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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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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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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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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DUMMY

장자의 결혼식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세계수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어째선지 렌이 풍백이나 다른 아이들보다 우리가 가는 걸 더 아쉬워하는 것 같았지만 분명 아착각이리라.


“아아, 이젠 내 곁엔 아무도 없어. 내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던 애들이 모두 떠나버렸어.”


면밀히 말하자면 떠난 건 아이들이 아닌 나였지만, 외로움이 차오른 나는 연극톤으로 이리 말했다.


“코르, 제가 여기 있습니다.”


시리우스는 그런 내게 어울려주겠다는 듯 옆에서 달콤한 말을 뱉었다.

둘 중 하나라도 여자였다면 분명 설레었을 텐데... 아쉽게도 우린 모두 남자였다.

그것도 시리우스는 북유럽의 바이킹 쪽의...


“......널 담으면 그냥 모래주머니야. 하나도 안 귀여워.”

“제, 제 취급 너무 박해지지 않았나요?”


내 말에 시리우스는 진짜 상처받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농담이니까 그렇게 침울해지지 마!”

“아아, 적어도 짐이 되진 않으리라 여겼는데. 모래주머니라니...”


결국 이번 장난도 시리우스에게 승리가 돌아갔다.

그는 작은 것 하나에서도 내게 지지 않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행동했다.


“너무해...”


매달리듯 사과하는 내 모습에 시리우스는 그제야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화를 풀었고, 그제야 내가 놀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나는 그를 불퉁하게 쳐다봤다.


“얼마만의 집이냐.”


근 반년 만에 돌아온 집은 정말 꼴이 말이 아니었다.

우체통에는 확인 못한 편지가 가득하고 대충 던져준 드워프들이 바친 공물 위로 먼지가 쌓였다.


“앞으로도 자주 집을 비울 텐데 관리하는 사람이라도 둬야 하나?”


아무래도 포르세티 하나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그냥 포르세티가 아니라 포르세티 2세입니다.”

“아, 쫌!”


내 지난 과오(過誤)를 콕 집어 말하는 시리우스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일단 치우고 생각하죠!”

“말 돌리지 마!”


그렇게 시작된 대청소.

집을 청소하는 시리우스의 표정은 근래 들어 가장 생기 있어보였다.

삶의 보람을 느끼는 얼굴이다.


“편지가 되게 많이 왔네?”


나는 청소를 하다말고 우체통에서 꺼내온 편지들을 확인했다.


“헐, 청명이랑 데미안에게서 계속 편지가 왔었잖아! 그날 이후 한 번도 답장 안했는데!”


이번에 가서 만나면 핸드폰 사용법이라도 알려줘야겠다.

요즘 세상에 아날로그 식 손 편지가 웬 말이란 말인가.


처음에야 아기자기해서 좋았지만 나중 가니까 일일이 답장하는 것도 일이었다.


“오, 청첩장도 이제 도착했네.”


개중에는 장자가 보내온 청첩장도 있었다.


“코르, 뭐 해요?”

“아, 미안. 이것들만 확인하고.”


고작 둘이서 청소하는데 중간에 한명이 딴 짓을 시작하자 홀로 청소를 할 수밖에 없게 된 시리우스의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한 청소를 멈출 수 없었는지 계속해서 청소를 이어나갔다.

집이 조금씩 깨끗해질 때마다 불만 가득한 시리우스의 얼굴에 만족이 피어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건 누가 보낸 거지?”


「위 사람을 마녀들의 연회에 초대합니다.


-얼굴조차 보지 못한 대자를 기리며, 사바나 위치엔드가.」


그건 초대장이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나의 후견인, 나의 대모가 보낸 초대장!


“나, 날짜가 어떻게 되지?”


만약 장자의 결혼식 날짜와 겹쳐버리면 갈 수가 없기에 나는 서둘러 날짜를 확인했다.


「때는 마녀들을 불태운 발푸르기스의 밤(Walpurgis Night)을 저주하는 삼하인(Samhain).」


헥센나흐트(Hexennacht)라고도 불리는 발푸르기스의 밤.

독일판 할로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날은 마녀를 태운다는 의미로 장작불을 활활 태우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축제인데 4월 30일 밤에서 5월 1일까지 걸쳐서 이루어진다.


