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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연재수 :
2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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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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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11
글자수 :
2,157,900

작성
21.02.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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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글자
21쪽

결착의 시간 #12

DUMMY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건지 포이부스가 제대로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하로나스 님! 올'쏜 님! 에우레테 님! 드모'우레스 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포이부스가 하늘을 바라보며 울부짖었지만 답은 없었다.

지금 만신전의 신들은 다들 눈코 뜰새 없이 바빠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지금 저 하늘 위에 정렬된 불타오르는 별자리들을 움직이는 다른 신들이 훼방을 놓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포이부스는 진심으로 두려움에 떨면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외쳤다.



"알고로스 님! 프레두스 님! 이난나 님! 킴푸루샤 님!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마호메트님 윌리스 캐리어님! 이그니 님! 흐어어엏어어엉!"



포이부스는 정말로 서럽게 울면서 자신의 신들과 성현들과 현자들을 찾았다.

그 모습을 본 포이부스가 섬기지 않는 신들은 다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은 편안한 얼굴을 하면서 화신으로 강림한 이들은 자세를 유지한 채 웃음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다들 기립박수를 치면서 감동을 눈물을 흘렸다.

포이부스는 그 사악한 박수소리에 몸을 떨었고 그 때 신들 사이에 섞여있던 이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는 게 보였다.



[동네 신들! 저놈 좀 보소! 지 애비를 그렇게 싫어하던 놈이 지 애비를 찾으면서 엉엉 우는 걸 보니 저 후레자식의 최후가 머지 않았소이다! 이대로 놈을 둘러싸고 영상 클립을 따면서 끝장을 냅시다!]



앞으로 나선 이는 다름이 아니라 포이부스에게 오랜 원한이 있는 발라테아였다.

자기 나라가 공격받고 있는 와중에 복수를 행하는 그의 얼굴에는 기쁨과 만족과 평온함이 엿보였다.

발라테아의 말을 들은 신들은 굳은 의지와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포이부스를 감싼 채 합창을 하기 시작하였다.



[포이부스여 올라가라!]


[떠도는 어두움이여 올라가라!]


[포이부스여 승천해라!]


[떠도는 어두움이여 승천해라!]



신들이 주문을 외우면서 포이부스는 점점 지상으로부터 멀어져갔다.

팔다리를 허우적대고 이미 다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마력을 끌어모아서 뭔가 주문을 외워보지만 들고 있는 지팡이의 던전핵과 은회색 구슬이 잠깐 반짝하고 빛날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봉인! 봉인!'



포이부스는 신조차 봉인할 수 있는 은회색 봉인구로 어떻게든 신들의 화신을 봉인해보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직접 몸에 닿지 않기에 은회색 구슬은 잠깐 빛이 날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돼! 이럴 수는 없어! 이 포이부스가! 치킨을 부활시킬 자가! 치킨을 모두에게 나눠준다는 목표가! 내 구원이! 이런 곳에서 이렇게!"


-카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포이부스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아있는 마력과 신성력을 끌어모아 어떻게든 천상의 영역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다.

어째서인지 거대한 용의 매우 즐거운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절망과 공포에 물든 포이부스의 정신은 그것에 대해 제대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우오오오오!"


[오? 마력도 바닥난 놈이 이걸 버텨?]


[아직 반신도 안된 놈이 쓸데없는 짓을! 스스로의 신성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신적 존재 뿐이다! 반신(진)은 얌전히 운명을 받아들여라!]


[포이부스여 올라가라! 포이부스여 승천하라!]



포이부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 간신히 끌려가는 속도를 줄였지만 신들은 그런 포이부스의 필사의 저항을 비웃으며 계속 주문을 외웠다.



'이건 말도 안돼! 내가!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포이부스는 죽음의 위기도 아닌데 눈앞에 주마등처럼 과거의 일들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본적도 없는 친부모 대신 백부이자 그가 섬겼던 부족의 족장이었고 주술사 스승인 웃는 팔뚝의 얼굴이 가장 먼저 나타났다.

