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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160
추천수 :
17
글자수 :
227,543

작성
22.12.0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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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써클

DUMMY

‘맞나? 아닌가?’


혼란스럽기는 태준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닮았다' 라고 하기에 너무 닮았다.


“영하?”


입에서 나오지 않을 이름인 줄 알았는데, 저도 모르게 나와 버렸다.


“네?”


여자의 얼굴에는 아무런 동요도 일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뭐야? 아는 사람?”


유나가 어느새 태준 옆으로 와 반말로 물었다.


“아니, 아니야.”


돌아서서 가는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놓치지 않고 유나가 은근슬쩍 어깨동무를 했다.


“뭐야? 첫사랑이라도 만난 얼굴인데.”


귓가에서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에 얼어붙듯 멈췄다. 태준의 손이 어깨에 걸쳐진 손을 누르듯이 잡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배 안 고파?”


“맞다!”


역시 영리하다. 누가 서울대 아니랄까 봐 핵심을 찔러 위기를 모면했다. 유나는 얼토당토않은 감탄을 뒤로 남기며 서둘러 뛰어갔다.


“언니들은 여기 이상하지 않아요?”


오랜만에 기숙사 방에 룸메이트 셋 이 모였다. 전공들이 다르다 보니 학기 동안 흔치 않은 일이다. 과자 부스러기를 집어먹으며 은숙의 침대에 편한 자세로 앉은 유나가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소리는 거울을 들어 치아를 확인하며 궁금하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집중력이 제로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하며 유나가 고쳐 앉았다.


“무슨 건물 하나 올리는데 두 달 만에 뚝딱이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나 뿐인 것도 이상하고.”


“근데 너 은근슬쩍 반말이다.”


은숙이 싫지 않은 표정으로 과자를 한 주먹 입에 넣으며 말했다.


“아유 언니 반년이면 강산도 쪼끔은 변하는데. 뭐, 같이 늙어가는 처지 아니겠소”


실없이 웃으며 유나가 둘러대자 은숙도 같이 웃어주었다. 사람의 성격은 바뀌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환경에 놀라울 정도로 적응하며 변한다는 것을 겪으며 알아갔다.


“나야 뭐 학교 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생각 안 해봤는데, 듣고 보니 그렇네.”


“뭐, 마술 같은 건가? ‘아브라카타브라’ 이런 거?”


농담처럼 말하다가 이제 이사장이 마술사가 아닐까 라는 의심까지 들었다.


“언니 어디가?”


소리가 다시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검은 망사옷 위로 보이는 붉은 장미 타투가 강렬했다. 원래부터 큰 눈에 무슨 짓을 했는지 두 배는 더 커져 보였다. 눈을 깜빡이자 기다란 속눈썹에 찔릴 것 같아 절로 주춤해졌다. 이제는 친숙해질 만도 한데 자꾸 이리 새로운 모습으로 놀라게 했다.


“데이트”


“남친 생겼어?”


부러움이 가득 담긴 은숙의 목소리가 슬프게 들렸다.


“난 남자한테 아무리 해도 관심이 안 가. 그렇게 연애하고 다니면 안 피곤하냐?”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도 은숙은 늘 남자한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손을 털고 일어나는데 옷에서 과자 조각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언니는 또 저 상태로 야작을 가겠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침대 위 이불을 들고 욕실로 가서 탈탈 털었다.


“나 간다. 오늘 안 들어올지도. 하하하”


소리 언니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멀어져 갔다.


“나도 학교가”


은숙 언니의 쓸쓸한 목소리도 멀어져 갔다.


깨끗하지 않은 유나가 방 정리를 하고, 책상에 앉아 멍하니 밖을 쳐다봤다. 위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높고 투명한 건물 주변에 환한 빛이 비추고 있었다. 빛은 테두리를 만들며 건물 주위로 넓은 원을 형성했다. 과녁처럼 보이던 둥근 원은 점점 붉은 빛으로 변하며 타듯이 이글거렸다. 유나는 눈을 꿈뻑였다. 손등으로 비벼보기도 했다. ‘뭐지?’


이글거리는 빛은 주변 사람들의 눈을 가렸고, 그 속에서 사람의 형체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의 형체는 주변에 스며드는 것처럼 사람들과 섞여 유유히 사라져갔다. 붉은빛은 누르스름해지면서 바닥으로 가라앉듯 사라졌다. 해가 쨍쨍하게 비치며 젖은 땅을 순식간에 말리듯이 바닥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유나는 자신이 본 것이 헛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스스로에게 세뇌시켰다.


“분명 잠을 설친 거야. 아니지, 어제 술을 안 ...... 마셨는데? 마셨나? 거봐 기억도 못하잖아. 정신 차려!”


혼자서 머리를 콩콩 쥐어 받던 유나의 손이 탭으로 갔다. 이럴 때 생각나는 사람이 하필이면 영식이라니. 방연과 카테고리로 들어가 영식을 누르니 전화 연결이 되었다.


나른하지만 편안하게 하는 목소리.


“왜?”


“어디야?”


유나의 목소리에 안도의 한숨이 더해졌다.


“무슨 일 있어?”


역시 유나의 불안을 바로 알아차렸다. 자식! 영식이 너는 역시 내 솔메이...트?


“전화하는 거 보니 딱 알겠네. 돈 필요해?”


“너? 내가 그렇게 밖에 안 보여?”


“나한테 용건이 그런 거 말고 뭐가 있는데?”


눈앞에 있었으면 한 대 팍 쥐어박았을텐데......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하나, 둘, 셋, 넷. 뱉으며 다시 하나, 둘, 셋...’


“뭐하냐?”


