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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156
추천수 :
17
글자수 :
227,543

작성
22.12.2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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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그날 이후

DUMMY

똑. 똑. 똑.


책상을 두드리며 창밖을 보는 유나의 눈이 커졌다 작아졌다 를 반복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뭐 이제는 하늘에서 뭐가 내려와도 익숙할 것 같았다.


바닥에서 솟아났는지. 빨간 빛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하도 보다 보니 익숙해졌다.


‘쟤는 우산 들었네.’


‘비 올 건가 보다.’


‘아! 은색 머리 쟤도 저기서 나왔구나!’


“쟤는 사진과 정재네. 정재?”


자리에서 일어난 유나가 창문에 붙어 섰다.


내가 알고 있는 재학생 중 누가 저기서 나왔는지 궁금해졌다.


책상을 뒤져 노트를 찾아냈다.


‘무슨 정재더라? 이정재? 박정재? 정정재? 모르겠다.’


그냥 사진과 정재라고 썼다.


명단을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하는 김에 시간도 적어볼까?


오늘은 8시에 열렸고, 어제는 오후였는데.


“뭐해?”


샤워하고 나온 소리 언니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며 물었다.


묻긴 했지만 크게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연신 얼굴에 로션을 두드리며 같이 창밖을 힐끔거렸다.


유나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언니 저거 보여?”


“뭐?”


가뜩이나 큰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뜬 소리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유나가 본 것들은 사라졌다.


잔디밭과 건물이 조용히 있었다.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뭐가 보인다는 거야. 네가 너무 못 먹어서 헛 게 보이는 거 아냐?”


“분명히 있었는데.....”


“얼굴 살 빠진 거 봐.”


소리의 손이 유나의 볼을 잡고 이리저리 돌렸다.


“언니 벌써 나가?”


“데이트. 새벽 데이트 너무 낭만 있지 않아?”


“8시도 넘었는데, 무슨 새벽 데이트?”


“8시면 꼭두새벽이지.”


“아오! 시끄러워! 잠 좀 자자!”


은숙이 언니가 버럭 하자 둘은 어깨를 움츠리고 가만히 있었다.


요즘 은숙 언니가 예민한 시기라 조심해야 했다.


소리가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옷장으로 가고 유나는 창쪽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다시 빨간 써클 위로 사람들이 나타났다.


“언니! 언니!”


은숙이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


“왜?”


소리가 소근대면서 다가왔다.


유나가 손으로 밖을 가리키자 둘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뭐? 너 진짜 헛 게 보이는 거 아냐?”


“이상하다.”


“혹시 신령님 소리 같은 것은 안 들려? 할머니 목소리나 아니면 아이 목소리.”


“언니 무섭게 왜 그래?”


소리의 눈빛이 변했다.


“내가 무서워?”


순간 예전 남자친구가 무섭다고 해서 헤어졌다며 울던 소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아니! 절대 아니야!”


유나가 양팔을 들어 손을 저었다.


소리는 미심쩍은 듯 눈을 흘기며 책상으로 가 아이라인을 들었다. 끝까지 유나를 흘겨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치볶음밥 위의 계란을 숟가락으로 톡 터뜨리자 노란색 물이 차르르 흐르면서 입맛을 자극했다.


유나의 입안 가득히 침이 고였다.


저절로 숟가락이 향했고, 순간 다른 숟가락이 유나의 것을 때렸다.


“네 꺼 먹어!”


진희가 독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먹자!”


“그러게. 아침부터 무슨 단팥죽이야?”


“시킬 때는 그게 땡겼지. 같이 먹자!”


“나 팥 싫어해!”


“야!”


갑자기 유나의 어깨가 작아졌다.


뒤에서 들리는 영식의 목소리에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그날 이후 영식이는 유나를 멀리했다.


아니 피하는 것 같았다.


