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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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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연재수 :
287 회
조회수 :
765,786
추천수 :
28,911
글자수 :
2,157,900

작성
21.0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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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결착의 시간 #7

DUMMY

전투의 열기가 용들도 날아다닐 수 있는 거대한 던전 최심부를 가득 채웠을 때, 신들은 그곳을 보면서 환희하고, 경악하고, 웃고, 울고,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벽에 처박힌 베스코스는 신들이 주입한 분노에 함성을 내지르며 다시 몸을 일으켰고 포이부스는 자신의 뒤에 펼쳐진 탈출루트를 흙과 나무로 막아버리며 최대한 영웅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볼룬드 신과 산주나 여신의 부하들은 전송장치의 바로 앞에 도달해서 마력 주입을 시작했으나 언제든지 서로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준비를 하면서 눈치를 보고 있는 혼란 속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무기와 요청와는 마르켄데야를 뒤에 두고 두려움에 찬 눈으로 던전 최심부의 혼돈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물었다.



"무기 형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일단 세형을 데려와서 정신차리게 해야지."


"그 다음에는요? 우리는 대체 누구와 싸워야 합니까?"



요청와의 물음에 무기는 그 기다란 아래턱을 그저 윗턱에 조금씩 부딪칠 뿐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궤도폭격의 행렬은 이미 이곳을 목표로 해서 날아들고 있다.

하지만 이미 베스코스조차도 이기지 못한 저 괴물을 쓰러뜨린다고 해서 제 시간에 던전에서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전송장치 쪽으로 가야겠지만 설령 그들이 볼룬드와 산주나의 부하들을 쓰러뜨리고 이벤트 클리어를 달성한다 해도 신들에게 분노를 강제로 주입당해 포이부스를 공격하고 있는 베스코스와 마르켄데야는 지혜의 신의 부하가 아니기에 폭격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가능성이 하나 남아있기는 하지만 확신이 없으니 일단 세형을 먼저 진정시켜야 해!"



그들의 주신인 지혜의 신으로부터 아무런 명령도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기는 먼저 베스코스를 진정시키고 탈출 방법을 모색하기로 하였다.

무기와 요청와는 다시 포이부스에게 달려들려는 베스코스에게 뛰어가서 그를 진정시키려고 하였고 마르켄데야가 그 뒤를 따라가려고 할 때 그의 옆에서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간 예상치 못한 트러블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흥행에는 성공했군."


"아저씨"



온 세상의 신들이 대머리 악신이라고 욕하는 이는 어느새 마르켄데야의 바로 옆에 파라솔과 파티 의자를 꺼내서 짧은 바지와 조끼만 걸친 채 맥주잔에 담긴 시원한 블루하와이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던전 최심부에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기괴한 광경에도 불구하고 신들은 그를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아예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저 싸움에 열광하고 있었다.



[거기! 그래 거기! 눈을 찔러!]


[포이부스 놈 사타구니를 노려! 커서 조준하기도 쉽잖아!]


[멍청이들아 좀 더 비겁하게 하라고!]


[볼룬드 지금 설마 내 부하 뒤통수를 노려본 거야?]


[그러는 산주나 너희 부하들이야 말로 저런 반항적인 길쭉한 눈으로 내 부하들을 보지 않았냐?]


[쟤넨 원래 저런 눈이랑 얼굴이야!]



일시적인 연합은 거의 와해되기 직전이고 이들을 한데 묶어주고 있는 공공의 적인 포이부스라는 존재만 퇴장하면 바로 배틀로얄이 벌어질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 신들이 이런 눈에 띠는 차림을 한 진실의 신을 보지 못한다는 건 그가 신들로부터 모습을 감추고 있기 때문인게 분명하였다.



"저들이 이해가 되지 않니 마르켄?"


"네"



마르켄데야에게 있어서 신들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연합군에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신도 있기는 하지만 방금 산주나 여신과 볼룬드 신이 보인 언동을 보면 딱히 원한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기회를 잡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배신으로 포이부스를 잡지 못하고 영웅들이 죄다 몰살된다면 전송장치로 다른 월드 맵으로 넘어간 신의 세력은 몰라도 남게 된 나머지 한명의 세력은 이후에 다른 이들로부터 적대받게 될 확률이 높은데 왜 저런 일을 한 것인지 마르켄데야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들에게 있어서 지상의 싸움은 그저 오락에 불과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수많은 목숨이 걸려있다고? 필멸자들의 목숨은 중요한 게 아니지. 신들 입장에서는 딱히 과금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무료 게임을 친구랑 하는건데 짜증나게 해서 주먹질이 오고 갈 수는 있어도 진심으로 서로 죽이려고 들겠니? 다들 그걸 알고 있으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 골탕 먹이고 낄낄대는 거지."



