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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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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7
글자수 :
227,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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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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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방송국 사람들

DUMMY

‘고등학교 때는 어떻게 다닌 거지?’ 유나는 자리에서 발버둥 치듯 일어나 멍하니 앉았다. 입을 벌리고 위를 보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매달아둔 베개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덕분에 머리는 아프지 않았지만 은근히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베개를 바꾸든지 해야지. 커버에 곰돌이 눈 코 입이 다 있으니 잠깐 보면 영락없는 귀신의 모습이었다.


“내가 미쳤지. 이걸 왜 지원해서는. 아! 20만원 포기할까?”


“조용히 좀 해!!!!!”


오랜만에 들어온 은숙 언니의 우람한 목소리가 유나를 찍어 눌렀다.


“죄송합니다.”


“좀!!! 잠 좀 자자!”


은숙 언니가 소리 언니보다 좀 더 까칠한 것 같다.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무조건 쥐죽은 듯 있어야 함을 본능으로 알았다. 좀 더 오버해서 까치발로 침대에서 일어난 유나는 조심조심 화장실로 들어갔다. 뱃속이 부글부글한 것이 정말 가기 싫은가보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기숙사를 나서는데 앞서가는 서리가 보였다.


“방송국 가?”


“너도?”


서리의 모습은 유나와 달리 제대로 준비한 모습이었다. 반짝반짝 코에 걸린 안경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이 났다.


“지원하면 다 합격인거지?”


“방연과 걔는 떨어졌다던데.”


“진짜? 다행이다.”


“싸가지는 걸러야지.”


“어떻게 바로 알아보네.”


“모르면 바보지. 정옥 선배가 은근히 인성을 봐.”


말을 들으니 괜히 잘 알지도 못하는데 선배가 좋아지는 것 같았다.


방송국 안으로 들어가니 정옥 선배와 국장인 민준 선배 둘만 있었다. 어제만 해도 작은 방이라 생각했는데, 둘만 있으니 썰렁하고, 책상도 많이 커보였다. 텅 빈 것 같은 방에 유나가 먼저 발을 디디자 이상한 세계에 들어온 듯 기분이 묘했다. 선배들은 유나를 보고도 없는 사람처럼 신경 쓰지 않았다. 서리가 큰 목소리로 인사하자 그제야 둘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왔어? 아침방송 준비해야 하니까 대충 가방 내려놓고.”


뒤이어 줄줄이 학생들이 어색하게 들어왔다. 생각보다 새로 뽑힌 사람이 많지 않았다. 유나, 서리, 얼굴이 하얀 문창과 남자 한 명, 방연 과라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 주먹만 한 여학생과 동글동글 통통한 컴퓨터 과 남학생 한명이 전부였다. 도대체 몇 명이 지원했는지 궁금해졌다. 궁금한 것은 못 참아 서리에게 귓속말로 물어봤다.


“몇 명이 지원한 거야?”


“정옥 선배! 몇 명 지원한 거예요? 얘가 물어보는데.”


눈치가 없는 건지 서리는 유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큰소리로 물어봤다. 기분 탓인지 정옥의 째려보는 시선을 느끼며 고개를 떨구었다.


“7명”


“네?”


목소리가 너무 컸나? 선배가 다시 째려봤다.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요.”


‘정말 그냥 다 뽑히는 거였구나. 시험은 왜 있는 거야? 이럴 거면’


유나의 속마음을 눈치 챘는지 정옥이 과하다 싶게 크게 소리쳤다.


“다들 방해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


커다란 콘솔 옆 앙증맞은 턴테이블에 LP판을 올리고 민준 선배는 뼈만 앙상한 손으로 왼쪽으로 한 바퀴 돌렸다. 살짝 든 바늘이 닿는 순간 풀스가든의 ‘레몬트리’가 경쾌하게 연주되었다. 콘솔의 마이크 볼륨을 쭉 올리는 것과 동시에 정옥선배의 밝은 목소리가 캠퍼스를 적셨다. 저절로 엉덩이가 실룩대는 신나는 음악과 동글동글한 정옥 선배의 목소리는 매치가 잘 되어 듣기에 썩 좋았다. 선배가 새롭게 보이는 게 음악 때문인지 똑같은 표정인데도 더 상큼해 보였다. 방송국일이 호감으로 느껴졌다. 노동의 시간이 있기 전까지는.......