웃는 팔뚝은 뭔가 말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떨구고 사라졌고 그 자리에 둘째 딸 파나와 셋째 딸 레지나가 스쳐지나갔다.

스쳐지나가는 포이부스의 딸들은 마지막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원숙해진 채 드레스와 왕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고 아버지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럴 수는 없어!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이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이!'



잠깐 눈을 깜빡인 순간 그의 앞에는 불알친구인 많이 먹는 자와 멀리보는 수염의 얼굴이, 그 다음으로는 사브리테, 루델루냐, 카온, 아테리온, 칼가둔하람, 추마추스탁, 헤브로하둔, 코두라슬락 같은 친구들이 손짓하는 게 보였다.

그건 이리로 오라는 손짓이 아니라 이쪽으로 오지 말라는 손짓이었다.

포이부스는 친인척과 지인들의 응원에 힘입어 마지막 남은 마력을 끌어모으며 외쳤다.



"그만!"



정교하게 짜여진 마력의 그물이 포이부스를 끌고가는 인력과 충돌하여 끌려가는 것이 멈추며 포이부스의 몸이 덜컹거렸지만 채 0.5초도 되지 않아서 인력이 포이부스의 마력의 그물을 그대로 밀고 들어와 다시 몸을 끌고가기 시작하였다.



"안돼! 안돼애애애애! 누가 저 좀 구해주세요!"



결국 모든 시도가 전부 실패하고 끌려가듯이 하늘로 날아가던 포이부스는 눈물로 젖은 입에서 단말마를 내뱉었다.



"엘바! 카론! 헤카! 나 좀 살려줘! 모르테스! 오리스!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즈뮤! 내 말 들리면 당장 구하러 와줘!"


[떠도는 어둠이여 올라가라! 포이부스여 승천하라!]



포이부스는 신들에게 자비를 구걸하지 못하고 가족과 부하들과 동료를 부르짖었지만 그의 귀를 때리는 것은 신들의 비웃음이 담긴 주문 뿐이었다.

이제 저 하늘 위에 포이부스를 데려가기 위해 신들의 영역으로 통하는 문이 생겨났고 포이부스의 몸은 그 문으로부터 불과 3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까지 올라갔다.

가족, 부하, 동료, 신 그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없었고 포이부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포이부스의 절망에 물든 마음 속에서 포이부스 스스로도 생각조차 하지 않던 이름이 튀어나왔다.



"아드보카투스 님! 제발!"


딱!



그 순간, 세상이 멈춰버렸다.

포이부스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도, 그를 보고 실컷 웃고 있던 신들도, 하늘을 날아가는 각다귀도, 땅에서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잡초도 전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멈췄고 포이부스는 시간이 지나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한쪽 눈을 살짝 떳고, 주변이 전부 멈춰서 고요해진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양옆으로 돌려봤다.


한순간 포이부스는 자신이 종종 전투 중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상태에 돌입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의 얼굴 바로 옆에 방금 전까지 그가 흘리던 눈물이 허공에 순간접착제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고정되어 있는 걸 보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았다.



'시간이 멈췄어? 그럼 설마!'


짝짝짝짝짝!



지금까지 포이부스 앞에서 다른 신들의 시간마저 멈출 수 있었던 건 단 한 명 뿐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이 맞다고 축하해주는 것처럼 바로 옆에서 박수소리가 들려왔고 고개를 돌린 포이부스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투명한 발판이 있는 것처럼 걸어오는 진실의 신을 볼 수 있었다.



[자, 내 이름을 불렀구나? 예전에 약속한 대로 말이야]



그렇다, 포이부스는 눈앞에 있는 이 악신에게 진명을 알려주는 대가로 포이부스가 절실하게 그의 힘을 필요로 할 때 포이부스를 지켜주고 도움을 주기로 했었다.

그러나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기에 포이부스는 진짜로 죽을 것 같았던 순간에조차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불렀다는 건 지금 포이부스가 얼마나 궁지에 몰려있는지 알려주는 것이었다.



