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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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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9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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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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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8. 무림으로 36

DUMMY

대련장에 설치된 진법이 망가지고 신위를 완전히 회복한 신들을 보고서 무림인들은 그야말로 꼬리를 만 개가 되었다.

패배자이자 도망자가 되어 재빨리 달아가는 그들을 우리는 굳이 쫓지 않았다.


그들이 괘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 일에는 직접 손을 쓰는 것보다는 그들의 수장인 천무극을 만나 담판을 짓는 것이 더욱 이로웠다.

그리고 그가 내릴 벌은 자신들이 내리는 벌보다 결코 가볍지 않을 거였다.


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몰랐다.

예상보다 이르게 그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심지어 그가 직접 찾아오게 되리라고는 미처......


“노사... 이 어찌된 일이오?”


간단한 응급처치를 마치고 구름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를 맞이한 것은 땅에 처박혀 간헐적으로 몸을 떠는 데미안과 제 머리보다 더 큰 손에 목이 잡힌 채, 숨이 막힌 지 가녀리게 켁켁 숨을 내뱉는 청명이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청명이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만들었을... 우리의 대련의 결과를 축하하기 위한, 그리고 이별의 슬픔을 다스리기 위한 그러한 음식들과 데미안이 재회를 기원하며 담갔을 맛좋은 술들이 흩뿌려져있었다.


***


태초의 기억은 어두운 동굴 안이었다.

무심공(無心功)을 익히게 하기 위해 데려온 마(魔)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


하지만 이 동굴에 들어온 이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인간 고독이라는 염매(厭魅), 그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태자귀(太子鬼)를 만들고자 고안된 봉마동(封魔洞).

그 타고난 위험성으로 광마전주에 의해 폐쇄되어 폐쇄동(閉鎖洞)이 되어버린 그 동굴에 한 아이가 태어나있었다는 것을.


봉마동(封魔洞)에 봉인된 진짜 마(魔)가 존재했음을.


‘그것’은 무심공을 가르치는 교관들의 아이일 수도 있고 수련생들의 불장난에 의해 만들어지고 종국에는 버려진 그런 아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하염없는 시간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이는 몇 되지 않았기에 잊혀져버린 아이를 기억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아이에 대해 아는 이는 이미 모두 죽거나 정신이 나가버렸을 테니까.


“너희는 이제부터 자랑스러운 천마신교의 교인으로서 무심공을 익히게 될 것이다.”


무인(武人)이 아닌 교인(敎人).

아무리 세월이 흘러 그 색깔이 변했다지만 천마신교는 여전히 종교집단이었다.


“너희들 중에는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이곳에 온 이도, 가문의 압박에 의해 이곳에 발을 디딘 이도, 재능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이도 있을 거다. 하지만 여기에 온 이상! 너희에겐 이것을 배워 익힌다는 선택지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살고 싶다면 배워라. 제정신인 채로 미쳐가든 감정을 지워 살아나가든 오직 이것만이 너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다.”


처음 보는 인간들에 당황할 새도 없이 아이는 이들을 따라 교관의 말을 들었다.


“넌 뭐냐! 빨리 가서 서지 못해!”


언어를 모름에도 그저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만으로 위화감 없이 섞여들 수 있는 재능이 아이에게는 있었다.


그렇게 무심공을 배웠다.

처음으로 지네나 이끼 따위가 아닌 씁쓸할 뿐인 벽곡단일 뿐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먹는 것들을 먹고, 타고난 재능으로 언어를 배우고, 낯선 이들의 행동을 흉내 내며 짐승이어야 할 아이는 그렇게 인간이 되어갔다.


이름조차 없는 아이.

아무리 무심공이라고 한들 인간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감정은 남겨두지만 폐쇄동에서 행해지는 대법은 감정을 완전히 폐한다.


염매를 만드는 건 무림법상 금지되었지만 폐쇄동이 되기 전, 봉마동이라 불리기 훨씬 이전 귀신굴이라고 불렸던 이곳에서의 수련은 그나마 남아있던 인간의 잔재마저 싸그리 지워내는 것이 가능했다.


빛이 없는 곳에서 보는 즐거움을 폐하고 동굴 내에서 수업이 벽면을 튕겨가며 울려대는 메아리에 자신의 목소리가 무엇인지조차 잃는다.