진실의 신의 말대로 산주나 여신과 볼룬드 신의 행동은 그저 가벼운 캐주얼 게임에서 친구를 골탕먹이고 크게 웃는 것에 한없이 가까운 행동이었다.



"게다가 이제 새로운 맵이 오픈된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저들도 알고 있단다. 여기서 실패한다고? 그래서 뭐? 여차하면 여기서 모은 포인트 가지고 신규 맵에서 새로 참가한 새로운 친구들이랑 처음부터 다시해도 되는데? 기존 플레이어 중에서 세력을 온존한 채 넘어갈 수 있는 건 단 한 명 뿐이니 여차하면 견제하기도 편하고. 그래도 안되면 그냥 게임종료하고 다른 게임 찾아서 가면 끝이야."



게임종료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마르켄은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나 그것은 병이나 외압에 의한 두통이 아니었다.

그건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슬픔에 의한 것이었다.

가슴을 옥죄고, 머리 속을 파헤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마르켄을 감쌌다.



"창조신 부리 아우둠라의 가장 큰 성공이자 가장 큰 실수는 이 동네에 과금 요소를 넣지 않았다는 거지. 딱히 걸어놓은 것이 없으니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고, 가볍게 떠나가고, 가볍게 돌아오지. 제1시대에서 제2시대로 전환될 때 룰 변경만으로 몇 명이나 되는 신들이 떠나갔지? 제2시대에서 제3시대로 전환될 때는? 만약 많은 게 걸려있었다면 신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줌 밖에 안되는 괴물이나 인간들을 붙잡고 머물렀겠지. 하지만 수명이라는 개념이 없는 신들에게 가장 많이 남아도는 시간을 소모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게임판에서 그들을 오랫동안 잡아둘 수 있는 건 흥미 딱 하나 뿐."


"으윽!"



그 말을 듣는 순간 마르켄데야의 머릿속에 안개처럼 끼어있던 의혹과 망각이 녹아내리며 마르켄데야가 어떻게든 잊어버리려고 했던 악몽들이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마르켄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의 앞에는 첫번째 왕국의 성립을 선포하는 왕과 그 앞에 엎드린 수많은 인간들과 마지막으로 지평선 너머에서 보이는 붉은 번개와 하늘을 뒤덮는 먼지가 보였다.



"그래, 카자도신의 마르켄데야. 이제 네가 원하는 답을 얻었니?"



이 세상 최초의 왕국인 올문두 왕국이 아직 부족이던 시절, 올문두의 샤먼이었던 카자도신에게 실수가 있었다면 최악의 타이밍에 부족장에게 올바른 진언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그는 본래 올문두에게 정복당한 카자도신 씨족의 주술사였으나 올문두의 부족에게 정복된 뒤 올문두 족장을 성심성의껏 모셨다.

올문두 부족장도 그의 진심을 알고 그를 중용하여 그는 올문두 부족의 원래 주술사의 후계자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불과 18세의 어린 나이로 부족 최고 사제 겸 주술사 자리에 올라선 카자도신의 앞에는 장미빛 길만 있을 것만 같았다.

허나 올문두 왕국의 주신 아자탸사트루가 알아낸 시대에 획을 긋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그런 참사가 벌어질 줄은 몰랐고, 실망한 아자타샤트루가 떠나간 뒤 그는 계속해서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으나 이미 떠나간 신은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신들이 떠나가 보호자를 잃은 필멸자들이 울부짖는 천지를 뒤엎는 대숙청 속에서 부족의 다른 샤먼과 사제들이 그를 저주하고 핍박해 쫓아내 광야를 헤매고 있을 때 그의 질문에 답을 한 존재가 있었고 그가 바로 지금 마르켄데야의 앞에 있는 자였다.



"불쌍한 마르켄, 너는 다시 태어나도 너의 영혼에 새겨진 그날의 악몽이 떠오를 때마다 내게 기억을 지우고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빌었지. 나중에 가서는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기억을 저장할지 말지 고르게 될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대숙청의 날에 너의 부족이 너에게 건 저주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구나. 그래, 죄책감이라는 그 저주 말이지."



진실의 신은 마르켄을 측은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그저 좋지 못한 때에 왕을 인도한 젊은 샤먼이자 주술사이자 사제는 광야에서 진실의 신에게 엎드린 채 자비를 구걸할 때보다 작고 어린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영혼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그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굳어져서 딱지가 될 뿐.


진실의 신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마르켄데야가 자신에게 소원을 말할 때를 기다렸다.

