때마다 축적되는 마나가 전부 마석이 되어 자라난다.


이 마석은 연금술과 제약 분야에서 크게 환영받는 재료인데 그 성분이 일반 마석과 다르게 굉장히 인체 친화적이라 무척 높은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뒷세계의 몇몇 조직은 이를 이용해 일반인들을 납치하여 살아있는 마석 광산을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귀도가 바로 그런 조직들 중 하나다.


마음속에서 히미코에 대한 경계가 올라갔다.


그래도 덕분에 유피가 운영하는 마피아 조직의 이름도 듣게 됐다.


‘귀도(鬼道)면 분명 과거 여왕 히미코가 섬겼던 길이지... 히미코는 한국명으로 비미호이며 일본은 풍백의 친구인 백면금모구미호 달기가 간 곳이라고 했으니까...’


나는 재차 그녀의 종족을 확인했다.


[종족: 반요(半妖)(여우)]


‘찾았다, 달기의 후손!! 일본이면 세이메이의 후손인가?’


풍백이 그녀를 보면 분명 즐거워하리라.

뭔가 풍백의 친구의 먼 후손이라고 하자 그것만으로도 내적친밀감이 형성되는 것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조금씩 경계심을 풀었고 이후에는 함께 삼하인의 밤을 즐겼다, 속이 파내어진 호박 안에 넣어진 양초에 불을 붙이며 다가올 율(Yule)을 기원했다.


<<머리에 사슴뿔이 달린 수수께끼의 남신이 깨어나 벨테인(Beltane), 영원한 겨울이 끝나고 여름의 시작이 오기를 ‘기원’했다.>>


“원래라면 코르, 네게도 마를 종복시키는 방법을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쉽구나.”

“딱히 정령이나 신령과 계약하는 건 관심사가 아니라서 상관없어요.”

“하긴, 너는 엘레나의 아이와도 연이 있었지. 그럼 조금 꺼려질 수도 있겠구나.”


사바나는 미나를 엘레나의 아이라고 불렀다.


“다만 그 애는 경우가 좀 다르단다. 너무 많은 신을 받아들였으니...”


미나는 전생의 계약이 현생에 영향을 미친 경우이다.


“안 그래도 자신의 그릇 이상의 것이 주어졌는데 성별까지 다르니 영들이 노할 수밖에. 솔직히 난 그 아이가 사도를 좀 줄였으면 좋겠구나. 딱 절반 정도로만 줄여도 그들을 억제하는 게 훨씬 쉬어질 테니까.”


타신의 사도에 대해 함부로 언급하는 건 굉장히 무례하지만, 미나는 확실히 좀 위험한 상황인 게 맞았다.

주술적인 관점에서 주술사는 여성이고 신은 남성이다.

아리따운 여신을 주인으로 모셨는데 여신이 늙어죽고 다시 태어나자 남자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좋아?


‘아, 이게 아니지...’


계약이 이렇게 어그러져 버렸으니 종복된 신들은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 신의 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리라.

자칫 잘못하여 고삐를 놓치면 그 살점이 조각날 수도 있는 것이다.


“히미코는 좀 다른가보죠?”

“암, 다르고말고. 마녀의 형질이 왕으로서의 자질과 섞여 마왕으로 개화되었으니. 어쩌면 최초의 여마왕을 기대해도 되는 부분이란다.”


그건 좀 대단하게 들렸다.

마왕에 대해 잘 아는 걸 모르지만 다음세대의 신인 미나도 몸에 상처가 나면 혈향을 맡고 흥분한 신령들을 억누르느라 꽤나 힘겨워했으니까.


‘어디 상세정보를 확인해볼까?’


[종족 특성: 마왕(Dark Lord)(Rank:S+)]


「그대, 만마(萬魔) 위에 군림하는 마왕(魔王)일진저.


1. 온전한 선악과: 불멸(不滅)과 대척점에 놓인 필멸(必滅)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습니다. (Rank:A 이상 적용)

2. 저주의 왕: 저주의 왕, 진조(眞祖)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이 있습니다. (Rank:A+ 이상 적용)

3. 부정의 부정: 저주와 축복은 한끝차이,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적용할 수 있습니다. (Rank:S 이상 적용)

4. 원죄의 주인: 대죄를 잡아먹는 게 가능합니다. (Rank:S+ 이상 적용)

5. 여마왕: 인도자의 사념으로 타인을 저주의 왕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성별: 여성 적용)


-마녀의 형질에 왕으로서의 자질이 섞여 발현된 특성입니다.」


“그런데 너 진짜 신 맞아? 내가 본 신하고는 조금 많이 다른 느낌인데...”

“사람마다 개체차가 있는 것처럼 신들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면 편해.”


신이라기엔 너무 인간적인 모습 코르의 모습을 보며 히미코는 그 남자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하늘의 심판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그 남신을...


***


─쿠르르릉!!


그는 문자 그대로 폭풍을 몰고 왔다.

그를 따르는 이들과 함께.


