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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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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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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1

DUMMY

긴 여행을 마치고 세계수로 복귀했지만 나를 맞아주는 이 같은 건 없었다.

경비병이라도 세워둘 법 하건만 드워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통로라 그런 걸까, 지키고 있는 사람조차 없더라.


“하긴, 내가 언제 돌아올 줄 알고 기다리겠어... 올라오기 전에 미리 통화라도 해둘 걸 그랬나? 그 깊은 지하에서도 리버스폰이 터질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세계수를 오르기 시작하자 저번에 간단히 안면을 익힌 시녀들이 몇 보여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안에는...


“뭔가 엄청난 꼴이 됐네, 시리우스. 설마 2주 동안 그러고 있었던 거야?”


여전히 세계수에 의해 꽁꽁 묶여있는 시리우스가 있었다.

얼굴을 제외하고는 드러난 부위가 전혀 없는 게 그가 사실은 나무의 정령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하암~ 2주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2주 동안 아주 꿀잠을 잔 모양인지 옆으로 길게 흐른 침 자국은 하루 이틀 방치해서 생긴 게 아니었다.


“끄응! 이제 슬슬 벗어날 때가 되긴 했네요.”


그는 자신을 묶은 세계수의 줄기를 부드럽게 달래며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마지못해 그를 풀어주는 세계수의 줄기는 마치 떠나가는 연인을 그리는 그런 애절함까지 품고 있었다.


“이 정도면 세계수도 아슬아슬하게 유년기를 넘길 수 있겠죠. 근데 뭔가 많이 챙겨오셨네요?”


몸이 영 찌뿌듯한지 힘껏 기지개와 스트레칭을 한 시리우스는 내가 끌고 온 수레에 뭐가 들어있는지 뒤적거리는 모습이 백수건달이 따로 없다.


“먹을 거는... 없군요.”

“설마 2주 동안 굶은 거야?”


주변에 마나가 충분하다는 전제하에 우린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일정기간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점차 존재감이 줄어간다.

벌써 2주 가까이 굶은 탓일까?

평상시 시리우스 주변을 떠도는 정체불명의 반짝이들도 유난히 기운 없어 보였다.


“이게 그건가요?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네요.”


아쉬운 마음에 먹지도 못할 보석들을 만지작대던 시리우스는 이내 수레 정 가운데에 곱게 놓아둔 태양의 반지와 달의 목걸이를 보고는 제 감상을 말했다.


“킁킁, 코르의 불꽃으로 마감했군요. 코르 냄새가 나요.”

“니가 개냐...”


권능의 잔향을 맡았는지 시리우스는 마치 개처럼 코를 가져다대고 킁킁댔다.

평소의 그라면 하지 않을 품위 없는 행동에 나는 그가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라며 대충 넘어갔다.


나도 정신없을 때는 내가 아직도 용인 줄 알고 음식에 수저나 손이 아닌 입을 먼저 가져다대고 당황한 적이 몇 번 있기에 이해해줄 수 있었다.

내 입은 당연하게도 용처럼 앞으로 툭 튀어나오지 않아 하마터면 코로 음식을 삼킬 뻔했다.


“이 정도면 제 시대에서도 이름 몇 줄 남길 정도는 되겠어요. 장자가 좋아하겠군요. 목걸이도 브리싱가멘만큼은 못 되도... 흐음, 아닌가? 꽤 재밌는 힘이 깃들어 있네요?”

“1회에 한정하여 운명을 바꿔준다곤 하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말이야.”


그래도 운명이라니까 뭔가 있어 보인다.


“때론 저주 중에 운명에 관여하는 저주가 있습니다. 마치 소유자에게 영광과 파멸을 함께 안겨주는 마검 같은 것이요. 관리자의 신탁처럼 강제성이 있어 굉장히 악질적이죠. 아마 그런 걸 막아주는 것 같네요.”

“멸망의 운명을 한 번 회피시켜주는 건가? 나쁘지 않네.”


내가 사용할 것을 고려하고 만든 건 아니었지만 시리우스의 강한 권유로 인해 나는 바로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디자인자체가 남녀공용이라 그런지 보기 이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옷과 매치가 잘 안 됐을 뿐.


