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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113
추천수 :
17
글자수 :
227,543

작성
22.06.23 14:55
조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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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진희

DUMMY

방송연예 과에서 못 보던 방송국 신입의 이름은 안진희다. 조막만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해 인형 같은 외모였다. 성격은 내성적인지 말도 별로 없고, 조근 조근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잘 처리했다. 하지만 찾아서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주변이 아무리 바빠도 시키지 않은 일은 할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늘 CD 플레이어를 끼고 다니며 이어폰이 귀와 세트로 붙어 있어 가까이에서 말하지 않으면 듣지 못했다. 기숙사에서도 거의 못 본 것을 보면 방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진희와 유나가 처음 말을 한 것은 단순히 유나의 혼잣말 때문이었다.


“음악과 선배들은 어떻게 된 걸까?‘


의자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던 유나는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의 생각이 말로 튀어나왔다.


“나 봤는데.........”


소근대듯 작은 소리가 들리자 유나는 환청인 줄 알았다.


“아~ 그만 그만! 이러다 정말 소리언니 투 나오겠어.”


“응?”


‘응?’ 유나가 주변을 두리번대자 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진희가 보였다.


“으악! 너 왜 의자 두고 거기서 그러고 있어?”


“몸을 작게 하고 음악을 들으면 느낌이 달라.”


'뭐야. 완전 돌 아이잖아‘


유나는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 속 표정 그대로 진희에게 전해졌나 보다.


“돈 건 아니고, 취향이지.”


“응. 응 개취 인정”


진희는 쓸데없는 말이라 생각했는지 무시하고 가만히 음악만 들었다.


“근데”


유나의 말에 진희가 고개를 들었다.


“아까 네가 말한 거야?”


“뭐?”


“봤다고.”


“응”


“뭘 봤는데?”


“그날 음악과 애들이 어디로 갔는지.”


“네가 어떻게?”


“우연히.”


‘대박!’ 유나는 크게 속으로 소리쳤다.


“어디로 갔는데?”


“저기 아래 기도원”


“신고 안했어?”


“응”


“왜?”


“왜 해야 하는데?”


‘평소 진희의 성격을 보면 신고하는 게 이상하지’ 유나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으로 들어갔어? 납치 같은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아. 스스로 탔으니까.”


“선배랑 잘 아는 것 같던데.”


“선배?”


유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우리 과 영웅선배랑 같이 가던데.”


“뭐?”


유나는 그날 갑자기 사라진 영웅선배가 떠올랐다. ‘뭐지?’ 그러고 보니 선배가 까만 승용차에 탄 사람과 은밀히 얘기하고 있었다. 혹시 선배가 뭐 이상한 종교 같은데 빠져있나? 유나는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속이 답답해졌다.


“너 영웅선배랑 친해?”


“아니”


그렇지 진희가 선배랑 친할 것 같지 않았다.


“거기 좀 이상했어. 간판은 기도원인데 옆에 비닐하우스 같은 게 있었거든. 뉴스에 나오는 불법도박장 같이 생겼더라고.”


유나의 눈이 더 커졌다.


“거기까지 따라간 거야?”


“응”


“왜?”


“궁금해서.”


이해할 수 없는 아이다. 진희라는 아이는.


“그러다 무서운 일 당하면 어쩌려고? 여자 혼자서.”


말하면서 유나는 가녀린 진희의 팔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나 합기도랑 태권도 유단자야.”


“그래?”


진희란 아이는 파면 팔수록 뭐가 많은 아이 같았다.


“지금 가볼까?”


유나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어디?”


“어디긴 네가 말한 그 기도원.”


“싫은데.”


“왜?”


유나는 이해할 수 가 없었다. 궁금해서 거기까지 따라갔으면서 이건 또 무슨 반응인지.


“궁금하다며.”


“지금은 별로.”


진희다운 대답이었다. 유나는 진희를 꼬셔볼 생각에 말했다.


“배 안고파?”


“응 안고파.”


진희는 짜증난다는 투로 말하며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 것 같았다. 포기하기에 유나의 호기심이 이미 폭발해서 책상 옆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슬쩍 물었다.


“너는 뭐 좋아해?”


“좋아하는 건 딱히 인데 귀찮은 건 딱 질색이야.”


더 말해 무엇 하리. 유나는 깔끔히 포기하고 일어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래로 살짝 눈길을 내려 봤는데 진희는 쳐다보지도 않고 음악에 빠져 있었다. 쿨 한 성격이 못되는 유나는 다시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뭐 들어?”


질척댄다가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말일 거다. 질척도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만 좀 말 걸 래?”


“뭘 걸어?”


이해력이 딸리는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유나가 해맑게 말하자 진희가 지친다는 표정으로 일어나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쾅’하고 닫았다.


“기집애 알았어! 알았다고.”


유나가 녹음 부스에 얼굴을 갖다 대고 말한 후 밖으로 나갔다. 진희는 유나의 모습에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진희에게 친구는 가져본 적이 없는 거였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잘 안됐을 뿐. 잘 안되니 괜히 애쓰지 말자가 되고 이제는 귀찮아 졌다. 유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왠지 친해지고 싶었다. 이제까지 본 사람들과는 달리 맑은 영혼을 지녔다고 해야 하나?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엇이든 진심인 것 같아서 믿음이 갔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친해질 수 있겠지 하는 기대도 생겼다.