"위대한 신이시여! 한붠만 살여주세여!"



너무 급하게 말하느라 혀가 꼬여서 발음이 이상했지만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허나 진실의 신은 잘 안들렸다는 듯이 귀에 손을 대고 다시 말해보라는 듯이 행동했고 포이부스는 단 한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또박또박 자신의 뜻을 전달하였다.



"잘 생기고 위대하고 전능하신 진실과 저승과 지옥의 주인이시여! 당신의 은혜를 입은 보잘 것 없는 탄'메펫이 감히 그대에게 간청합니다! 살려주세요! 제 가족들을 제외하고 그 어떤 것이든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대가를 치르겠다고? 성급하구나 포이부스. 대체 얼마나 궁지에 몰렸으면 그 신중하던 네가 이런 소리를 할까?]



포이부스는 순간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가족을 제외하고 그 어떤 걸 대가로 치르던 지금보다는 낫다고 절망하며 말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내가 원하는 건 너는 물론이고 신들도 줄 수 없으니 이번에는 못 들은 걸로 해주마. 응? 묻고 싶은 게 있다는 얼굴인데?]


"저에게 예지몽을 꾸게 하신 게 아드보카투스 님 아니십니까? 이게 제 운명인 겁니까?"


[예지몽은 무슨... 정해진 운명은 없다. 그저 너의 선택에 따라 미래가 변할 뿐이다]



진실의 신의 답변에 포이부스는 한 순간 울컥해서 뭐라고 할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가며 말했다.



"그럼 다른 걸 여쭙겠습니다. 저 같은 치킨 밖에 모르는 빡대가리는 위대하고 지혜로우신 진실의 수호자께서 말씀하신 '사용할 대상을 착각하지 말라'라는 답변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를 족집게처럼 뽑아내는 1타 강사보다도 전능한 아드보카투스 님께서 저 같은 미천한 버러지에게 감히 지혜를 내려주십사 요청드립니다."


[아니, 넌 잘했다. 만약 그때 베스코스를 봉인했다가 해방시킨 게 아니라 뒤도 안 돌아보고 발라테아나 다른 신을 봉인했으면 넌 분명 다른 신들한테 갈기갈기 찢겨져서 영혼까지 소멸했을 테니까]



만약 발라테아를 봉인해버렸다면 다른 신들이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에 포이부스는 섬뜩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뒷통수를 지나 이마로 내려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화신으로 강림했다가 필멸자한테 줘 터지고 역소환되면 그냥 명예의 전당에 박제당하는 놀림거리에 불과하지만 네가 만들어낸 봉인구는 정신까지 같이 가둬버리는 물건이라 봉인된 발라테아의 본체는 의식없는 식물인간처럼 되었겠지. 신의 본체에 간섭해서 완전히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낸 필멸자를 그 자리에 있던 신들이 가만히 내버려뒀을 것 같냐? 신 대신 베스코스를 풀어주는 용도로 봉인구를 쓴 건 정말 완벽한 정답이었다 대부분의 신들은 그게 투명화 장치였다고 생각하고 있고 감이 좋은 몇몇 신들도 투명화가 아니라 다른 방법을 썼다고 생각할 뿐 그게 자신을 봉인할 수 있는 물건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드보카투스는 포이부스를 칭찬하고 있었지만 그 말은 어쩐지 포이부스가 소멸을 피할 수는 있어도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포이부스는 초조한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아드보카투스에게 물었다.



"그건 이제 INT(지력)와 WIS(지혜)가 부족한 저도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려주세요! 제발요!"



그러자 진실의 신은 어째서인지 시선을 포이부스의 눈에서 가슴팍으로 옮기고는 이걸 말해줘도 되나 하는 얼굴로 고민하다가 상쾌한 웃음을 보이면서 대답하였다.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단다 포이부스. 잘 생각해봐라. 이난나와 카르바노그를 떠올려봐라. 그래도 모르겠다면 그냥 여기서 끝이지 뭐. 일이 잘 풀리든 잘 안 풀리든 뒷처리 정도는 내가 해주마. 얼마 후에 다시 보겠지만 미리 인사하마! good evening, good night and good moning!]


