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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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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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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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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
추천수 :
17
글자수 :
227,543

작성
22.08.2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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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머니

DUMMY

“너 삐삐 번호 뭐야?”


방학을 앞두고 유나가 진희에게 물었다.


“아직도 삐삐 써? 핸드폰으로 바꾼 지가 언젠데?”


진희가 가방에서 커다란 전화기를 꺼내 보여주었다.


“대박! 너 완전 부자구나!”


유나는 신기한 눈으로 진희의 전화기를 쓰다듬어 보았다. 얘기로만 들었지 실물로 영접하기는 처음이었다. 학교에서는 구석에 박아 두었던 유나의 귀여운 노랑 삐삐를 방학을 맞아 다시 꺼내왔는데 진희의 럭셔리한 전화기 앞에서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할머니가 연락 안 되는 걸 너무 싫어하셔서.”


진희의 얼굴에서 광이 나는 게 역시 있는 집 딸들은 다르구나 싶었다.


“방학 때 뭐할 거야?”


믿기 힘들었지만 이상한 학교에서 맞지도 않은 옷을 입고 어색해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름방학이라니 학교생활의 4분의 1이 빠르게 지나갔다. 학점관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다른 학생들이 워낙에 공부를 하지 않아 늘 A는 유나의 자리였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애써도 힘들었는데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가 여기에서 유나였다.


“난 할머니 모시고 여행 다녀오려고. 너는?”


“난 알바 뛰어야지. 어디 좋은데 없을까?”


“꼴랑 두 달 누가 써주니? 그냥 미래를 위해 투자해.”


진희가 아무렇지 않게 맞는 말을 해주었다.


“미래를 위해 뭐해?”


“뭐, 성형을 한다든지. 외국어 공부를 한다든지. 아니면 연예기획사에 오디션이라도 봐야지.”


유나가 놀라서 물었다.


“연예기획사 오디션? 너도 봐?”


“방연과에 와서 오디션은 당연한 거 아냐?”


진희와 연예인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었다. 유나는 또 희한한 세상에 자기만 똑 떨어진 외로움이 느껴졌다.


“같이 보던지.”


역시 진희는 츤데레다. 유나는 감격의 눈빛을 진희에게 마구 쏘아 주었다.


“프로필 사진은 있겠지?”


“뭐?”


“사진”


“증명사진이야 당연히 있지.”


해맑은 유나의 말에 진희가 한숨을 쉬었다. 커다란 가방을 뒤적이더니 앨범같은 것을 꺼내 유나에게 보여주었다.


“대박!”


진희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였는데, 많이 달랐다. 메이크업을 해서인지 눈빛 때문인지 정말 연예인 사진을 보는 것 같아 유나는 감탄했다.


“이거 어떻게 찍는 거야?”


진희는 앨범을 받아 다시 가방에 넣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원래 그런 캐릭터가 아닌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 줘야 하네.”


“진희야아앙”


“그만!”


유나의 아양에 진희가 질색했다.


“나는 서울에서 찍었는데, 넌 뭐 처음이고 하니까 여기 스튜디오에서 찍어도 될 것 같아. 이것도 다 경험치가 나오는 거야.”


“진희 언니. 많이 비싸요?”


유나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 비싸게 찍으면 비싸고, 또 싸게 찍으면 싼 거 나오고 그런 거지.”


유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부모님께 받은 용돈은 머리하느라 벌써 다 써버렸고, 방송국에서 나오는 장학금도 거의 바닥나고 있었다. 돈 나올 구멍이라고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안되면 유진이한테 SOS라도 쳐야할 판이었다. 처량했다. 고작 생각하는 게 고등학생 동생에게 저금통이라도 털어달라고 해야 한다니.


하지만 세상은 유나에게 돈 나올 구멍을 찾아 주었다. 방송실 문이 쾅 하고 열리며 음악과 정수 선배가 종이를 흔들었다.


“알바 뛸 사람!”


유나는 그게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저요!”


일단 손을 들고 봐야 했다.


“네가?”


정수 선배는 약간 놀란 얼굴로 천천히 종이를 건넸다.


“이게 뭐에요?”


유나가 해맑은 얼굴로 물었다.


