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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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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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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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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태준과 영웅

DUMMY

"아우 머리 아파."


아주 옛날 시골 방에서 보던 샛노란 장판이 희뿌옇게 아련했다가 점점 선명해졌다. 바닥 여기저기에 녹색 테이프가 찢어진 곳을 막은 듯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눈은 떴지만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바닥에서 천장으로 눈동자만 돌아갔다. 아이보리 색인가? 원래 하얀색이었는데 변색되어 누렇게 된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뚫어질 듯 하늘을 바라보다 천정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발소리에 유나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쥐.... 쥐..... 쥐?”


언제 그랬나싶게 유나는 펄쩍 뛰어 올랐다. 마치 슈퍼 히어로라도 된 듯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악!”


물컹한 것이 유나의 발에 밟혔다.


‘설마? 쥐? “


“으악!”


유나는 비명을 지르며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옛날의 여닫이문은 유나의 힘에 밖으로 활짝 열렸다. 툇마루 아래로 무거운 머리가 떨어지려는 찰나 등 뒤의 커다란 손이 유나의 옷을 잡아당겨 뒤로 나뒹굴었다.


“아! 진짜 손 많이 가네.”


진심어린 화를 담뿍 담은 목소리였다.


“누, 누구?”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다. 유나는 잘 알고 있었지만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익숙한 목소리의 태준은 팔을 흔들며 아프다는 것을 굉장히 강조했다.


“저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다소곳한 말투로 유나가 고개를 살짝 내리며 조용히 물었다. 태준의 아래로 요가 두 개 깔려 있었다. 방 안에는 한 귀퉁이에 기타가 세워져 잇고, 티비와 옷을 넣어두는 천으로 된 옷장 외에는 이렇다 할 가구도 없었다. 오래된 방안에서는 퀴퀴한 냄새마저 올라왔다. 유나가 손으로 코를 막는 듯 행동 하자 태준은 놓치지 않았다.


“웃기시네. 너 진짜 기억 안 나는 척 하는 거니? 기억이 안 나는 거니?


“제가 무슨 거친 행동이라도 한 것일까요?”


유나는 화들짝 놀란 듯 몸을 뒤로 젖히며 태준을 바로 보지 못했다.


“냄새 안나?”


“네?”


“냄새 안 나 냐 고.”


어렴풋한 기억이. 나지 말았어야 할 기억이 유나의 머릿속에 스물 스물 기어올랐다.


“오빠. 오빠아! 가지 마!”


태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선배 집 대문에서 유나는 매달려 있었다. 태준이 아무리 발로 털어내도 유나의 손에 잡힌 바지는 흘러내리면 흘러내리지 절대 손과 떨어지지 않았다. 진성 선배와 진희가 달라붙어 유나를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유나가 격렬한 발차기로 둘을 밀어냈다.


유나는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우우우우우 욱”


“뱉지마! 유나야. 이러지 말자! 방안은 그렇잖아! 삼켜! 아니 여기 통. 어디 있지? 아! 진짜! 유나야. 조금만 참자! 오빠가 금방 통 가지.......아 악!”


태준의 비명이 귓가를 울렸다. 유나는 바짝 엎드렸다.


“잘못했어요.”


“기억나지?”


태준이 이를 악물었다. 손으로 밖을 가리키자 태준의 윗옷과 바지와 이불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저거. 어떡할 거야? 아니, 진성선배 집들이에 와서 왜 우리 집에다 토를 해?”


“잘못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울고 싶었다.


“꽉! 꽉!”


캔디바를 문 태준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유나에게 얄밉게 말했다. 부채질까지 하며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어디? 아직 제대로 빨리지 않았는데 더 꽉꽉 밟아야지.”


바닥에 발을 내려놓으려던 유나는 예리한 태준의 시선에 바로 들켜서 다시 커다란 고무통으로 들어갔다. 힘껏 발로 이불과 옷을 밟으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을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하필이면 폭염에 마당에서 빨래를 해야 한다. 숙취로 울렁대는 속을 진정할 새도 없이 빨래 지옥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오빠님! 해장국 같은 것은 없는 건가요?”


눈물이 나올 것처럼 애처로운 말투에도 태준은 싸늘했다.


“지금 해장국 말이 나와?”