"그냥 가지마요 날 떠나지마!!!!"



포이부스는 진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진실의 신을 불렀건만 진실의 신은 알아먹지 못할 소리나 하면서 떠나버렸다.

그리고 진실의 신이 떠나버리자 그곳에는 다시 포이부스를 데려가려는 천상의 문과 그 앞에서 천천히 끌려가며 비명을 지르는 포이부스만 남겨졌다.



[응? 뭔가 이 녀석 비명이 중간에 스킵된 거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아무리 이놈이 엿먹는게 즐거워도 그렇지 너무 즐거워서 순간적으로 기억상실이라도 왔냐?]



포이부스는 이제 문에 얼굴이 닿고 있었다.

그러나 포이부스는 팔다리를 뻗어 문틀을 붙잡고 어떻게든 빨려들어가지 않으려고 저항했고 신들은 그 광경을 좋다고 촬영해서 클립 영상으로 가공하고 있었다.

포이부스는 그렇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태어나서 가장 빠른 속도로 생각을 하였다.



'내가 이미 답을 안다고? 그러면 이런 꼴을 안당했을 텐데 무슨 궤변이야?! 아니야, 저분이 저렇게 남을 엿먹이기는 건 좋아해도 거짓말은 안하는 신이야! 그럼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아니, 그보다 왜 내 가슴팍을 보고 있던거지? 내 가슴에 뭔가 해결책이라도 있는 건가? 그리고 이난나 님이랑 카르바노그? 대체 무슨 연관이 있지?'



포이부스는 자신을 빨아들이려는 문틀을 잡고 슬쩍 가슴쪽을 보았지만 거기에는 온갖 무기에 후벼져서 피를 흘리는 상처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포이부스가 들어오지 않자 문은 흡입력을 더 높였고 포이부스는 옆구리가 문의 공간과 공간의 경계에 닿는 서늘한 감촉에 다시 생각하였다.



'아니야! 역시 가슴팍에는 아무것도 없어! 분명 방법이! 방법이 있을 거야! 이난나 님과 카르바노그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지?'


-포기하면 편해



그러나 그 순간 머릿속에서 기억 속에 파묻어놨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다름이 아니라 포이부스가 죽였던 용 중 한 마리의 목소리였다.

아마 분명 뱀처럼 기다란 브리트라의 동족이었을 것이다.



-어서 빨리 포기해라! 그래야 우리가 윤회로 돌아갈테니까!


-크허허어어엉!


-끼에에에엑!


-꾸륵!



그걸 시작으로 포이부스의 눈앞에 지금까지 포이부스가 죽여온 모든 적들이 나타나 한마디씩 날리면서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 광경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드래곤, 거대 사자, 마약 두꺼비, 심지어는 카르바노그까지.

어째서인지 니드호그는 보이지 않았지만 포이부스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빨리 지옥으로 꺼져! 이 망령들아!'


-하하하! 우린 이미 저승에 있다가 불려나온 거다 멍청한 놈아! 윤회를 위해 대기하던 중에 이런 돈으로도 못 사는 광경을 볼 수 있는 걸 니드호그에게 감사해야겠군!



포이부스가 죽인 뱀 같은 용 원로의 말에 동의하듯 온갖 괴물들과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고 포이부스는 망령들의 소름끼치는 원한이 담긴 웃음소리에 팔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안돼! 안돼! 분명 방법은 있어! 분명 방법이!'



포이부스는 사지에서 힘이 빠지면서 점점 문 안쪽으로 끌려들어갔고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포이부스의 눈에 보이는 망령들은 어서 가라고 손짓하던 걸 넘어서 이제는 포이부스의 몸에 달라붙어 그를 밀기 시작하였다.