“광고 메들리. 요즘 티비 나오는 거 싹 다 녹음하는 거야. 광창과 교수님 의뢰로 다해서 10만원.”


“대박! 저 딱 그 돈이 필요했는데”


유나의 웃음은 여기까지였다.


“아 진짜! 그 느낌이 아니라니까.”


“빠르고 간편한 한국통신 시외전화”


“아 진짜. 너 박치니? 몇 글자 된다고 박자를 못 맞춰.”


유나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빠르고 간편한 한국통신 시외전화”


“반 박자 늦잖아. 말귀 진짜 못 알아듣네.”


정수 선배 입에서 막 험한 말이 나오려는데 눈치 빠른 서리가 얼른 곁으로 다가왔다.


“선배. 이거 어차피 자료인데 제가 마무리해도 될까요? 저도 콘솔다루는 거 연습 좀 할 겸..... 먼저 들어가세요.”


정수 선배는 1초 정도 고민하는 척 했다가 바로 서리에게 자리를 넘겼다.


“광창과 교수님 학생 자료로 쓸 거라 아마추어 티 나도 괜찮을 거야.”


나름 합리화 까지 시키며 한마디 더하는 것 까지 잊지 않았다.


“내일 아침 9시까지 교수님 자리에 갖다 놓으면 돼.”


‘탕’ 하고 문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서리는 거칠게 선배를 욕했다.


“아주 지랄도 풍년이야. 꼴랑 10만원 주면서 온갖 척은 다하고, 그치 않아?”


“괜찮겠어? 목소리 연기하는 건줄 몰랐어. 내 주제에 무슨 연기를 한다고.”


유나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자 서리가 짜증을 냈다.


“너도 참 그렇다 저 선배랑은 엮이질 말아야 해. 지도 못하면서 늘 사람 까대기 좋아하는 거 알면서 ‘저요’는 뭐니?”


“내가 좀 돈이 필요해서.”


유나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그만 하고 빨리 가자! 이거 몇 개야? 밤새도 안 되겠다.”


“서리야. 진짜 고마워. 내가 밥 살게.”


“돈 없다며 좀 아껴 써! 나까지 이게 무슨 고생이니.”


서리가 차갑게 한마디 하며 마이크 볼륨을 올리자 녹음실 밖으로 온에어 불이 환하게 켜졌다.


“아! 토 나올 거 같아.”


서리의 얼굴이 하해 졌다.


“나도”


녹음실에서 기어 나오는 유나는 다리의 힘이 다 풀려 있었다. 방송국 창밖으로 밝은 해가 올라와 아침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 밤 꼴딱 샜네.”


유나가 커다란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말했다. 서리도 자리를 옮겨 유나 옆에 쓰러졌다.


“너 한 번만 더 이런 거 한다고 해봐 내가 절대 안도와 줄 거야.”


“그래도 하루에 10만원이면 괜찮지 않아?”


유나가 끝났다는 안도감에 헤헤거렸다.


“장난해?”


서리가 정말 화난 듯 정색하자 유나가 서리의 팔에 머리를 비볐다. 언제부터 유나에게 이런 애교가 있었는지 사람은 살면서 정말 변하나 보다.


“9시까지 네가 갖다놔. 저거.”


서리가 손으로 테이프를 가리키고 커다란 책상에 기어 올라가 벌러덩 누워버렸다.


“너 내가 돈 아끼랬지?”


밤을 새워도 아직 젊어서인지 유나와 서리는 학교 아래 함박집에 앉아 막걸리를 시켰다. 실내 포장마차라고 해야 할지 천막 하나 쳐진 한식을 파는 소박한 가게였다. 여름은 천막이지만 겨울이면 비닐로 둘러싸여 더 분위기가 좋다고 선배들이 얘기했었다. 김치에 막걸리파인 서리라 메뉴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김치찌개 하나에 막걸리였다.


“아껴서 여기 왔잖아.”


유나는 여전히 헤헤 거렸다. 서리는 그냥 언니 같고, 믿음직스러운 친구였다.


“근데, 넌 왜 김치에 막걸리만 먹어?”


“그게 왜 궁금해?”


“맥주도 있고, 소주도 있고.”


“그냥 먹던 거 먹는 게 편해.”