오전 방송이 끝나자마자 신입에게 주어진 임무는 벽을 가득 채운 어마어마한 레코드 판을 닦는 거였다. 보기만 해도 헉 소리가 나게 많은 판을 몇 개만 조심스레 내려놓은 민준 선배는 차갑게 정옥 선배와 아침을 먹으러 가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6명의 초짜들은 멍하니 헝겊과 판을 내려다보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먼저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도망갈 용기도 없었다.


“이거 다 닦아?”


유나의 망연자실한 목소리에 서리의 차가운 목소리가 더해졌다.


“장난하나?”


그때 문창과 남자 아이가 바닥에 털썩 앉았다.


“어차피 할 거잖아.”


생각보다 판단이 빠른 게 마음에 들었다. 유나는 왜 이리 자주 반하는지 주책 맞다 생각하며 은근슬쩍 옆에 앉았다.


“이름이?”


용기내어 물어봤다.


“정경훈. 너는?”


“나는 진유나.”


“응”


‘뭐지 이 반응?’


예의상 물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게 얼굴도 보지 않고 레코드 판을 케이스에서 조심스레 빼고 있었다.


“나 LP판은 처음 봐.”


언제 왔는지 컴퓨터 과 동글동글 남학생이 유나 옆에 앉았다.


“유나라고? 난 정훈이 박정훈”


“경훈, 정훈 이름이 비슷하네.”


유나가 싱겁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깨질 것처럼 생긴 게 쉽지 않겠어.”


정훈은 동그란 안경을 말아 올렸다. 많이 짧은 손가락을 드러내며 통통한 손으로 조심해서 레코드판을 꺼냈다.


“자. 자. 이 속도면 하루 종일 해도 다 못하겠다. 서둘러.”


서리가 서리답게 말했다.


“하기 싫은데.”


서리의 눈빛이 칼같이 매섭게 날이 섰다.


“누구?”


“하기 싫다고.”


방연 과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방연 과 여학생이었다.


“너는 빠진다는 거야? 우리 개 고생하는데.”


서리가 싸울 기세로 말하자 생각보다 연한 목소리로 여자아이가 받았다.


“배고파. 밥 먹고 하자.”


‘뭐야’


유나는 그제야 안심했다. 방송국 신입들이 다들 착해 보였다.


“그래 그래. 우리 밥 먹고 하자!”


“그래 밥 먹자.”


정훈이 유나 옆에 붙어 섰다.


‘얘 뭐지?’


불편함을 느끼며 유나는 경훈 옆에 붙어 섰다. 셋을 웃기다는 듯 쳐다보던 서리는 먼저 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뭐 훔쳐갈 거 없겠지? 우리 열쇠 없잖아.”


“아!”


방송국 안은 훔쳐갈게 많아 보였다.


“어쩌지?”


순간 탭이 생각난 유나가 문으로 다가가 탭을 갖다 댔지만 반응이 없었다.


“왜 이러지?”


서리는 한심 하다는 듯 문손잡이를 보여 주었다.


“이거 완전 수동. 여기만 왜 이런 거야? 여기 학교는 진짜 일관성이 없어.”


“그러게 열쇠 없나?”


유나가 부스 안으로 들어가 살펴봤다. 부스 안에는 정옥 선배과 민준 선배의 가방이 구석에 놓여있었다. 가방을 뒤져볼 수도 없고 그냥 나오는데 부스 문 뒤에 화장실 열쇠처럼 달랑달랑 벽에 매달려 있었다.


“여기. 이거 아닐까?”


유나가 열쇠를 들어보이자 서리가 칭찬했다.


“유나가 좀 하네.”


별것도 아니었는데 뭔가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서리는 그런 힘이 있었다. 전생에 왕족이었을 것 같다.


