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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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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155
추천수 :
17
글자수 :
227,543

작성
23.02.0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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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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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상희

DUMMY

48화


상희가 이사장을 찾아간 것은 개학하고 한 달이 지난 후였다.


상희의 예상과는 달리 이사장은 상희에게 전혀 연락하지 않았고, 학교에 살짝 돌았던 소문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배신감. 불안함.


상희가 느낀 감정들이었다.


‘똑똑똑’


“네”


이사장 특유의 평온한 목소리가 안에서 나왔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상희는 차릴 수 있는 가장 고상한 모습으로 차분하게 걸어 들어갔다.


“무슨 일이죠?”


이사장은 언짢은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상희의 예상을 늘 벗어나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끌렸다.


“연락이 없으셨어요.”


상희가 문 앞에서 멈추자 이사장이 먼저 일어났다.


“일단 자리에 앉지 그래요.”


이사장은 일인용 소파로 옮겨 앉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네”


상희가 긴 소파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며 비서가 들어왔다.


“준비하라고 하신 차 가져왔습니다.”


검은 정장 차림의 비서는 말끔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상희를 쳐다봤다.

“기다리고 계신 거였어요? 어떻게 알고?”


“그럴리가요.”


이사장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먼저 차를 들었다.


까만색 몽글몽글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차는 묘하게도 군침을 돌게했다.


이사장이 맛있는 소리를 내며 목젖을 움직여 차를 넘기자 상희도 참을 수 없는 갈증이 일었다.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알 수 없는 향기가 온몸을 노곤하게 만들었다.


“저를 찾는 이유는 저번에 말씀하신 어머님 때문인가요?”


“왜 이렇게 거리를 두시는 거죠?”


상희가 노골적으로 물었다.


“하하하! 내가 왜 그러겠어요.”


이사장은 마시던 차를 내려 놓으며 상희를 그윽하게 쳐다봤다.


“지금 여기는 학교입니다.”


“네. 그러네요.”


상희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장례는 잘 치뤘나요?”


이사장의 말투는 걱정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잘 됐다는. 다행이라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상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계셨던 거예요? 그래서 모르는 척 하시는 건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학생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으니 걱정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이사장은 일어나 책상으로 걸어갔다. 두 번째 서랍을 열어 하얀 봉투를 꺼냈다.


“장례식에 가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봉투를 받은 상희는 더 화가 났다.


“이거 받고 떨어지라는 건가요?”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 앉은 이사장은 슬며시 웃었다.


“그럴리가요?”


“네?”


“보호자가 없어졌군요.”


“그...게. 무슨?”


상희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머리끝에서 한기가 올라오며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호자가 없는 학생이라...”


“협박하시는 건가요?”


상희가 벌떡 일어났다.


“앉으세요. 아직 얘기 끝나지 않았습니다.”


매력적으로 보였던 그의 느긋함이 소름끼쳤다.


“저는 먼저 일어나야겠습니다.”


말하면서 몸을 일으키려던 상희는 자신의 몸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왜이러지?”


이사장이 빙글대며 웃었다.


“서두를 것 없어요.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으니까.”


“뭐라는 거야?”

상희는 더 이상 고상한 상희가 아니었다.


발끝에서부터 손가락 하나까지 상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 상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소리지르는 것 밖에 없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절박하면 누구나 이렇게 소리 지르게 되는구나.


상희는 머리를 흔들며 마구 소리 질렀다.


악다구니를 쓰면서 이사장실의 문을 간절히 쳐다 봤지만 상희의 소리는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한 듯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상희의 목소리가 찢어졌다.


“침착하세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이사장은 이미 식어버린 차를 호로록 소리까지 내며 마셨다.


“너 이 새끼 나한테 뭘 먹인 거야!”


이사장이 미소 지었다.


“그러게. 겁도 없이”


상희는 이제 머리조차 들어 올릴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감기는 눈을 뜨려 안간힘을 썼지만 시야는 점점 흐려졌다.


