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비공식 영토, 안동으로(3)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안동으로 향하던 수송차량이 전부 멈춰 섰다. 차에 타고 있던 이능력자들은 모두 도로로 나와 전투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20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도로를 꽉 메웠다.
도로는 폭이 10m 정도로 좁았고, 좌우는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생물체들에게 기습을 당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이런 곳에서 기습을 받았다면 옴짝달싹 할 수 없어 상당히 위험했을 테니.
이지후가 차에서 내리자 40대로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다가왔다. 레벨 6의 이능력자이자, 이번 수송의 총책임을 맞고 있는 김창성이었다.
지역해방전선에서 비공식영토로 물자 및 보충부대를 수송할 때는 보통 레벨 7의 이능력자를 총책임자로 임명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총책임자, 김창성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근엄한 군인 같은 사람이었다. 이지후는 상확파악을 위해 그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표정변화가 크지 않아 확실치는 않았으나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치고는 표정과 행동에 여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창성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지후 씨, 둥근 갈색 난쟁이 종족이 이동하는 게 포착됐습니다. 남동쪽으로 향하고 있고, 목적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우할 거 같다고 말씀하셨군요. 저희를 습격하러 온 게 아니라 단순한 이동이네요.”
역시 여유가 있는 게 맞았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지후는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으나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김창성이 말했다.
“일단 저 언덕으로 올라가 정찰부터 했으면 합니다.”
이지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창성은 시야강화 능력이 있는 이능력자 한 명, 통신이 가능한 이능력자 한 명을 데리고 오른 편에 있는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의 높이는 30m 정도며, 기울기는 그리 가파르지는 않아 차량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 듯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차를 타지 않고 바로 언덕을 향해 내달렸다. 비탈길을 오르는데, 단거리 육상 선수들이 평지를 전력 질주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그럼에도 호흡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지후가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둥근 갈색 난장이 종족이라서요.”
“그렇습니다. 그다지 강한 종족은 아니니...”
수송로를 가로지르려는 둥근 갈색 난쟁이 종족은 이 일대에 서식하는 이생물체들이다. 개체 당 평균 크기는 1m 20cm 근처인데,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형 이생물체들 중에서는 체구가 가장 작은 축에 속했다.
나이트급 같은 등급이 높은 개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이 노말(Normal)급이나 솔져(Soldier)급 정도고, 센튜리온급이 간간히 석여 있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가장 약한 노말급이라고 할지라도 총으로 무장한 보병 3~5명 쯤은 문제없이 상대할 수 있으니까. 센튜리온급이 나타나면 군에서 주력으로 사용하는 전차조차도 쉽사리 파괴되곤 했다.
언덕의 정상에 올라서자 이생물체 군단이 흙먼지 폭풍을 일으키며 질주하는 게 보였다. 말 그대로 질주였다. 속도가 승용차가 달리는 정도는 됐으니.
다들 얼굴은 둥그런데 주둥이는 개과 동물처럼 길었고, 갈색으로 된 털이 나 있었다. 손에는 인간처럼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날이 있는 무기는 아니라 뭉뚝한 방망이 같은 것이었다.
둥근 갈색 난쟁이 종족이 확실했다.
그 광경을 보던 네 사람은 동시에 인상을 썼다. 숫자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지후가 김창성에게 말했다.
“1000마리가 훨씬 넘을 것 같은데요. 당황스럽네요.”
“엄청난 수군요. 안동을 수십 번을 오갔지만 저 종족이 이번처럼 대규모로 이동하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그 둘은 시야강화 능력이 있는 이능력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즉각 대답했다.
“정확하게 1565마리입니다. 나이트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개체는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었다.
같은 등급이라도 종족마다, 개체마다 편차가 심해서 일반화시킬 수는 없으나, 통상적으로 나이트급 한 마리를 격퇴하기 위해서는 레벨 7의 이능력자가 레벨 5이상의 이능력자 4명 을 데리고 한 조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더 레벨이 낮은 이능력자들로 조를 구성한다면 당연히 훨씬 많은 수의 이능력자가 있어야 한다.
지역해방전선은 레벨 7이상의 최상위 이능력자를 총 열일곱 명 보유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 수송부대에는 단 한 명밖에 없다.
이지후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이트급이 없다고는 해도... 센튜리온 급이 300마리는 있을 거 같네요.”
“그렇습니다. 정면으로 부딪치기에는 저희 병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수송병력은 레벨 6의 이능력자 25명, 레벨 5의 이능력자 60명, 레벨 4의 이능력자 100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능력자들의 강함을 비교하기 위해 만들어진 간단분류법에 따르면, 한 단계 위의 이능력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아랫단계의 이능력자가 세 명이 필요하다. 즉 여기에는 레벨 4의 이능력자가 532명이 있다고 보면 된다.
이생물체의 강함도 마찬가지였다. ETS에서 정한 이생물체의 등급은 [노말급-솔져급-센튜리온급-나이트급-치프틴급-엠페러급]으로 나뉘는데, 간단분류법에 따르면 이생물체들 역시 노말급이 세 마리가 있어야 솔져급 한 마리를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레벨 3의 이능력자 한 명은 노말급 한 마리와 대등하다고 평가 받는다.
물론 간단분류법은 여러 가지 중요한 속성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방법이라 실전에서는 무의미한 것이 사실이었다. 다만 전력을 평가하기 위한 기본단계에서 사용하기는 편했다. 정밀한 평가를 위해서는 여기에 변수를 추가해서 계산한다.
숫자상으로는 전력 차이가 상당했다. 정말 기습을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할 정도였다. 정면으로 충돌했어도 패하지는 않았겠지만 피해자가 속출했을 것이다.
그런데 의아한 점이 있었다. 이지후가 즉각 입을 열었다.
“저들의 이동경로. 안동의 방위라인에 아슬아슬하게 걸칠 거 같습니다만...”
“맞습니다. 안동에서는 이생물체들이 방위라인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은 그냥 놔두기로 결정했습니다.”
“하긴 안동에서 무리하게 공격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저 놈들이 안동을 그냥 지나친다면, 우리도 굳이 건드릴 필요는 없겠죠?”
전투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지후의 지론이었다. 특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과 지형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이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무의미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지후는 이생물체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생물체들이 안동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겠죠?”
“그럴 겁니다.”
이생물체들의 목표가 안동을 침략하는 것이 아니라하더라도,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는 병력이 보이는데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리는 만무했다.
“어이구! 저들의 목표가 우리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네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지후가 고개를 돌리자 지금 막 언덕을 올라오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눈이 날카로운 남자였는데, 나이는 50대 후반은 되는 것 같았다.
가슴에 황금색 봉황무늬가 있는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황금색 봉황무늬는 신대한민국 정부의 상징이다. 그는 정부의 감시관이었다.
지역해방전선에서 비공식영토의 도시에 지원을 나갈 때는 정부의 감시관 한 명 이상과 동행해야 한다는 법령이 존재했다.
감시관, 강영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다. 이지후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마음에 안 들어. 이런 상황에서 웃고 있다니. 꿍꿍이가 훤히 보이네. 작전에 관여할 생각이야.’
이지후의 예상대로였다. 강영철은 예의바른 척 가장하며 속내를 드러냈다.
“국가를 위해 해방전선분들의 능력을 발휘할 때군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감히 여쭙고 싶습니다.”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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