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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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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연재수 :
287 회
조회수 :
765,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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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11
글자수 :
2,157,900

작성
20.12.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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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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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글자
11쪽

카르바노그 #3

DUMMY

하늘이 울부짖고 땅이 휘달리는 옛 아펩 신의 영토의 위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보이는 것은 거대한 용의 거체와 하늘에서 빛나는 태양 뿐이었다.

날짐승과 들짐승은 물론이고 식물과 벌레들마저 전부 사라져버린 땅 위에서 빛나는 회색빛의 비늘을 지닌 용은 날개를 펼치고 땅 위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며 성스러운 힘이 응축된 숨결을 내뱉었다.


땅을 뒤덮는 그림자가 스스로 살아움직여 첨탑처럼 치솟아 땅 위에 있는 바위들을 부수고, 홀리 브레스가 대지를 양단하였으나 용은 바로 몸을 돌려 옆을 바라보며 목을 움츠렸다.

그와 동시에 새하얀 잔영이 용의 목 근처를 스쳐지나가며 목의 회색빛 비늘 일부가 순식간에 가루가 되며 떨어져나갔고 용은 하얀 빛줄기 같은 존재를 눈으로 쫓아가는 대신 위로 떠오르며 자신이 땅에 드리운 그림자를 조종해 거대한 그림자의 낫으로 하얀 섬광을 쪼개려고 하였다.

하지만 하얀색의 무언가는 바로 모습을 감추고 그 대신 언제 생긴건지 짐작할 수 없는 작은 구멍 하나만이 남게 되었다.


용은 가슴을 햘퀴고 지나가는 것 같은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자신의 날개를 이불 털듯이 움직였고 날개에 붙어있다가 떨어져내린 비늘들이 땅에 처박히면서 세찬 빗줄기가 석면으로 된 벽을 때리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가라!"



그 소리를 통해 지하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감지해낸 용은 대지를 향해 외쳤고 용이 발사한 비늘들은 어느새 흐물흐물해지더니 사람 형상으로 바뀌어 스스로 움직이며 땅을 파고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브레스로 갈라진 땅이 잠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들썩이더니 이내 화산이 터진 것처럼 흙과 바위와 먼지가 하늘로 치솟았다.

치솟은 바위와 흙 사이에서 용의 비늘에서 만들어진 전사들이 하얀색의 무언가를 향해 좀비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폭발로 몸이 으스러진 상태로도 그저 용이 명령한대로 움직이고 있는 전사들은 하얀 야수에게 달라붙어 그대로 폭발을 일으켰으나 용아병들이 폭발로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서 폭발로 공중에 뜬 잔해와 바위와 돌들을 박차며 용에게 날아드는 새하얀 야수의 털가죽에는 그을음하나 없었다.



"죽어라!"



용은 다시 브레스를 발사하였으나 끔찍한 마수 카르바노그는 무엇이든지 갈라버리는 앞니를 내세워 브레스를 갉아먹기 시작하였다.

굉장히 낮은 확률로 공격대상을 찢어발기는 효과가 여신에 의해 심어진 괴물은 그 낮은 확률을 엄청난 속도로 보충하기 위해 초당 수십 회를 넘는 깨물기를 단 한순간에 퍼부어 브레스 기둥을 찢어버렸다.

하지만 브레스와 접촉하면서 괴물은 추진력을 잃고 땅으로 떨어져내렸고 서로의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대지에 착지한 토끼 괴물은 뒷다리로 서서 수컷의 얼굴을 초당 5회까지 가격하는 암토끼마냥 공중에 앞발을 붕붕 휘두르며 용을 위협했다.


이미 오랜세월동안 싸워온 두 괴물은 한동안 움직임 없이 서로를 노려보았고 그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구 우리 뽀식이, 밥먹을 시간이에요]



메데이나 메자 마테 여신의 음성이 들리자 카르바노그는 귀를 쫑긋하면서 하늘의 용을 바라보다가 미련없이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하였다.

어제도 이런 식으로 싸움이 끝났고, 일주일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드라콘 역시 여신이 개입된 상황에서 카르바노그를 공격했다가 괜히 신의 진노를 사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싶었기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싸움은 여기서 종결되었다.

