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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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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연재수 :
2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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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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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57,900

작성
21.01.1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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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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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글자
12쪽

결착의 시간 #4

DUMMY

케트라 산 꼭대기에 마련된 신전 인근의 주택가는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거리가 되어있었다.

팔라딘들만이 거주하며 대부분은 방치되어 있던 돌로 된 오래된 건물들에 들어선 사람들은 오늘도 바쁘게 움직이며 뭔가를 잡고 있었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마다 정겹게 포이부스에게 인사를 하였다.


포이부스는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거웠다.

갑옷을 걸치고 있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파국과 종말을 예감하는 불안한 마음이 그의 발목을 질질 잡아끌고 있던 것이다.



"아무 일 없었어?"



자신의 집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말을 하는 포이부스의 코에 구수한 스튜 냄새가 풍겨왔다.

감자와 잘 처리된 멧돼지 냄새가 살짝 달콤한 소스 냄새 속에서 느껴졌고 그 안쪽에서는 토끼 고기를 굽는 냄새가 풍겨왔다.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지."



요리를 하고 있는 스틸리나는 뭘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얼굴로 포이부스를 슬쩍 보고는 멧돼지 고기 스튜와 토끼 구이의 상태를 확인하였다.

스틸리나의 옆에는 카론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뼈를 말려서 만든 개껌을 물고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에라스 소식 들은 거 있으세요? 최근에 야근한다고 연락을 통 안 받아요. 휴가도 쓸 수 있다고 걱정말라던 인간이 대체..."


"소식이 들어오면 바로 알려주지 그보다 에라스가 돌아왔을 때 아무 일 없도록 몸관리 신경쓰게나."



에라스가 천계로 끌려간 뒤로 같이 살고 있는 마가렛은 포이부스에게 남편에 대해 물었고 포이부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에라스가 휴가도 못쓰고 혹사당하고 있고 자신들에게는 에라스를 해방시킬 힘이 없다는 사실 뿐이었지만 그걸 마가렛에게 그대로 말할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 한동안 전투할 때도 안 입던 갑옷을 다 입고 들어오고?"



스틸리나는 스튜의 간을 보고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남편에게 물었고 포이부스는 어두운 얼굴로 스틸리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조만간 원정을 떠나야할 것 같아"



그 말에 스틸리나와 마가렛과 카론은 움직임을 딱 멈추고 가장을 돌아보았다.

이제 조만간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라고 다산을 담당하는 이난나가 알려줬는데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한다는 건 뭔가 심각한 일이 터졌다는 의미였다.



"꼭 당신이 나서야 할 일이야?"


"그래, 아바리투스 님의 봉인 때문이야."



2천년 전과는 달리 정치나 부족의 수장으로서가 아니라 가정주부로서 케트라 산에 머물고 있는 스틸리나는 세계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세하게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곧 아기가 태어나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남편이 말하려고 한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스틸리나는 남편에게 뭐라고 한소리 하려다가 지금까지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신들이 개입했더나 진짜로 어쩔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걸 기억해내고는 입을 다물었다.

다만 기분이 나빠졌다는 걸 감출 만큼 인내할 수는 없었고 포이부스는 아내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이번에는 별일 없을 거야."


"2천년 전에도 축제 끝나고 좋은 분위기에 뜬금없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이번에도 안그런다는 보장 있어?"



스틸리나의 통렬한 지적에 포이부스는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그 말대로 2천년 전, 만신전을 모시는 제단과 신전을 만들고 세 종족을 모아 축제를 열었을 때만해도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포이부스는 부족민들이 보는 앞에서 창조신에게 끌려가고, 신들 역시 전부 봉인된 채 대륙을 뒤섞고 바다를 갈아엎는 숙청 속에서 부족과 연합은 갈기갈기 찢어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틸리나가 차마 포이부스에게 가지 말고 곁에 있으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일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포이부스는 자신이 봤던 반신으로 승천하는 악몽처럼 되지 않도록 진실의 신의 충고를 다시 되새기며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이 일을 끝내리라 결심하였다.



"맹세할게,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다시 돌아올 거야."


"맹세? 당신이 맹세를?"



지금껏 남편이 맹세를 하는 걸 본적이 없는 스틸리나는 살짝 놀란 눈으로 잠깐 남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혹시 가짜가 아닌지 몸 곳곳을 툭툭 건드리면서 확인해보고는 말했다.



"뭐 잘못 먹었어? 혹시 꼬꼬들이 아파?"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신..."


