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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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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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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9쪽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5

DUMMY

지하세계(地下世界).

언더월드(Underworld).

한때는 황천(黃泉)이라고도 불렸으며.

첫 번째로 주어진 이름은 명계(冥界), 쿠르누기아(Kurnugia).


한때 ‘명계의 여왕’과 ‘보이지 않는 자’가 다스렸던 이 주인 없는 땅에 ‘저주받은 불사자’들이 들어섰다, 인류의 번영과 그 시작을 함께했으며 무수히 많은 이름으로 불려온 이들이...


그들은 이 땅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피를 마시기에 흡혈귀, 태양을 피해 밤에 활동하기에 밤의 귀족, 혈교를 통해 무림에서 활동했을 때엔 혈강시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현대에는 뱀파이어란 명칭이 가장 익숙하다.


발칸반도에서 늑대들을 쫓고 그 자리를 차지한 이들.

하지만 오래된 이들은 알고 있다, 아무리 화려한 수식어로 그들을 치장해봤자 그들은 한낱 저주받은 자에 불과하단 사실을.


목숨으로도 다 갚지 못할 죄를 지어, 죽지 못하고 영원토록 대가를 치러야하는 이들이 바로 저들임을.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인간, 어떤 의미에서는 신들의 대척점에 선 존재였다.


─파앗!


명계의 고성에 이례적으로 초가 켜졌다.

밤눈이 밝기에 따로 불을 밝힐 필요가 없었으나 현대에 있어 이러한 촛불은 마치 중세시대의 향신료처럼 그 자체로 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데엥~! 데엥~! 데엥~!


소년과 소녀의 형상을 띈 복사들이 저마다 저들의 주인의 이름을 찬양하며 부르짖었다.

고저가 없는 목소리, 떨림이 없는 목소리, 온도조차 남지 않을 목소리로 비명을 형상화했다.


*복사(服司): 사제를 도와 의식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돕는 사람.


“첫째 저주, ‘피 흘리는 동생의 저주’. 모든 아들들 중 첫째 난 이. 동생을 죽이고 그 피를 손으로 받아낸 이. 불로불사이자 7배의 표식을 받은 이. 인류 최초의 살인자께서 여기 드시나이다.”


그 말과 함께 이 연회의 첫 번째 주인공이 등장했다.

그가 바로 양초를 태우는 불의 주인이며 새로운 시대의 태양신이자 이 저주받은 자들에게 내려진 저주 하나를 지워낸 위대한 자였다.


그리고 그는...


[소유: 숙명의 검 카인(Cain)(Rank:SS+)]


「‘붉은 피의 주인’의 힘이 담긴 검입니다.

모든 사명을 마친 그는 더 이상 이 세계에 남아있지 않으며 남은 것은 그 힘의 잔해뿐.


-소유자에게 일곱 곱절의 낙인을 새깁니다.」


현재 공석(空席)이 된 첫째 저주의 이름을 딴 검의 주인이기도 했다.


“이 경사스러운 자리에 과인의 초대를 받고 감히 빠지는 이는 없으리라 믿노라.”


그것은 정말 귀가 녹아내릴 듯이 아름다운 미성이었다.

찬란한 금발과 그에 대비되는 붉은 눈.


[상태창]


1. 이름(Name) : 헬리오스 세르반(Apollo)

2. 성별(Sex) : 남성

3. 종족(Species) : 신(올림포스)

4. 기원(Origin) : 태양(Sola)

5. 권능(Warrant) : 태양마차(Phaeton)(Rank:SSS), 의술의 신(Asklepios)(Rank:SS+)

6. 특성(Trait) : 피 주머니(Rank:A-), 2대 카인(Rank:S)

7. 소유 : 숙명의 검 카인(Rank:SS+)

8. 계약 : 작열하는 태양의 저주(종속-주)

9. 기술 : 마법(혈마법-피 흘리는 동생의 저주)(A+), 사냥(사막의 잠복자)(A), 검술(최초의 살인)(B+)... 등


그는 이 시대의 ‘태양신’이자-


「그는 인류 최초의 저주받은 자이자, 인류 최초의 살인자.

질투(嫉妬)와 살인(殺人)이라는 두 가지 원죄(原罪)를 범한 인간이자 모든 저주받은 자들의 왕.

저주받은 자들이 피를 갈망하게 되는 것은 그의 죄.」


그 가시나무로 엮어 만든 관을 물려받고 제위에 오른 ‘2대 카인’이기도 했다.