“모두 숨을 죽여라, 어디 감히 입을 여느냐.”

“입을 막고 귀를 열으라. 겸허히 신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늘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신이시어. 당신께서 친히 왕림하실 필요가 있나이까? 언제나처럼 명령하소서. 저희가 듣겠나이다.”

“무어, 이 또한 유흥이다. 이 몸에게 직접 동맹서한을 보내온 건방진 인간의 낯짝을 보고 싶다는 이유도 있고 말이다.”


히미코는 그를 보자마자 느꼈다, 격이 다르다는 것을.


“어떤 처연(悽然)한 존재가 나를 초연(招宴)했나 했더니 모든 것에 초연(超然)한 여인이었는가.”


*처연(悽然): 애달프고 구슬프다.

*초연(招宴): 연회에 초대함.

*초연(超然): 어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함.


드높은 천상의 존재가 구름을 딛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다만 땅이, 대지가, 모래 따위가 자신의 발을 더럽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마음에 드는구나.”


그가 주위를 둘러본다.

허나, 누구도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귀도의 야쿠자들은 자연재해와 다름없는 그 존재 앞에 자신들의 수장이 그라도 되는 양 고개를 숙이고 바들바들 떨었다.


히미코는 여기에 반발심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꼿꼿이 세우고 그를 당당히 마주했다.

속으로 이는 동맹을 위한 자리이며 그와 나는 동등하다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다만 마음에 드는 것과는 별개로 건방지다.”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그러자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저것이!

저것이야말로!

날 때부터 지배자로 내정된 다음세대의 신으로서의 모습이라고...


모든 감각이, 모든 세포가 소리 높여 찬양했다.


“머리가 너무 높구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쿠웅!


“당장 무릎을 꿇지 못할까!! 신께서 네 년의 처우를 내 손에 맡기시온즉, 나는 이걸 내 멋대로 휘두를 셈이니. 너의 삶은 물론, 죽음마저도 이미 네 손을 떠났느니라.”


그의 곁에 있는 간부들 중, 아퀼라의 두 최고 간부 중 하나라는 집행자가 직접 날개를 펼친 채 내려와 그녀를 강제로 자신이 모시는 신 앞에 무릎 꿇렸다.


“그래서 그대,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가?”


히미코에겐 대격변 이후 모든 것이 다 그녀의 마음대로였다, 그야말로 운이 따랐다.

그랬기에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뒤늦게 개화한 재능에 사람들은 그녀에게 숭배를 보냈다, 맹목적으로 섬겼다, 그 안에서 그녀는 말 그대로 여왕과도 같은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생전 처음 맛보는 성공의 연속에 히미코는 오만해졌다, 자신의 그릇이 일본이라는 작은 땅에 담기엔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그치지 않고 세계로 나가기 위해 그 대들보로서 그들을 골랐다.

그래, 발판으로서...

하지만 수장은커녕 조직의 간부에게조차 상대가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그녀는 좌절했다.


느껴지는 것은 오직 죽음의 공포뿐이었다.


“아직 눈에 반항기가 도는 군. 조금 더 고개를 낮춰라, 아니면 직접 낮춰주길 바라나?”


─콰직!


약간의 반항심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그가 내려왔다, 그 발뒤꿈치로 그녀의 관자놀이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여왕이 아니었다, 신의 뒤꿈치를 잡는 야곱일 뿐이었다.


그 남자의 그 행위에서 분노 따윈 없었다, 보다 정확히는 분노할 정도로의 가치가 그녀에겐 아직 없었다.

있는 것은 오직 인형이 사람이 된 것을 본 것 같은 나직한 감탄으로 모든 것에 초연해보인 그녀가 분노를 눈에 담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 자신을 올려다보는 히미코를 내려다보았다.


‘나를 내려다보지 마!’


자신을 짓밟는 신왕 앞에 마왕은 자신을 내려다보지 말라고 속으로 읊조렸다.

그래. 속으로...


“크윽...”

“그래, 신은 그렇게 올려다보는 것이다.”


이게 현실이었다.

자신은 갑자기 힘이 생긴 어린 계집애.

상대는 나라를 뒤흔드는 거대조직의 수장.


현 세계를 삼분(三分)한 삼대세력조차 그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오만했다. 너무나 오만했다.

다만 그의 오만은 당연한 것이었고, 자신의 오만엔 자격이 없었다.


“뭐지? 다시 초연(超然)해졌군. 아니, 초연(悄然)인가?”


*초연(超然): 어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함.

*초연(悄然): 의기가 떨어지고 기운이 없음.


“흥이 식었다. 동맹은 없던 걸로 하지.”


지진 몇 번에 가라앉을 나라엔 흥미가 없다는 듯, 그는 그렇게 떠나갔고 그 뒤를 아퀼라의 간부들이 따랐다.


오직 그녀만이 싸늘한 대리석 바닥에 남아 울분을 삼켰다.

속으로 욕설을 읊조리는 것만이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것이었다.


