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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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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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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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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결착의 시간 #3

DUMMY

신들만이 멈출 수 있는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은 직접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변화시킨다.

곤드 대륙의 지하에서 살해된 괴수의 비명소리가 세상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질 때까지는 채 2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레무 대륙 북부의 하이엘프 왕국의 케트라 산의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으며 알록달록한 나뭇잎으로 털갈이를 하고 있을 때 케트라 산의 꼭대기에는 정체 모를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팔라딘 마르세우스는 그 긴장감이 최고조에 도달한 중앙관제소에서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자신이 섬겨야 할 이가 말할 것을 기다렸다.

수백 년 정도는 살해당하거나 병에 걸리지만 않으면 기본적으로 살아가는 엘프에게조차 몇 세대 이전의 머나먼 옛 시대에서부터 현 시대에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며 나타난 그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괴팍한 이는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평소에 엉뚱한 먹을 것을 부활시킬 때와 마찬가지로 깊게 생각에 빠져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는 지난 전투 이후로 상처를 다스리며 때를 기다려온 사제는 어떤 생각인지 1개월 전부터 본격적인 전쟁 준비를 명하였다.

그가 지금까지 평소에 늘 하던 치킨 타령을 더는 하지 않고 내팽개쳐놓은 자신의 갑옷을 현재 만신전에 합류한 용들의 비늘로 수선하라는 명을 내렸을 때 너무나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위험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모두가 머리가 아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카르바노그의 심장을 포식한 이후로 그는 점점 안그래도 멀어졌던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훨씬 멀어진 것 같았고 마치 카르바노그라는 강력하고 거대한 힘의 덩어리를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나날이 강해지고 있는 것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베스코스는?"


"이제 던전을 거의 돌파한 것 같습니다. 같이 건네준 주문 스크롤에 끼워넣은 신성력을 주입한 주문서가 거의 최하층 근처에서 느껴지고 있다고 알고로스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저희들만이 아닌 모양입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최근들어 본격적으로 신대륙으로 병력을 파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르세우스는 너무 깊게 생각에 빠져있던 것인지 평소에도 존재감을 능숙하게 감출 수 있는 동료 모르테스의 목소리가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들려온 것에 놀라 움찔거릴 뻔했다.



"보험은 들어뒀지만 그래도 불안하군.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거인은 자신의 붉은 사자 갈기 같은 풍성한 수염을 손으로 잡고 다듬으면서도 눈으로는 자신의 앞 테이블에 펼쳐진 신대륙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말대로 최근 전 세계에 진실의 신이 신대륙의 던전 깊은 곳에서 무언가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기존보다 더 많은 이들이 신대륙으로 오고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팔켄베르크 항구도시에서 탄생한 모험가 길드는 창설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며 신대륙 곳곳에 지부를 건설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의뢰를 맡기는 새로운 세력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것은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소문이 사람이 아닌 신들을 통해 퍼지고 있으니 이제 막을 방법 하나뿐이다."



카르바노그를 처치하고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영입하고, 아직까지 만신전에 투항하지 않은 용족 중 하나인 칸헬들을 설득하느라 하로나스의 만신전 세력이 2개월이나 되는 시간을 소모하는 동안 신대륙의 깊은 던전으로 들어간 베스코스에 대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였다.


베스코스 일당이 가지고 있는 아바리투스의 봉인이 단순히 신대륙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컨텐츠를 유저들에게 홍보하기 위한 미끼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더 커다란 이벤트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소문이 신들 사이에 퍼져나갔고 창조신을 비롯한 운영진 역시 그 질문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기다리라고 답변을 한 것을 보면 분명 이 세상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올 무언가가 시작될 게 분명하였다.



"실례합니다."



그때 엘프와 드워프로 이루어진 집단이 커다란 3개의 상자를 짊어지고 중앙관제소의 문을 열고 나타났다.

의자에 앉아있던 거인은 그저 그들을 바라보고 허락을 뜻하는 끄덕거림을 보여줬을 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마르세우스와 모르테스가 대신해서 눈치껏 주변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주변에 있던 작전참모들이 알아서 테이블과 의자를 밀어서 그들의 군주 앞에 공간을 만들었고 엘프와 드워프 장인들은 천천히 앞으로 다가와 3개의 상자를 내려놓았다.



"말씀하신대로 수선 및 개량을 끝냈습니다. 한번 확인해보시죠."



드워프 장인들의 대표인 구야자가 웃으면서 상자들의 뚜껑을 하나하나 손수 열어서 내용물을 보여줬고 첫번째 상자에서 나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핏빛 비늘로 뒤덮힌 거대한 갑옷이었다.