그 끔찍한 광경 속에서 포이부스는 자신의 영혼을 뜯어내며 포이부스를 약화시키고 있는 카르바노그와 눈이 마주쳤고 카르바노그는 포이부스의 공포에 질린 얼굴을 보고 씨익 웃었다.

마치 자신과 같은 최후를 맏이하기를 기원하는 것처럼 토끼 괴물은 킬킬대는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포이부스의 눈앞에 카르바노그와 싸웠던 당시의 광경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메데이나 여신의 절규를 배경으로 어두운 던전의 한가운데에서 마지막 순간에 포인트를 반환당해 울부짖는 여신의 모습을 떠올린 그 순간, 포이부스의 머릿속에서 이난나가 자신에게 스피치 체크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포이부스는 자신이 이난나의 스피치 체크를 벗어났던 방법과 카르바노그가 죽기 직전에 일어났던 일을 함께 떠올렸고 그러자 삐걱거리던 톱니바퀴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지며 제대로 돌아가지 않던 머릿속이 환해져 진실의 신이 말하려고 했던 본의를 깨닫게 되었다.



"으아아아아아!"


슉!



그리고 포이부스는 사라져버렸다.

포이부스가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는 주인을 잃고 하늘에서 추락해 진흙으로 변한 땅에 박혔고 신들은 전부 크게 웃기 시작하였다.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아주 통쾌하네! 오늘 밤은 발 뻗고 잘 수 있...]


-대상이 범위에서 벗어나 승천이 일시 중단되었습니다. 사용하신 포인트의 절반이 환급되어 추후 나머지 절반을 다시 지불하시면 중단된 시점에서부터 다시 승천의식이 재개됩니다.


+3000


[어?]


[어어?]


[????]



그러나 그 자리에 모여있던 수십 명의 신들에게 날아든 메시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승천 중단 메시지였다.

신들은 다들 당황한 채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고 다들 눈만 깜빡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신들 중 한명이 말했다



[포이부스 녀석 설마 반신으로 부려먹히기 싫다고 자살해버린 거야?]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몇몇 신들은 이럴 의도는 아니었다고 기겁하였지만 주변에 있던 다른 신들로부터 바로 반박이 나왔다.



[그건 아니야. 죽었으면 포인트가 전부 환급되었을 텐데 절반만 돌아왔다는 건 놈이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야!]


[메세지도 범위에서 벗어나 중단되었다고 했어! 그놈 튄 거야!]



누군가가 상황을 깨닫고 포이부스가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리자 신들 사이에서 겹쳐진 고함과 비명소리가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굉음이 되어 튀어나왔다.

잠깐 엄청난 소음공해가 지나간 뒤 신들은 자신들끼리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떠들기 시작하였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도망친 거지? 마력도 체력도 죄다 바닥난 상태였잖아!]


[잠깐만, 공간이동 금지 구역 설정 언제 해제됐냐?]


[어... 방금 막]


[포이부스가 문에 빨려들어가기 직전에?]


[그런거 같은데?]


[발라테아 이 새꺄! 일 제대로 안하냐? 그거 설정한 건 너였잖아!]



신들은 다 함께 발라테아를 노려보았고 발라테아는 자신이 찍고있던 영상 편집본을 바로 보여주며 반박했다.



[내가 쿨타임 계산도 못하는 허접으로 보이냐! 봐봐! 그놈이 사라졌을 때 공간이동 제한 설정은 아직 4초나 더 남은 상태였다고!]


[4초? 4초 밖에 안 남았었다고?]


[4초면 제우스 영감이 그리스에 있는 모든 남녀를 겁간하고도 남을 기나긴 시간이야!]


[하지만 그놈 달아났잖아! 네가 실수해놓고 영상 바꿔치기 한 거 아니냐?]


[아니 진짜! 편집 전 원본 공개할 테니까 검증해보던가! 나보다는 하로나스 쪽 막고 있던 놈들이 실수한 거 아니냐? 이미 하로나스 세력에 공간이동 장치가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었잖아! 이건 분명 그걸 써서 달아난 거라고!]