인류 최초의 농부였던 ‘카인(Cain)’은, ‘숙명의 검’은... 태양을 찬미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쿠웅!


그가 검을 내리찍음과 동시에 연회장 중심에 있는 분수에서 피가 샘솟기 시작했다.

존재 자체로 신화와 다름없는 검이 마침내 태양 앞에 굴복하는 모습에 어린아이의 형상을 한 복사들이 찬미와 찬양을 보내왔다.


“캬아악!”


몇몇 어린 혈족들이 피에 대한 갈망을 참지 못하고 본분을 잃고 분수를 향해 달려들자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자제심이 생긴 혈족이 그들을 제지시켰다.

이곳은 품위를 지켜야하는 자리였으니까.

설령 진조가 직접 피를 내어 혈족으로 받아들인 1세대라 하더라도 이곳에선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구원자시여!”

“우리의 왕! 우리의 구세주시여.”


그래, 그는 구원자였다.

비록 저주받진 않았지만 ‘작열하는 태양의 저주’를 지워낸 구원자.


그가 한 때 그들에게 피를 제공해주기 위해 자란 ‘피 주머니’였단 걸 기억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첫째 저주인 ‘피 흘리는 동생의 저주’로 언제나 갈증에 시달리게 된 그들의 식량으로 태어난 소년은 역으로 그들의 목줄을 쥐었다.


하지만 이 완벽한 복수극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그는 참 무료해보였다.

별 감흥 없는 얼굴로 제 몸을 검에 기댄 채 한 손으론 가시나무 관을 빙빙 돌리며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


“둘째 저주, ‘흐르는 강의 저주’. 죄를 짓고 심판의 날에 익사한 이. 방주에서 쫓겨났으나 저주를 받아 부활한 이. 대홍수를 겪었음에도 아직까지 생을 이어가는 익사자께서 여기 드시나이다.”


첫째 저주에 이은 둘째 저주.

호명과 함께 연회장으로 들어오는 남성은 바닷물에 빠진 시체를 보는 듯한 암울한 분위기를 흘렸다.

그의 뒤를 따르는 혈족들에게선 옅은 물비린내가 났다.


그의 저주는 ‘흐르는 강의 저주’

그로 인해 저주받은 자들은 흐르는 물을 건널 수 없다.


“어서 오게, 아크 공(公). 이리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니 영광이네.”


그 존재 앞에선 세르반조차 지루함을 벗어던지고 예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사라진 카인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된 진조.

더불어 끝을 알 수 없는 심연(深淵)과도 같은 강자.


“새로운... 저주가... 오는 날이다... 선배 된... 자로서... 기꺼이 환영해...주어야겠지...”


어찌나 오랜만에 입을 열었는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피로 그 목을 적신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그 목소리는 탁했다, 하지만 물에 잠긴 듯 깊은 울림이 있었다.


관리자가 대홍수를 일으켰을 때 죽었어야할 익사자가 그 모든 죄를 짊어지고 저주받은 자로서 이 자리에 올랐다.


이르기를 명계 쿠르누기아에서 가장 오래 산 망자.

이르기를 명계의 주민, 딥 원(Deep One)들의 유일한 간수이자 통솔자.

그는 ‘명계의 여왕’과 ‘보이지 않는 자’가 이곳을 다스리기 그 이전부터 이곳에 있었다.


“저기... 그대의 종이 들어오고 있군... 가까이 가서 연인을... 맞지 않아도... 되겠는가? 흠, 이미 듣고 있지 않군...”


그의 부드러운 권유가 끝나기도 전에 세르반은 이미 저만치 달려갔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귀가 듣기도 전에 그의 영혼이 제 연인의 향기를 맡았으니까.


“셋째 저주, ‘작열하는 태양의 저주’. 작열하는 태양에 타들어가는 이. 한 방울의 물을 바랐으나 한 떨기 불을 받은 이. 그 시체가 재가 되었음에도 먼지에서 돌아온 사형수께서 여기 드시나이다.”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린 니캅(Niqab)을 착용한 그녀는 천으로도 다 가릴 수 없는 기품이 있었다.

그녀 뒤를 따라오는 시녀들은 허리에 중동에서 기원된 곡도(曲刀)를 찾으며 그들에게선 진한 모래 냄새가 났다.