끼니마다 주어지는 물과 벽곡단은 미각이라는 것조차 상실시키고 느끼는 것은 오직 땀, 피, 오물 냄새, 그리고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한기와 고통.


그들은 그렇게 말 잘 듣는 인형이 되어간다.

이름조차 없는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한 아이가, 그 누구에게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아이가 그렇게 스러져갈 때쯤 동굴이 무너져 내렸다.


보이는 것은 햇살?

아니, 항상 손에 배어있던 끈적이는 액체의 색.


붉음(赤).


다음으로 보이는 건 소녀? 여인?

피로 물든 소녀의 손은 살인이 숙업인 듯 했다.


그녀는 아이를 발견했고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으스러질 듯 강하게 껴안아줬다.


‘따뜻하다. 하지만 끈적거리지 않다. 포근해?’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


“이 아이는... 제가 거두죠. 당신은 이제부터 세상을 어지럽히는 마선(魔仙),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남화노선(南華老仙)이자, 무림에서 광마전주(狂魔殿主)의 지위를 맡고 있는 저 장자의 둘째 제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드리어요, 제자님.”


그렇게 그녀는... 오직 그녀만이 내 세상의 모든 색이 되었다.


지옥과도 같던 동굴은 영원히 폐쇄되어 이젠 완전히 무너져 들어갈 수조차 없게 됐으며 무아(無我)라는 마치 법명(法名)과도 같은 이름을 받고, 형제(兄弟)와도 같은 친우(親友)를 얻고, 무공을 배우고, 세상을 배우고, 여태 그 무엇도 받지 못한 삶에 대해 보상받듯 받고 또 받아왔다.

모두 그녀에게서...!


다만 무심공의 폐해로 인해 아직 감정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승님께서는 제게 수많은 감정을 가르쳐주려하셨지만 불초제자, 욕망 이외의 감정은 이해하지 못했나이다.”

“후훗. 무아는 영특한 아이여요. 그럼 그 욕망으로부터 시작해 감정을 하나하나 이해해나가죠. 본디 모든 감정은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욕망은 타인과 나 사이에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니,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여요.”

“스승님께서는... 제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그녀는 그저 웃어보였다.

많은 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거면 되었다.


“무아는 순수하여요. 세상을 모르죠. 감정을 모르는 것이 아닌 복합적인 감정을 다 처리하지 못하는 거여요. 한 번에 하나의 감정을 느끼기에 그만큼 더 순수하겠지만, 그만큼 더 맹목적일 수밖에 없겠죠. 부디 항상 그런 자신을 조심하시어요.”


이상했다.

사람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배웠는데, 소유가 불가능한 존재라 배웠는데 어찌하여 욕망하게 되는가.


‘따듯하다... 아니, 뜨겁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은 행복이, 영원하길 바랐던 행복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형(師兄)이자, 둘도 없는 친구, 하나뿐인 형제였던 치우의 폭주.

무림에서 괴력난신(怪力亂神)으로 불리며 장자의 뒤를 이어 광마의 이름을 계승한 그의 갑작스런 폭주가 방아쇠가 되어 행복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미쳐 날뛰던 그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한 일들을 되돌아보더니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죽여 달라 애원했다.


“넌... 대체 뭘 원했던 거냐!!”

“미안하다......”


나는 그의 목을 벴다.

베어야만 했다.


형제와도 같은 이이지만 그럼에도 내 행복을 박살낸 그가 미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

지옥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쿠웅!


바쳤다.

눈물을 머금고 베어낸 친우의 목을 저 무림을 지배하는 아홉 비겁자들에게 바쳐 목숨과 용서를 구걸했다.

광마전의 존속을 빌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스승님!!”


당신께서는 마치 짐승처럼 끌려오셨습니다.

제 첫째 제자가 만들었을 강철로 된 갈퀴들을 그 여린 살갗에 박은 채 끌려와 둘째 제자와 이제는 목만 남은 첫째 제자 앞에서 그렇게 무릎 꿇으셨습니다.


난 결코 그 날을 잊지 못할 겁니다.

우리를 내려다보던 아홉 비겁자, 구왕을...!


“클클클! 그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이제부터 넌 본좌의 제자이니라.”

“천왕!! 지금 그게 무슨! 스스로 낙인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가?”

“마음에 들었다. 안 그래도 마음에 들던 제자가 사라져 마음 쓰이던 참이었으니.”