“죄송합니다.”


‘쾅쾅’


소리가 유나의 말을 삼켰다.


“유나야!”


반가운 목소리였다. 지하세계에 갇힌 채 희망을 잃고 있다 한줄기 빛을 발견한 것 같았다.


“진희야! 나 좀 구해줘.”


“유나야! 무슨 일 있어?”


“살려줘!”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빨리 문 못 열어? 경찰 부르기 전에 빨리 문 열어!”


“아! 정말”


태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일어나 슬리퍼를 끌고나가 대문을 열자 진희가 왈칵 밀치고 들어왔다.


“유나야! 어디 있어? 유나야! 내가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눈물을 쏟아 내릴 듯 처절하게 외치며 들어온 진희는 마당에 우뚝 섰다.


“유나야!”


“진희야! 나 좀 도와줘!”


“뭐하고 있는 거야?”


“그게. 내가 이랬대.”


“본인이 더럽혔으면 본인이 치워야지 당연히!”


어느새 태준이 옆으로 와 진희 손에 캔디 바를 건네주었다.


이제는 진희와 태준이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캔디 바를 빨며 유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여유롭게


‘쾅쾅’


다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진성 선배가 씩씩하게 말했다.


“밥 먹자!”



컵라면 하나로 해장이 완전히 된 것 같았다. 유나는 다시는 술은 입에도 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진희와 선배 집을 나섰다.


“선배님 안녕히 계세요.”


역시 둘은 예의 바른 후배였다. 따라 나온 태준이 손을 흔들고 자신의 집 방향으로 걸어가자 진희와 유나는 다시 올라야 할 긴 오르막을 바라봤다.


맞은편에서 까만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옆으로 와서 서더니 창을 내리고 손을 흔들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유나의 목소리에 걸어가던 태준이 돌아봤다. 유나와 차를 번갈아 보던 태준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진성 선배 집에 갔다 오는 거야?”


“선배님 아셨던 거예요?”


“선배랑 친하지.”


영웅 선배는 여느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긴 무슨 일이야?”


태준은 어느새 유나 옆으로 와 경계하듯 영웅에게 말했다.


“자식! 너 보러 왔지. 주차하고 금방 올게.”


“안녕히 가세요.”


진희와 유나는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뭘 또 고개를 90도로 숙여? 난 또 쇼핑몰에 앞에 있는 인사하는 인형인 줄 알았네.”


“뭐래.”


유나는 투덜대듯 말하고 진희 손을 끌고 앞으로 나왔다. 영웅은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반대편에서 걸어왔다.


“왜? 왜 이렇게 급해?”


진희가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자 유나가 검지 손가락을 입에다 대고 진희에게 조용히 하라 주의를 주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고 영웅과 태준이 걸어가는 것을 확인하자 얼른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


“뭐하는 거야?”


진희가 말하는데 유나가 진희의 입을 막고 손가락으로 다시 조용히 하라 표시했다.


“왜?”


진희가 유나의 손을 떼어내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따라가자!”


유나도 손가락으로 태준과 영웅이 가는 방향을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왜?”


진희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고 이끌었다.


“전에 네가 영웅 선배 봤다고 했잖아. 나도 좀 이상한 게 있어요.”


유나가 진희 귀에 입을 갖다 대고 과하게 소곤거리자 진희가 침을 털어내듯 귀를 틀고 벅벅 긁었다.


“알았으니까 귓속말 금지!”


진희도 소근 대며 유나에게 말했다. 귀를 틀며 유나도 손가락으로 오케이 표시를 해보였다.


시골길이라 몸을 숨기는 게 쉽지 않았다. 태준은 영웅을 집에 들이기 싫은 듯 마을 정자로 데려갔다. 가는 길은 논과 외길밖에 없어 몸을 숨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마침 지나가는 경운기가 보여 유나와 진희는 전력 질주로 경운기 뒤를 따라갔다. 덜덜덜 소리가 워낙에 커서 이 동네에 사는 태준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영웅은 태준에게 집중하느라 다른 것은 보지 못했다. 정자 근처에는 나무가 많아 다행히 숨을 곳이 충분했다. 포복해서 근처까지 간 둘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너 계속 이렇게 살 거야?”