그래, ‘사막의 향기’다.


그 앞에 수줍게 꽃을 전하는 세르반.

건네지는 그 꽃은 그가 직접 자신의 피를 먹여 키운 붉게 물든 히야신스였다.


그 앞에서까지 얼굴을 가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듯, 그녀는 니캅을 벗었다.

붉은 머리칼이 흘러내린다.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제게 선물되어진 꽃을 작게 베어 물었다.

입술을 따라 핏물이 흐른다.

아까운 신혈(神血)을 한 방울도 버릴 수 없다는 듯 손가락으로 훑고 혀로 핥는다.


그 모습조차 기껍다는 듯, 바라보던 세르반은 이내 준비한 시구(詩句)를 읊었다.


“나는 항상 너를 입에 올리며 기억할 것이고 나의 애통한 마음을 담아 꽃으로 아로새길 것이로다.”


이 말은 아폴론이 자신이 총애하는 소년 히아킨토스가 마찬가지로 그를 사랑했던 서풍의 신 제피로스로 인해 원반에 맞아 죽게 되자 그 귓가에 마지막으로 속삭인 말이었다.


그가 전한 꽃은 다름 아닌 히아신스.

이 히아킨토스의 피에서 피어났다는 꽃이다.


“오, 사막의 장미, 과인의 주인, 과인의 신기루여.”


사막의 장미, 세 번째 진조이자 모든 뱀파이어들에게 태양을 볼 수 없는 ‘작열하는 태양의 저주’를 선물한 그녀가 바로 세르반의 연인, 그의 모든 것이었다.


아니, 그녀가 그를 그렇게 길들였다.

한낱 피 주머니에 불과한 소년을.

그 지고한 혈향(血香)에 취해 인내심 없는 이들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할 뻔한 소년을, 이 시대의 태양신을, 태양의 저주를 짊어진 그녀가 거두어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게끔 만들었다.


“예, 제가 여기 있나이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이 목줄을 쥔 사내에게, 자신이 목줄을 쥐어준 사내에게, 서로가 서로의 목줄을 쥐게 된 이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기었다.


홀로 나라 하나를 전복시키는 것이 가능한 존재가 벌써 셋이나 모였다.

인류의 굴곡점마다 태어난 죄악의 상징들.

그럼에도 아직 불릴 저주가 남아있다는 것은 실로 경탄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강한 이들이 아직 세를 펼치지 못한 이유는 오직 하나다.

고작 신화시대가 끝났다는 시시한 이유가 아닌 짊어진 죄가 너무 많아진 것.

그들은 저주의 시조(始祖)로서 저주가 강한만큼 강한 힘을 보유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저주가, 진조(眞祖)가 늘어날 때마다 제약이 커져 마음껏 날뛸 수 없었다.


지금의 그들을 있게 한 저주가 역으로 그들을 옥죄이는 족쇄가 되어 그들이 활개 치는 것을 막은 것이다.


그 사이 복사들은 빠르게 다음 저주를 호명했다.


“넷째 저주, ‘허락되지 못한 불로초의 저주’. 세상 모든 진귀한 것을 탐낸 왕. 황하 문명을 통일한 이. 삼황오제 이후 처음으로 황제를 자청한 이. 낙원의 과실을 탐했으나 그 양기에 빠져죽은 시황제께서 여기 드시나이다.”


다음으로 연회장에 발을 디딘 이는 거대한 풍채의 남성이었다.

그는 왕의 연회에 황제의 옷을 입고 왔다.


하지만 그 이름을 아는 자는 누구도 이 무례에 대해 지적하지 못하리라.

그 이름은 영정(嬴政), 그는 자신의 이름보다 진시황제(秦始皇帝)란 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이였으니까.


그들이 마늘을 비롯한 양기(陽氣)가 든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된 것은 그의 저주이며 그는 한때 마교 버금가는 성세를 누리던 혈교의 교주이기도 했다.


“껄껄껄! 정말 기쁜 날이로다. 오늘은 짐의 재보를 개방할 것인즉, 모두 먹고 마시며 즐기라. 새로운 저주가 탄생한 이 날을!”


지금에 이르러선 비록 예전의 성세를 찾아보기 힘들어도 모아둔 재보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이로 그는 ‘흐르는 강의 저주’에 이어 두 번째로 이 명계에 발을 디딘 진조였다.