***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니, 그저 그때의 내게 말이라도 전할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다.


무릎을 꿇지 말고, 올려다보지 말고, 귀담아듣지 말고 저항하라고.

어떤 부조리 앞에도 분노할 자격은 있는 법이니.


그런데 얘는 뭘까?

신이 맞긴 한 걸까?


첫 만남에서 머리에 문제가 있냐고 대놓고 물었는데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내게 굴욕을 주고 그 앞도적인 힘 앞에 결국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져 조용히 수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든 그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외모는 제법... 신이라는 게 절로 납득이 될 정도긴 해.’


솔직히 취향이다.

한창 조직을 거느렸던 때 같았으면 옆에 끼고 다녔을 거다.


세상을 관조하는 관측자 같으면서도 그 낯짝이 너무 해맑아 기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뭔가 그에게는 모든 것을 용서받고, 이해받고, 허용 받을 것 같았다.


그 모습은 어떤 의미에선 정말 신과도 같아서 그 아찔한 대비에 숨이 막혔다.

첫 만남에선 잠시 넋을 놓았을 정도로...

그게 부끄러워 일부러 무례하게 대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던 그와는 비슷하면서도 모든 것이 달랐다.


‘무례하게 대했는데 크게 화가 난 것 같지도 않고... 얘도 그처럼 내가 분노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다, 그것과도 달랐다.

같은 대모를 두게 된 그는 마치 유치원 선생님을 보는 듯했다.

돌보는 애들한테 ‘크면 선생님하고 결혼할래.’ 같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웃으며 부드럽게 거절하는 그런 선생님.


사바나는 그런 둘의 모습이 잘 어울린다는 듯 흐뭇하게 웃었다.


-그 아이는 이 땅에 남은 마지막 정통 인도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란다. 특히 히미코 너에게는 더욱 그렇겠지.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남자아이로 보일 테니까.


“대모님?”


몰래 힌트를 주듯 텔레파시를 보내오는 사바나에 히미코는 깜짝 놀라 그녀를 불렀다.


“으음...?”

“아무것도 아니란다. 스프를 더 먹겠니?”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둘을 바라보는 코르 모습에 사바나는 스프를 한 접시 더 내어주며 자연스럽게 주의를 돌렸다.


확실히 같은 인간을 마주함에도 이질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분명 나와 닮았는데 나와 같은 종은 아니라는 느낌.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원숭이 따위의 유인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남은 이성(異性)인가...’


-하지만 상대도 너와 같은 걸 느끼라고 바랄 순 없는 거란다. 그는 인도자임과 동시에 신이기도 하니, 히미코 너 말고도 동족이 잔뜩 있는 걸로 비치겠지.


그건 뭔가 기분이 좋지 못했다.


‘뭐야, 이게... 꼭 운명 같잖아. 나에게만 정해진 운명...... 기분 나빠.’


그녀는 정해진 운명이라는 놈이 싫었다.

그녀는 이치를 파괴하는 마왕이었으므로.


“하아~ 오빠라고 인정한 건 아니니까 그냥 편하게 ‘야’라고 부른다?”

“나도 딱히 여동생이라 인정한 건 아니니까 상관없어.”


같은 대모를 두었다고 하여 한순간에 남매가 되는 건 아니지만 상대방 쪽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그도 조금 화가 났는지 선을 그었다.


고백도 안했는데 차인 것 같은 이 기분.


“야, 너 강하냐?”


그게 또 심술이 나 히미코는 이번엔 힘을 걸고 늘어졌다.

나이로는 이기지 못하니 힘으로라도 이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네가 사무엘이라고 부르는 유피랑 전에 싸워서 이겼어.”


그 믿을 수 없는 대답에 히미코는 사바나를 쳐다봤다.

사바나는 사실이라는 듯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도 지금 붙으면 이길 수 있거든?”


거짓말이다. 자신이 성장했는데 그가 성장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래? 대단하네. 솔직히 난 지금 다시 붙으라면 자신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 나는 대체 뭐가 되냐!


히미코는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몰라 다시 한 번 사바나를 쳐다봤다.

사바나는 이번엔 네가 졌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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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3 22.11.26 51 5 17쪽
217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2 22.11.25 54 3 14쪽
216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1 22.11.22 58 2 21쪽
215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5 22.11.21 80 2 16쪽
214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4 22.11.20 50 3 17쪽
213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3 22.11.19 52 2 18쪽
212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2 22.11.18 62 2 16쪽
211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22.11.15 62 2 18쪽
21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6 +2 22.11.14 56 4 18쪽
20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5 +1 22.11.13 63 3 13쪽
20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4 22.11.12 60 2 14쪽
20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3 22.11.11 75 3 16쪽
206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2 22.11.08 68 3 19쪽
205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1 22.11.07 63 2 19쪽
204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0 22.11.06 61 3 11쪽
203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9 +1 22.11.05 91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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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5 22.10.30 75 2 15쪽
19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4 22.10.29 77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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