“사려주....”


상희가 굳은 듯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자 이사장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렸다는 듯 비서가 남자 두 명과 관처럼 긴 상자를 밀고 들어왔다.


이사장이 등을 돌리고 커튼 친 창을 바라보자

비서가 남자 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희의 몸은 그들에게 가볍게 들려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굽혀진 무릎은 우람한 그들 손에 강제로 펴졌고, 굽혀진 팔은 몸에 차렷하듯 찰싹 달라붙었다.


죽은 것은 아니라고 보여주듯 상희의 입가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듯 가녀린 움직임을 보였다.


남자 두 명이 상자를 끌고 나가자 비서가 이사장에게 다가왔다.


“지금 가실 겁니까?”


“10분 정도 있다 나갈게요.”


“네. 그럼 저는 먼저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비서가 마시던 차를 들고 나갔다. 문이 닫힌 소리를 들은 후에야 이사장은 소파 자리로 천천히 걸어와 상희가 남긴 봉투를 천천히 들었다.


“이번에는 성공해야 할 텐데”


이사장은 봉투를 다시 책상 서랍에 넣고 겉옷을 천천히 입은 후 밖으로 나갔다.









“나 다리에 쥐 난 것 같아!”


유나가 종아리를 잡고 주저 앉았다.


진희가 한숨을 쉬며 유나를 내려다봤다.


“먼저 갈게”


“야아~”


가려는 진희의 다리를 유나가 잡았다.

“버리고 갈거야?”


“너 지금 몇 번째야? 이러다 우리 밤 새겠다.”


“쥐난 걸 어떡해? 야옹야옹”


유나가 다리를 보며 야옹거리자 진희가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보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만! 유나야!”


“응”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이야.”


어떻게 보면 유나와 진희는 아주 잘 맞는 친구였다.


약간 이기적이고 쌀쌀한 듯 보여도 결국은 다 들어주는 진희와 친구의 차가운 말에 크게 상처받지 않는 유나는 환상의 궁합이었다.


“가자!”


“응”


진희의 팔에 매달린 유나가 질질 끌리듯 걸어갔다.


산을 다 내려가고, 기숙사 초입으로 들어가던 둘은 은색 봉고차가 스치고 지나가자 얼어붙듯 멈췄다.


“나 저 차 알아.”


진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 뭐라고?”


유나가 소리지르며 묻자 진희가 유나의 입을 막았다.


“좀 조용히 좀 해”


“아! 애가 왜 이래?”


유나가 진희의 손을 밀려고 반항하지만 진희의 힘이 더 셌다.


“눈치 더럽게 없는 유나야!”


“욱욱욱”


진희의 깡마른 손이 유나의 입을 틀어막아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전에 히치 하이킹하던 애들 데려갔다는 차 있지?”


유나가 간신히 진희의 손을 벗어나 입 주위에 선명하게 찍힌 손자국을 문질렀다.


“뭐?”


크게 나오려던 소리가 진희의 손을 보자 잦아졌다.


“히치 하이킹?”


“왜? 예전에 음악과 학생들 실종됐잖아.”


“아직 못 찾았다고 했지?”


“응”


“근데 넌 왜 경찰한테 얘기 안 해?”


“괜히 위험해지기 싫으니까.”


“그래도 그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거 아냐?”


“그렇긴 하지.”


“그래. 아는구나.”


“그때 개네들 데려갔다는 그 차랑 같은 차야. 분명히.”


“번호 외운 거야?”


“내가 천재니? 잠깐 보고 번호를 어떻게 외워?”


“난 또”


유나가 살짝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양이 똑같으니까 의심해보는 거지.”


진희는 진지한 얼굴로 유나를 똑바로 쳐다 봤다.


“가자!”


“어디로?”


유나가 질색했다.


“일단 따라가 보자.”


진희의 의지가 불타올랐다.


“장난해?”


“나 지금 진지한데.”


