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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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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111
추천수 :
17
글자수 :
227,543

작성
22.08.1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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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농가

DUMMY

드디어 진성 선배가 학교 아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농가를 빌렸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느 할머니 한 분이 지내시다 돌아가시고 버려진지 10년도 더 된 폐가라고 선배가 말해 주었다. 선배는 필시 그 할머니와 만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장담했다. 집들이에 초대 받았지만 조금 꺼림칙한 마음을 피할 수 없었다. 왠지 그 할머니를 유나도 만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두려움이었다.


진희는 선배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차가운 모습만 보이던 예전의 진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유나에게 찰싹 붙어 다녔다. 진성선배와 진희를 양쪽에 붙이고 다니던 지난 시간을 잘 참았다 스스로 칭찬하며 방송국 옆 편의점으로 갔다. 집들이에는 그래도 휴지가 맞지 않을까? 각 티슈와 두루마리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스윽 하고 각 티슈를 집어가는 손을 저도 모르게 눈으로 따라갔다. 누가 가져가니 선택하지 못한 아쉬움이 먼저 밀려왔다. 팔을 따라 얼굴까지 닿으니 진희가 생긋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각 티슈를 흔들었다. 어쩔 수 없이 커다란 두루마리 휴지를 든 유나가 카운터로 진희를 뒤 따라 갔다.


“몇 시에 갈까?”


진희가 먼저 물었다.


“방송국 회의하고 바로 가면 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선배 음식도 못할 텐데 우리 뭐 저녁이라도 챙겨가야 하나?”


“뭐라도 주겠지. 귀찮아.”


‘그치, 귀찮지.’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은 걸어 내려간 것 같았다. 선배 말로는 한 블록쯤 가면 나온다고 했는데, 선배가 말한 교차로의 민트 색 대문 집은 아무리 내려가도 보이지 않았다. 땀은 이미 비 오듯 흘러내리고, 두루마리 휴지가 돌덩어리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집이 있기는 한 거야? 어! 저기 빨간 대문 보인다.”


“민트 색이랬잖아. 저기 아냐.”


“나오기는 하는 거야? 아! 진짜 다시 돌아가는 것도 엄두가 안나!”


“늦었지 뭐.”


“나 지금 눈 엄청 크게 뜨고 있거든. 봐봐!”


“응, 보여,”


“근데 민트는커녕 초록색 대문 집도 안보여. 어? 어............ 보여!”


“나도!”


너무 지쳐서 찾았다는 반가움을 표현할 기력조차 없었다. 보이지 않을 때보다 막상 눈앞에 대문이 보이니 한 걸음 한 걸음이 더 무겁게 움직였다. 간신히 대문 근처에 도착하자 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가 없었다. 아예 드러누워 버릴까 하는데 밝은 민트색의 대문이 빼꼼 열리더니 진성선배가 얼굴만 내밀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유나와 진희가 주저앉은 곳에 시선이 머물자 선배의 얼굴은 꽃처럼 활짝 펴지더니 밖으로 몸을 쑥 내밀고 나왔다. 자그마한 선배의 몸이 좌우로 흔들리며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안 오고 뭐해?”


선배가 둘에게 들어오라 손짓하자 진희는 없던 힘이 생겨난 듯 유나를 버리고 각 티슈를 든 채 선배 품으로 달려들 듯 뛰어갔고, 마지못해 일어난 유나는 어기적대며 무거운 두루마리 휴지를 집어 들었다. 휴지의 바닥은 질질 끌려가며 구멍이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민트색의 대문이 열리자 바닥의 커다란 돌멩이들이 징검다리 마냥 예쁘게 줄지어 있었다. 진성선배 집인데 외관은 깔끔했다. 폐가나 농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리모델링되어 작고 귀여운 황토 방을 연상시켰다. 대문이 있었지만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 잠금장치가 확실한 현관문이 든든히 지키고 있었다. 여기에서 선배 부모님의 재력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선배는 지금까지 돈 없는 척한 재벌가의 딸이 확실해 보였다.


