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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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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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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57,900

작성
20.12.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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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카르바노그 #8

DUMMY

그날은 곤드 대륙 전체를 뒤흔든 지진과 비명이 울린 날이었다.

마치 신이 살해당할 때 내지르는 단말마 같은 비명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걸 너무나도 간단히 알 수 있는 날이었다.

하늘을 날던 새와 괴물과 용들조차 땅으로 내려와 숨죽여서 신의 분노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흔들리는 땅에 고개를 조아렸고, 땅에서 사는 드워프와 수인들과 인간들은 집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고 지진과 신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아아아앍아알! 내가 안 본 사이에 뭔짓 한 거야!]



하늘 전체를 가득 메운 여신의 고함소리에 대답을 하는 이는 없었다.

던전이 행성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면서 일으키는 지진이 간신히 가라앉았을 때 여신이 질문을 한 존재들은 다른 문제에 직면해서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진동이 벌써 끝난 겁니까?"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의 최저 깊이는 해저에서 7km 정도니 이 행성도 비슷한 조건이라면 던전이 지각을 파고드는 속도를 생각해볼 때 지진이 더 길게 이어졌어야 했어. 하지만 벌써 진동이 끝난 걸 보니 역시 창조신께서 손을 쓰셨나보군."



포이부스는 만신전의 악신들에게서 이미 금속 채굴 던전에 설치된 맨틀 직행 함정에 대해 듣고 카르바노그를 간편하게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창조신이 던전들을 조정해놨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기에 한번에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포이부스는 카르바노그가 던전에 진입하는 순간, 던전핵을 조작하여 던전에 심어진 함정이 발동되도록 하였다.

창조신이 조절을 하기 전이었다면 진짜로 맨틀까지 수직낙하 하도록 구멍이 생겼겠지만 창조신은 너무 불합리한 함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던전은 그저 2 km 정도를 아주 빠르게 하강했을 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던전 내부에 있던 괴물들은 죄다 천장과 벽 여기저기에 늘러붙은 껌딱지처럼 되어 즉사했지만 카르바노그 같은 괴물이 이 정도로 죽을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 포이부스는 차원문을 개방해서 안으로 군대를 돌입시켰다.



"이 정도로 죽을 놈이 아니야!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야 해!"


[돌격이다 돌격!]


"너무 들뜨신 것 아닙니까 이난나 님?"



이번에 제비뽑기로 메인 파일럿이 된 이난나는 평소보다 지나치게 들뜬 상태였고 포이부스가 걱정이 되서 물어봤지만 이난나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어차피 저 살인토끼 놈은 이제 지각 한가운데에 처박혀서 도망도 못 치고, 우리한테는 나라 하나도 순식간에 멸망시킬 수 있는 전력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야 이그니! 이거 조언자 툴팁 끄는 버튼 어디있어?]


[니 옆자리에 있는 킴푸루샤한테 물어!]


"꼭 이렇게 방심하면 뭔 일이 벌어지던데"



포이부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차원문이 열리자 대기하고 있던 고룡들이 먼저 진입하고, 그 뒤를 이난나와 킴푸루샤와 드워프 장인들이 탑승한 마도공학 메카 공룡이 따라가고, 코카트리스에 탑승한 템플리 나이트의 기병대와 팔라딘들이 돌입하고 난 뒤에야 포이부스가 마지막으로 차원문 안으로 들어섰다.

밑으로 하강하여 난장판이 된 던전 내부는 통로 전체가 뒤틀리고 일부는 아예 바닥과 천장이 키스를 하며 안에 있던 내용물들을 압착시켜 붉은 피와 투명한 피와 검은 피가 뒤섞여서 틈새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땅에서 나오는 열기가 던전을 덥히고 있었지만 이미 그것도 예측하고 사용자의 주변 온도를 조정하는 비싼 마법도구를 달고 온 돌입부대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끼이이이잉!!!!