“장난하냐고? 내 다리가 버틸 수 없어.”


“누가 그래? 버틸 수 없다고?”


진희가 주먹을 쥐자 유나가 뒤로 물러났다.


“왜 그래? 무섭게?”


진희는 유나의 팔을 힘껏 잡아 팔짱을 꼈다.


“너 이런 거 싫어하지 않았어?”


유나가 말하자 진희가 고개를 저었다.


“필요할 때는 해야지.”


“지...지금이 필요할 때야?”


유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묻자 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


“아아악!”


“조용히 해!”


“읍”


진희의 손맛을 본 뒤라 유나는 입을 꼭 닫았다.


질질 끌리듯 도착한 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여기 온 거야?”


유나가 진희를 쳐다봤다.


역시 진희는 대단했다. 유나를 거의 들다시피 끌고 순식간에 기숙사까지 온거였다.


식당 뒤편에는 보란 듯이 봉고차가 서 있었다.


진희가 용감하게 차로 다가갔다.


“뭐가 있어?”


의외로 유나가 소심하게 거리를 두고 물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자세히 봐봐”


진희가 멀찍이 서 있는 유나를 봤다.


“뭐냐?”


“뭐가?”


“넌 왜 안오는데?”


“망봐야지.”


“뻥 뚫린 곳에서 무슨 망이야?”


“그래도 이런 거 영화에서 보면 한 명은 망 보던데?”


“일단 이리 와 봐”


“무서운데”


중얼대며 유나가 조금씩 다가가는데 검은색 승용차가 들어오는게 보였다.


“숨어!”


유나가 소리치자 진희는 본능적으로 차 아래로 몸을 숨겼다.


다리 아프다던 유나도 어느새 진희와 같아 숨었다.


검은 승용차는 은색 봉고차 옆에 나란히 주차했다.


“헉!”


유나가 스스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승용차 문이 열리더니 혼자 운전해 온 듯 이사장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검은 재킷을 걸친 이사장은 이전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자연스럽게 식당 뒤편으로 가서 벽을 누르자 벽이 열리며 엘리베이터가 나타났다. 주변을 슬쩍 둘러본 이사장이 안으로 들어가자 벽이 닫히며 사라졌다.


유나는 그제야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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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첫사랑 23.02.23 15 0 10쪽
» 상희 23.02.09 14 0 10쪽
47 다시 찾은 거기. 23.01.12 15 0 10쪽
46 그날 이후 22.12.22 14 0 9쪽
45 로맨스 22.12.15 18 0 9쪽
44 써클 22.12.08 14 0 9쪽
43 존의 비밀 22.11.24 21 0 9쪽
42 2학기의 시작 22.11.17 18 0 9쪽
41 이. 사. 장 22.11.10 18 0 10쪽
40 차원의 문 22.11.03 17 0 9쪽
39 진실 22.10.27 16 0 9쪽
38 사라졌다! 22.10.24 16 0 10쪽
37 붉은 문 22.10.06 20 0 9쪽
36 삼각관계? 22.09.29 17 0 9쪽
35 비밀 회동 22.09.26 21 0 9쪽
34 살과의 전쟁 22.09.22 16 0 10쪽
33 우린 너무 달라요. 22.09.19 19 0 10쪽
32 어리석은 선택 22.09.15 22 0 10쪽
31 요즘사람 나중사람 22.09.08 21 0 11쪽
30 끊어낸다는 것 22.09.01 22 0 9쪽
29 머니 22.08.29 21 0 10쪽
28 이사장과의 우연한 만남 22.08.25 24 0 10쪽
27 태준과 영웅 22.08.22 24 0 11쪽
26 농가 22.08.18 24 0 10쪽
25 이상한 절 22.07.25 27 0 11쪽
24 프로 민폐녀 22.07.21 20 0 11쪽
23 불편한 동거 22.07.18 27 0 10쪽
22 MT 2 22.07.14 21 0 10쪽
21 MT 22.07.11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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