현관문을 열자 넓은 거실이 한눈에 보였다. 시골집답게 창이 액자모양으로 정원을 보여주며 창가에 놓인 하얀 탁자가 분위기를 돋워 주었다. 혼자 사는 집답게 탁자는 동그란 2인용 정도 크기로 작고 귀여웠다. 의자도 딱 2개 마주보고 있어 한 명은 바닥에 앉든 다른 것을 찾아와야 했다. 거실의 한 면은 하얀색 문이 있는 캐비닛이 벽처럼 채우고 있었는데, 선배를 잘 아는 부모님의 배려가 돋보이는 가구였다. 덕분에 거실은 더 넓고 깨끗해 보였다. 물론 얼마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같이 좀 살아봤던 유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선배 방은?”


하는데 선배의 손이 닿은 벽면이 옆으로 밀리며 공주님 방이 짠! 하고 나타났다. 커다란 하얀색 프릴이 가득 달린 침대기둥에는 하늘하늘한 커튼 드리워져 있었고, 창에도 하얀 레이스가 가득한 커튼이 걸려있었다. 유나가 놀란 눈으로 선배를 보자 선배는 어깨를 으쓱하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취향이 나랑 안 맞아!”


“크크크 에이 선배 취향이 그러면 그렇다고 하지”


유나가 놀려대자 진성선배는 얼굴을 찌푸리며 거실로 가 앉았다.


“선배님은 가수잖아요. 그럼 악기 같은 것도 있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이돌에 관심 많은 진희가 물었다. 선배는 진희에게 눈을 찡긋하며 일어나 반대편 벽면을 손으로 밀었다.


전자 피아노와 드럼이 정면에 보였고, 여러 가지 기타가 한쪽 벽에 쭉 걸려있었다. 노래를 녹음할 수 있는 작은 부스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유나는 확신했다.


‘선배는 재벌 집 딸이 틀림없어.’


“선배 저희 배고픈데......”


진희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재벌인데 설마 김밥이나 김치찌개 같은 서민 음식을 내놓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좀 있음 가져 온다고 했는데......."


선배가 현관을 보는 것과 동시에 듣기라도 한 듯 벨이 울렸다.


'딩동'


"왔나 보다."


선배가 웃으며, 문을 열자


철가방을 든 태준이 웃으며, 들어왔다.


'뭐지?'


기대하고 기다리면 보이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툭 툭 마주치는 이상한 놈. 유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왔어?"


진성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태준을 맞이했다.


"유나도 있었네."


태준이 먼저 알은 채를 해주었다.


"오....오빠, 안녕 하세요."


유나가 세상에서 가장 어색하게 인사하자 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태준의 손이 유나의 머리에 가 닿으려는데 진희가 얼굴을 내밀었다.


“뭐 가져왔어요? 어디서 배달 온 거에요?”


해맑은 진희의 말에 태준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리며 유나에게 했듯 똑같이 진희의 머리를 흩뜨렸다. 순간 유나의 얼굴은 굳어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태준은 가져온 철가방을 탁하고 바닥에 내려놨다. 마치 중국집에서 배달온 듯 철가방 문을 위로 올려 속에든 음식들을 내려놓았다.


“뭐, 알바라도 하는 거야?”


“무슨 소리! 이거 내가 직접 요리 한 거야.”


생각보다 태준은 요리 솜씨가 좋은지 그럴싸한 음식들이 차곡차곡 식탁에 올려졌다. 양은 냄비에 든 닭도리탕과 중국집 옛날 그릇 모양의 녹색 플라스틱 그릇에는 골뱅이 무침이 담겨있었다.


“밥은?”


세상 불쌍한 목소리로 진희가 말하자 태준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아이스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파란색과 녹색 꽃무늬가 가득한 스티로폼 속에서 커다란 압력솥과 봉지에 싸인 일회용 그릇들을 꺼내들자 속에는 이제 맥주병들만 가득 남았다.


"옆집 총각, 앞으로도 많이 도와줘."


진성이 웃으며, 반겼다.


"태준 오빠 옆집 살아요?"