끝도 없을 것 같은 레코드판 닦기도 어찌어찌 마무리 되었다. 꼬박 하루를 구부리고 있었더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평소보다 튼실한 다리가 부은 것처럼 더 커졌다. 다들 지쳤는지 바닥에 앉아 있는데 정옥선배가 옆으로 와 쪼그리고 앉았다. 해맑은 표정의 선배는 가지런히 놓여진 레코드판을 보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회식 해야지”


직장인에게나 있는 단어인줄 알았는데 막상 들으니 나이 든 것처럼 이상했다. 방송국은 대학과는 또 다른 사회 같았다. 인원이 많지 않아 더 가깝게 느껴졌다. 컴퓨터 과 정훈이만 빼고 말이다. 끈적끈적한 눈빛이야 유나의 오해라 할 수 있겠지만 은근슬쩍 곁에 붙어 앉아 우연인 것처럼 손을 치기도 하고 어깨도 부딪혀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대놓고 저리가라 할 수 도 없었다.


학교 근처에 이렇다 할 가게가 없어 회식이라는 게 방송국 책상에 맥주와 과자를 놓은 게 다였다. 티비에서 보던 것과 너무나 달라 유나는 실망했다. 어찌 보면 평범한 대학생에게 이게 더 어울리기는 했다.


“너는 너는......”


어디서 혀 꼬이는 소리가 나나 했더니 정훈의 얼굴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옆을 보니 맥주 한 캔이 있었다. 유나가 슬쩍 들어보니 한 모금 마셨나 거의 그대로였는데, 술을 못 마시는 가보다. 술은 못 마시는데 주사가 있는 것 같다.


“너는 도끼병이야!”


“누구? 나?”


어이없는 표정의 유나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 너!”


“내가? 왜?”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본다고 너무 황당하니 화도 나지 않았다.


“어디서 지가 자난 줄 알고 튕기기는?”


주사가 심한 것 같다. 생각보다 눈치와 행동이 빠른 민준 선배가 정훈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내가 왜?”


유나는 점점 더 억울해졌다.


“신경쓰지마!”


소 쿨한 서리는 맥주가 마음에 안 드는지 콜라만 마시며 과자를 집어 먹었다.


“가자! 막걸리 땡긴다.”


서리의 말에 유나는 긴장했다.


“아니 그래도 먼저 가는 건 좀 그렇지”


유나의 말을 들었는지 방송국 문이 활짝 열리며 선배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손에는 족발과 치킨을 무겁게 든 선배들을 유나는 환영했다.


“첫 회식인데 과자로 되나?”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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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써클 22.12.08 14 0 9쪽
43 존의 비밀 22.11.24 21 0 9쪽
42 2학기의 시작 22.11.17 18 0 9쪽
41 이. 사. 장 22.11.10 18 0 10쪽
40 차원의 문 22.11.03 17 0 9쪽
39 진실 22.10.27 16 0 9쪽
38 사라졌다! 22.10.24 16 0 10쪽
37 붉은 문 22.10.06 20 0 9쪽
36 삼각관계? 22.09.29 17 0 9쪽
35 비밀 회동 22.09.26 19 0 9쪽
34 살과의 전쟁 22.09.22 16 0 10쪽
33 우린 너무 달라요. 22.09.19 18 0 10쪽
32 어리석은 선택 22.09.15 22 0 10쪽
31 요즘사람 나중사람 22.09.08 21 0 11쪽
30 끊어낸다는 것 22.09.01 21 0 9쪽
29 머니 22.08.29 20 0 10쪽
28 이사장과의 우연한 만남 22.08.25 24 0 10쪽
27 태준과 영웅 22.08.22 24 0 11쪽
26 농가 22.08.18 24 0 10쪽
25 이상한 절 22.07.25 26 0 11쪽
24 프로 민폐녀 22.07.21 20 0 11쪽
23 불편한 동거 22.07.18 27 0 10쪽
22 MT 2 22.07.14 21 0 10쪽
21 MT 22.07.11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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