에스티나 왕국의 엘프 기사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다는 거인기사 칼레도조차도 헐겁게 느껴질 거대한 핏빛 갑옷의 부속품들을 끄잡아내기 위해 5명의 드워프 장인들이 달라붙어야 했고 포이부스는 그제야 의자에서 일어나 상자에서 꺼내진 갑옷 앞으로 향했다.


그는 직접 갑옷의 파츠를 하나하나 직접 들어올려 장착하였고 포이부스가 갑옷을 걸치자 드워프와 엘프들이 달라붙어 갑옷의 끈을 잡아당기고 어떤 때는 헐겁게 풀어서 조정을 시작하였다.


마침내 포이부스에게 사다리까지 동원해서 달라붙었던 엘프와 드워프들이 뒤로 물러났을 때 그곳에 있는 것은 더 이상 회색 사제복을 걸친 대교황이 아닌 신들이 군대를 맡긴 고대의 전쟁군주가 서 있었다.



"말씀하신대로 회수한 시조님의 용갑옷을 한번 해체한 뒤 흑룡 스목의 비늘과 다른 고룡들이 기증해준 발톱과 비늘을 사용하여 제련하였습니다. 첫번째 층은 용의 비늘과 뼈로 되어 있고 2번째 층은 마력 전도율이 낮은 검은 합금으로 만들어 거기에 마법진들을 새겼습니다. 안쪽의 옷감으로는 용가죽을 사용하였고 그 안쪽에 방호와 강화를 위한 마법진을 한 번 더 새긴 뒤 다시 마나메탈을 사용하여 회로 및 마법진 보호를 위한 퓨즈로 사용하고 마지막으로 피부와 닿는 부분은 각종 정령들의 머리카락으로 짜낸 천으로 마감처리를 하였습니다."



드워프 장인 구야자는 열성적으로 자신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가면서 어떻게 갑옷을 다시 재창조했는지 설명하였다.

갑옷을 입어본 포이부스는 구야자의 성격대로 거추장스러운 기능보다는 갑옷 자체의 방호력을 최대한으로 높이는데 집중한 것을 느꼈고 그렇기에 더더욱 만족하였다.



"일정량 이상의 마력이나 신성력이 주입될 시에 마나메탈 퓨즈가 끊어져서 마법진을 보호한다는 건 알겠다만 그럼 퓨즈 교체는 어떻게 하지?"


"여기 이 부분을 잡아당기면 안쪽의 옷감을 쉽게 벗겨낼 수 있습니다. 물론 마나메탈이 녹아내려서 옷감이 닿는 부분들에 스며들겠지만 그걸 대비해서 마나메탈 퓨즈가 있는 부분의 천들은 탈모에 걸린 불의 정령들의 머리카락을 모아서 만든 것이니 마나메탈 퓨즈가 녹아내렸다가 굳어지면 이 부분만 따로 떼어낼 수 있을 겁니다."



포이부스는 갑옷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마지막으로 4개의 뿔이 달린 붉은 투구를 써봤다.

눈 구멍을 제외하고 모든 곳이 막혀있는 투구는 다행히도 고개를 최대한 삐딱하게 기울여봐도 뿔들이 어깨보호대에 닿지는 않았다.



"좋아, 마음에 드는군. 그럼 다음은?"


"예, 요청하신대로 크나시아의 룬마법학파장과 순수마도학파장을 불러다가 밤낮으로 연구하게 해서 완성시켰습니다."



그 다음 상자에서 드워프들이 꺼낸 것은 손잡이의 길이만 포이부스의 키만큼 큰 거대한 망치였다.

망치는 흔히들 쓰이는 한쪽 면에만 해머해드가 달린 워해머보다는 양쪽 면에 해머해드가 달린 공구 해머로 보였으나 한쪽 면에는 파괴를 상징하는 룬이, 다른 한쪽 면에는 불의 룬이, 망치의 중심에 달린 스파이크에는 번개의 룬이 양각되어 있었다.



"요청하신대로 최대한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중량을 늘렸고, 윗부분의 스파이크를 최대한 두껍게 해서 워픽처럼 쓸 수 있게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해머의 접촉면에 마력을 담아서 휘두르면 자동으로 상대방의 피부나 갑옷에 룬을 찍어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포이부스는 한동안 도끼와 채찍, 플레일만 쓰다가 다시 망치를 잡게 된 것이 감회가 남다른지 한참동안 망치를 잡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바라보았다.

의뢰인이 꽤나 마음에 들어하는 걸 본 드워프들은 기뻐하면서도 마지막 물건들을 꺼낼 준비를 하고 있었고 포이부스는 망치를 내려놓고 마지막 상자를 바라보았다.



"지난 전투로 파괴된 즈뮤 님의 갑옷도 수선을 끝마쳤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고룡 니드호그의 등골과 꼬리뼈로 만든 대검을 즈뮤님께 주실 겁니까?"