“으으, 차가워...”


차가운 금속 부분이 살갗에 닿자 오랜만에 느끼는 온도변화에 몸이 경기를 일으킨다.


“달의 눈 때문인가?”


흔히 달은 차갑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건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달의 표면은 추울 때 영하 233도까지 내려가긴 하지만 뜨거울 때는 123도까지 올라가니까.


하지만 이런 믿음 탓일까, 달의 눈은 확실히 서늘한 한기를 품고 있었다.


“많이 불편하세요?”

“아냐, 이제 적응됐어.”


그래도 그 능력은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솔직히 별 기대 안했는데... 끝내주네.”


한평생 암산만을 사용하던 사람이 난생처음 손에 계산기란 걸 쥔다면 이럴까?


“이래서 마법사들이 지팡이를 쓰는구나.”


비록 달의 목걸이의 형태가 일반적인 지팡이와는 달랐지만 지배력이나 연산을 보조해주고 술법을 사용하는 매개로서의 역할도 해준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뭔가 좀 더 자유롭네, 마나를 다루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졌어.”


공기저항, 중력 등을 이유로 똑바로 날릴 수 없던 종이비행기가 중력, 관성 모든 걸 다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느낌이다.


“괜히 지팡이를 ‘보조 두뇌’라고 부르는 게 아니니까요.”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에 내가 연신 감탄하자 시리우스는 그런 나를 보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조금 무안해진 나는 그대로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코르, 벌써 자게요?”

“말 걸지 마. 열흘 동안 빡세게 작업한 다음 바로 축제에 참여하느라 밤까지 샜다고. 그 상태에서 수레를 끌고 몇 시간을 또 걸었어. 아무리 우리가 체력이 좋다지만 이정도면 지친단 말이야.”


처음엔 변명으로 한 말에 불과했지만 어느새 내 변명에 내가 설득 당해버렸는지 말을 하면 할수록 졸음이 쏟아진다.


“안녕히 주무세요, 코르.”

“그래. 난 잘 테니 넌 밥이나 먹으러 가...”


***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잠시 DMZ를 빠져나왔다.

마침내 모든 불을 회수하고 온도에 대한 감각이 되살아나니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드워프들이 이곳에 올 때마다 괜히 불평불만을 일삼던 게 아니었다.


“내, 내가 왜 불을 이리 서둘러 회수했는지 자괴감 들고 괴로워.”


나는 이 말을 하면서 슬쩍 시리우스의 눈치를 봤다.

비슷한 아픔을 견디고 있다 생각했는데 나 혼자만 빠져나온 것 같아 조금 미안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제 아이스크림을 아이스크림답게 맛볼 수 있잖아요.”

“이 날씨에 아이스크림은 무슨 얼어 죽을 아이스크림!”


그래서 좀 더 과하게 반응한 것 같다.

그래도 정말 살인적인 추위인 건 맞았다.


“조만간 익숙해지겠죠. 일단 겨울옷부터 장만할까요? 코르는 옷을 너무 얇게 입어요.”


뭔가 직접 옷을 사 입는 게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이다.


“원래 백화점에서 사계절 옷을 다 팔곤 했는데 이젠 겨울옷밖에 안 파는구나...”

“코르도 키가 조금 컸으니 기장이 더 긴 옷을 사는 게 좋겠어요.”


그렇게 옷을 둘러보는데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맞닥뜨렸다.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이번에 새롭게 체화된 특성 ‘니벨룽겐의 감각’은 내 심미안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옷의 하자를 하나하나 인식하게끔 만들었다.

박음질 따위가 미세하게 틀어져 균형이 맞지 않는 것도, 좌우의 대칭이 조금 다른 것도 하나하나 세세하게 눈에 들어와 마치 용골이 뒤틀린 배 위에 서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원래 주는 대로 입는 편이었는데...”


모르고 하는 것과 아는데 참는 것은 굉장히 다른 문제였다.

이것저것 많이 살 생각이었는데 결국 무난한 오리털 파카 하나만을 구입했다.