용들과 마도공학 메카 공룡이 일제히 브레스를 발사하자 하강하면서 짓이겨진 통로가 일직선으로 관통되며 산소가 타올라 공기가 빨려들어갔다.



[어휴 시원해. 이게 게임이지]


[이보시오 이난나! 조종간! 조종간!]



그 압도적인 파괴력에 이난나는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로봇에 장치된 스피커로 한마디를 날렸다.

그러면서 조종간을 툭 친 건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기계룡이 발톱을 휘둘러대자 부조종사로 탑승한 킴푸루샤가 기겁하면서 말했지만 씨알도 안먹혔다.

이난나는 이미 화신으로 강림하지 않고도 발휘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으로 불러오는 파괴에 매료된 상태였다.



[지금 메데이나한테서 계속 전화오는데 어떻게 하냐?]


[걔가 전체 수신차단을 풀고 전화를 하고 있다고? 그냥 걔가 그랬던 것처럼 무시해. 보나마나 한번만 병력 빼달라고 할 텐데]


[전화 안받기 눌렀는데도 계속 걸려오네. 수신 차단 어떻게 해?]


[그 통신요청 옆에 점 3개 눌러서 설정 들어간 다음 지금 번호 수신차단 눌러]



한편 메데이나 여신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만신전과 협상 시도를 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사악한 신 프레두스의 수신차단 방법 공유로 인해 그녀가 들을 수 있던 목소리를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메시지 뿐이었다.



"돌입! 돌입! 돌입!"



신들이 나름대로 일을 하는 동안 저산소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바람속성의 마법석으로부터 공기를 공급받는 산소 마스크를 착용한 코카트리스와 코카트리스 등에 올라탄 기병대가 일직선으로 뚫린 통로를 향해 돌입하였다.


이들은 코카트리스의 석화광선을 뚫린 통로 곳곳에 투사하여 녹아내린 통로의 벽을 다시 단단한 암석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한 뒤 안전이 확인되자 먼저 통로너머의 방으로 진입하여 안전 확보 신호를 보냈고 신호를 받은 주력부대가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냥 조금만 더 시간 들여서 창조신이 막아놓은 기능 복구시켰어야 했나?]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까지가 아니라 구텐베르크 불연속면까지 수직낙하시켰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이렇게 뒤처리할 필요 없이 카르바노그도 즉사했을 거 아니야!]


[니들 제비뽑기에서 꽝 골랐다고 자꾸 궁시렁대는데 좀 아가리 해. ok?]


[아오 진짜 저년이!]



그동안 마도 공학 메카 공룡에 탑승하지 못한 신들은 계속해서 통신채널에 투덜거리는 소리를 내뱉었고 이난나가 한마디하자 급격하게 시끄러워졌지만 이난나는 쿨하게 무시하고 로봇을 조종해 전진하였다.

화신으로 세상에 강림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전능감을 화신으로 강림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여신이시여, 출력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페달을 조금 살살 밟아주십시오."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 아무도 날 막지못해!]



이난나는 드워프 장인 구야자의 충고도 무시한 채 자가 복구 모드로 돌아가서 통제가 되지 않는 던전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아서 기어나오고 있던 거미들을 기계룡의 발로 짓밟아버리고, 주포로 쏴서 터트리고, 레이저 브레스로 아예 소멸시키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였다.


이난나는 최근 들어서 가장 밝고 환하고 순수한 미소를 지으면서 조종간을 잡아당겼고 킴푸루샤는 왜 하필 이난나와 자기가 당첨 제비를 뽑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면서 이난나를 보좌하였다.



"어쩌면 메데이나 여신이 방어막을 쳐줘서 별 상처없이 살아있을 수도 있다. 조심해라."



허나 기분이 좋아서 날뛰고 있는 여신과 다르게 포이부스가 지휘하는 척살부대는 반괴된 던전의 통로들 사이로 빛나는 정령들을 풀어놓으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예전에도 메데이나 메자 마테 여신은 카르바노그가 고룡들에게 둘러싸인 위기 순간에 녀석에게 방어막을 씌워서 지켜준 적이 있었고 이번에 던전이 폭락하는 와중에도 녀석에게 방어막을 씌워줘서 보호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도 녀석에게 가해진 데미지만큼 메데이나 여신의 포인트를 깎아냈다면 놈을 죽이는데 도움이 될 거다 아르드바르."