삼하인과는 딱 6개월의 시간차가 존재하며 여기에 주술적 의미를 더하면 ‘반대된다.’ 혹은 ‘저주한다.’라고도 충분히 해석될 수 있었다.


또한 삼하인은 할로윈의 원조가 되는 날, 기독교가 늘 그래왔듯 다른 종교를 배척하고 그 축일을 자기들 것으로 삼았고, 켈트족의 축제는 결국 모든 성인들의 축일(Halloween)이 바뀌어버렸다.


마녀들에겐 새해와도 같은 뜻깊은 날...


‘마녀는 달의 축일 에스밧(Esbat)과 태양의 축일 사밧(Sabbat)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지.’


에스밧은 달의 주기를 지키는 것이며 사밧은 태양의 주기, 즉 계절의 변화를 의미한다.


‘가장 중요한 여덟 사밧은 입동(Samhain), 동지(Yule), 입춘(Imbolc), 춘분(Ostara), 입하(Beltane), 하지(Litha), 입추(Lughnasadh), 추분(Mabon)이 있으며 이는 일년의 바퀴(The Wheel of the year). 즉, 순환을 의미한다... 고 엘레나 쌤이 그랬지.’


이중에서 사계절을 상징하는 겨울-삼하인, 봄-임볼크, 여름-벨테인, 가을-루나사는 4가지 불의 축제라고도 불리며 그 의미가 각별하다.


특히 겨울을 상징하는 삼하인은 마녀들의 남신이 죽은 날로 남신은 주로 태양, 하늘, 숲, 사냥, 초목, 아버지, 젊은이 따위를 의미하기에 입동(立冬)으로 표현된다.


‘이 정체불명의 남신은 주로 머리에 두 개의 사슴뿔이 달린 모습으로 묘사된다고 하던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관념적인 모습의 드루이드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참고로 이 남신은 다음 사밧인 율(Yule)에 부활한다.


남신이 죽어 저승으로 돌아가기에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날.

켈트인들은 이를 언덕을 넘는다고도 표현했다.


여기서 ‘저승’ 혹은 ‘언덕’이란 모든 영적 존재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요정언덕(Sidhe), 시, 시데, 시더, ‘시스’ 등 다양하게 발음된다.


이곳에 사는 이들을 에스 시(Aes sidhe)라고 불리며 그 뜻을 해석하자면 ‘고분(Sidhe)의 사람들(Aes)’.


‘때문에 이런 정령에 가까운 요정과 요괴들은 이름이 시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밴시, 캐트시, 쿠시 따위로 말이다.

더군다나 비명을 듣는 이를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밴시의 비명으로 유명한 밴시는 그 이름의 부터가 ‘요정언덕(side)의 여자(ben)’다.


‘으윽, 엘레나 그만!!’


여기서 더 생각나면 내 입에서도 밴시의 비명이 흘러나올지 모른다.

언젠가 내가 죽어 윤회의 고리로 돌아가게 된다면 반드시 주입식 교육을 만들어낸 이를 찾아내 보복을 가하고 말리라.


다행히 교육의 재생은 여기서 멈췄다.


“그럼 정령이 사는 이 요정언덕은 낙원. 즉, 에덴이 되는 건가...?”


어쨌든 경계가 얇아진 만큼 정령들이 현계하기 쉽고 이들과 계약을 맺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다.

마녀들에게 있어 새해 첫날인 만큼 한해의 운을 점쳐보기도 좋다.


“삼하인이면... 10월 31일, 할로윈이 있는 날이니까... 장자의 결혼식은 10월 3일이니 완전 여유네!”


정확히는 11월 1일 정도, 삼하인은 10월 31일 밤에서부터 시작되는 3일 간의 축제다.


“시리우스! 나랑 옷 사러 가자! 대모님 만날 때 입을 거랑 결혼식에서 입을 옷까지 살 게 많아!”

“이것만 정리하고 갈게요. 이것만, 이것만!!!”


나는 간절하게 이것만 치우게 해달라는 시리우스의 부탁을 무시하며 그를 끌고 집을 나섰다.


***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말은 틀림이 없는지 찰나 같은 찰나의 시간은 정말 찰나와 같이 흘러 어느덧 장자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 찾아왔다.