드워프 장인들과 엘프들이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카르바노그와의 전투로 파괴된 즈뮤의 갑옷과 먼 옛날 포이부스가 사용하던 용골 대검의 개량판이었다.

드워프와 엘프 장인들은 일단 시키는대로 갑옷과 대검을 완벽하게 수선해놨지만 격투 중심인 즈뮤에게 굳이 이런 무식하게 큰 무기가 필요한지 의문이라는 얼굴로 포이부스에게 물었고 포이부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즈뮤는 격투기를 주로 사용하지만 무기를 다루는 실력 역시 상당하니 최소한 걸리적거리는 짐덩이 취급하지는 않을 거다. 게다가 즈뮤 본인도 격투기와 마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포이부스는 그러면서 일단 즈뮤의 반응을 보겠다며 부하를 시켜 즈뮤를 불러오게 하였고 호출을 받아서 온 즈뮤는 자신의 갑옷을 보고 얼굴이 활짝 펴졌다가 그 옆에 놓인 대검을 보고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뭐야 이거?"


"내 선물이다 즈뮤. 이제 이 검은 너의 것이다."



그녀는 잠깐의 고민 후 결국 자신의 키만큼 거대한 대검을 받아서 들어보고는 살짝 휘둘러보거나 무게중심을 알아본 뒤 별다른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이런 흉흉한 물건이나 건네주고? 상처가 낫자마자 전쟁이라도 하려는 거야?"


"이제 슬슬 아바리투스 님을 탈환하러 간다."


"곧 스틸리나랑 마가렛의 해산일인데?"



즈뮤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케트라 산에 처박혀 있는 동안 마가렛과 스틸리나와 꽤나 친해졌고 그렇기에 그녀들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전쟁을 시작하면 이제 곧 아이들이 태어날 때 옆을 지켜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산만한 덩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라는 표정을 하고 있는 즈뮤에게 포이부스는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가능하면 움직이고 싶지 않지만 베스코스가 목표지점에 거의 도달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놈이 최하층에 도착하고 협력자에게서 신호가 도착하면 바로 강습한다. 네 동생이랑 드라콘에게도 전해둬라."


"그냥 우리한테 맡겨도 되는데"



벌써부터 대사제가 아닌 전쟁군주로서 갑옷을 걸치고 준비를 하고 있는 포이부스에게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니냐는 얼굴로 즈뮤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고 포이부스는 잠깐 고민했지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상대가 평범한 잡병이었다면, 하다못해 베스코스와 그 동료들 뿐이었다면 나는 너희한테 일을 맡기고 가족들과 있었을 거다 즈뮤. 하지만 상대는 진실의 신이다. 그 사도를 우리쪽으로 회유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상대지."



포이부스는 마르켄데야와의 거래를 떠올리며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는 걸 즈뮤는 물론이고 모두에게 상기시켰다.

즈뮤는 잠깐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중앙관제소 밖으로 나가면서 어깨너머로 포이부스에게 말했다.



"그래도 당장 일이 닥쳐오기 전까지는 가족 곁에 있어. 어쩌면 영영 못 볼 수도 있잖아."


"그래, 그것도 그렇지"



포이부스는 잠깐 말이 없다가 즈뮤의 말이 맞다고 인정하면서 대답을 해주고는 갑옷을 벗고 다시 회색 사제복을 입고 중앙관제소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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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결착의 시간 #8 +7 21.01.26 900 44 17쪽
280 결착의 시간 #7 +12 21.01.21 931 45 12쪽
279 결착의 시간 #6 +10 21.01.19 938 45 18쪽
278 결착의 시간 #5 +9 21.01.14 963 49 15쪽
277 결착의 시간 #4 +10 21.01.12 920 43 12쪽
» 결착의 시간 #3 +6 21.01.07 968 41 12쪽
275 결착의 시간 #2 +3 21.01.05 954 51 12쪽
274 결착의 시간 #1 +12 20.12.31 1,002 48 13쪽
273 카르바노그 #10 +18 20.12.29 1,036 50 23쪽
272 카르바노그 #9 +6 20.12.24 928 42 14쪽
271 카르바노그 #8 +12 20.12.22 960 41 18쪽
270 카르바노그 #7 +10 20.12.17 936 38 13쪽
269 카르바노그 #6 +6 20.12.15 994 38 11쪽
268 카르바노그 #5 +6 20.12.10 937 40 15쪽
267 카르바노그 #4 +5 20.12.08 918 41 12쪽
266 카르바노그 #3 +14 20.12.03 950 48 11쪽
265 카르바노그 #2 +9 20.12.01 943 44 15쪽
264 카르바노그 #1 +5 20.11.26 985 42 12쪽
263 혈마인 #11 +4 20.11.24 948 39 16쪽
262 혈마인 #10 +4 20.11.20 949 46 14쪽
261 혈마인 #9 +8 20.11.17 953 4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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