자신의 황릉(皇陵)을 수없이 도굴당한 그는 끝내 신의 무덤을 도굴해낸 것이다.

다름 아닌 가장 부유했던 신의 안식처를!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은 하나같이 병마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와줘서 고맙네, 과인의 재상, 과인의 시황제여.”


그를 격하게 반기는 세르반.

이후 황제가 왕에게 예를 취하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황제의 지위를 내려놓은 그는 앞으로 있을 전쟁에 군자금을 댈 물주(物主)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도 스스로를 짐으로 칭하다니요... 불경합니다.”

“함부로 입을 열지 마라, 계집. 네년 때문에 짐의 대계가 수천 년은 늦어졌는즉, 이곳에서 짐이 예를 갖출 자는 저주를 지워낸 첫째 저주와 짐보다 먼저 명계에 적을 둔 둘째 저주밖에 없느니라.”


나이차가 많지 않은 형제가 자주 다투듯 셋째와 넷째가 앙숙인 것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몰랐다.


흐르는 물을 건널 수 없다, 태양 아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저주는 정복전쟁을 하기에 너무 방해가 되는 저주들이었다.

이것들만 없었다면 그는 진작 세계를 통일하고 모든 인간을 가축으로 삼았으리라.


“자자, 진정하시게. 상대의 저주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규칙을 잊었는가. 싸운다면 과인은 연인의 편을 들 수밖에 없음이야.”


그것은 이들에게 있어 가장 간단하고도 유일한 규칙이었다.

다음세대의 신이 죽지 않는 한 영원히 산다면 이들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으니까.


“에잉~ 쯧쯧쯧.”


이를 알고 있는 시황제는 더 이상 싸움을 걸지 않았다.

싸움이 시작되면 한쪽이 물러서기 전까지 절대 끝나지 않음을 알기에.


“이 늙은이는 결국 돈줄일 뿐인가 보오. 섭섭하이.”

“벌써... 서양인, 중동인... 동양인이... 한 자리에 모인 건가... 아직도 불릴 저주가... 더 남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


질렸다는 듯 말하는 ‘흐르는 강의 저주’였지만, 그가 이렇게 입을 열어 자신의 감정을 전하는 것도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가장 먼저 이 주인 잃은 땅에 발을 디딘 ‘흐르는 강의 저주’는 딥 원들의 통제 이외에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까.


딥 원, ‘흐르는 강의 저주’를 제외하곤 그 누구의 통제도 따르지 않는, 자신들이 신이라 생각하는 명계의 주민들은 지하 깊은 곳에서 아르케를 채굴할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얻어지는 양은 모래알보다 미미한 양이다만 이를 수천 년에 걸쳐 모으다보면 어느새 태산이 되는 법.

그는 명실상부 이 지구에서 가장 많은 아르케를 보유한 존재였다.


천무극과의 동맹은 살짝 틀어졌으나 이제 상관없다.

시간이 자신들의 편인 것은 신들만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어차피 다섯째 저주는 오지 않을 거 아닌가. 빠르게 나머지를 호명하지.”


여기 모인 누구도 다섯 번째 저주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다섯째 저주는 여러모로 특이한 이물(異物)이었으므로.


본래 순서로는 일곱 번째가 맞지만 순서를 역행하여 다섯 번째 위를 차지한 이.

하지만 그의 저주를 생각해본다면 고개를 주억일 수 있으리라.

그는 세상을 거꾸로 보는 자였으니까.


─스르륵.


그때 누군가 그림자를 타고 올라와 그들의 뒤를 점했다.

마치 동굴천장에 매달린 박쥐처럼 물구나무를 선 기묘한 모양새로.


“다섯째 저주 여기 왔습니다~”


그는 광대모양의 가면을 착용한 채로 여기서 유일하게 제 얼굴을 가린 이였다.

심지어 셋째 저주인 ‘작열하는 태양의 저주’마저 연회장에 들어서며 니캅을 풀었는데 그는 이 가면이 자신의 정체성이라도 되는 듯 결코 가면을 벗지 않았다.


혈족들은 낯선 이의 등장에, 진조들 앞에서 얼굴을 감히 얼굴을 가리는 무례에, 서둘러 무기를 꺼내 그를 겨눴으나 정작 그들의 주인 되는 진조들은 차분하게 그들을 진정시켰다.


“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그렇게 함부로 뒤를 잡으면 어떡하나! 하마터면 죽일 뻔하지 않았나!”