그는 이 어린 희생양이 더는 소원을 빌지 않을 때까지 말을 들어줄 것이다.


진실의 신은 마르켄데야가 말할 때까지 시간 때우기로 포이부스와 충돌하는 영웅들과, 전송장치에 마력을 주입하면서 배신할 타이밍을 재고 있는 산주나와 볼룬드의 부하들과, 베스코스를 뜯어말리고 있는 무기와 요청와를 바라보다가 문득 뭔가가 있다는 걸 깨닫고 위를 바라보았다.



"발라테아 녀석, 예전보다 신중해졌군. 뭐, 나는 여기서 누가 이기든 상관하지 않지만"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그동안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깨닫지 못한 채 영웅들과 거인은 충돌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산주나 여신과 볼룬드 신의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는 영웅들은 포이부스의 공격에 방어를 굳히고 있었으나 그 안에서는 어떻게든 옆에 있는 다른 신의 부하를 방패로 삼아 자기들만 몸을 빼려는 이들과, 그런 자들을 붙잡고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방해하는 이들, 그런 자들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포이부스의 공격에 발목이 잡히고 연신 얻어터지는 무고한 희생자들이 뒤엉켰다.


발 밑에서 나무 뿌리가 솟아나와 발목을 잡으려는 것도 미칠 지경인데 앙옆은 물론이고 뒤쪽까지 아군과 경쟁자가 뒤섞여서 달아나지 못하는 끔찍한 상황 속에서 그들의 앞에 있는 포이부스는 망치를 휘둘러 진형을 깨부수고 있었다.



"응? 뭐야 저거?"



그런 포이부스를 지켜보며 제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고 만족하고 있던 진실의 신은 문득 포이부스의 등쪽에 뭔가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등짝에 달아놓은 루드라의 왼쪽 눈을 통해 루드라가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것은 루드라가 아니었다.

루드라는 지금 포이부스가 들고 있는 자신의 도끼를 통해 들어오는 희생자들의 피가 생성하는 권능 포인트에 취해 눈을 감고 있었다.

그 희끄무리하고 존재감이 옅은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진실의 신은 잠깐 눈을 동그랗고 크게 뜬 뒤에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하하! 이거 완전 예상 밖의 사태인데? 설마 저놈이 아직까지 소멸이나 윤회를 하지 않고 들러붙어 있을 줄이야!"



창조신은 이 세상을 만들면서 카르마 시스템, 업보에 관련된 것은 아예 추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무시무시한 집념과 복수심이 만들어낸 업이 존재한다는 걸 진실의 신은 인지하였고 그는 계속 웃으면서 싸움을 끝까지 지켜보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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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업보(業報) (完) +53 21.02.10 2,004 88 35쪽
285 결착의 시간 #12 +17 21.02.09 1,119 48 21쪽
284 결착의 시간 #11 +13 21.02.04 1,182 53 14쪽
283 결착의 시간 #10 +6 21.02.02 917 49 14쪽
282 결착의 시간 #9 +12 21.01.28 992 42 17쪽
281 결착의 시간 #8 +7 21.01.26 900 44 17쪽
» 결착의 시간 #7 +12 21.01.21 931 45 12쪽
279 결착의 시간 #6 +10 21.01.19 938 45 18쪽
278 결착의 시간 #5 +9 21.01.14 963 49 15쪽
277 결착의 시간 #4 +10 21.01.12 920 43 12쪽
276 결착의 시간 #3 +6 21.01.07 967 41 12쪽
275 결착의 시간 #2 +3 21.01.05 954 51 12쪽
274 결착의 시간 #1 +12 20.12.31 1,002 48 13쪽
273 카르바노그 #10 +18 20.12.29 1,036 50 23쪽
272 카르바노그 #9 +6 20.12.24 928 42 14쪽
271 카르바노그 #8 +12 20.12.22 960 41 18쪽
270 카르바노그 #7 +10 20.12.17 935 38 13쪽
269 카르바노그 #6 +6 20.12.15 993 38 11쪽
268 카르바노그 #5 +6 20.12.10 937 40 15쪽
267 카르바노그 #4 +5 20.12.08 918 41 12쪽
266 카르바노그 #3 +14 20.12.03 950 48 11쪽
265 카르바노그 #2 +9 20.12.01 943 44 15쪽
264 카르바노그 #1 +5 20.11.26 985 42 12쪽
263 혈마인 #11 +4 20.11.24 948 39 16쪽
262 혈마인 #10 +4 20.11.20 949 46 14쪽
261 혈마인 #9 +8 20.11.17 952 4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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