"치킨에 미친 놈"


"좀 가정적인 남자라고 해주면 덧나?"


"사실이잖아?"



포이부스는 아내의 냉혹한 평가에 그만 눈물이 나올 뻔했다.

아들 카론과 이웃집 아낙네인 마가렛이 스틸리나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광경을 보고 서러움에 진짜로 울음이 터져나올 뻔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치킨만 만들고 앞으로는 잘 할게"


"지금부터 잘 하셔야죠!"


"왈왈왈왈왈!"



포이부스가 스틸리나의 손을 잡고 약속을 하려고 했으나 마가렛과 카론의 딴지에 뭐라고 반박하려다가 할 말이 없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아들아, 넌 살부터 빼자 어휴 이게 뭐니? 누가보면 하몽을 통째로 삼킨 줄 알겠다"


"월월월! 으르릉!"



카론은 살 빼자는 말에 반사적으로 근처에 최악의 헬스트레이너 종말의 쌍둥이가 없는지 확인을 하고는 아빠에게 항의의 울부짖음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살뺀답시고 쌍둥이가 자기를 갈군게 살짝 트라우마가 된 것 같았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소리지? 그럼 갑옷 벗고 점심이나 드셔. 밥은 먹고 다녀야 할 거 아냐?"



스틸리나는 옆에서 보면 똑같이 유치한 부자의 대화를 듣고는 방금 전까지 화를 내고 있던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고 포이부스도 그 말을 듣고 투구부터 벗고 갑옷을 벗어놓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갑옷의 허리춤에 걸어놓은 번개 정령 통신기의 정령이 날뛰기 시작했고 포이부스는 통신기의 금속판을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미안, 지금 당장 가야겠어!"


"여보! 포이부스! 탄 메펫!"



포이부스는 스틸리나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집을 뛰쳐나가 중앙관제소로 향했고 그곳에는 이미 전시 태세에 들어간 요원들이 사방으로 연락을 넣으면서 강습 부대를 준비시키고 있었다.



"상황은?"


"마르켄데야로부터 신호가 왔습니다!"


"좌표는?"


"지상으로부터 300m 밑의 던전 중심부인 것 같습니다."


[야야야, 좌표조정 똑바로 해! 조금 더 옆이야!]



이미 팔라딘 제니스와 팔라딘 오리스가 불화의 신 알고로스의 지시대로 소피아의 천궁도에 좌표를 입력하고 있었고 중앙관제소 밖에는 고룡들이 착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포이부스 다음 관제소를 나왔던 즈뮤가 급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보인 포이부스는 투구를 고쳐쓰고 밖으로 나가며 팔라딘 모르테스에게 말했다.



"좋아, 그럼 준비가 되는대로 전원 돌입한다."



##



지난 몇 개월 동안 던전 공략에 힘을 쓴 베스코스 일당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코를 적셔오는 비릿한 냄새를 맡았다.

땀과 얼굴이 흩뿌려진 피가 섞여서 내는 비릿하면서도 짭짤한 냄새는 어쩐지 혀에 닿지 않고도 맛이 느껴졌고 베스코스는 동료들에게 물었다.



"다들 괜찮은가?"


"문제없소 세형"


"저도 문제 없습니다 형님들"



던전의 방 구석에 숨어있던 마르켄데야는 평소와 달리 허겁지겁 마법도구들과 스크롤을 담아놓은 주머니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 연신 찢었고 베스코스와 무기, 요청와는 자신들의 근처에 은은한 초록색의 돔이 펼쳐진 뒤로 소모되었던 체력이 회복되는 걸 느꼈다.



"마르켄, 스크롤 너무 쓸 필요 없네! 어차피 이 방 다음이 목적지라고 하지 않았나!"



베스코스는 껄껄 웃으면서 자신들이 죽인 초거대 키메라를 툭툭 치면서 말했고 무기와 요청와는 시체를 갈무리하면서 돈으로 환전하기 쉬운 부위를 찾아다녔다.

무기와 요청와가 키메라의 시체에서 좋은 부위를 뜯어내는 동안 마르켄데야는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의 목에 걸린 흑수정 목걸이가 전례없이 강하게 흔들리는 걸 꼭 붙잡고 베스코스에게 말했다.



"이제 다 왔어. 하지만 여기서부터 더 큰 일이 벌어질거야."