백화점에 가긴 했지만, 마땅한 옷을 찾아볼 수 없어 결국 저번에 천마가 우편으로 함께 보내준 옷을 입었고 시리우스에겐 맞는 옷이 없어 근처 양복점에서 괜찮은 정장을 하나 맞춰줬다.


“긴장되네...”


결혼식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거행됐다.

과거 궁녀가 황제와 직접 결혼식을 올리지 못해 황제의 초상화에 대고 혼례를 올렸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였다.


“이래서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하는 건가...?”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하고 있는데 천마가 주변을 압도하는 기세를 내뿜으며 붉은 융단 위에 홀로 올랐다.


“장자는... 어디 있는 거지?”


─둥! 둥! 둥!


그때 북소리와 함께 나타난 붉은 가마가 천마 쪽으로 향했다.

가마를 끄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가마를 끄는 것은 검은 개처럼 생긴 짐승이었는데 눈이 붉고 다리는 곰과 닮았으며 다만 발톱이 없었다.


“설마 지금 마수와 영수를 부리고 있는 거야?”


가마 위에는 작은 붕새가 다소곳하게 앉아있었는데 모형이 아닌 진짜다.

물론 어디까지나 붕새치고 작다는 것이지, 인간 기준에선 충분히 컸다.

크기를 보아하니 신수엔 도달하지 못한 영수겠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과연 이게 황제의 결혼식이구나 싶었다.


─턱.


마침내 가마는 천마의 앞에서 멈춰 섰다.

가마 위에 앉은 붕새는 부리를 이용해 가마의 문을 열었다.


“와!”


가마 안에서 언뜻 보이는 장자는 복장은 너무도 화려했다.

항상 수수한 차림을 하던 장자의 모습이 그 순간만큼은 떠오르지 않았다.


옷에는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봉황이 금실로 수놓아져있었으며, 왼손 소지와 오른손 약지와 소지에는 호갑투라는 손톱을 보호하는 손가락 장신구도 착용하고 있었다.


‘조법(爪法)이라도 배울 셈인가?’


과거 청나라에선 손가락을 가늘게 보이기 위해 후궁들이 손톱을 길렀다 하던데 반년 사이 손톱을 꾸준히 길렀나보다.


“쩝, 얼굴은 안 보여주는구나...”


대망의 신부의 얼굴은 붉은색 천으로 가리어져 보이지 않았다.

장자가 가마에서 내리려하자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천마는 장자의 발에 붉은 신을 신겨주었다.


─웅성웅성


무림의 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이가 무릎을 꿇었다는 것에 하객들이 놀라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적어도 이 모습을 본 자들은 이후 장자를 함부로 대할 수 없으리라.


장자는 그 면사포와 같은 것이 불편한지 직접 천을 걷으려 했지만, 천마가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름답군. 누구보다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을 정도로.”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지는 질척거리는 집착은 그가 마의 정점임을 다시 한 번 모두에게 상기시켜주었다.


“하지만 오늘은 본좌만의 날이 아니니...”

“우왓!”


천마가 장자를 안아들어 땅이 아닌 붉은 융단 위에 내려주었다.

그게 꼭 ‘땅이 감히 그대의 발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내지는 ‘속세의 더러움, 정치의 더러움, 인세의 더러움 이 모든 것에서 지켜드리겠습니다.’ 정도로 느껴져 남자인 내가 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탁


그때 누군가 천마의 손을 탁 소리가 나도록 쳐냈다.


“데미안?!”


놀라서 소리를 지르니 하객들이 나를 쳐다본다.

나는 서둘러 입을 막았다.


데미안은 천마에게서 제 후견인을 뺏어들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융단을 걸으며 화로를 넘게 했다.

이 행위가 안 좋은 기운을 없앤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황제의 결혼식과 다름 없다보니 좋은 의미란 의미는 다 챙기려는 모양이다.


이후 데미안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천마에게 제 스승을 다시 넘겼다.

천마와 장자는 손을 맞잡고 붉은 융단 위를 걸었다.

그 끝에 있는 것은 처음 보는 노인이었다.


“두 분의 주례는 저 백익이 맡게 되었군요.”


새하얗게 샌 수염을 길게 늘인 속세를 초탈한 것 같은 노인이 혼례를 주관하며 천지신명 앞에서 부부의 연을 맺게 했다.