구왕 중에서 천왕이라 불리는 이는 저의 매끈한 턱을 쓰다듬으며 그리 말했지요.


광마의 폭주에서도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전장에서 벗어나 숨어있던 구왕.

무림의 진짜 주인인 그들은 도망자라는 낙인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또 다른 제자인 나를 보내 광마를 사살했다 말을 퍼트렸지요...!


나의... 아니, 우리의 스승이신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없었지요.


“스승님! 어째서 스승님이 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한단 말입니까!”

“미안하여요.”

“제가 바라는 건 사과가 아니라 제대로 된 답입니다!”


하나뿐인 친구도 하나뿐인 스승마저도 어떠한 변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게 미안하다 사과할 뿐이었습니다.


“......미안하여요.”


때로는 황금과도 같다는 침묵이, 진심이 담긴 사죄가, 그 어떤 추한 변명보다도 역겹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저는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와라. 광마의 목을 벤 너는 이제부터 본좌의 제자다. 네 녀석의 스승은 더 이상 저 여자가 아니야.”


치우가 폭주한 책임은 나와 치우를 가르친 스승님께서 오롯이 감내해야만했습니다.


“스승님!!”


구왕보다는 아니더라도 그들만큼 오래 무림에서 적을 두신 스승님을 한 번에 쳐내기엔 아무리 구왕이라 해도 부담이 큰지, 벌을 처형이 아닌 추방으로 바꾸고 당신께서 저지른 죄, 저지르지 않은 죄, 모든 오명을 뒤집어씌워 그렇게 쓸쓸하게 퇴장시켰습니다.


“네 녀석 고아라지? 네게 본좌의 성을 주마. 천 씨다. 천무극이 앞으로 네 이름이다. 초대 천마로부터 이어져온 마치 성화와도 같은 성이니 영광으로 생각하도록.”


스승은 역적이 되었고, 친구를 죽인 나는 영웅이 되어 무림의 최강자, 구왕의 일인인 천왕 천시혁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어째서 그것이 스승님의 책임이란 말입니까!”


─퍼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벼루가 날아와 머리를 부쉈다.


“더 이상 그 여자는 네 스승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후두둑.


나약했던 저는 바닥에 엎어져 피와 눈물을 흘릴 뿐이었습니다.


“쯧. 감정을 지운 것이 맞긴 한 건지... 실패작인가?”


고독도, 염매도, 태자귀도, 무아도 되지 못한 저는 대체 무엇일까요...


“그래도 너는 이제 본좌의 제자이니라.”


맞은 뺨이 부어올랐지만, 눈물이 흐르는 까닭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 잘못이잖아요. 치우가 폭주한 건 제 잘못이잖아요. 내가 그와 같은 위치에 서지 못해서! 언제나 붙어있으면서도 그의 고독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나의 책임이잖아요!!”

“버러지 같은 것. 너는 그저 이 행운에 감사하면 될 뿐이다.”

“제가 버러지라면 당신들은 도망자입니다. 치우를 가르친 건 제 스승님만은 아니었으니까! 당신들은 비겁자입니다!”


무림이 찾은 그 첫 번째 다음세대는 온 무림의 관심을 한 몸에 사로잡은 채 구왕 전체의 진전제자였었다.


“좋을 대로 떠들어라.”


그렇게 저는 영웅의 탈을 써야만 했습니다.

구왕이 광마와의 싸움을 피해 도망갔음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나의 소교주로서의 취임식이다.

동경(銅鏡)을 봤다.


*동경: 구리로 만든 거울


오직 황제만이 두를 수 있다는 곤룡포를 두른 내 모습이 보였다.

친구가 특별하다 칭찬해주었던 중명안이 보인다.


“소교주님, 지금 대체 무얼 하시는 겁니까!”

“어?”


눈이 따갑다.

손에는 항상 내 손을 끈적이게 물들인 그 붉음이 가득 차올랐다.

손톱 끝에는 피뿐만 아니라 점액과도 같은 무언가의 수정체가 묻어있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미련한 것. 그 스승에 그 제자로구나.”


취임식은 그렇게 나의 눈이 나을 때까지 미뤄졌다.


“전, 전 그저...”


친우의 고독함조차 보지 못하는 이런 쓸모없는 눈이 미웠을 뿐이다.


