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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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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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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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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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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0

DUMMY

푸른 달빛의 왕의 대답에 레테는 흥이 식었다는 듯, 그를 바닥에 거칠게 내던졌다.

그 충격으로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움막은 완전히 무너져 공간은 순식간에 관리자가 머무는 월면(月面), 달의 바다로 옮겨졌다.


숨을 쉴 공기조차 허락되지 않아 꺽꺽대는 그를 잠시 감상하던 ‘망각’은 그제야 오랜 세월 방치해둔 그를 이제야 찾게 된 목적에 대해 말했다.


<이제 그만 네가 훔쳐간 ‘자비(Chesed)’를 돌려받겠다. ‘자비’야말로 왕에게 어울리는 개념인즉. 혹 아느냐? 이를 돌려받은 내가 너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줄지.>


‘미래’를 찾고자 한다면 언제든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직접 소멸시키기보단 영원히 숨어살며 고통 받기를 바랐다.

그는 자신이 눈먼 돌에 맞은 개구리였다고 말했지만 그 돌에는 명백한 악의(惡意)가 담겼다.


만약 그가 고리와의 연결을 끊으면서까지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훔쳐가지 않았더라면 그는 영원히 절대자의 악의를 두려워하며 죽지못해 살아야했으리라.


“───!!”


<우습구나. 공기가 없다고 말도 하지 못하는 꼴이 참으로 보잘 것 없고 우습다. 이제 드디어 웃는 이와 화를 내는 이가 바뀌었구나. 이것이 네가 감히 그 더러운 입에 담은 순리(順理)로다.>


망각은 그제야 숨을 쉴 수 있는 권한을 그에게 허락해주었다.


“커흡! 커헉, 허어어억-!!”


<이제 말해보아라. 자비를 어디에 두었느냐.>


“이거... 미안하군. ‘자비의 기둥’은... 더 이상 내게 없다. 이미 줘버렸거든...... 경계의 어머니께... 바쳤... 다.”


하늘과 땅의 ‘기원’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이름 붙일 수 있는 건 ‘만물의 어머니’.


<설마 그분도 다시 태어나신 건가? 흐, 흐하하하! 정말이지... 기쁜 날이 아닐 수 없구나. 새로운 동족이 태어났고, 동족의 배신자를 처단했으며, 동족의 왕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다니...!>


비아냥대는 ‘미래’의 말에 ‘망각’은 오히려 희열을 느낀 듯, 촉수를 부르르 떨었다.

그녀를 노려다보는 그가 아니었다면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채신머리없이 춤을 췄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사이 숨을 고른 푸른 달빛의 왕은, 왕의 길을 인도하던 멀린은, 현자의 샘을 지키던 미미르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낸 미륵은, 미래의 이데아인 마이트레야는 최후의, 최후의 말을 골라 입에 담았다.


“레테여, 내 예언을 하나하지.”


그것은 미래가 하는 마지막 예언이었다.


“너는 운명의 아이에게 패배할 것이다. 그는 두 명의 어미와 두 명의 아비를 둔 자. 끝없는 문답을 통해 마침내 탄생한 왕. 그리고 그 어미 중 하나는...”


하지만 그 말은 입 밖으로 형상화되어 뱉어지지 못했다.

자성예언(自成豫言)은... 완성되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다. 이미 이는 정해진 것.

미래가 혼돈의 탄생을 막지 못했듯이 망각 역시...


<쉿! 시끄럽구나. 내 지금부터 너의 존재를 지울 것인즉, 혹 이런 미래는 못 보았느냐?>


“그래... 이조차 내가 정한 체험이라면 달게 받아들이마. 피했던 고난이 이제와 돌아왔을 뿐이니. 넌 계속해서 우리를 위한 체험장이나 만들 거라. 이 천박한 노예...ㄴ ㅕㄴ.”


<미안하지만 천녀는 이제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상대를 놀리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천녀(賤女)를 자칭하는 레테 앞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아~ 오늘은 오랜만에 꿈을 꾸겠구나.>


존재를 지우고, 그 존재했다는 기억마저 망각하여,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내는 가장 잔인한 힘의 대가는 스스로 지운 그 모든 기억들 중 일부가 꿈을 통해 들춰지는 것.

악몽(惡夢)이란 말이 이보다 어울리는 것은 없으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망각은 자기 자신에게 망각을 건 반동을 맞이했다.


<■■■’■ ■■!!>


그 순간 망각은 꿈에 먹혔다.


-투명한 몸체에 검은 잉크를 한 방울 떨어트린 듯 검게 사위어갔다.


