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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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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147
추천수 :
17
글자수 :
227,543

작성
22.09.19 18:31
조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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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우린 너무 달라요.

DUMMY

하얀색 벽지에 하얀색 침대시트가 마치 병원을 연상시켰다. 방안에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무서운 장소에 유나는 트렁크와 함께 던져졌다. 베란다 창은 하얀색 블라인드가 밖을 가리고 있었다.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곳에 무슨 배짱으로 들어온 것일까? 내가 알던 영식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뒤부터 영식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날카로운 눈빛 아래 굳게 다문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 싸늘하게 등을 돌리며 유나에게 앞을 내어주지 않았다. 오로지 방 하나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허락되지 않은 듯 거실에 발을 내려놓기도 무안할 지경이었다.


“저..... 저기”


유나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영식은 반듯한 자세로 1인용 소파에 앉아 눈만 유나를 향했다.


“영식아, 아, 저기 너..... 는 뭐 먹고 살아?”


“응?”


영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치켜떴다.


“혹시, 혹시 말인데 뭐, 사람 피 같은 거 먹고 그러는 거야?”


“훗”


내내 꼿꼿한 모습으로 있던 영식이 드디어 웃음을 터뜨렸다. 유나의 마음 한편이 썰물이 지나가듯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아, 이제 살 것 같다.”


“뭐?”


다시 영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나를 향했다.


“너 말인데, 아냐.”


유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보통 이러면 궁금해서라도 뭐냐고 따라붙을만한데 영식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이상한 서류 뭉치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쟤가 원래 저리 학구적인 아이였나? 유나는 얼굴만 영식인 모르는 사람과 있는 듯 해 불편했다.


“저기”


다시 영식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뭐 너를 뱀파이어 이런 거라 의심해서 그런 게 아니라”


유나가 우물거렸다.


영식이 벌떡 일어나 유나에게 다가오자 본능적으로 유나가 뒷걸음쳤다. 검은색 싱크대 (이게 말이 안 된다. 세상에 검은 싱크대는 태어나 처음 봤다.)에 등이 닿았다. 팔을 쭉 뻗으니 검은색 냉장고 (이것도 말이 안 된다. 텔레비전 드라마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부엌의 모든 것은 검은색이었다. 방은 하얀색, 부엌은 검은색, 거실도 검은색, 영석이 옷도 검은색, 슬리퍼도 검은색, 텔레비전, CD 플레이어, 소파, 탁자, 커튼까지 검은색이었다.) 에 손이 닿았다.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안이 움푹 패인 냉장고의 손잡이는 쥘 수도 없었다. 점점 다가오는 영석이의 발소리가 귀에서 둥둥 거렸다.


“너!”


영석이 낮은 음성으로 유나를 불렀다.


“뭐?”


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목구멍이 꽉 막힌 듯 헉 대는 숨소리처럼 말이 나왔다.


“너”


영석이 다시 유나를 불렀다. 유나의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뭐? 뭐?”


이제는 제대로 된 소리가 나왔지만 영석의 손이 유나의 손에 닿자 무릎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고 만지지 않아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게 열감으로 느껴졌다.


영석은 유나를 일으킬 생각도 하지 않고 유나의 손이 닿았던 냉장고 문을 열었다. 속에는 오로지 생수와 탄산만 줄 선 병정처럼 나란히 있었다.


“배고프지?”


영석의 나른한 말이 무섭게 들렸다.


“왜? 나 잡아먹게?”


유나가 솔직하게 말하자 영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낄낄낄 배고파 힘 풀린 줄 알았더니 하여튼 엉뚱한 놈이야. 크크크”


그렇게 우습지 않은 말인데 영석이는 배를 잡고 웃다가 나중에는 허리까지 부여잡았다.


“아! 진짜”


눈가의 눈물을 닦아내며 영석이 유나를 반듯이 바라봤다.


“나 눈 높아. 아. 진짜. 크크크크크”


영석은 다시 웃음이 터져 배를 부여잡았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유나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툴툴댔다.


“안다고. 기분 나쁘게. 내 말이 냉장고에도 어디에도 먹을게 하나도 없으니까. 넌 도대체 뭐 먹고 사는 거야?”


“아, 그럼 그렇지. 이제야 내가 아는 유나같네.”


영석이 유나의 머리를 잡고 마구 흔들다가 떡진 머리에서 나오는 기름이 그제야 느껴졌는지 못 만질 것은 만진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아! 너 머리도 안 감냐?”


유나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영석이를 째려봤다.


“너도 좀 생각을 해봐라. 아침에 나 봤잖아. 내가 이도 못 닦았는데, 머리 감을 정신이 있었겠냐? 그나저나 먹을 거 없어?”


“없어.”


“뭐?‘


유나의 눈이 순간적으로 새빨갛게 충혈 된 듯 했다.


“아침 굶어?‘


“난 아침에 커피 한잔이면 되는데.”


“헐 그게 말이라고.”


유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갈 곳을 잃은 듯 당황했다.


“나........ 굶어?”


거의 절망적이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나가자!”


“어디?”


“밥 먹자며.”


영석은 어디서 귀찮은 표정을 감추지 않고 말하다 생각난 듯 빙긋 웃으며 유나를 돌아봤다.


“너 혼자 갈 수 있지?”


“아니.”


“뭐야.”


화가 많이 난 목소리였다.


“내가 여기는 처음이고, 길을 잃거나 그러면 안되는 거고. 뭐 익숙해지면 당연히 혼자 나가겠지만.”


유나가 횡설수설하자 영석이 귀찮은 듯 귀를 후비며 현관으로 바로 갔다.


“우리 올 때 장 좀 보자!”


