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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으로

게임 속 마법사 영주는 신박한 아이디어로 승부한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태월영
작품등록일 :
2021.03.15 19:45
최근연재일 :
2021.04.09 21:00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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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글자수 :
160,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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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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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술마시다 눈떠보니

DUMMY

“이런 시발! 이딴 병신 같은 나라는 콱 망해버리라지!”


“헉! 세, 세이러스 도련님!”


누군가의 손이 내 양팔을 세게 붙잡았다.


고목 껍질을 연상케 하는 쪼글쪼글한 손. 그것은 언젠가 보았던 어머니의 손을 연상케 했다.


그야말로 날 키우시느라 고생만 죽도록 했던 삶을 증명하는 흔적. 그런데도 참 따뜻하다고만 느꼈었는데.


지금 이 손도 그 못지않은 모습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난 이런 나이 든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손을 가진 사람과 술을

마시고 있진 않았는데?


분명 나와 술을 마시던 사람은 생전 처음 만난 내 또래의 남자로 기억한다. 그것도 나와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잘린 남자였지.



그래.


난 오늘 회사에서 잘렸다. 직장상사인 정 과장이 큰 업무 미스를 내놓고 나한테 그걸 뒤집어씌워서 한 방에 보내버렸거든.


다니던 회사는 야근이나 철야를 밥 먹듯이 하는 게임회사였다.


그래도 나름 이름 값있는 회사라서 꾸역꾸역 참아가며 다녔는데 이런 식으로 날아가 버릴 줄이야.


난 그 울분을 풀기 위해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그 사람이 합석하게 된 거다.


똑같은 처지라 의기투합이 잘됐지.


분명히 그랬는데···.


그 남자는 어디 가고 처음 보는 어르신이 있단 말인가?


하얀색 레이스 스카프가 달린 정장을 깔끔하게 갖춰 입고 외눈 안경을 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내 양팔을 붙잡고 있다.


심지어 한국 사람이 아니라 서양인.


혹시 내가 이미 취해있어서 원래 어르신이었는데 또래로 착각하고 있었나?


“도련님! 정신이 드십니까?! 그러니까 왜 그리 술을 많이 드셔가 지고선···밖에 누구 없는가?! 당장 도련님께서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가져와라. 어서!”


어르신이 문 쪽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자 문이 여닫기는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누군가 나간 모양이다.


그나저나 술 들어가면 외국어가 한국어처럼 들리는 효과도 있었나? 그런 얘긴 들어본 적 없는데.


영어 두드러기가 있는 내가 어째서인지 서양인 어르신이 말하는 걸 똑똑하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현 상황에서 이걸 술 때문이라고 하지 달리 생각할 게 뭐가 있겠나?


아, 다 좋은데 술 때문에 안 그래도 머리가 빙빙 도는데 저 고함이 머릿속을 더 울리게 한다. 마치 징을 머릿속에 넣어놓고 쳐대면 이런 느낌 아닐까 싶은데.


‘그런데 처음 보는 청년에게 도련님이라니 그건 또 뭔 소린지.’


처음 보는 노인이 날 놀리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x같은 상사 때문에 잘려서 기분도 안 좋은 날에 말이지.


“어르신. 아무래도 취하셔서 정신이 없으신 것 같은데 얼른 일어나셔서 집에나···.”


‘그럼 그렇지. 이 어르신도 술 엄청나게 자셨잖아?’


눈앞 어르신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헛소리 하실 만하지.


빼박이네. 빼박.


다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건 왜 내가 이불 속에 있느냐는 거였다.


들고 있던 소주잔이랑 꼬치구이는 어디로 가고?


내 양손이 꽉 붙들고 있는 것은 평생 본 적도 없는 금실로 수놓아진 근사한 이불이다. 심지어 엄청나게 폭신폭신한 데다가 두텁고 처음 맡아보지만 좋은 향기까지 났다. 불면증 걸린 사람도 한방에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거 뭔가 잘못됐다. 아니, 잘못되다 못해 이상이 있어.’


사람과 손에 쥐고 있는 것도 모자라 장소까지 바뀌어 있다.


난 분명 포장마차에 있는 빨강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데 그 포장마차 대신 있는 건, 내 집의 몇 배인지 짐작도 안가는 평수의 방이오, 빨강 플라스틱 의자 대신 있는 건 더블베드를 두 개는 붙여놓은 크기의 침대라니.


“도련님, 아무리 술이 덜 깨셨다지만 이딴 나라 망해버리라는 말씀을 하시다간 자칫 잘못하면 반역죄로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내가 내 나라 욕하고 정치인 욕하는데 반역? 목이 달아나?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어르신. 지금이 무슨 과거 유럽의 절대왕정 시대도 아닌데 별소릴 다 하시네요. 나이도 있으신 데 적당히 드셨어야죠.”


서양인 어르신이니 조선 시대라고 하는 것보다 저리 말하는 게 이해하기 쉬울 터.