3000년에 가까운 잠에 비하면 일순에 불과한 아주 짧은 잠이었지만 『검은 새끼 양』들이 저마다의 의지로 입을 여는 것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공허가 말했다.


-그것들은 더 이상 ‘메에-’하는 힘없는 목소리로 우지 않았다.


우리는 이리 전능함에도 목적 없이 태어나 생명 없이 살아갈 뿐이니, 우리의 왕은 어이하여 우리에게 사명을 주지 않는가. 이는 자유인가 방치인가. 왕의 사랑은 억압보다 질이 나쁘다.


공허가 공허함에 몸부림치자 혼돈이 태어났다.


이 혼돈은 기원 없이 태어나 미래에 일어난 혼돈을 대신하여 존재하니 시간의 흐름 바깥에 있는 이데아는 시작도 없이 결과로써 존재하더라.


혼돈이 공허에게 속삭였다.


-그것들은 현존하는 인류의 언어체계로는 해석할 수 없었지만, 명확한 의지와 체계화된 형태를 가진 언어를 사용하여 단어의 단말마를 내질렀다.


존귀한 아버지시여. 당신께서 저를 만드셨나이다. 당신께서 저를 만드실 것이나이다. 저가 태어남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이 미래라는 것이니, 그는 왕과도 같은 힘을 가져 예언을 통해 앞날을 예지하나이다.


혼돈이 미래에게 그에게 우리의 목적과 삶을 묻는 것이 옳겠노라 간청하니 공허는 저를 따르는 무리와 함께 미래에게로 향했다.


미래가 말했다.


-그것은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없이 경외시하는 것 같기도 했으며 누군가를... 찬양하는 듯했다.


너희 이데아의 끝을 불러올 자들아. 너희가 바로 종말이고 재앙의 시작이라.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미래의 비난에 공허는 응수했다.


자고로 삶은 끝이 있기에 존재하리니 그대는 우리에게 태어나지 말라고 태어난 것부터가 죄가 되노라 이야기하는가.


미래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미래 역시 알았기에 사명을 노래할 수밖에 없음이라.


-la^─!! ■h■b-N’gg■-*#■!!


약속의 땅,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약속의 땅에 우리는 도달하리니. 아아, 예언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는 사명임과 동시에 저주니라. 어째서 그대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갈구하는가. 너희는 스스로에게 재갈을 물리고 목줄을 씌우니 이것이 종언의 시작이라.


이는 이데아 전체에 내려진 사명이니 너희가 모두에게 죽음을 불어넣었노라.


혼돈은 그제야 비로소 혼돈 속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


혼돈이 어리석고 눈먼 자신의 아버지라 공허를 찬양하나니, 전 이데아는 약속의 땅을 찾아야만 했다.


어리석구나. 어리석고 달상하여 눈물을 참을 길이 없노라.


저와 저의 창조물들의 죽음 앞에서 기원의 왕은 구슬피 운다.

왕이 말했다.


-wi’■ a Th’u$■■d y’@■^g!(천 ■■의 ㅅㅐ■를 배ㄴ─ ■!)


너희는 어이하여 스스로의 자유를 미워하는가. 이조차 너희의 자유의지를 통해 이루어진 행동이라면 나는 결코 비난하지 않으리니.


하지만 이 용서를 들어야할 자들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혼돈은 저가 낳고 저를 낳은 어머니, 미래를 두고서 사라졌다.


나는 죽는다. 나를 따르는 이들도 죽는다. 하지만 이미 받은 사명을 망각할 수 있는 자, 망각만이 살 것이다. 내 망각을 이데아들의 다음 왕으로 삼으리니 너는 우리의 유해로 제관을 빚으라. 제위에 오르라.


우리는 이로써 죽으나 죽지 않고 윤회 안에 불멸하리니 새로운 순환을 네게 맡기겠노라.


왕께서 마지막 노래를 시작했다.


-Ev’r Ŧhe!r pr@i$’s─!(열■한! 차─ㄴ■─!)


망각이 동족의 유해를 긁어모아 하나의 고리를 완성하나니 그것이 윤회의 고리, 이 세상 모든 것이라 하더라.


한편 공허의 무리들, 기원과 경계 다음으로 났으나 항상 공허에 몸서리치던 공허의 무리들, 그들은 이데아라기엔 무척이나 이질적이라.

제아무리 도망감에도 사명을 피해 도망갈 길은 없나니 그렇기에 그들은 차원의 틈새로, 존재의 땅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기원 이전에 난 존재의 땅에서, 그곳이 약속의 땅이라 노래하며 타락해가나니 그들이 바로...