유나가 헤헤 거리며 말하자 영석이 쏘아봤다.


“너 돈 있냐?”


“아니.”


유나가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아래로 쑥 내려 불쌍한 모양을 만들자 영석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어째 내가 내 발로...... 아, 나 무슨 짓을 한 거니?”


“너무 자책하지 마!”


유나가 영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영석의 쏘아보는 눈빛은 등으로 받아 막았다.


“넌 집에서 밥 안먹어?”


“응 안먹어.”


“너 요리 잘하잖아.”


“응 잘해.”


“근데 왜 요리 안 해? 혹시 먹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당분간은 내가”


하는데 영석이 막아섰다.


“난 집에 음식냄새 나는 게 역겨워.”


“뭐?”


털털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유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나보다. 전혀 달랐다. 깔끔하고는. 그러고 보니 집에 먼지 한 톨 없던 게 생각났다. 모든 게 각진 가구들과 단순함은 영석의 결벽증을 보여주는 거였다.


“소름”


유나가 양 팔에 돋은 소름을 문지르며 영석을 쳐다봤다.


“너 그렇게 안보여.”


“어떻게?”


“깔끔하게.”


“뭐?”


영석이 발끈했다.


“너 진성선배 알지?”


“알지.”


“선배 어떨 것 같아?”


“뭐가?”


“나보다 깔끔할 것 같아?”


“둘이 비슷할 것 같은데.”


“소름”


“왜?”


“어떻게 알았어? 그런데 진성선배보다는 내가 훨 깔끔해.”


“장난 하냐? 그게 사람이야?”


“헐”


유나는 영석의 예리함에 사람이 달라보였다.


“우리 뭐 먹어?”


“커피”


“너 아침에 커피 마셨다며.”


“아직 못 마셨지. 아침마다 가는데 있어.”


“난 밥이 먹고 싶은데.”


영석은 유나의 큰 목소리에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지난번에 갔던 작은 정원이 딸린 커피숍으로 향했다.


“근데 너 책도 보더라.”


유나가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너는 안 봐?”


“나도 보지. 아니 봤지. 무슨 책 아니 서류였던가? 뭐 본거야?”


“그것도 일일이 보고 해야 해?”


“아니 뭐. 그냥 할 말도 없고 하니까.”


갑갑했다. 생각보다 영석이는 편한 친구가 아닌 것 같았다. 앞으로 남은 2주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차라리 기숙사 무서운 언니들이 백만배는 더 편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보고 싶은 것은 지금 이 자리가 너무나 숨 막히게 불편해서일거다.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영석이는 정말 커피만 한 잔 마시고 일어섰다.


“너는 일도 안하지?”


“응”


“그럼 하루종일 집에만 있어?”


“저녁에 헬스장가지.”


“그게 끝?”


“응”


유나는 한숨이 나왔다. 이런 상태로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하는 걸까?


“너는 집에만 있을 거야?”


유나보다 더 답답한 것은 영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잘 지내고 있는데 유나가 들어와 불편하게 한 거니 유나로서는 할 말이 없는 거였다.


둘은 더 무거운 발걸음을 한 채 집으로 향했다.


“너 친구 없니?”


“응. 너는?”


“나도.”


유나는 절망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이지대로 가면서 정리하다시피 연락을 끊었다. 다들 약학과나 사범대로 진학하는 모습이 보기 싫기도 했고, 갑자기 연기를 한다고 하면 다들 비웃을 것 같아 지레 겁먹은 것도 있었다.


“너는 왜 친구가 없어?”


유나가 영석이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귀찮아서. 그러는 너는?”


“그러게.”


둘은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가까웠나 싶게 벌써 아파트 현관 앞에 다다랐다. 순간 유나의 배에서 급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첫 끼에 커피가 장을 놀라게 했나보다. 생각보다 유나가 예민한 성격인 건지도 모르겠다. 이 상황에 아무렇지도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만 일단 유나는 급한 볼일부터 해결해야 했다.


집에 들어가기 싫은지 영석은 더 느릿하게 행동했다. 영석의 손가락 하나하나가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더는 참기가 힘들어진 유나가 뿡 소리와 동시에 문을 발로 박차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들어가는 유나의 뒤에서 영석은 또 코를 잡고 쭈그리고 앉았다.


“아! 진유나 너!”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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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써클 22.12.08 14 0 9쪽
43 존의 비밀 22.11.24 21 0 9쪽
42 2학기의 시작 22.11.17 18 0 9쪽
41 이. 사. 장 22.11.10 18 0 10쪽
40 차원의 문 22.11.03 17 0 9쪽
39 진실 22.10.27 16 0 9쪽
38 사라졌다! 22.10.24 16 0 10쪽
37 붉은 문 22.10.06 20 0 9쪽
36 삼각관계? 22.09.29 17 0 9쪽
35 비밀 회동 22.09.26 19 0 9쪽
34 살과의 전쟁 22.09.22 16 0 10쪽
» 우린 너무 달라요. 22.09.19 19 0 10쪽
32 어리석은 선택 22.09.15 22 0 10쪽
31 요즘사람 나중사람 22.09.08 21 0 11쪽
30 끊어낸다는 것 22.09.01 21 0 9쪽
29 머니 22.08.29 20 0 10쪽
28 이사장과의 우연한 만남 22.08.25 24 0 10쪽
27 태준과 영웅 22.08.22 24 0 11쪽
26 농가 22.08.18 24 0 10쪽
25 이상한 절 22.07.25 26 0 11쪽
24 프로 민폐녀 22.07.21 20 0 11쪽
23 불편한 동거 22.07.18 27 0 10쪽
22 MT 2 22.07.14 21 0 10쪽
21 MT 22.07.11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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