드라콘은 싸움으로 박살난 대지 위에 안착하여 구불구불하고 긴 몸을 뉘였다.


에너지 소모가 워낙 극심하다보니 착륙 후 빠르게 잠에 빠져든 용은 꿈을 꾸었다.

누구의 기억인지는 모르지만 그 시선의 주인은 용의 사체가 빼곡하게 차있는 용의 계곡을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그 시체의 산 위에서 용의 시체를 파먹고 있는 카르바노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노, 비탄, 좌절 꿈의 주인의 그 광경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들이 현실세계에서 잠들어있는 드라콘의 몸에 스며든 것은 이미 수천년도 더 된 일이었다.


어쩌면 세상을 눈으로 보기 시작한 날 이전, 알 속에 담긴 작고 말랑말랑한 태아였던 시절부터 꾼 꿈은 드라콘에게 다른 꿈을 꾸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었고 드라콘은 분명 카르바노그를 죽인다면 더는 이 짜증나는 꿈을 꾸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놈을 죽이기만 한다면 더는 이 짜증나는 꿈이나 아무것도 없는 꿈 대신 남들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꿈을 꿀 수 있을 거라 믿는 고룡의 귀에 낯익은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꿈에서 벗어나 현실로 복귀한 고룡이 눈을 떳을 때 그를 반겨준 것은 서쪽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는 태양의 빛을 정면으로 받아서 반사하는 빛이었다.

그 빛의 주인을 보자마자 드라콘은 귀찮다는 듯이 기다란 몸을 굴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애석하게도 그쪽에는 태양이 있었다.

눈이 부셔서 다시 잠을 자지 못하게 된 고룡은 타조처럼 땅의 균열에 머리만 집어넣었고 날개짓하는 소리가 자기 머리 위에서 멈추자 상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땅속에 머리를 처박은 채 말했다.



"그 새끼 죽이려면 힘 보충해야 하니까 깨우지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일어나"



누나가 자신의 몸을 흔들고 있는 걸 알면서도 드라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누가가 아무리 자신을 흔들어도, 천둥같은 드래곤 로어를 내뱉어도, 툭툭 옆에서 치고 있어도 아예 반응도 하지 않으며 다시 꿈속의 세계로 떠난 드라콘은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허 속에 있는 것처럼 잠을 잤다.

차라리 그 끔찍한 꿈이 나오지 않은 것에 안도하면서 용은 어두운 공허 속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는 꿈을 꾸었다.



##



"진짜 잠들었는데?"


"...."



한편 현실에서는 타조마냥 고개를 균열 속에 처박고 잠자는 드라콘을 보고 세르피누스는 머리가 아파오는지 눈을 감은 채 날개로 이마를 짚고 있고, 포이부스는 드라콘의 비늘을 손으로 만지고 있고, 모르테스는 바닥에 남은 상흔을 조사하고 있었다.



"쟤 자면 언제 깨어나냐?"


"드라콘 일어나!"


"ZZZZ"



세르피누스는 쪽팔리다는 얼굴로 동생을 계속 툭툭쳤지만 드라콘은 아예 반응도 없었다.

되려 더 깊게 잠에 빠져들었는지 땅에 처박은 머리에서 코골이를 하면서 주변의 땅이 지진이 난것처럼 흔들렸고 포이부스는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야 이거 앞으로 주변 땅 흔들리면 지하에 용 없나 확인해봐야겠구만 코골이만으로 땅이 이렇게 흔들릴 줄이야."


퍽! 퍽! 툭툭!



세르피누스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드라콘을 꼬리고 강하게 내리쳤으나 피곤한 동생은 시체처럼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세르피누스는 진지하게 브레스라도 갈겨서 동생을 깨워야 할지 고민했으나 그때 발자국을 살펴보던 모르테스가 다가와서 말했다.



"토끼 발자국이 북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여기서 4일만 더 걸어가면 광산 던전입니다. 슬슬 대피령이든 전투준비든 지시를 하달해야 하지 않습니까?"


"드워프 왕한테 카르바노그가 접근하고 있다고 전해놔라. 판단은 그쪽에 맡긴다."