“두, 두꺼워! 팔을 앞으로 못 펴겠어. 낑겨...”


이 옷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오리 서른 마리는 희생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털이 과할 정도로 빵빵하다.


잘못하면 굴러다니는 게 아닐까 생각되어지는 내 모습에 시리우스는 비죽비죽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래도 이젠 춥진 않겠다.”


미처 가리지 못한 코끝이 시리긴 했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시리우스는 안 골라?”

“저는 조금 지쳐서요...”


아무래도 내가 그를 너무 오래 끌고 다닌 모양이다.


“미안...”

“그럼 잠깐 집에 들렀다 세계수로 돌아가죠.”


시리우스와 나는 당분간(장자의 결혼식이 있을 때까지) 세계수에서 지내기로 합의를 봤다.

렌에게 계속 신세지는 느낌이라 미안하긴 했지만 어차피 집에 있어봤자 할 게 얼마 없었으니까.


“집이... 코르와 나의 집이 점점 파프니르의 레어처럼 변해가고 있어!”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포르세티 2세가 열심히 일해주곤 있었지만 바닥을 기는 포르세티 2세가 책상 위와 같이 높은 곳까지 청소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정리하자. 나중에.”


집을 어지른 채로 그냥 나오는 게 불안한지 시리우스는 연신 손톱을 물어뜯었다.

자기 손톱 물어뜯는 거야 상관없지만 내 등 깃털을 잡아당기는 건 그만둬줬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고작 손으로 잡아당기는 정도로 용의 깃이 뽑히지는 않겠지만 아프다.

시리우스는 자신의 악력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렌의 일을 도울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우리 지금 남의 집에 얹혀서 완전 민폐로 지내고 있는 거 알아?”


풍백의 말버릇을 빌리자면 나는 염치없는 신이 아닌 것이다.

아무리 친구 집이라 한들 이렇게 오래 머무르는 건 아무리 눈치 없는 나라도 조금 눈치가 보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코르와의 친분 덕분에 그가 여러 양보를 받아내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말이죠.”

“응? 그런 게 도움이 되는 거야?”

“코르와 친분을 과시하면 할수록 그들은 이득이란 말입니다. 코르는 정말 정치가 꽝이네요.”


전에 유피에게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것 같다.


“너무하네!”


나는 불만에 볼을 부풀렸다.

그런 걸 일일이 고려하는 쪽이 이상하지 않은가.


‘헉! 내 주위에 이상한 사람밖에 없어!’


뒤늦은 깨달음에 나는 세상의 비밀을 엿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


“더워...”

“금방 또 추워질 겁니다.”


DMZ의 날씨는 정말 변화무쌍했다.

변덕스런 세상에 이젠 날씨마저 변덕을 부린다고 나는 한동안 툴툴댔다.


더 이상 더위를 못 참고 내가 바로 옷을 벗으려고 하자 시리우스는 내 옷을 꼼꼼히 여미며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너무 두꺼워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했다.

힘을 주면 옷이 터질까봐 스스로 옷을 벗지도 못하겠다.


“야, 좋은 말로 할 때 풀어라.”

“어~? 협박하는 건가요? 저 없이도 할 수 있으면 알아서 빠져나와보시던가요!”


시리우스는 내 지퍼를 목끝까지 올린 채 도망가 버렸고 결국 나는 모든 걸 포기한 채 뒤뚱뒤뚱 렌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쟤는 갑자기 왜 저러냐... 뭐 내가 잘못한 게 있나? 아니면... 그냥 장난치는 건가?”


어쩌면 자신은 아직도 내 도움 없이는 감각의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나 혼자 모든 감각을 온전하게 느끼게 되니 조금 심술이 난 걸지도 모른다.

같은 병실의 친구가 먼저 퇴원하는 것을 보며 미약한 배신감을 느끼는 그런 것처럼 말이다.


권능을 다시 사용하면 추위도 더위도 아무렇지 않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코르, 무슨 일인가요? 옷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한 건가요?”


자신을 찾아온 나를 보고 렌이 물었다.


“반쯤? 그나저나 내가 뭐 도와줄 일이 없을까?”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고 싶을 때 우선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필요한지 들어야한다고 나는 경험을 통해 알았다.