“이렇게 뭐? 너처럼 누추하게 안 살아서?”


영웅은 호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태준에게 건넸다. 받아든 태준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자 태준은 말없이 깊이 빨아내 회색 연기를 뿜어냈다.


“뒤치다꺼리 하는 거 지겹지도 않냐?”


“전혀. 난 돈이 많고, 넌 돈이 없잖아.”


“참 그러네.”


“이사장님이 더 데려오라 하셔.”


“나 같은 건 왜?”


“너 일 잘하잖아. 싸움도 잘하고.”


영웅은 씩 웃으며 태준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었지만 태준의 표정은 장난스럽지 않았다.


“그딴 거 안 해.”


“왜?”


영웅은 다시 태준을 돌아보며 말했다.


“영하 때문에?”


“그 얘긴 하지 마랬지?”


“그래서 여기로 온 거 아니야?”


“아니야.”


“야! 멀쩡하게 서울 대 다니던 놈이 시골구석에 있는 예술학교에 왔는데 그냥 왔다고?”


‘헐 선배가 서울 대였어?’ 유나는 나오는 감탄사를 손으로 막았다. 진희도 놀란 듯 눈이 토끼 눈처럼 동그래졌다.


“능력 있는 놈이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려고 하는데?”


“능력이 있지도 않고, 지금 사는 거 구질구질하지도 않아.”


“어쨌든 너한테 딱 없는 게 돈이고, 이사장님이 그거는 알아서 해주시니까 잘 생각해봐. 사실 여기가 비밀유지만 잘 하면 이만한 곳도 없지 않아? 졸업 후에도 보장해주고.”


“보장? 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잠시 영웅 선배는 대답하지 못했다.


“당연하지.”


“거기는 수렁 같은 곳이야.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너도 빨리 정신 차려!”


영웅 선배는 태준 선배를 설득하러 갔다가 되려 설득당한 모양새였다. 역시 영웅 선배의 매력은 백치미다. 유나는 잠시 딴생각에 빠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간다!”


태준은 할 말 다 끝났다는 듯 손을 흔들고 시골길을 따라 걸어갔다. 영웅은 멍하니 가는 태준을 바라보다 고개를 젓고 다시 주차한 방향으로 급하게 걸어갔다.


“도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야?”


진희가 알 수가 없다는 듯 말했다.


“내말이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은 같은데............”


잠시 고민하던 유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 머리 아파. 나 속이 다시 울렁거리는 것 같아. 얼른 가자!”


진희를 부여잡고 기숙사로 향하는 유나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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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첫사랑 23.02.23 14 0 10쪽
48 상희 23.02.09 13 0 10쪽
47 다시 찾은 거기. 23.01.12 14 0 10쪽
46 그날 이후 22.12.22 14 0 9쪽
45 로맨스 22.12.15 17 0 9쪽
44 써클 22.12.08 14 0 9쪽
43 존의 비밀 22.11.24 21 0 9쪽
42 2학기의 시작 22.11.17 18 0 9쪽
41 이. 사. 장 22.11.10 17 0 10쪽
40 차원의 문 22.11.03 17 0 9쪽
39 진실 22.10.27 14 0 9쪽
38 사라졌다! 22.10.24 16 0 10쪽
37 붉은 문 22.10.06 19 0 9쪽
36 삼각관계? 22.09.29 16 0 9쪽
35 비밀 회동 22.09.26 16 0 9쪽
34 살과의 전쟁 22.09.22 14 0 10쪽
33 우린 너무 달라요. 22.09.19 17 0 10쪽
32 어리석은 선택 22.09.15 19 0 10쪽
31 요즘사람 나중사람 22.09.08 16 0 11쪽
30 끊어낸다는 것 22.09.01 20 0 9쪽
29 머니 22.08.29 20 0 10쪽
28 이사장과의 우연한 만남 22.08.25 23 0 10쪽
» 태준과 영웅 22.08.22 24 0 11쪽
26 농가 22.08.18 23 0 10쪽
25 이상한 절 22.07.25 26 0 11쪽
24 프로 민폐녀 22.07.21 20 0 11쪽
23 불편한 동거 22.07.18 26 0 10쪽
22 MT 2 22.07.14 20 0 10쪽
21 MT 22.07.11 2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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