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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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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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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추천수 :
17
글자수 :
227,543

작성
22.11.1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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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이. 사. 장

DUMMY

“진영하. 진유나...”


톡톡톡 이사장의 손톱이 나무로 된 단단한 데스크 위를 두드렸다. 잠을 자듯 감은 두 눈은 눈동자의 움직임 없이 고정되어 있었다. 거의 근처까지 간 줄 알았었다. 영하의 툭툭거리는 말투와 생각 많은 눈빛이 그리웠다. 유나와 영하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확실해졌다.


우연히 서점에서 유나를 지나쳤을 때 그 전율을 잊을 수가 없었다. 스쳤을 뿐인데도 영하와 같은 파장이 온몸을 휘감고 지나갔었다. 가능성이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손에 넣고 싶었다. 그날 유나의 곁을 따르며 느끼고, 또 느꼈다. 가벼운 미끼에 걸려들 만큼 유나는 순수했다. 쉬울 것 같았는데, 또 막상 시작하려니 태준이 앞을 막았다. 감고 있던 두 눈이 서서히 벌어지며 천장에 꽂혔다. 다 식어버린 커피로 손길이 움직이나 싶더니 다시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이사장의 고민이 커질수록 이마의 주름이 깊게 파였다. 속의 것을 잘 내보이지 않는 사람이라 혼자 고민하고, 혼자 해결하는 것에 익숙했다. 톡톡톡 다시금 데스크를 두드리던 손이 멈추고, 멈칫하던 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얀색 가구조차 을씨년스러운 텅 빈 아파트 안에서 유일하게 밝은 거실의 넓은 창은 햇빛을 받아 붉게 빛났다. 앞에 선 이사장의 등이 빛을 받아 타는 듯 보였다. 영하를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닌데.......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뭐가 잘못됐던 것일까? 이론상으로 거기에서 문제가 생길 리가 없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고, 그날 이후로 그곳에 발을 디딘 누구도 돌아 나오지 못했다.


한 발자국만 앞으로 디디면 바닥으로 떨어질 듯 투명한 창 앞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다 잊고 떠나고 싶다는 먹먹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가 사라졌다.


“영하는 어떻게 된 거죠?”


찢어질 듯 고통스러운 얼굴의 태준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규했다.


“왜? 왜 혼자만 나온 겁니까?”


할 말이 없었다. 둘이 들어가서 혼자만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도 같이 사라졌어야 했다. 같은 공간의 문 앞에서 영하는 사라졌고, 자신은 젊어졌다. 마치 영하의 영혼을 마시고 온 것처럼.


“딩동 딩동”


머리 위로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한 표정이 된 이사장의 속눈썹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흔하디 흔한 초인종 소리지만 이곳에서 처음이었다. 이사장의 집은 철저하게 비밀이었고,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누구?”


버럭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 고스란히 짜증이 묻어나왔다. 인터폰을 내려놓은 손을 콧잔등으로 가져다 깊게 눌렀다. 절망스러운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얼굴의 이사장이 되어 현관문을 열었다.


“이사장님. 저...”


상희는 우물거리며 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커다란 과일 바구니의 손잡이가 무겁게 양손에 들려 있었다. 잘 보이려 너무 신경 쓴 탓에 피부 화장은 손톱으로 긁힐 정도로 두껍게 발려 있고, 요즘 유행하는 누드톤 루즈는 입술보다 몇 센티 위로 올라가 발려 있었다. 이사장의 취향과는 많이 달랐다. 가벼운 여자애는 딱 질색인데, 예술대학교 젊은 이사장이다 보니 은근히 유혹해 오는 여학생이 없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정 없는 그의 목소리에 상희의 얼굴을 붉게 물들었다.


“잠깐 들어가 봐도 될까요?”


용기를 내어 말하자 이사장이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할 말 있으면 여기에서 하지.”


“아니, 저...”


상희는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온 듯 좀 전과 다름없이 말을 이었다. 과일 바구니가 많이 무거웠는지 양손의 안쪽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훅 하고 한숨을 뱉은 후 이사장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우리 엄마 이름은 장미예요. 유장미.”


이사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상희의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는 그의 눈은 과거의 기억을 찾는 듯 했다.


“엄마가 이사장님 얘기를 해줬어요. 사진도 보여줬어요.”


상희는 이사장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얼굴을 붉혔다.


“지금 뭐, 잃어버린 아버지라도 찾아온 얼굴인데.”


차가운 목소리가 상희의 귀를 때렸다.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상희도 지지 않았다. 예전부터 품어온 마음이었다. 이렇게 쉽게 물러날 거였다면 오지도 않을 거였다.


“잠깐 기다려. 내가 나가지.”


이사장이 문을 닫으려 하자 상희가 잡았다.


“이거.”


빨개진 손으로 과일 바구니를 건넸다. 이사장의 얼굴에 잠깐이지만 훗! 하고 웃음이 지나가는 것을 상희는 놓치지 않았다.


“엄마에게 들었어요. 이사장님은 예의 바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엄마가 별소리를 다 했나 보네.”


좀 전과는 달리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잠깐 현관문이 닫혔다가 다시 열렸다. 다림질 한 듯 빳빳한 하얀색 티셔츠에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고 선글라스까지 걸치고 나왔다. 젊은 외모와 옷차림의 이사장은 상희와 나란히 서니 모르는 사람 눈에는 연인 사이로 보여 질 정도였다.


“근처 커피숍으로 갈까?”