나도 뭐 그날 실수한 거라 짜증나지만 쿨 하게 넘기려고 했는데 영 신경에 거슬렸다.


“야! 나도! 나도 미팅 끼워줘.”


“너 지난번 음악과 민지랑도 정리 안된 거 아냐?”


“아냐. 다 정리됐어.”


“이거 이거 완전 카사노바네.”


흥! 칫! 뽕! 이라고!


유나의 얼굴이 빨개졌다.


알고는 있었지만 확인 사살 당하는 기분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진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영식의 시선도 유나를 향했다.


“야! 너 고작 김치볶음밥 때문에 삐진 거야? 알았어. 알았어. 한 입 먹어.”


“나 먼저 갈게.”


“야! 너 진짜 이러기야?”


진희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손도 대지 않은 단팥죽을 그대로 보내고 밖으로 나오자 영식이 따라 나왔을 것 같았다.


조금은 기대하고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더 초라해진 기분이었다.


조금 더 기다려볼까? 하는 마음을 먹자마자 진희가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어왔다.


“실망한 눈친데?”


“뭐가?”


“영식이 아니라서.”


“아니거든”


“맞거든”


“티나?”


“너무”


“어쩌지?”


“할 수 없지 뭐. 원래 러브는 못 감추는 거야.”


“경험자야?”


“간접경험”


“됐다”


“그래. 가서 방송 준비하자!”


걸어가는 유나를 스치며 영식이 지나갔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저 새끼 뭐야?”


유나의 입이 거칠어졌다. 마치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다.


“너 차인 듯. 큭큭”


진희가 놀렸다. 유나는 더 모욕적이었다.


“차였어?”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주변에 누가 있는지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길가 벤치에서 정재가 일어났다.


교내 벤치는 다 정재의 침대인 듯 싶었다.


“들었냐?”


“들었어.”


오늘따라 다들 말이 짧았다.


“참! 맞아!”


아침에 본 정재가 생각났다.


“나 할 말 있어.”


“대타는 질색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리?”


“너 차였다고 막 아무 데나 들이대고 그럼 안된다.”


“장난해? 나도 취향이란 게 있어.”


정재의 시선이 영식을 향했다. 조금 창피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취향이 그렇구나.”


가던 영식이 멈췄다. 유나의 숨도 같이 멈췄다.


정재가 유나에게 다가오자 영식의 고개가 살짝 유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유나는 애써 정재에게 관심을 돌렸다.


“뭔데?”


“뭐가?”


정재는 세상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 아 나! 네가 할 말 있다며.”


“참! 맞다!”


“뭔데?”


“잠깐 앉아봐. 아니다. 편의점에서 커피라도 살까?”


“뭐, 그러던지.”


그러면서 정재는 옆 벤치에 다시 누웠다. 눈치가 그리 빠르진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유나는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선배 옆에 자리 있어요? 자리 비었냐고요.”


유나가 레쓰비 커피를 내밀며 장난을 치자 정재가 정색하며 쳐다봤다.


“방금 찼어.”


순간 유나의 볼이 뜨거워졌다.


정재가 커피를 들고 벤치에 비스듬히 앉아 딱하고 캔을 따서 내밀자 유나가 기계적으로 받아 자기 것을 내어 주었다.


“생각보다 매너 있네.”


“몰랐어?”


꿀꺽꿀꺽 넘어가는 커피와 함께 굵은 목젖이 꿀렁댔다.


유나의 시선이 목에서 정재의 얼굴로 가면서 눈이 마주쳤다.


“넌? 넌 커피를 원 샷하냐?”


민망해진 유나가 말하자 정재가 탁! 하고 캔을 바닥에 내려놨다.


“본론”


“응?”


“너 요즘 어디 아파? 뭐가 자꾸 응? 이야? 할 말 있다며.”


“참! 참! 참!”


유나가 머리를 콩콩 쥐어박으며 고쳐 앉았다.


“나 아침에 이상한 거 봤는데.”