"놈이 상처를 입은 상태로 뒤늦게 방어막이 씌워졌다면 더 좋지."



고룡들은 메데이나 여신이 방어막을 씌워줄 것까지 계산한 포이부스의 계략이 마음에 든 것인지 이빨을 드러내고 사방으로 뚫린 던전의 통로에서 바람의 흐름에 귀를 기울였다.

그 말대로 설령 카르바노그가 여신의 가호로 큰 상처를 입지 않고 견뎌냈다고 하더라도 던전이 떨어져내리면서 받은 충격을 감쇄하기 위해 메데이나 여신이 개입을 했다면 꽤 상당한 양의 권능 포인트를 소모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메데이나 여신이 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 다른 개체의 강화에 포인트를 소모했다는 죽음의 신 모트 투오넬의 첩보가 있었으니 여신이 남은 포인트를 카르바노그를 보호하는데 다 때려박았다면 전부 그들이 의도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것이었다.



"메데이나 여신에게 남은 포인트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그리 많지는 않을 거야. 권능포인트가 다 소진된 상태에서는 지상에 개입할 수 없을 테니 카르바노그가 태어난 이래로 최대의 위기라고 할 수 있겠군."



즈뮤는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한 채 자신의 비늘로 만든 경장 갑옷에 달린 건틀렛을 조정하며 말했다.

동생인 즈메이가 에우레테 여신을 섬기기로 한 뒤부터 이난나 여신은 즈뮤에게 여러 선물을 주면서 마음을 돌리려고 하였고 이 아름다운 갑옷 역시 그 선물 중 하나였다.

즈뮤 자신의 비늘로 만들어지고 사랑 교단의 여사제들과 여교황를 통해 여신의 축복이 내려졌기에 즈뮤가 이 갑옷을 착용하면 갑옷 자체를 자신의 몸처럼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래?"



그때 누나를 본 삼두룡 즈메이가 꺼림칙한 시선을 보냈고 포이부스가 묻자 즈메이는 머리 중 하나를 조용히 포이부스 쪽으로 숙이고 속삭였다.



"저거 아무리 생각해도 좀 그렇지 않아? 비위생적이잖아."


"아, 하긴 너희들 기준으로는 몸에서 벗거낸 때나 손톱을 모아다가 옷으로 만들어서 걸치는 거랑 비슷한가?"


"차라리 이빨로 만든 검 같은 건 이해라도 되지."



포이부스는 즈메이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즈메이는 그 말이 맞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까딱거렸다.

폴리모프 능력으로 여러 종족으로 변해서 다니던 즈뮤는 평범한 용의 감성과는 거리가 먼 것인지 자신의 몸에 딱 맞는 갑옷이 꽤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지난 번에 갑자기 이난나 여신이랑 짜고 자신을 놀리면서 사이가 좋아보였던 건 선물에 넘어가서 그런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포이부스는 손목에 찬 버클러의 가죽끈을 꽉 조이면서 말했다.



"일단 미쳐 날뛰는 이난나 님은 내버려두고 조를 짜서 수색을 시작한다. 카르바노그를 보면 싸우지 말고 바로 위치를 공유한다. 알았지?"


"예!"


"알았어"


"..."



다들 힘차게 대답을 했지만 세르피누스는 포이부스를 보면서 미묘한 시선을 보내왔다.

다만 그 시선은 포이부스를 몰래 습격에서 묻어버릴까 고민하는 것은 아니고 뭔가 찝찝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포이부스 역시 세르피누스의 그런 시선을 알고 있었지만 딱히 적의가 느껴지는 건 아니었기에 무시했고 용과 엘프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서 통로로 들어섰다.



[그럼 우린 이쪽이다!]