현재 헤이메 왕국군이 광산 던전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 병력을 집결시킨 상태에서 섣불리 대피령을 포이부스가 독단으로 내리면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에 포이부스는 판단과 책임소재를 드워프 왕에게 떠넘기려하였다.

모르테스 역시 판단은 당사자가 하는게 낫다고 생각한 건지 빠르게 통신기를 꺼내 금속판에 포이부스의 지시를 적어서 전달하였다.

그동안 세르피누스는 어떻게 하면 동생을 깨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럴 때는 간단한 방법이 있지."


"위험한 건 아니겠지?"



포이부스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세르피누스는 불안한 눈으로 포이부스를 지켜보았고 포이부스는 걱정말라는 듯이 차원문 생성을 해서 케트라 산으로 돌아가더니 잠시 후 양쪽 옆구리에 뭔가를 잔뜩 들고 왔다.



"고기?"



그건 다름이 아니라 소와 돼지를 도축해서 저장한 고기였고 포이부스는 땅의 정령과 나무 정령들을 불러내 즉석에서 불판을 만들어내고는 불의 정령들을 소환해서 불판 밑에 가지런히 정렬시켜 놓았다.

물론 정령들에게 마석을 하나씩 쥐어주는 걸 잊지 않았다.

안 그래도 주변의 고룡들 때문에 정령들이 불안해하고 있었기에 평소보다 큰 마석을 쥐어줘야했다.


잠시 후 매끈한 돌로 된 불판이 달아오르자 포이부스는 큼직한 고기를 올려놓고 그 위에 모아둔 향신료를 아낌없이 뿌린 뒤 흙의 정령들에게 시켜서 불판의 열기와 연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덮개를 만들어달라고 하고는 덮개를 덮고 세르피누스에게 말했다.



"먹음직스러운 냄새 좀 풍겨주면 자던 놈도 다시 일어날 게 분명해"


"우리 같은 용이 잘도 그거에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나 아르드바르?"


"신들의 악몽 세계에 갇혀있던 즈뮤도 이걸로 탈출시켰고 즈메이도 이걸로 꼬셨는데?"


"...."



세르피누스는 잘 익은 고기의 힘에 놀라워해야 할지 생각보다 의지가 약한 다두룡 일족을 탓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질끈 감고는 동생 놈이 빨리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과 설마 자기가 깨울 때는 안 일어나고 이런거로 일어나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과 불안한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자자자 오픈 갑니다"


화악!



포이부스는 적당히 시간이 흘러 맛있는 소리가 들려오자 덮개를 확 열어버린 뒤 바람마법으로 연기와 냄새를 드라콘 쪽으로 보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위로 흘러들어간 연기는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숨을 들이쉬는 것에 맞춰서 땅 밑으로 향하는 구멍으로 빨려들어갔고 대략 15초 정도가 흘렀을 때 미동도 없는 시체 같던 드라콘의 몸이 꿈틀대기 시작하였다.



"고....기...."



그리고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아주 천천히 땅속에 처박았던 고개를 들어올리며 눈꺼풀을 들어올렸고 세르피누스는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했다.



"용족의 앞날이 이렇게 어두웠다니 아아, 우리 종족의 파멸이 다가왔구나"


"뭘 고기냄새에 일어난 거 가지고 종족의 파멸 운운하냐 진정해"



포이부스가 뭘 그리 심각하냐고 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스러운 용 세르피누스는 눈물을 흘리며 비몽사몽한 상태로 구워지는 고기를 향해 머리를 이동시켜 덥썩 문 동생을 꼬리로 연신 후려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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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결착의 시간 #8 +7 21.01.26 899 4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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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결착의 시간 #3 +6 21.01.07 967 41 12쪽
275 결착의 시간 #2 +3 21.01.05 953 51 12쪽
274 결착의 시간 #1 +12 20.12.31 1,002 48 13쪽
273 카르바노그 #10 +18 20.12.29 1,036 50 23쪽
272 카르바노그 #9 +6 20.12.24 928 42 14쪽
271 카르바노그 #8 +12 20.12.22 960 4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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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카르바노그 #5 +6 20.12.10 937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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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바노그 #3 +14 20.12.03 950 48 11쪽
265 카르바노그 #2 +9 20.12.01 943 4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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