그러나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그건 내 희망 사항이었나보다.


“유럽? 취했다니? 도련님께선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흰 엄연히 황제 폐하가 다스리시는 베르디아 제국에서 사는 제국민입니다. 도련님은 그 제국의 백작이신 에턴 백작님의 막내 아드님이신 세이러스 에턴님이고요!”


왕정 시대도 아닌데 뭔 이상한 소리를 하느냐고 했더니 왕도 아니고 그보다 한술 더 떠서 황제가 있다고 한다.


그것 뿐이 아니지. 제국이 있고 난 그곳의 백작 아들인 세이러스 에턴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도대체 그게 누군데? 누군데 이 영감님은 나를 자꾸 그 이름으로 부르는 거야?


난 능력 없는 낙하산 과장 새끼 때문에 오늘부로 퇴사 당한 조은선이지 그런 외국식 이름의 소유자가 아니란 말이다!


그때였다.


‘이런 상황에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은선씨는 바라는 것 같은 것 없습니까? 가령 다시 태어나면 어떤 데서 태어나고 싶다거나 그런 거요.’


‘글쎄요. 생각해본 적이 없던 문제긴 한데···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게임이나 소설 속 현실에서 세상을 주도하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으려나. 막상 말하고 보니 헛웃음밖에 안 나네요.’


‘오, 그런 삶을 원하시고 계셨군요. 좋습니다. 그럼 은선씨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끔 도와드리죠.’


갑자기 머릿속에서 기억의 파편들이 영상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틀림없이 포장마차에서 같이 술 마시던 사람과 대화했던 내용이다.


설마···그 사람이 했던 말이 현실이 됐다고?


****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난 갑작스러운 환경변화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처음엔 꿈이겠거니 아니면 아직 술이 덜 깨서 그런 거로 생각했다.


당연하지. 포장마차에서 술잔이나 기울이며 낙하산 새끼를 씹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리됐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세이러스 에턴? 베르디아 제국?


‘난 퇴사 당한 31살 조은선이고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남자인데?’


베르디아인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인지 듣도 보도 못한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에서 사는 세이러스 에턴이 아니라고!


개 같은 일을 당해서 홧김에 나라 욕은 했다지만 그래도 태어나서 자랐으며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곳이다. 거기서 하루아침에 이런 곳에 떨어져 그런 얘길 듣고 ‘아, 그렇구나.’하고 바로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퀴블러로스라는 정신의학자가 한 말이 있다. 사람이 갑작스레 믿을 수 없을 만한 충격적인 말을 들으면 처음엔 부정부터 한다던가?


그래서 스스로 뺨을 후려친다거나 소리를 지른다거나 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그것 뿐이 아니다. 목욕한답시고 여름에도 안 쓰던 찬물을 갑작스레 뒤집어쓰기도 했지.


또 잠을 자고 일어나면 깨겠거니 하는 생각에 시간을 가리지 않고 자고 일어나는 행동을 반복하기도 했고.


여러 사람이 걱정스러운 눈치를 보내고 첫날 봤던 노익장은 절절히 날 말렸으나 난 들은 채도 안 하고 계속 강행했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또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내가 보는 풍경과 사람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집보다 훨씬 큰 평수의 방을 가득 채운 고급스러운 가구와 장식물들. 아로마요법 추종자라도 있는지 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향기를 생성하는 몇 개의 굵은 향초.


그리고 며칠 전에 봤던 외눈 안경을 쓴 노년 간지 어르신과 오색빛깔 찬란한(?) 머리카락 색을 가진 수많은 하녀.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게다가···.


“세이러스님. 집사님께서 의사 선생님을 보내셨어요.”


걱정스러운 투로 말하는 이 오렌지빛 단발머리의 소녀는 첫날 마주친 영감님과 더불어 가장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소녀. 메이드 복을 입고 있는 것을 봐선 고용된 하녀겠지.


뒤이어 나타난 의사 양반은 간단한 자기소개 후, 날 진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의사 양반. 내 상태가 어떤데?


“음,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잔뜩 받으신 상태에서 갑작스레 폭음하셔서 몸이 좀 상하신 것 같습니다. 특별히 약을 드실 건 없지만 한동안 술은 멀리하시고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 의사가 돌팔이라고 생각하게 된 건 오후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으아악!”


물을 마시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도중 난 그대로 비명을 토해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마나 아팠는지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있는 힘껏 누르다 못해 머리를 쿵쿵 소리가 나게 바닥에 박기까지 했다.


아니. 약 먹을 필요도 없이 별거 아니라며! 이게 어떻게 별것이 아니라는 거야?!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끌을 가지고 내 두개골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면 딱 이 정도 고통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선 현대의 기억과 지식이 이 세상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과 뒤섞이는 경험을 해야 했다.