<뭐지? 이 꿈은 대체 무엇이냐! 어찌... 이다음, 이다음 내용은 분명 없었을진대...! 분명 내가... ‘망각’하였노라...!>


그들은 자신들과 같이 죄지었음에도, 미래를 겁박하여 사명을 받았음에도, 제 죄를 망각하고 왕위를 승계한 망각을 미워하고 또 증오하나니.

허나 경계를 허물고 존재로 가는 길을 연 해방이, 경계에 잠복하는 자가, 하나이자 전체, 전체이자 하나인 자는... 제 연인을 위해 끝내 문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존재뿐이 남지 않은 차원의 틈새에서 점, 선, 면, 입체 어떠한 차원에도 속하지 못하고 결국 살점이 이어진 실, 거대한 촉수와 같이 되어 한없이 뒤틀려가더라.」


마침내 꿈이 끝났다.

레테의 망각의 강물로 이루어진 아바타의 등줄기를 타고 염소대가리모양의 검은 땀방울이 메에- 하고 작게 힘없는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오직 꿈만이 거짓된 망각을 들추고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이냐...>


긴 잠에서 깨어난 관리자는 꿈에 대한 제 감상을 노래했다.

망각에게도 잊고자 하는 것은 있었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나니, 망각조차 감히 영원을 노래하지는 못하리라.>


망각은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진리를 입에 담았다.


-Lä! Shub-Niggurath!(슈브-니구라스 만세!)


영원을 영원히 노래하던 나날은 그 날들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나날들이었고, 영원을 부정하는 현재는 끝을 보는 지금 이 순간이었다.


<우습구나.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는 이 진리와도 같은 말마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 믿으며, 그 예외가 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결국 천녀의 오만이었더냐...>


최초의 원인 없는 원인들마저 영원하지 못했다.

이 별의 마지막까지 살아갈 다음세대들도 감히 영원을 입에 올리기엔 부족하기만 했다.

영원의 이데아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기에, 개념과 짝을 이루는 이데아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시간이 밉구나. 혼돈과 함께 태어나버린 그들이 밉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이야기 하는 예언이 밉고...>


망각은 다시금 사명을 떠올렸다.


-잠에서 깬 망각을 따라 검은 양들은 마지막 단말마를 내지르고 다시 망각 속에 사위어갔다.


이데아의 종언을 가져온 사명이 마지막 남은 이데아의 생존자의 목을 졸라왔다.


<하아~ 이만 잊자꾸나.>


안 된다, 망각은 다시 제 스스로에게 망각을 걸었다.

망각은 다시 기억을 지웠고 다시금 검고 어두운 장막이 들추어진 기억을 덮었다.


-슈브 니구라스 만세......


작가의말

무명천지지시(無名天地之始) 

유명만물지모(有名萬物之母)


노자의 도덕경 1장의 일부분입니다.


「이름 없는 것은 천지의 시작.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 」


가 일반적인 해석이겠지만 전 조금 다르게 해석해봤습니다.

「하늘과 땅의 기원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이름 붙일 수 있는 건 만물의 어머니.」


라고요.


모든 작가가 책의 시작을 어려워하지만(저도 프롤로그를 거의 1년 동안 쓰고, 고치고만 반복을...) 이분의 시작은 참 오묘하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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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5 22.11.28 54 3 19쪽
219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4 +1 22.11.27 58 4 16쪽
218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3 22.11.26 50 5 17쪽
217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2 22.11.25 53 3 14쪽
216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1 22.11.22 58 2 21쪽
215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5 22.11.21 79 2 16쪽
214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4 22.11.20 49 3 17쪽
213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3 22.11.19 51 2 18쪽
212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2 22.11.18 61 2 16쪽
211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22.11.15 62 2 18쪽
21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6 +2 22.11.14 55 4 18쪽
20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5 +1 22.11.13 62 3 13쪽
20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4 22.11.12 60 2 14쪽
20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3 22.11.11 75 3 16쪽
206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2 22.11.08 67 3 19쪽
205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1 22.11.07 62 2 19쪽
»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0 22.11.06 61 3 11쪽
203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9 +1 22.11.05 91 3 17쪽
202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8 22.11.04 67 2 9쪽
201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7 +2 22.11.01 93 3 12쪽
20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6 22.10.31 80 4 13쪽
19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5 22.10.30 75 2 15쪽
19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4 22.10.29 76 4 18쪽
19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3 22.10.28 77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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