말을 하며 서리는 막걸리를 흔들었다. 양은그릇에 가득 담긴 하얀 막걸리가 오늘따라 더 시원하게 보였다.


“넌 방학때 뭐해?”


유나가 짠을 하며 물었다.


“병아리랑 놀아야지.”


숟가락으로 김치찌개를 푹 퍼서 막걸리 마신 입속에 가득 넣으며 서리가 말했다.


“병아리 키워?”


“쿡”


서리가 웃었다.


“응, 병아리 키워.”


“시골 살아?”


해맑은 표정으로 유나가 묻자 서리가 깔깔대고 웃었다.


“병아리 내 남친 이름이야?”


“남친 있었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차갑고 도도한 서리에게 병아리 남친이라니.


“왜 이상해?”


“병아리가 별명이면 디게 귀여운가 보다.”


“쿡쿡 귀엽지. 내가 중학교 때부터 사겼으니까 벌써 몇 년이야. 내가 키웠지 뭐.”


유나는 서리가 더 대단해 보였다.


“사진 같은 거 안가지고 다녀?”


서리가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면 더 이상할 것 같았지만 유나가 물었다.


“내가 그런 거 갖고 다닐 거 같아?”


하면서 서리는 지갑을 꺼내 짧은 머리 남자의 증명사진을 꺼내 보였다. 얼굴이 살짝 발그레 해진 것 같았다. 유나가 보기에.


“병아리? 잘생겼다.”


“병아리가 키도 좀 커. 185 정도.”


“대박! 얼굴도 하얗고, 네가 꼬신거야?”


“뭐래?”


서리가 휙 하고 사진을 뺏어가 지갑에 다시 넣었다.


“얘가 고백했거든.”


“대학생이야? 병아리?”


“청주에서 사범대학 다녀. 학교 선생님이 꿈”


“근사하다. 넌 다가졌네.”


“내가 다 가졌나?"


무심히 말하던 서리는 한마디 툭 덧붙였다.


"난 부모님이 안계셔”


“엉?”


갑작스런 고백에 유나는 당황했다. 늘 똑똑하고 차가운 모습이 근사해보인 서리였는데, 아픔이 있어 저리 성숙했나 싶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사고로 두 분이 같이 돌아가셨어. 외동이었고, 오갈 데 없어 삼촌 집에서 자랐거든. 은근히 반항한다고 중학교 때부터 술도 좀 마셨고, 그때 병아리가 나 잡아줬어. 아니면 비행 청소년 될 뻔 했지.”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듯 서리는 자신의 얘기를 했다. 이럴 때는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어설픈 위로도 어울리지 않고, 대단하다 감탄하는 것도 어색하고, 유나는 고민했다.


“으악!”


옆 테이블에서 비명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우당탕탕 테이블이 쓰러졌다. 유나와 서리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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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써클 22.12.08 14 0 9쪽
43 존의 비밀 22.11.24 21 0 9쪽
42 2학기의 시작 22.11.17 18 0 9쪽
41 이. 사. 장 22.11.10 18 0 10쪽
40 차원의 문 22.11.03 17 0 9쪽
39 진실 22.10.27 16 0 9쪽
38 사라졌다! 22.10.24 16 0 10쪽
37 붉은 문 22.10.06 20 0 9쪽
36 삼각관계? 22.09.29 17 0 9쪽
35 비밀 회동 22.09.26 20 0 9쪽
34 살과의 전쟁 22.09.22 16 0 10쪽
33 우린 너무 달라요. 22.09.19 19 0 10쪽
32 어리석은 선택 22.09.15 22 0 10쪽
31 요즘사람 나중사람 22.09.08 21 0 11쪽
30 끊어낸다는 것 22.09.01 21 0 9쪽
» 머니 22.08.29 21 0 10쪽
28 이사장과의 우연한 만남 22.08.25 24 0 10쪽
27 태준과 영웅 22.08.22 24 0 11쪽
26 농가 22.08.18 24 0 10쪽
25 이상한 절 22.07.25 27 0 11쪽
24 프로 민폐녀 22.07.21 20 0 11쪽
23 불편한 동거 22.07.18 27 0 10쪽
22 MT 2 22.07.14 21 0 10쪽
21 MT 22.07.11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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