진성선배가 손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조~기. 몰랐어? 많이들 놀러 오던데... 둘이 아는 사이 아니었어?"


유나는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알면 알수록, 알면 안 되는 남자인데,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태준은 진성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상차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주 와본 듯 어색함 하나 없이 연습실 문을 밀고 들어가 의자 두 개를 꺼내왔다.


"오빠 여기 자주 왔나 봐요? "


유나가 태준 옆으로 다가가 슬쩍 떠봤다.


"선배 이사 준비할 때부터 자주 도왔지. 이웃사촌이잖아."


또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오빠 여기 살았어?"


"놀러와. 집은 누추해도 운치 하나는 끝내주거든."


"아... 네"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는 유나를 태준은 이상한 듯 쳐다봤다.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니 정말 예전 드라마에서나 보던 폐가 같은 농가가 보였다. 사람이 사나 싶은 정도로 낡은 집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혹시... 오빠 저기 살아?"


유나가 창밖을 가리키자 태준이 싱긋 웃어보였다.


"저~기 살아"


"오빠 가난하구나."


저도 모르게 유나는 속마음을 말하고 말았다.


"응, 나 가난해 ."


쿡 하고 태준이 웃으며 말했다.


"자~ 자. 뭐해? 다들 한 잔 하자"


진성 선배가 언제 따랐는지 맥주잔을 유나 손에 쥐어 주었다. 진희는 벌써 밥을 크게 떠서 입에 넣고 있었다. 이러다 진희가 다 먹어버릴 것 같은 불길함에 유나는 뛰다시피 자리를 잡고 일단 맥주로 목을 시원하게 한 뒤 태준이 만든 닭도리 탕의 감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하면서 매콤한 향이 기분 좋게 입안을 감쌌다.


“대박! 진짜 맛있다.”


유나의 진심어린 말이 태준을 감동시켰나보다.


“내 진가를 알아주는 구나!”


태준은 유나를 덥석 끌어안고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오빠는 꿈이 요리사에요?”


진희가 순수한 얼굴로 질문하자 태준이 고개를 끄덕이다 옆으로 다시 흔들었다.


“요리 잘하는 연기자. 그게 내 꿈이야. 왜 예능 같은데서 음식도 만들고 하잖아. 나 진짜 잘할 자신 있거든.”


“아! 대단해. 역시 오빠는 앞을 내다볼 줄 아는군요.”


진희는 태준에게 엄지를 올려 보여주고는 닭다리를 들어 올렸다. 태준의 음식은 맛있었고, 맥주는 술술 들어갔다. 아무래도 오늘도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자 유나는 고개를 흔들며 맥주잔에게 경고했다.


“나 오늘은 너 이길 거야!”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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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써클 22.12.08 14 0 9쪽
43 존의 비밀 22.11.24 21 0 9쪽
42 2학기의 시작 22.11.17 18 0 9쪽
41 이. 사. 장 22.11.10 17 0 10쪽
40 차원의 문 22.11.03 17 0 9쪽
39 진실 22.10.27 14 0 9쪽
38 사라졌다! 22.10.24 16 0 10쪽
37 붉은 문 22.10.06 19 0 9쪽
36 삼각관계? 22.09.29 16 0 9쪽
35 비밀 회동 22.09.26 16 0 9쪽
34 살과의 전쟁 22.09.22 14 0 10쪽
33 우린 너무 달라요. 22.09.19 17 0 10쪽
32 어리석은 선택 22.09.15 19 0 10쪽
31 요즘사람 나중사람 22.09.08 16 0 11쪽
30 끊어낸다는 것 22.09.01 20 0 9쪽
29 머니 22.08.29 20 0 10쪽
28 이사장과의 우연한 만남 22.08.25 24 0 10쪽
27 태준과 영웅 22.08.22 24 0 11쪽
» 농가 22.08.18 24 0 10쪽
25 이상한 절 22.07.25 26 0 11쪽
24 프로 민폐녀 22.07.21 20 0 11쪽
23 불편한 동거 22.07.18 26 0 10쪽
22 MT 2 22.07.14 20 0 10쪽
21 MT 22.07.11 2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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