“쯧, 흥이 식었다.”


천시혁은 나를 더 꾸짖지 않았다.

그저 성가시다는 듯이 혀를 찰 뿐이었다.


눈의 치료가 끝난 건 한달 뒤, 그가 내 머리 위에 면류관을 씌워주는 것으로 의식이 끝났다.

어차피 단순한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핏줄을 타고난 것이 아닌 나는 온전한 천마신공을 익힐 수 없고 당연하게도 이를 익히지 못한 이가 천마라고 불릴 일은 없었다.


나는 내 머리 위에 면류관을 얹는 그를 봤다.

무릎을 꿇었기에 올려다봐야만했다.


구왕(九王).

무림의 절대자.

저 하늘을 뛰노는 신선과 다를 바 없는 이들.

선도(仙桃)를 독차지해 영생을 사는 이들.


꿈이 생겼다.

어떻게든 올라가야겠다.

그들보다 올라가서 죽은 친우와 스승의 명예를 회복해야겠다.


-맹세인가?


아니, 그보단 사명이란 말이 더 어울리리라.

그것이, 오직 그것만이 내게 남은 모든 것이었다.


노사께 하여금 우리의 스승이란 것이 낙인이 아닌 성흔이 되어 빛날 순간이 오게 하겠다고!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감내하겠다고!


이후, 나는 나를 억눌렀다.

무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바라는 대로 완벽한 소교주로서의 나를 연기했다.

그렇게 광마가 무서워 도망간 겁쟁이를 스승으로 모셨다.


‘이번만 버티면 된다.’


스승을 무림을 배신한 창녀라 칭한 이들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이번만 참으면 된다.’


광마를 무림 제일의 재앙이자 마귀라 부르는 이들에게 동조했다.


─꿈틀!!


마음속에서 마(魔)가 자라기 시작했다,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의 나는 속으로 도움을 바라지 않았을까?

위로를 바라지 않았을까...?


내질러지지 못한 비명은 다만 마음속에 쌓여만 간다.

그렇게 마가 커질수록 나는 강해져갔고 이에 천왕은 기뻐했다.


대외적으로 유일한 후계자는 바로 나였으니까.

장기말이 강해졌을 때 싫어하는 이는 없는 법이니까.


나는 그를 죽일 기회를 엿봤다.

천마는 오직 하나뿐. 은퇴 따위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그를 죽이고, 그의 혈육을 죽이고, 빼앗고, 빼앗고, 또 빼앗아서 마를 취하고, 피를 마시고 천마(天魔)의 위(位)에 오른다.


그렇게... 악신(惡神)의 이름을 잇는다.


신교가 믿는 두 번째 신의 자리를.

천마신교가 배화교(拜火敎)를 받아들이며 생긴 두 번째 신을.


이르기를 적대하는 영혼, 대립하는 영이라. 그 이름은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태양의 신 미트라(Mithra)와 같이 태양의 신격을 가진 염제신농씨와의 성전(聖戰)에서 패하여 받아들여진 악신.


그는 다른 이름으로 이렇게도 불린다.


이르기를 죽이는 자, 이 이상 없을 사악이라. 그 이름은 마라 파피야스(मार पापीयस्).

염제신농씨가 미트라, 부처 마이트레야의 이름을 빌려왔듯 부처에게 패배한 이 마왕의 전승에 따라 천자마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렇게 천자마(天子魔)는 천마(天魔)가 됐다.

그리고 이것이 천마신공의 비밀이기도 했다.

천마신공은 태양의 힘을 다루는 천신공과 마왕의 힘을 다루는 마신공으로 나뉘며 태양의 힘으로 이 마(魔)를 억제해야만 했다.


오직 염제신농씨의 피를 이은 이만이 익힐 수 있다는 천신공으로...


선도로 담근 술을 마시며 황제는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에 불과한데 자신은 하늘의 왕인 천왕(天王)이라며 낄낄대는 그를 죽였다.


“이제 ‘내’가... 아니, ‘본좌’가 천마다.”


천왕을 죽이고 천 씨들의 그 피를 취해 불완전하게나마 만들어낸 천마지체로 천신공을 익히는 것에 성공했다.

불완전하지만 신교의 교주이자 천마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렇게 내 계획의 첫 단추와 두 번째 단추가 한 번에 꿰였다.