이로서 기본적인 절차가 끝났다.


“백익? 산해경의 저자 그 백익?!”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에서 보였다.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이.


“신수...!”


이 눈에 비친 그는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눈이 여덟 개 달린 사자의 형상을 띠었다가 온 몸에 비늘이 덮인 뿔 두 개가 있는 짐승이 되기도 했으며 사람 얼굴에 눈과 뿔이 달린 소의 모습이 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존재는 하나뿐이다.


신수 백택(白澤).

황제가 처음 만났으며 그 뒤로 덕망이 있는 임금이 다스리는 시대에 나타났다는 신령스러운 짐승.


공식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순 임금이 있었을 때다.

순 임금은 천무극과 같이, 한 눈에 눈동자가 두 개인 중명안을 가지고 태어난 이.

이것이 제왕의 상징이라고 들은 것도 같다.


‘전에 무림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 가마를 옮겨준 이들이 봉몽세가에 백익 선생이 식객으로 지낸다고 했었지.’


신수 백택이 백익이란 이름으로 계속해서 활동해오다니...


저 백익을 비롯해 명장 구야자, 현 무림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살아온 구왕, 천마와 장자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 전력으로 포함시키긴 어려워도 훗날 손에 꼽는 강자가 될 것이 분명한 데미안과 청명까지... 무림은 강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오오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환호성이 울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둘이 반지를 교환하고 있는 게 보였다.


식이 있기 전 내가 친구들과 함께 가서 선물했던 태양의 반지.


‘아무래도 내기의 승자는 정해진 것 같지?’


오랜만에 얼굴을 보려고 했는데 신랑보다 먼저 얼굴을 보여줄 수 없다며 그때도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있었다.


당시 장자의 주위에는 생각보다 많은 인사가 모여 있었다.

우리처럼 선물을 건네러 온 이도 있고 사죄를 청하러 온 이도 있었다.

그중에는 마뇌도 있었다. 무림과의 친선대련에서 마나를 차단하는 진법을 사용한 그 진법가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이들 중에는 우리를 나름 궁지로 몰아갔던 진법을 만든 마뇌도 있었다.

마뇌의 찌그러진 얼굴은 분한 듯 보이기도 했고, 안심한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런 이들 앞에서 장자는 이렇게 일갈했다.


-본녀는 화를 내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당신들에게 관심이 없는 거여요. 먼지가 굴러가는 걸 보고 사람이 일일이 웃거나 울지 않듯이요.


그리고 사제 간에 나눌 이야기가 있다며 축객령을 내렸다.

유피와 미나가 가져온 선물은 모두 책이었다.

유피는 자신이 조직에서 다음세대로서 교육받아온 내용들을 모두 적어 일지의 형태로 만들어 선물했고 미나는 남녀 간의 오묘한 조화가 적힌 방중술 책을 선물했다.

아무래도 그게 소녀경의 원본이라는 모양이다.


본디 나의 대모이기도 한 사바나 최고원로가 가지고 있던 것이 그녀에게 연금술을 배운 미나에게 넘어갔고, 다시 미나에게 무공을 가르친 장자에게 넘어갔다.


소녀경이면 분명 풍백의 대녀이기도 했다는 하얀 여우, 달기가 쓴 책일 텐데 그게 어쩌다 사바나 원로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나조차 의문이었다.


둘 모두 귀한 물건이라 순간 내가 내기의 패배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경의 원전이라면 분명 내가 가져온 태양의 반지에 뒤지지 않는 귀물이고, 다음세대의 교육에 대해 적힌 일지는 장자가 목표를 이루는데 도움을 줄 게 분명한 지침서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선물들보다 선물을 건네며 유피가 전한 말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흔히들 연애는 환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지. 그래서 아직 꿈을 꾸고 있는가, 장자여.


유피는 더 이상 장자를 스승이라 부르지 않았다.

유피가 장자에게 전한 그 말은 일견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비꼬는 것 같기도 했다.


-......네!

-깨지 않는 꿈이길 빌어주마.


유피는 피식, 실소를 흘리며 돌아섰다.

아마 그것이 유피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축복이자 경고였으리라.