"신들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별 문제 없을 걸세 마르켄! 날 믿게나"



베스코스는 지금까지의 시련을 견뎌내면서 던전 안에서 많은 경험을 얻고 무기와 갑옷을 얻어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그레이트 소드는 히드라를 토벌하고 시체 안에서 나온 것이고 입고 있는 풀 플레이트 메일은 미스릴 골렘을 격파한 뒤 드롭된 걸 착용한 것이었다.

마르켄데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베스코스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그때 갑자기 뒤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뭐지?"



귀가 밝은 요청와와 무기는 키메라를 갈무리하던 걸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고 베스코스와 마르켄데야가 뒤를 돌아봤을 때 그들이 지나온 통로에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공격!"


"뭐야 당신들?!"


"놈들이 가지고 있는 신의 봉인을 회수하라! 위대한 베링그를 위해!"


"사르미나 여신을 위하여!"



갑자기 나타난 그들은 각양각색의 국가의 깃발을 들고 있었다.

요청와는 다짜고짜 공격을 하는 그들을 보고 놀라며 키메라의 잘려나간 뱀 꼬리를 집어던졌고 거기에 맞은 기사들이 뒤로 날아갔다.



"이놈들 마르켄을 노리고 있습니다 세형!"


"여긴 저희가 막고 있을 테니 어서 가세요 형님!"



무기와 요청와는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고 베스코스와 마르켄데야에게 어서 가라고 손짓하였고 베스코스는 즉각 마르켄데야를 들처업고 다음 방으로 향했다.

무기와 요청와는 던전에서 얻어낸 장비와 소모품을 연신 사용하면서 기사들을 틀어막았고 전력질주를 하는 베스코스는 순식간에 다음 방으로 진입하였다.



"여긴 뭐지?"



던전의 마지막 방은 거대한 마법진 위에 수많은 둥근 보석들이 정렬되어 있었고 그 중심부에는 커다란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마르켄데야는 베스코스에게 자신을 내려달라고 말했고 베스코스가 어깨에서 내려주자 바로 그 거대한 마법진의 중심부로 향했다.


그 중심부에서 마르켄데야는 무한창고의 주머니를 풀어서 안에서 동전을 휘감은 뱀의 조각상을 꺼냈고 뱀의 조각상을 든 채 기둥을 등지고 베스코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다 끝났어. 미안해"


"왜 미안한가 마르켄? 친구인데 도와야지. 이제 일 끝났으면 난 바로 무기와 요청와를 도우러가겠네!"



베스코스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바로 요청와와 무기를 도우러 가려고 했지만 마르켄데야는 한쪽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너희를 살리려면 악마와 약속을 해야 했어."


철컥!



마르켄데야는 비석에 신의 봉인을 끼워넣고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미안해요 대머리 아저씨."


"마르켄?"


쩌저적!



그 순간 신의 봉인이 끼워진 비석이 빛을 발하면서 바닥에 마법진과 마법진 위에 배열된 보석들이 일제히 빛났다.

그러나 그 빛은 갑자기 마르켄데야의 옆에 열린 거대한 푸른색 구멍 속에서 흘러나온 시커먼 연기 같은 기운에 의해 더는 확산되지 못했고 그 안으로부터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이해한다 마르켄. 자신을 위해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 명예로운 자도 결국 동료와 가족을 위해서는 고개를 숙이는 법이지."


"다, 당신은"



베스코스는 허공에 열린 차원문으로부터 나타난 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수도복을 입고 있던 악마는 이제는 수도복을 벗어던지고 전쟁군주로서 이 자리에 왔다.



"이제 너희들의 던전 탐험의 끝이 왔구나.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왔다고 해야겠지."


작가의말

예약을 걸어놨는데 날짜 실수를 한 걸 지금 봤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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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결착의 시간 #8 +7 21.01.26 900 44 17쪽
280 결착의 시간 #7 +12 21.01.21 931 4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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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착의 시간 #4 +10 21.01.12 921 43 12쪽
276 결착의 시간 #3 +6 21.01.07 968 41 12쪽
275 결착의 시간 #2 +3 21.01.05 954 51 12쪽
274 결착의 시간 #1 +12 20.12.31 1,003 48 13쪽
273 카르바노그 #10 +18 20.12.29 1,036 50 23쪽
272 카르바노그 #9 +6 20.12.24 928 42 14쪽
271 카르바노그 #8 +12 20.12.22 961 41 18쪽
270 카르바노그 #7 +10 20.12.17 936 38 13쪽
269 카르바노그 #6 +6 20.12.15 994 38 11쪽
268 카르바노그 #5 +6 20.12.10 937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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