하지만 천마가 되는 것에 성공했더라도 나는 나를 계속 억눌러야만 했다.

다음으로 얻어야 하는 것은 맹주라는 감투였기에...


맹주는 단순히 강해서만은 안 됐다.

힘이 아닌 선출로 되는 것이기에 각 문파와 세가의 문주와 가주들에게 가장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이가 바로 맹주가 됐다.


어떻게든 비위를 맞췄다.

쓸개 없는 놈이 되어 한 손으로 짓눌러버릴 수 있는 이들의 개가 되어 짖었다.


나를 억누르고 억압할수록 마음속의 마(魔)는 그만큼 불어나고 단단해졌고 이내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발톱이, 이빨이 완성됐다.

이제 전성기의 천시혁과 정면에서 맞붙어도 결코 밀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기조식을 하던 중에 심마(心魔)가 찾아왔다.


“하하, 결국 이렇게 됐나...”


주화입마를 일으키는 모든 무림인의 공포의 대상.

하지만 여기에 내가 느낀 것은 두려움이 아니다.


‘어째서’가 아닌 ‘이제야’ 정도의 차이...


심마는 내 어릴 적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스승을 모욕하는 이들을 내버려두는 거야?


아이는 끝도 없이 투정을 부렸다.


‘이게 내가 바라는 것인가.’


한심했다.


-어째서 친구에게 침을 뱉는 이들을 벌하지 않는 거야?


‘이게 나의 미련인가.’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다.


-너는 천마잖아! 이 무림의 절대자잖아...


‘이것이 나의... 마(魔)인가.’


심마에 대한 나의 답은 간단했다.


“본좌가 천마이기 때문이다.”


‘천마이면서’가 아니다, ‘천마이기 때문에’다.


천마는 가장 강한 마인.

힘이란 가장 바라는 바를 이루어주는 도구.

내가 바라는 것은 친우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스승님을 다시 무림으로 모셔오는 것.


하지만 천마라는 자리 하나로는 부족했다.

이 자리는 바라는 바를 모두 이루게 해주는 구실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

모든 실권은 구왕이 다 가져간 채 의무밖에 남지 않은 자리.


스승님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은 현 무림의 절대자인 구왕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직... 아직 부족해.’


-결국 안 되는 거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 얼마나 더 억눌러야 해?


내 대답을 들은 내 마음 속의 작은 마가 울었다.


-네가 미워. 네가 역겨워.


그 말과 함께 심마는 떠나갔다. 아니, 하나가 됐다.

내 안의 마는 이제 너무 거대해져 마치 요동치는 것을 멈추고 잠잠해진 것처럼 보였다.


-‘내’가... 싫어.


그리고 내가 가장 증오하는 존재가 나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과거 친구가 발을 디딘 경지에 나 또한 발을 디뎠음을 깨달았다.


「생사지경(生死地境)」


초대 천마나 소림의 개파 시조인 달마대사, 무당의 장삼봉, 화산의 화룡진인과 같은 경지.

현 구왕 중에서 이 위치에 오른 자는 채 절반도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중명안을 가진 나에게 이것은 단순한 경지를 뜻하지 않았다.

나를 억누르듯 만물을 억누를 수 있는 힘.

나는 그렇게 홀로 구왕 중 절반을 쓸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이제 됐어? 이제 만족해? 그럼...


“대계(大計)를 시작해야겠지.”


내게 반하는 이들을 모두 참(斬)하고 내게 우호적인 이들만을 남겼다.

그들은 감히 내게 어떠한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무림맹의 맹주가 되었다.


드디어 모든 단추가 끼워진 것이다.

스승과 친우의 명예를 되찾고.

너무 오래 기다리신 스승님을 모시고.


하지만...


대격변의 시작을 알리는 별이 떨어졌다.

생사지경의 고수가 코피를 쏟을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이 찾아왔다.


내 사인(死因)이 생사결(生死決)이나 노환(老患) 따위가 아닌 과로(過勞)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성화(聖火)가 꺼지고, 천마의 자리가 위협받고, 리버스와 협상해 무림을 존속시키고, 어떻게든 덩치를 불리고, 불리고, 또 불려서 스승님이 돌아올 자리를 만들었다.