이난나는 기계룡을 몰아서 정면의 브레스로 뚫린 가장 큰 통로로 가버렸고 포이부스와 모르테스는 갈림길에 남아서 언제든지 신호가 오면 차원문을 열고 지원을 갈 준비를 하였다.



"놈이 어디에 있을 것 같나 모르테스?"


"일단 놈이 던전 입구에 들어온 순간 바로 입구를 닫아버리고 던전을 추락시켰으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다만 던전이 지하의 두꺼운 암석층에 충돌해서 멈춘 직후에 복구모드로 들어가면서 던전 벽의 재생이 멈췄으니 그 이후에 굴을 파서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모르테스는 칼을 찔러넣어도 재생되어서 칼날을 밀어내지 않는 던전 벽을 가리키며 말했고 포이부스는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이 이 지각판 밑바닥에 충돌한 충격으로 통로가 압착되었을 때 놈이 끼었다면 좋으련만"


"메데이나 여신이 예전에 용들이 카르바노그에게 복수하려고 했을 때 방어막을 쳐줬다는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가능성은 낮지만 그렇다면 일이 편하게 끝나겠지요."



모르테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통신기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고 모르테스가 대신 통신기를 봐주고 있으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 포이부스가 물었다.



"그럼 놈이 저 통로들 중에서 어디에 있을 것 같나 모르테스?"


"일단 이난나 여신께서 향하신 곳은 절대 아닙니다."


"왜지?"


"놈은 귀가 밝고 감지 능력이 탁월합니다. 비록 이성은 없지만 던전이 이 심연의 밑바닥에 충돌했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테고, 자만심으로 가득찬 평상시와 달리 이런 상황에서 브레스를 쏴서 통로를 뚫어버릴 때 퍼져나간 충격과 소음을 듣고 달아났을 겁니다. 메데이나 여신이 지시를 하고 있다면 더더욱"



확실히 모르테스의 말대로 메데이나 여신은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고, 카르바노그는 이성은 없지만 메데이나 여신의 지시는 잘 따르기에 여신의 말에 얌전히 복종했을 것이다.



"일리가 있군. 그럼 놈은 달아나고 있을까?"


"선택지는 2개가 있습니다. 놈의 뭐든지 파괴할 수 있는 이빨로 굴을 파면서 이동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신을 잡으러오는 사냥꾼을 처치하기 위해 잠복하고 있거나."


-제 5 기병, 적



그때 마침 통신기에 보고가 올라왔으나 이내 글이 지워지고 통신기의 금속판 전체가 빛나기 시작하였다.

반대편 통신기의 금속판 전체가 짓눌렸다는 의미였고 포이부스는 코카트리스 기병대 중 하나가 향한 통로 저너머에서 들리는 비명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서 자신의 통신기에 차원문 개방 요청을 넣었다.


몇 초 뒤 차원문이 열리자 포이부스는 바로 자신의 도끼를 짊어지고 뛰어들었고 포이부스가 본 것은 통신기를 들고 엎어진 목없는 엘프와 코카트리스들의 시체, 그리고 새빨갛게 물든 작은 무언가였다.


그것은 피로 물든 몸을 털어내면서 새빨간 눈으로 갑자기 나타난 포이부스를 노려보았다.

놈의 왼쪽 귀는 아무래도 던전이 지각판 밑의 심연 바닥에 처박힐 때의 충격으로 통로가 우그러지고 파편이 사방으로 튈 때 다친 것인지 반쯤 잘려나간 상태였다.



쿠구궁!



포이부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주술로 나무와 흙을 일으켜 통로들을 전부 폐쇄하는 것이었다.

피로 목욕을 해서 온몸이 붉게 물든 카르바노그 역시 그럴 줄 알고 있던 것인지 바로 포이부스에게 달려들었고 포이부스는 고함을 내지르며 양손으로 도끼를 잡고 휘둘렀다.