[그게 왜 우리 탓인데! 니가 처음부터 더 길게 금지구역 설정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잖아!]



그렇게 신들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 서로 네 탓이니 내 덕이니 싸우기 시작하면서 지상과 천상 모두가 다시 난장판이 되었다.

신들이 자기들끼리 다투던 중 진실의 신은 신들의 공격으로 포이부스의 통신기에서 튕겨나가 뻗어있던 번개의 정령을 툭툭 쳐서 깨웠고 기절했다가 깨어난 번개 정령은 비몽사몽한 눈으로 아까 입력되었던 신호를 자신의 다른 반쪽으로 보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포이부스가 떨어뜨린 지팡이 옆에 작게 차원문이 형성되었고 진실의 신은 지팡이를 들고 말했다.



[거 봐라. 내 말대로 정해진 운명 따위는 없지?]



포이부스는 예전에 이난나에게 스피치 체크를 당하면서 뒷걸음질 치는 것으로 신들이 발동시킨 게임 시스템 중 일부는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기능이 강제 일시정지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카르바노그는 메데이나 여신이 발동시킨 랜덤 강화가 끝나기 전에 사망하자 포인트가 회수되었다.

포이부스가 만들어낸 봉인구의 내부는 독립된 이계 취급을 받고 공간이동 금지에도 불구하고 베스코스가 봉인되었던 걸로 발동이 가능하다는 게 입증된 상태였다.


이 사실들을 알고 있다면 승천 의식 중 봉인구에 스스로를 봉인하여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승천 의식을 강제 중단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추론을 포이부스가 충분히 해낼 거라고 진실의 신은 생각했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약간의 힌트만으로 포이부스는 정답에 도달하였고 다시 운명의 잔혹한 손아귀로부터 벗어났다.


하지만 아직 포이부스에게 남은 시련은 하나가 더 있었다.

진실의 신은 앞으로 다가올 즐거움에 대해 떠올리며 지팡이를 차원문 안으로 던졌다.


지팡이가 들어가자 차원문은 바로 닫혀버렸고 이제 현장에 남은 건 화신으로 강림해서 난투극을 벌이느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닫지조차 못한 신들 뿐이었다.

진실의 신은 포이부스가 스스로를 봉인한 봉인구가 달린 지팡이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 승천 전까지는 네가 쌓은 업보를 청산하기를 기원하마. 그러지 않으면 진짜 몇 천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웃기는 광경이 펼쳐질 테니]


작가의말

이제 내일 올릴 다음화가 마지막화입니다.


코퍼스 님, n273_david195 님 후원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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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결착의 시간 #6 +10 21.01.19 939 45 18쪽
278 결착의 시간 #5 +9 21.01.14 964 49 15쪽
277 결착의 시간 #4 +10 21.01.12 921 43 12쪽
276 결착의 시간 #3 +6 21.01.07 968 41 12쪽
275 결착의 시간 #2 +3 21.01.05 954 51 12쪽
274 결착의 시간 #1 +12 20.12.31 1,003 48 13쪽
273 카르바노그 #10 +18 20.12.29 1,036 50 23쪽
272 카르바노그 #9 +6 20.12.24 928 42 14쪽
271 카르바노그 #8 +12 20.12.22 961 41 18쪽
270 카르바노그 #7 +10 20.12.17 936 38 13쪽
269 카르바노그 #6 +6 20.12.15 994 38 11쪽
268 카르바노그 #5 +6 20.12.10 937 40 15쪽
267 카르바노그 #4 +5 20.12.08 919 41 12쪽
266 카르바노그 #3 +14 20.12.03 950 48 11쪽
265 카르바노그 #2 +9 20.12.01 944 44 15쪽
264 카르바노그 #1 +5 20.11.26 985 42 12쪽
263 혈마인 #11 +4 20.11.24 949 39 16쪽
262 혈마인 #10 +4 20.11.20 949 46 14쪽
261 혈마인 #9 +8 20.11.17 953 4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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