“제 일을요? 코르가요?”

“응!”


과연 그가 무슨 일을 맡길지 기대하며 나는 그의 답변을 기다렸다.


사냥일까? 어쩌면 채집일 수도 있다.

DMZ에서는 아직도 끊임없이 신종들이 발견되고 있으니 그 효능을 알고자 내게 부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렌의 표정은 마치 엑셀조차 다룰 줄 모르는 신입사원에게 무슨 일을 맡겨야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커피 심부름이나 시키는 직장상사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애들 좀 볼 줄 아시나요?”

“이 눈을 보고서 그런 걸 묻는 거야?”


누군가 내게 아이들과 친한가를 묻는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답하겠다.

친하지 않다.


겁은 많은데 호기심까지 많아서 기어이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울음을 터트리는 시끄럽기 짝이 없는 존재들.


내 대답에 렌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 분명 행동양식이 애랑 다를 게 없는데...’


“설마 작게 중얼거린다고 내가 못 들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흠흠! 코르도 이제 어느 정도 조절하실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정말 천사 같은 아이들이라 코르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렌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까 조금 혹했다.

아이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청명과 데미안은 분명 귀여웠으니까.


“어떤 애들인데?”

“제 아이들입니다.”

“그렇구나. 렌의... 에엑?!!”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나는 비명을 질렀고 렌은 서둘러 귀를 막았다.

토끼처럼 긴 귀가 장식이 아닌지 청각이 보통보다 예민한 모양이다.


“렌, 너 결혼했었어? 청첩장은? 설마 속도위반한 거야? 애 엄마는 어디 갔어? 설마 죽었어?!”

“진정하세요, 무슨 상상을 하셨기에 이야기가 거기까지 진행된 겁니까... 제가 제 아이들이라고 약간 오해할 수 있게 말하긴 했지만 정확히는 ‘왕의 아이들’입니다. 아인종의 아이들 중 부모를 잃거나 버려진 애들을 저희가 데려와 왕의 아이라 이름 붙여 자립할 때까지 돌보는 것이죠.”


자신의 백성들을 책임지고자 하는 렌을 보니 갑자기 그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렌이 갑자기 진짜 왕처럼 보여...”

“진짜 왕 맞습니다... 뭐, 취지는 그러하지만 대부분 수인족의 아이들이죠.”

“왜?”

“저희 엘프들은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버림받는 경우가 드물고, 버림받는다고 해도 금방 입양이 되거든요.”


흔히들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입양제도는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결과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도 있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선뜻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아이는 물론 그 부모까지도.


“그럼 드워프는?”

“일단 그 수가 무척 적죠. 개화의 시기에 돌입해 번데기처럼 쭈글쭈글해질 경우, 학대당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버리진 않아요.”

“역시 그래도 가족이라서-”

“대신 비싼 값에 팔아버리죠. 그들은 손재주를 타고난 장인 종족이니까요.”


현대의 사람들에게 대격변 이전만큼의 도덕을 바라서는 안 됐다.

피의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그들은 인간 본성의 밑바닥 끝을 보았으며 살아남고자 자신도 똑같아지길 택했다.


더군다나 영원한 겨울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지기까지 했으니...


그들 스스로도 자신이 원래 이런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최악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난은, 굶주림은, 갈증은 그토록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들은 신을, 우리들을 원망할까?


‘내가 그들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겠지.’


나를 섬기는 신자도 아닌데 굳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으리라.


어쩌면 신은... 힘들 때, 필요할 때만 자신들을 찾는 인간에게 질려버린 걸지도 몰랐다.


“근데 수인족은 왜 아이들을 버리는 거야? 걔들은 동족의식이 투철하지 않아?”

“수인은 인간에 짐승이 섞인 겁니다. 그들을 짐승으로 보는 건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인간으로 보는 것에도 문제가 있죠. 때문에 혹자는 수인을 빗대어 ‘인간으로 살지만 짐승과 같은 이유로 죽는 이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변덕스런 날씨는 다시 기온을 내리기 시작해 내 마음도 조금 쌀쌀해진 기분이 들었다.