사냥의 신의 양날도끼와 앞니가 충돌하는 순간 이전에 베스코스와 싸웠을 때나 동해청와와 결투를 할 때와 달리 충격파가 터져나가거나 큰 일렁임이 일어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카르바노그는 도끼의 날을 이빨로 문 채 포이부스가 휘두르는 대로 매달려서 흔들렸고 포이부스는 그대로 도끼 날을 물고 안떨어지는 카르바노그를 벽에 도끼 째로 내리쳤다.



콰아앙!



도끼질 한방에 두텁지만 암석층에 충돌하며 우그러졌던 던전의 벽이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카르바노그는 단 한치도 도끼날을 문 이빨의 위치를 바꾸지 않았다.


그 무시무시한 턱힘으로 도끼날을 잡아두고 있던 괴물 토끼는 포이부스가 다시 도끼를 들어올릴 때 한순간 틈이 생기자 포이부스가 채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돌진해왔다.



텁!



포이부스는 뭔가 새하얀 공 같은 게 날아든다고 인식하자마자 드워프의 흑철로 만든 버클러를 들어올렸으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야? 빗나간 게 아니잖아!'



카르바노그가 방패에 맞아서 튕겨나간 것도 아니고 그냥 스쳐지나간 것 같아서 뒤를 돌아보자 카르바노그의 입에는 뜯겨나간 검은 철판이 물려있었고 자신의 손목을 본 포이부스는 흑철 버클러 반쪽이 뜯겨나간 걸 발견하였다.

포이부스의 머릿속에 '어 이거 좀 위험한데'라는 생각이 '위험한'까지 스쳐지나가던 중에 이미 흰색 탄환이 입에 물고 있던 철판 쪼가리를 뱉어내고 다시 날아든 뒤였다.


포이부스는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해서 반쪽만 남은 버클러로 자신의 목을 가려서 카르바노그의 시야를 차단하고 목을 지켰다.



푸슉!


"아으으으!"



하지만 목을 지켰으나 남은 버클러와 함께 손목의 살점이 일부 뜯겨나갔다.

뜯겨나간 살점과 함께 피가 흩뿌려졌고 포이부스는 이번에는 바로 자신의 등짝에 달린 사냥의 신의 좌안을 열어서 등 뒤로 날아간 카르바노그의 움직임을 추적하였다.


카르바노그는 이번에는 쉬지 않고 바로 포이부스의 뒷목을 노리고 날아오고 있었고 포이부스는 그대로 몸을 반바퀴 돌리면서 도끼를 휘둘렀다.



촤악!



목 대신 왼쪽 어깨의 살점이 약간 뜯겨져나갔지만 성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포이부스는 도끼의 날 끝을 타고 느껴지는 살점을 가르는 감촉을 맛봤고 자신의 어깨를 타고 흐르는 피가 팔꿈치에 닿았을 때 카르바노그의 오른쪽 귀가 조금 잘려나간 걸 볼 수 있었다.



"끄랴랴랴커허어엉!"



토끼 괴물은 왼쪽 귀에 이어서 오른쪽 귀까지 다치게 되자 분노가 본능마저 잠식해버린 것인지 토끼도, 사자도 아닌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포이부스를 향해 침이 뚝뚝 떨어지는 앞니를 내밀고 위협하였다.

포이부스는 치료마법을 발동시키며 상처 부위를 치료하기 시작했지만 회복이 더딘 것을 깨닫고 살짝 입술을 깨물면서 머릿속으로 대체 언제 흩어진 부대가 이곳으로 집결할지 계산하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이거 된통 잘못걸린 거 같은데 스목이랑 싸웠을 때보다 훨씬 위험하잖아"



괜히 먼저 나서서 혼자 왔나 자책했으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태였다.

포이부스는 동료들이 늦지 않게 오길 빌면서 기합을 내지르며 돌격했고 카르바노그 역시 눈앞에 있는 붉은 거인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탈출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것인지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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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카르바노그 #6 +6 20.12.15 994 38 11쪽
268 카르바노그 #5 +6 20.12.10 937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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