“뭘 봤는데?”


“너!”


“나?”


“응”


“어디서?”


“저어기. 기숙사 앞인데. 그게 말이야. 땅에서?”


“땅에서?”


“뭐라 해야 하지? 빛에서...”


“빛에서?”


“아! 모르겠다.”


유나는 정재를 바로 보고 앉았다.


“그게 말이야. 요렇게 요렇게 생긴 빨간 써클같은 데서. 이렇게 이렇게 막 사람들이 나왔거든.”


유나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다. 벌떡 일어나며 몸으로 설명했다.


정재는 재미있다는 듯 유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공연을 구경하는 듯이.


“그랬구나.”


“장난 아니고. 요렇게 요렇게 막 나왔다니까.”


유나가 다시 일어나며 설명하자 정재의 커다란 손이 유나의 머리 위로 왔다.


귀여워 죽겠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다가 싱긋 웃으며 한마디 하고 일어났다.


“봤구나!”


그대로 걸어 나가는 정재를 유나는 멍 하니 쳐다봤다.


“뭐지?”


“뭐지?”


진희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자 유나가 놀랐다.


“언제 나온 거야?”


“넌 영식이야? 쟤야? 알고 보면 은근히 바람둥이야.”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진희가 정재를 흉내 내며 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우웅. 난 요런 느낌 좋더라.”


유나의 어깨가 아래로 떨어졌다.


“모르겠다.”


체념한 목소리로 말하는데, 우당탕탕!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유나와 진희의 시선이 동시에 그 쪽으로 향했다.


은색 쓰레기통이 스스로 일어나는 듯 하더니 뒤에서 영식이 고개를 숙인 채 숨듯이 뒤로 도망갔다.


“저 아이는 원래 저렇게 모자랐니?”


“조금 그랬는데. 많이 그러네.”


유나와 진희는 중얼대듯 대화했다.


진희가 먼저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방송국으로 걸어 들어갔다.


생각난 듯 뒤를 돌아보며 유나에게 소리쳤다.


“다시 생각해봐. 암만 해도 좀 전에 캔 커피가 나은 것 같아.”


그대로 서서 쓰레기통을 쳐다보는 유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쓰레기통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것인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쿡쿡대며 계속 올라오는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들어갔던 진희의 얼굴이 다시 나왔다.


“남자 보는 눈 하고는.”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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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이후 22.12.22 15 0 9쪽
45 로맨스 22.12.15 18 0 9쪽
44 써클 22.12.08 14 0 9쪽
43 존의 비밀 22.11.24 21 0 9쪽
42 2학기의 시작 22.11.17 18 0 9쪽
41 이. 사. 장 22.11.10 18 0 10쪽
40 차원의 문 22.11.03 17 0 9쪽
39 진실 22.10.27 16 0 9쪽
38 사라졌다! 22.10.24 16 0 10쪽
37 붉은 문 22.10.06 20 0 9쪽
36 삼각관계? 22.09.29 17 0 9쪽
35 비밀 회동 22.09.26 21 0 9쪽
34 살과의 전쟁 22.09.22 16 0 10쪽
33 우린 너무 달라요. 22.09.19 19 0 10쪽
32 어리석은 선택 22.09.15 22 0 10쪽
31 요즘사람 나중사람 22.09.08 21 0 11쪽
30 끊어낸다는 것 22.09.01 22 0 9쪽
29 머니 22.08.29 21 0 10쪽
28 이사장과의 우연한 만남 22.08.25 24 0 10쪽
27 태준과 영웅 22.08.22 24 0 11쪽
26 농가 22.08.18 24 0 10쪽
25 이상한 절 22.07.25 27 0 11쪽
24 프로 민폐녀 22.07.21 20 0 11쪽
23 불편한 동거 22.07.18 27 0 10쪽
22 MT 2 22.07.14 21 0 10쪽
21 MT 22.07.11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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