행복이 끝나지 않기를 빌어주는 축복이자 모든 것을 버리고서도 놓지 않으려했던 걸 쥐었으면 결코 잃지도 빼앗기지도 말라는 경고.


전체적으로 중국 전통을 따르는 혼례에서 서양에서처럼 반지를 나누는 것은 이질감이 들 법도 했지만 염제신농씨의 화신을 자청하는 천마에게 태양의 눈으로 만든 반지는 퍽 잘 어울렸다.


어쨌든 이로써 모든 절차가 끝났다.

악단이 연주를 시작하며 그제야 결혼식에 어울리는 흥겨운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천마와 반지를 교환한 장자는 퍽 행복해보였다.


“다행이네.”

“벗이여 왔는가. 구경은 즐거웠는가?”


결혼식을 더 잘 보기 위해서 멀리 있는 귀빈석에서 잠시 내려갔다 왔을 뿐인데 유피는 결혼식 따윈, 우리가 만나기 위한 구실일 뿐,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 먼저 한잔 걸치고 있었다.


“그거 데미안이 빚은 거지? 나도 한잔 줘.”

“일부러 예쁘게 꾸며줬는데 굳이 저것들 틈에 들어가야 했어?”


돌아온 내게 미나는 술잔을 건네며 인간들이 더러운 병균이라도 되는 양 타박했다.

참고로 시리우스는 양복을 입고 왔다가 상황에 맞지 않는 옷이라며 기겁한 미나에 의해 새롭게 갈아입혀졌다.


근처에는 양복집밖에 없었다고 나름의 변명을 해봤지만 이미 눈이 돌아간 미나에겐 들리지 않았다.


니벨룽겐의 감각을 얻은 지금에서도 미나의 패션 센스는 과연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간만에 만난 친구가 짐승 냄새 폴폴 풍기며 돌아왔는데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야지. 그동안 어떻게 지낸 거야?”

“DMZ에 있는 세계수에서 수인족 고아들을 돌보며 지냈어.”


내 대답에 유피와 미나는 마치 군대도 갔다 온 친구가 방학 동안 곤충채집을 하며 보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지을 법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래.”

“예상외로군. 아니, 이게 벗답다면 벗다운 것이겠지.”

“그래. 코르답게 보냈네.”


그러니까 나다운 게 뭔데...


“그런데 리버스에서 온 사람들은 우리뿐인 거야?”

“그렇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참석한 것도 조직에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이가 많을 정도이니.”


장자가 무림 쪽으로 넘어가며 데미안과 청명까지 다 데려가 버려서 현재 리버스 내부에서 무림에 대한 인식은 최악에 가까웠다.

그래도 결혼식에 원로 한 둘 정도는 보낼 줄 알았는데 정말 아무도 안 왔다.


리버스를 위해 마련된 귀빈석에는 나를 포함해 유피와 미나 그리고 시리우스 이 넷 밖에 없었다.


“벗이여, 그것보다 저 자를 봐라. 느낌이 이상하다.”

“응? 유피가 타인에게 먼저 관심을 갖다니 별 일도 다 있네?”


유피의 손끝을 따라간 곳에 있는 이는 온몸에서 혈향을 뿜어내는 자들 가운데 있는 금발의 미남자.

마치 피처럼 붉은 눈이 섬뜩하다.


또 다른 특색이라면...


‘여기에서 유일하게 청명을 적의를 내뿜고 있다... 어째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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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4 +1 22.11.27 58 4 16쪽
218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3 22.11.26 50 5 17쪽
217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2 22.11.25 53 3 14쪽
216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1 22.11.22 58 2 21쪽
215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5 22.11.21 79 2 16쪽
214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4 22.11.20 49 3 17쪽
213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3 22.11.19 51 2 18쪽
212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2 22.11.18 61 2 16쪽
»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22.11.15 62 2 18쪽
21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6 +2 22.11.14 55 4 18쪽
20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5 +1 22.11.13 62 3 13쪽
20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4 22.11.12 59 2 14쪽
20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3 22.11.11 74 3 16쪽
206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2 22.11.08 67 3 19쪽
205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1 22.11.07 62 2 19쪽
204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0 22.11.06 60 3 11쪽
203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9 +1 22.11.05 90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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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4 22.10.29 76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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