가족관계, 교우관계, 역사, 사회체계, 정치 등등 그야말로 어떤 것이 먼저고 뒤인지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과정은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고통도 고통인데 기분이 진짜 별로였다. 아니, 별로이다 못해 소름이 끼쳤다.


영화에서 나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방법을 이용한 기억조작 수술과 같은 것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내 의사와 관계없이 이쪽 기억 1kg, 저쪽 지식 1kg 막 이런 식으로 비율을 맞춰 특수한 개량 저울에 달아져서 억지로 섞였다고 상상하면···.


그 두통은 단시간에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날을 시작으로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계속 이어졌으니까.


그렇게 오늘로 6일째가 됐다.


‘고통 뒤에는 깨달음이 있다더니.’


현실 부정을 하던 나는 어느샌가 이 상황에 대해 수용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수용이라기보다 세이러스도 조은선도 둘 다 나인데 뭐가 문제지? 하는 생각이 더 정확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좀 그렇긴 한데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위화감이 없는 자연스러운 상태랄까?


덕분에 내가 누구고 여긴 어디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가 모두 정리가 됐다.


일단 난 포장마차에서 분명히 처음 보는 남자와 의기투합하여 술을 마셨다. 그때 그 남자가 예의 그 소원에 관한 질문을 했고 난 대답을 했다.


대답을 들은 그는 그런 삶을 내가 살 수 있게끔 도와주겠다고 하며 엄지와 중지를 이용해 손가락을 튕겼지.


그리고 난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이곳에서 깨어난 거다. 정황상 어딜 봐도 내가 이곳에 있는 건 그 남자가 원인일 확률이 높았다.


이상한 건 그 남자의 얼굴이 기억이 안 난다는 것 하나.


‘그 사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신의 자리에서 잘려서 내려온 신이라도 되나?’


자신도 잘렸다고 표현했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어지는 또 다른 생각.


그럼 대한민국에 있던 조은선이라는 남자로 살던 삶은 전생이 된 거라고 봐야 하는가?


사실 어떻게 된 건지 중간기억이 없어서 나도 잘 모르니 결론을 내릴 순 없었다. 만약 죽은 게 아니라면 길고도 긴 꿈을 꾸고 있기라도 한 거라고 봐야겠지.


‘만약 내가 죽은 거라면 틀림없이 눈뜨고 죽었을 거야.’


내 나이 24살 때, 돌아가신 아버질 대신해 31살 될 때까지 어머니와 나이 차가 나는 동생을 부양했다. 그러다 보니 그 나이대에 한 번쯤은 해보는 연애라거나 여행이라거나 그런 건 꿈도 못 꿨다.


충분히 억울해할 만하지 않겠어?


물론 내가 결정한 일이고 최선을 다해서 살았으니 후회는 없다. 그래도 억울한 건 억울한 거지.


남겨진 어머니와 동생이 걱정은 되지만 일이 이리됐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이제는 이곳에서 세이러스로서 어떻게 살아나갈지를 생각해야 했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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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화제(1) +1 21.04.07 106 3 13쪽
25 숄즈베르 공작 +1 21.04.06 145 2 13쪽
24 거래(2) +1 21.04.05 142 3 12쪽
23 거래(1) +1 21.04.04 149 3 13쪽
22 고향집 방문(3) +1 21.04.03 161 4 13쪽
21 고향집 방문(2) +1 21.04.02 161 4 12쪽
20 고향집 방문(1) +1 21.04.01 174 5 12쪽
19 아스탈의 수작(4) +1 21.03.31 146 5 13쪽
18 아스탈의 수작(3) +1 21.03.30 141 4 12쪽
17 아스탈의 수작(2) +1 21.03.29 178 5 13쪽
16 아스탈의 수작(1) +1 21.03.28 146 4 12쪽
15 광물을 캐다. +1 21.03.27 169 4 13쪽
14 관저보수와 시찰(2) +1 21.03.26 193 3 13쪽
13 관저보수와 시찰(1) +1 21.03.25 198 4 13쪽
12 전투 후 막간 +2 21.03.24 206 3 13쪽
11 세이러스와 50인의 도적(2) +1 21.03.23 249 6 13쪽
10 세이러스와 50인의 도적(1) +1 21.03.22 207 6 13쪽
9 펠메리온 마을에 도착하다. +1 21.03.21 234 6 13쪽
8 집을 떠나다. +1 21.03.20 253 7 13쪽
7 부모의 마음 +1 21.03.19 265 5 13쪽
6 소문과 변화 +2 21.03.18 324 7 12쪽
5 관짝빵 승리. +1 21.03.17 373 7 13쪽
4 권능과 마법 그리고 특성적용. +1 21.03.16 378 7 13쪽
3 어둠의 여신 칼리와 망나니 둘째놈 +1 21.03.15 423 8 13쪽
2 에이지 킹덤즈 시스템 +2 21.03.15 520 11 13쪽
» 술마시다 눈떠보니 +2 21.03.15 626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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