“화 참기. 요즘 내가 도 닦고 있거든.”


“가지가지 한다.”


“방이야?”


“응”


“나와라!”


“왜?”


“내가 할 말 있으니까.”


유나는 묘하게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았다.

책상 위 거울을 보니 입가의 과자 찌꺼기가 아직 그대로 있었다. 이것은 아니지 하는 마음에 샤워를 했다. 머리를 말리다 보니 그래도 안으로 좀 말려 있으면 얼굴이 작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고데기로 끝만 살짝 말아봤다. 그냥 나갈까 하는데 책상 위 파운데이션이 눈에 밟혔다. “햇볕에 맨 얼굴이 좋을 리가 없겠지.” 괜히 혼잣말을 하며 살짝 발라봤다. 신발을 신으려는 데 옷장에 있는 소리의 향수가 보였다. 투명한 유리 위로 까만 뚜껑을 슬쩍 만져본다는 게 그만 옷에 조금 뿌려졌다. 순전히 실수다 생각하며 방문을 닫았다.


기숙사 앞 벤치에 누워있는 영식이를 보자 갑자기 심장이 방망이질을 하며 뛰기 시작했다. 좀 전에 한 말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거겠지. 신체 반응에 적당한 핑계를 대어 보았다. 학기 시작하고 따로 만난 건 처음이었다. 서울 집에서 매일 보던 얼굴인데 밖에서 보니 많이 달랐다. 주변 사람들에 신경 쓰지 않고 다리를 쭉 뻗어 누워있는데. 순간 왜 저렇게 길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까만색 트레이닝 바지와 후드를 입고, 깔 맞춰 모자까지 쓴 영식이는 평상시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유나의 눈에 오늘은 좀 달라 보였다.


“오라고 해 놓고 왜 이렇게 늦게 나와?”


짜증을 내는 목소리와 다르게 눈망울은 유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얼굴은 또 왜 저렇게 하얗지?’ 유나의 머리에서 다른 말들이 마구 들렸다. 팔짱을 낀 채 그대로 앉아 옆자리를 두드리며 오라 했다. 심장이 목까지 올라오는 것처럼 퍼덕였다. 영식의 옆으로 가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괜히 식은땀이 났다.


“어디 아파?”


영식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달콤하게 들렸다. 분명히 어딘가 고장난 게 틀림없었다. 세상 제일 하찮았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지. 자신의 건강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 나 아픈가 봐. 막 헛 게 보이고.”


“야! 아프면 잠이나 잘 것이지 왜 보자고 해서 사람 오라 가라 하냐?”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영식의 따뜻한 손이 유나의 이마로 왔다. 거의 죽기 직전의 느낌이 이렇지 아닐까? 유나의 심장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야!”


유나의 정신이 몽롱해지려는데 영식이 등을 후려치며 깨웠다. 깨지 않을 수 없게 정말 세게 쳤다.


“아야!”


“왜 정신을 놓고 그래? 무섭게.”


정신이 번쩍 든 유나가 영식의 얼굴을 쳐다봤다. 입을 쑥 내밀고 유나와 눈이 마주쳤다. 등에 맞은 덕에 앞으로 숙여진 머리가 위를 올려다보는 꼴이 되었고, 영식은 아래로 내려다봤다. 순간의 정적은 시간으로 따지자면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둘 사이에는 시냇물 한 줄이 흘러내려가는 길고 긴 시간이었다. 영식의 뺨과 귀가 점점 빨갛게 달아올랐다. 유나도 마찬가지였다. 온몸의 열기가 얼굴로 다 가는 느낌이었다.


“뭐하냐?”


너무 놀란 유나가 영식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자의가 아닌 질문한 사람의 등짝 스매싱으로 인한 물리적인 힘 때문에 약하디 약한 몸이 버텨내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진 거였다. 고 유나는 이날의 기억에 대한 변명을 몇 날 며칠 계속 했다.


유나도 놀라고, 영식도 놀라고, 유나의 등을 친 태준이 제일 놀랐다. 얼른 얼굴을 올리긴 했지만 꼴이 너무 이상해져 버렸다. 고개를 돌린 유나는 태준과 눈이 마주치고 영식은 무릎을 세워 그 속에 얼굴을 묻었다.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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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클 22.12.08 15 0 9쪽
43 존의 비밀 22.11.24 21 0 9쪽
42 2학기의 시작 22.11.17 18 0 9쪽
41 이. 사. 장 22.11.10 18 0 10쪽
40 차원의 문 22.11.03 18 0 9쪽
39 진실 22.10.27 16 0 9쪽
38 사라졌다! 22.10.24 16 0 10쪽
37 붉은 문 22.10.06 20 0 9쪽
36 삼각관계? 22.09.29 17 0 9쪽
35 비밀 회동 22.09.26 21 0 9쪽
34 살과의 전쟁 22.09.22 16 0 10쪽
33 우린 너무 달라요. 22.09.19 19 0 10쪽
32 어리석은 선택 22.09.15 22 0 10쪽
31 요즘사람 나중사람 22.09.08 21 0 11쪽
30 끊어낸다는 것 22.09.01 22 0 9쪽
29 머니 22.08.29 21 0 10쪽
28 이사장과의 우연한 만남 22.08.25 24 0 10쪽
27 태준과 영웅 22.08.22 24 0 11쪽
26 농가 22.08.18 24 0 10쪽
25 이상한 절 22.07.25 27 0 11쪽
24 프로 민폐녀 22.07.21 20 0 11쪽
23 불편한 동거 22.07.18 27 0 10쪽
22 MT 2 22.07.14 21 0 10쪽
21 MT 22.07.11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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