진희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지만 80이 넘은 할머니를 혼자 둘 수 없었다. 진희의 부모님은 진희가 아주 어렸을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남겨준 재산이 많아 돈 걱정할 일은 없었지만 늦둥이에 외동이었던 부모님에게서 난 외동딸이라 외로움은 늘 함께했다. 마지막 가족인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면 진희는 세상천지에 정말 혼자가 된다.


“왔니?”


여느 때처럼 문 열리는 소리에 할머니가 반색하며 밖으로 나왔다. 다리에 힘이 없어 지팡이로 지탱하는 할머니의 팔에는 힘줄이 튀어나와 있었다.


“밥은?”


“먹어야지.”


“조기 좀 구웠는데 괜찮아?”


건강이 좋지 않은 할머니지만 진희의 저녁상을 늘 준비해서 기다리신다. 진희는 할머니가 진희가 올 때까지 밥을 먹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저녁시간 전에 집에 가려 노력했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무슨. 아직 그 정도 할 힘은 있어.”


할머니는 기어코 진희를 밀어내고 싱크대 앞에 기대섰다. 한숨을 폭 하고 내쉰 진희는 현관으로 향했다.


“할머니 나 자전거 좀 타고 올게.”


“밤도 늦었는데, 위험하게.”


할머니가 절뚝대며 따라 나왔다.


“괜찮아. 배도 너무 부르고, 잠깐 돌고 올 건데 뭐.”


진희는 할머니를 안심시키려 웃으며 말했다.


“하여간에 말한다고 듣나. 조심하고 얼른 들어와.”


“응”


진희는 밝게 웃으며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밤하늘이 시원했다. 밤 산책도 좋지만 자전거를 타면 마음은 더 평온해졌다. 페달을 돌리면서 앞만 보고 달렸다. 자전거 페달 소리와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귀 옆을 스쳤다. 잡음이 없는 이 시간은 현실감을 밀어냈다. 얼마를 달렸을까 어느새 시내 안까지 들어와 버렸다. ‘너무 앞으로만 왔나보다’ 하며 잠깐 후회하는데 같은 과 영웅 선배가 보였다.


키도 크고, 외모도 뛰어나 모를 수가 없는 선배였다. 진희도 여자라 눈이 갔었다. 학교에서의 바른 이미지와는 다르게 술을 마셨는지 빨개진 얼굴로 여자애들 여럿과 함께였다. 원래부터 친했는지 어깨동무도 하고 슬쩍 슬쩍 팔을 건드리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실실대며 웃던 선배와 일행 앞으로 은색 봉고차가 앞으로 와서 섰다. 하얀색 글씨로 ‘이지 기도원’이 선명하게 보였다. 선배와 일행은 미리 부른 차가 도착한 것처럼 문을 열고 바로 올라탔다.


진희는 반사적으로 차를 따라갔다. 천천히 움직여서 자전거로도 무리하지 않고 따라잡을 수 있었다. 차는 이지예술대학교 방면으로 가는 듯 하더니 외길에서 숲이 우거진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자전거로 따라가기에 눈에 띌 것 같아 풀 옆에 세워두고 걸었다. 하나로 이어진 길은 기도원으로 향했고, 길이 하나라 도로를 따라가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은색 봉고차가 세워진 기도원은 빛이 새어나오지 않고 어두웠다. 방금 누가 내렸다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소리 나지 않게 발을 세워 건물 옆으로 붙어 섰다. 어두워서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낡은 건물은 자물쇠로 잠겨있고, 바로 옆에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유연하게 문 앞까지 다가갔다. 자물쇠는 오랫동안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것처럼 먼지가 끈적하게 들러붙어 아래로는 거미줄도 보였다. 건물로는 들어간 것 같지 않았다. 옆의 비닐하우스로 발을 옮기려다 부스럭 소리에 얼른 건물 옆으로 다시 돌아가 몸을 숙였다.


남자 넷이 봉고차 옆에 붙어 섰다. 담배를 피우려 나왔는지 한 명이 뒷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내밀자 셋이 하나씩 받아 들었다. 다시 담배를 내밀었던 한 명이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서로에게 전했다. 담배 하나가 다 없어질 때까지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넷이 차 앞으로 자리를 옮기자 진희는 조용히 길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가 잠들지 못하고 진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누운 자전거를 세워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 나왔다.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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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써클 22.12.08 14 0 9쪽
43 존의 비밀 22.11.24 21 0 9쪽
42 2학기의 시작 22.11.17 18 0 9쪽
41 이. 사. 장 22.11.10 17 0 10쪽
40 차원의 문 22.11.03 17 0 9쪽
39 진실 22.10.27 14 0 9쪽
38 사라졌다! 22.10.24 16 0 10쪽
37 붉은 문 22.10.06 19 0 9쪽
36 삼각관계? 22.09.29 16 0 9쪽
35 비밀 회동 22.09.26 16 0 9쪽
34 살과의 전쟁 22.09.22 14 0 10쪽
33 우린 너무 달라요. 22.09.19 17 0 10쪽
32 어리석은 선택 22.09.15 19 0 10쪽
31 요즘사람 나중사람 22.09.08 16 0 11쪽
30 끊어낸다는 것 22.09.01 20 0 9쪽
29 머니 22.08.29 20 0 10쪽
28 이사장과의 우연한 만남 22.08.25 24 0 10쪽
27 태준과 영웅 22.08.22 24 0 11쪽
26 농가 22.08.18 24 0 10쪽
25 이상한 절 22.07.25 26 0 11쪽
24 프로 민폐녀 22.07.21 20 0 11쪽
23 불편한 동거 22.07.18 26 0 10쪽
22 MT 2 22.07.14 20 0 10쪽
21 MT 22.07.11 2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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