“칵테일 바? 아니 호프집 같은 데 없어요?”


“난 학생하고 술 안 마셔.”


“저번에 보니까 마시던데....... 서리랑”


“누구?”


“우리 과 서리요.”


“기억에 없는데.”


“은근히 거짓말 잘하시네요.”


당돌한 아이다. 장미에게 저런 딸이 있었나 싶었다. 장미는....... 저 아이처럼 밝았었나?


“엄마가 아파요. 저는 이사장님만이 엄마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아프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이사장의 이마가 다시 찌푸려졌다.


상희는 투명하고 긴 잔에 든 차가운 커피를 단숨에 들이 키고 이사장 얼굴 가까이로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암이래요. 죽을병이래요.”


“아!”


낮은 신음 소리가 이사장의 입을 통해 나왔다.


“들었어요. 이사장님과 엄마가 있던 세계에서는 이 정도 병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게”


상희는 이사장의 말을 잘랐다.


“데려가 주세요.”


바닥에 깔린 얼음까지 입속에 집어넣고 오도독 씹어 삼켰다. 상희의 머리에 찌릿한 아픔이 전해지는지 순간 윽 소리를 내더니 다시 이사장의 눈을 쳐다봤다. 아직 20살의 그녀는 어리면서도 마냥 어리지 않은 아이였다.


대답 대신 가만히 상희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조금은 닮은 것도 같았다. 엄마의 당돌함을 닮은 아이. 어쩌자고 아이에게 저런 말을 한 것일까? 놓고 싶지 않을 만큼 삶이 간절했던 것일까? 그러는 자신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것일까? 그냥 지금의 삶에 만족해도 될 텐데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안 늙어요? 아니다. 늙었다가 다시 젊어졌나?”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구나. 얼굴은 그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이사장의 능구렁이 같은 얼굴이 나왔다. 그의 손이 상희의 얼굴로 내려온 머리카락에 스쳤을 때 상희는 소름과 함께 야릇한 떨림이 느껴졌다. 잘생긴 이사장의 얼굴이 바로 옆에 있고, 탄탄한 그의 팔이 상희의 어깨를 스치고 있었다.


“답, 안 해 주세요? 왜 안 늙어요?”


“젊은 애들의 영혼을 마시나 보지.”


후후거리며 말하는 그의 눈은 진심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슬퍼지는 그의 눈은 상희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지금은 가고 싶어도 못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막혔어. 나도 이유를 찾지 못했고.”


상희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이 되었다.


“찾아볼게.”


이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심히 한 마디 뱉었다. 마치 그 말이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듯 끝나기 무섭게 상희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꼭 찾을 거죠?”


대답 대신 희미한 웃음을 보이며 밖으로 나가자 상희가 뛰다시피 달려와 그에게 안겼다.


“믿어요. 꼭 엄마 때문만이 아니어도 이사장님 믿어요. 어려서부터 계속 봤었어요. 동경했어요.”


이사장은 당황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섰다.


“너는 나를 어떻게 안다는 거야?”


“엄마가 사진을 보여줬었어요. 어려서부터 쭉 이사장님의 모습을 그리며 지냈어요. 대단하신 분이라고.”


“너는 나를 제대로 본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든 것 같구나.”


“엄마가 아프고 나서 결심했어요. 제가 꼭 만나서 낫게 해드릴 거라고.”


상희는 이사장의 품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엉겁결에 사람들이 다니는 한복판에서 안고 서 있는 꼴이 되었다. 밀어내려 하면 할수록 상희는 더 조여들듯 이사장의 목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만. 알았으니까 그만 좀 풀어주겠니?”


이사장 특유의 나른하면서 낮은 목소리가 먹혀들지 않았다.


“상희야!”


이럴 때는 이름을 부르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이것도 먹히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아이기에 이렇게 당황스럽게 하는지 이사장의 등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뭐 하세요?”


상희의 팔 위로 간신히 고개를 돌리는 그의 눈에 유나의 얼굴이 잡혔다. 그 뒤로 영식과 진희 그리고, 태준까지.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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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로맨스 22.12.15 17 0 9쪽
44 써클 22.12.08 14 0 9쪽
43 존의 비밀 22.11.24 21 0 9쪽
42 2학기의 시작 22.11.17 18 0 9쪽
» 이. 사. 장 22.11.10 18 0 10쪽
40 차원의 문 22.11.03 17 0 9쪽
39 진실 22.10.27 15 0 9쪽
38 사라졌다! 22.10.24 16 0 10쪽
37 붉은 문 22.10.06 19 0 9쪽
36 삼각관계? 22.09.29 16 0 9쪽
35 비밀 회동 22.09.26 16 0 9쪽
34 살과의 전쟁 22.09.22 14 0 10쪽
33 우린 너무 달라요. 22.09.19 17 0 10쪽
32 어리석은 선택 22.09.15 19 0 10쪽
31 요즘사람 나중사람 22.09.08 16 0 11쪽
30 끊어낸다는 것 22.09.01 20 0 9쪽
29 머니 22.08.29 20 0 10쪽
28 이사장과의 우연한 만남 22.08.25 24 0 10쪽
27 태준과 영웅 22.08.22 24 0 11쪽
26 농가 22.08.18 24 0 10쪽
25 이상한 절 22.07.25 26 0 11쪽
24 프로 민폐녀 22.07.21 20 0 11쪽
23 불편한 동거 22.07.18 27 0 10쪽
22 MT 2 22.07.14 20 0 10쪽
21 MT 22.07.11 2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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