이따금 소식을 전해 듣던 스승님과의 연락도 이내 완전히 끊겨버려 멀리서나마 가끔씩 바라볼 수 있던 그 작은 발걸음조차 끊어졌다.


사실 다 변명이다.

만나고자 하면 만날 수 있다.

그저 그분을 만날 면목이 없었을 뿐이다.

일에 빠져있을 때에는 터무니없이 불어난 마(魔)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걸로 전부 끝이었다.


“이로써 본좌의 무림은 외세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되찾는다.”


루마니아의 태양신과의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태양신 만든 혈강시로만 이루어진 조직, 「데이워커(Day walker)」는 그 이름처럼 「작열하는 태양의 저주」를 벗어던진 채 낮에 거니는 것이 가능했다.


그들은 이제 무림의 동맹세력이 되었고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무림을, 무림의 전성기를 도래하게 한 천무극은 무림 역사상 누구도 오르지 못한 전무후무한 영광을 얻을 것이다.


한 사람의 오명을 씻어 그 곁에 두는 일 정도는 너무나 간단해질 정도로.


“이제 스승님을 모셔와야겠지. 너무 오래 걸렸어.”


그때 이후로 백 하고도 수십 년.


멀리서 그저 바라만 봐야했던 스승님의 거처로 그는 드디어 어깨를 펴고 걸어갈 수 있었다.


“오늘이 친선대련이 있던 날이었나?”


동맹의 건으로 인해 모든 것을 부맹주에게 위임했지만 어떻게든 될 거다.


“곧 돌아오시겠지.”


천무극은 걸음을 서둘렀다.


먼저 가서 집안일이라도 해드려야겠다 생각하며.

예전부터 이런 일은 영 서투른 분이었기에.

이런 잡일은 어려서부터 막내 제자인 그의 몫이었음으로.


“만일 모시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무심한 제자를 그냥 보내진 않으시리라.

솔직히 맛없는 밥이지만 그것이라도 대접해주시리라.

함께 식사라도 할 수 있다면 그 기억을 가지고 이후 100년은 다시 너끈히 버틸 수 있으리라.


‘리버스에서 온 다음세대의 신들이 스승님에게 무례를 범하진 않았을까 심히 걱정되는 군. 유피터 사무엘... 분명 과거의 벗을 떠올리게 하는 이였지.’


무림에 필요한 이는 불의 신인 이코르였지만 그보다 그에게 더 시선이 갔다.


‘하지만 그는 그처럼 되는 일 없이... 동등한 존재와 만나. 동등한 관계를 쌓으며...’


경쟁조직의 인물이지만 무심코 그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치우와는 다른 결말을 맞이하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간 스승의 집에는... 리버스에서 사절로 온 이들과는 또 다른 신이 있었다.


그것도 무려 둘이나.

그리고 그중에는... 무림이 그토록 간절히 찾고 바라던 ‘불의 신’이 있었다.


─빠드득!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작가의말

드디어 천무극의 과거가 밝혀졌군요.

과거 이야기로 오래 끄는 건 싫어서 최대한 스피디하게 적고 2편 분량을 그냥 1편에 욱여 넣었습니다.

부디 재밌게 읽혔으면 좋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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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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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6 +1 22.11.29 81 2 18쪽
220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5 22.11.28 54 3 19쪽
219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4 +1 22.11.27 58 4 16쪽
218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3 22.11.26 50 5 17쪽
217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2 22.11.25 53 3 14쪽
216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1 22.11.22 58 2 21쪽
215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5 22.11.21 79 2 16쪽
214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4 22.11.20 49 3 17쪽
213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3 22.11.19 51 2 18쪽
212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2 22.11.18 61 2 16쪽
211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22.11.15 60 2 18쪽
21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6 +2 22.11.14 55 4 18쪽
20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5 +1 22.11.13 62 3 13쪽
20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4 22.11.12 59 2 14쪽
20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3 22.11.11 72 3 16쪽
206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2 22.11.08 67 3 19쪽
205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1 22.11.07 62 2 19쪽
204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0 22.11.06 60 3 11쪽
203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9 +1 22.11.05 90 3 17쪽
202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8 22.11.04 67 2 9쪽
201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7 +2 22.11.01 93 3 12쪽
20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6 22.10.31 80 4 13쪽
19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5 22.10.30 74 2 15쪽
19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4 22.10.29 76 4 18쪽
19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3 22.10.28 77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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