“약육강식, 약한 새끼가 버려지는 건 짐승들 사이에선 꽤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랍니다? 물론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도 인간에게 섞여 살다가 끔찍한 일을 당하여 무리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세간의 인식이 너무 안 좋아 기를 여건이 되지 않아서 저희 쪽에 맡기는 경우도 있죠.”


뭔가 갑자기 아이들을 만나기가 무서워졌다.


“내가... 의도치 않게 상처주거나 하면 어쩌지?”

“괜찮을 겁니다. 코르는 제가 만난 이들 중 가장 편견이 없으니까.”


시리우스는 이러한 시스템을 제우스의 신전에서 따왔다고 이야기했는데 과거 제우스 신전은 분명 고아원의 역할 또한 겸비했다.

아비 없는 자식들이 제우스의 신전으로 모여들어 스스로를 제우스의 아이라 칭하며 어미와 자식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때문에 어떤 학자는 이 때문에 신화 속 제우스를 일부러 문란하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천신 제우스의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점이기도 하죠.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헤스티아를 제외하곤 하나같이 비호감입니다. 인간은 자신과 닮은 이들을 좋아한다던데, 그들은 너무 인간을 닮아 꺼려지죠.”

“너 그 말, 혹시 내 친구들을 만난다면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니, 지금이라도 되도록 자제해.”


나를 포함한 미나, 유피 이 세 신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전생을 흑역사 취급을 한다는 것.


제우스, 프레이야, 로키... 어떻게 하나같이 전생의 문제아들만 모아놨는지 흑역사가 쌓이다 못해 흑역사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게 바로 우리의 전생이다.


“아, 그러고 보니 코르도 신이었죠.”

“렌도 이제 아무렇지 않게 막말을 하는구나...”


렌은 내가 정말 편해졌는지 숨 쉬듯 무례한 말을 내뱉었다.


“그럼 도와주시는 거죠?”

“그래.”


결국 나는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고 렌은 나를 도와줄 사람이자 내가 도와야할 사람이라며 어떤 사람을 불렀다.


“어머~ 안 그래도 손이 모자랐는데 잘 됐네요.”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그 사람은 ‘유치원 선생님은 이렇게 생겼다.’를 말할 때 ‘이렇게’의 역할을 맡을 것 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우리 애는 커서 유치원 선생님이 될 거에요.’ 같은 소리를 듣고 자라지 않았을까?


“몰리 핑크라고 합니다. 별명은 핑크 뮬리에요.”


핑크 뮬리, 벼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분홍색 보푸라기를 뭉쳐둔 것처럼 생겼는데 조경용으로 자주 식재되곤 한다.

다만, 따뜻한 지방의 평야에서 자라기에 영원한 겨울이 시작된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된 식물이다.


“머리색이 핑크색은 아니네요?”

“대신 다른 곳이 핑크죠.”


아, 안 돼! 사라져라. 음란마귀!


몰리라는 이름의 뜻은 아일랜드계로 ‘별의 바다’라고 알고 있다.

어느 유명한 작품 덕에 과보호하단 뜻의 ‘mollycoddle’이 연상되긴 하지만 말이다.


“참고로 남자랍니다!”


그리고 ‘mollycoddle’에는 나약한 남자, 여자 같은 남자와 같은 뜻도 있다.


아들이 진정했다! 아니, 진정 당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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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2 22.11.25 54 3 14쪽
216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1 22.11.22 58 2 21쪽
215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5 22.11.21 79 2 16쪽
214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4 22.11.20 50 3 17쪽
213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3 22.11.19 52 2 18쪽
212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2 22.11.18 62 2 16쪽
211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22.11.15 62 2 18쪽
21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6 +2 22.11.14 55 4 18쪽
20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5 +1 22.11.13 62 3 13쪽
20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4 22.11.12 60 2 14쪽
20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3 22.11.11 75 3 16쪽
206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2 22.11.08 68 3 19쪽
»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1 22.11.07 63 2 19쪽
204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0 22.11.06 61 3 11쪽
203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9 +1 22.11.05 91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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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4 22.10.29 76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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