“죽여요? 당신이? 아하하핳핳!! 그것 참 재미있는 농담이네요. 사실 다들 누군가 자신을 죽여주어 이 지긋지긋한 불사를 끝내주길 바라는 것 아니었나요? 하아~ 정말 바라마지 않는 일이어요.”


어찌나 웃었는지 눈가에 눈물이 맺혀 흐른다.

눈물을 흐를 수 있다는 것부터 그가 얼마나 저주받은 자로서 그 격이 높은지를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제발 자기 좀 죽여보라는 듯 영정의 손을 잡고 제 목을 조이게 시켰다.


“경박하군요...”


그 모습에 사막의 장미가 입을 열어 그를 비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재주를 부리며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예예~ 다섯째 저주 타로가 여기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대는... 여전히... 가명을 쓰는 군.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진조가 되며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며 고개를 주억이던 아크는 설마 진조가 자기 입으로 자신을 소개하게 둘 생각이냐며, 눈빛으로 복사들을 닦달했다.


이에 복사들은 사색이 되며 서둘러 그를 호명했다.

이미 연회장 안에 들어와 스스로 자기 정체를 밝힌 뒤에야 호명이 나오는 것 역시 그답다면 참으로 그다웠다.


“다섯째 저주, 거꾸로 매달린 남자의 저주. 황금여명회의 주인. 세상을 떠도는 유랑자이자 세상을 거꾸로 보는 예술가께서 여기 드셨나이다.”


그의 저주로 인해 그들은 이제 미래를 볼 수 없었다.

예언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대격변에 대해 미리 알지 못했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이렇게 뒤쳐진 상황...


“그래서... 타로, 거꾸로 매달린 남자의 저주여... 그대가 여긴... 어쩐 일이지? 새로운... 저주가 태어났다고... 해도 그대가 이리... 몸소 왕림하는 것은... 드문 일이거늘.”


이곳에 온 이유를 묻는 아크의 말에는 어째 가시가 돋아 있었다.

저주받은 자들의 유일한 예언자인 그는 가장 중요한 예언의 때에 루마니아를 떠나 알바니아로 갔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서, 꼭 만나야 하는 인연이 있다면서 그들을 두고 떠났다.


이 명계, 쿠르누기아는 발칸 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크기가 있기에 방향과 위치만 기억한다면 이동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흐르는 강의 저주로 인해 대륙을 건널 수 없는 이들에겐 물 밑을 걸을 수 있는 이곳만이 유일한 이동방법이기도 했다.


“제가 이번에 재밌는 점을 봤거든요~ 아, 저번에 인간 세상에 전쟁을 일으킨 것과는 별개의 일입니다~~!”


그 원망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정말 우습다는 듯 한참을 키득대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모두가 미래를 알지 못하는데 저주의 주체인 오직 그만이 미래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아이러니함이었다.


“그렇게 얘기하니 정말 궁금하군. 어서 얘기해보게. 이 나이가 되니 말이야. 세상 일이 재미가 없어!”


하지만 모두가 그에게 날을 세우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 모든 쾌락을 누렸다는 솔로몬처럼 최초로 황제란 이름을 사용한 시황제는 자극에 목말라하며 다섯째 저주를 재촉했다.


“큭큭큭! 변화를 뜻하는 탑이, 하나여야만 하는 탑이 둘이 나왔거든요. 그래서 그 두 탑 중 하나를 만나러 가보니 어머나~ 우리 2천살 먹은 선배님이 건네준 저주에 그대로 직격타!”


그는 또 한동안 낄낄대며 웃었다.


“그게 재미있는 건가?”


그런 그를 보며 세르반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타로는 그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줄 만큼 친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분은 무척, 무~척! 특이해요, 무려 ‘탑’과 ‘별’이 함께 나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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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4 +1 22.11.27 58 4 16쪽
218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3 22.11.26 50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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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1 22.11.22 58 2 21쪽
215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5 22.11.21 79 2 16쪽
214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4 22.11.20 50 3 17쪽
213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3 22.11.19 52 2 18쪽
212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2 22.11.18 62 2 16쪽
211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22.11.15 62 2 18쪽
21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6 +2 22.11.14 55 4 18쪽
20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5 +1 22.11.13 62 3 13쪽
20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4 22.11.12 60 2 14쪽
20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3 22.11.11 75 3 16쪽
206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2 22.11.08 68 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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