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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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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연재수 :
2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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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57,900

작성
21.01.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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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결착의 시간 #2

DUMMY

꿈이란 통제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헤이메 왕국의 왕자, 언젠가는 헤이메 왕이라 불릴 남자 웰란드 헤이메는 그런 흔하디 흔한 통제되지 않는 끔찍한 꿈을 꾸고 있었다.


시체가 쌓여있는 파괴된 대지 위에는 불이 놓여져 있었고, 불타는 열기에 실려 올라간 사람들의 비명과 재로 더럽혀진 검은 하늘에서는 수많은 얼굴이 웃음소리와 고함과 교성을 내며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웃음, 놀라움, 경악, 만족 등등 수많은 얼굴들은 인간의 것이 아닌 기괴한 모습들이 많았고 그 대지 위에서 왕자는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마치 대관식을 위해 사제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처럼, 그는 무릎을 꿇은 채 빌고 있었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그는 애원하고 있었다.

대체 누구에게?

누구에게 빌고 있는 것인가?

어째서인지 또 다른 꿈속의 자신의 등을 멀리서 바라보면서도 왕자는 자신이 누구에게 빌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가 섬기는 복수와 대장간의 신 볼룬드에게 비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끔찍하게도 그가 느끼는 것은 볼룬드 신의 든든한 가호와 격려가 아닌 다른 존재가 내뿜는 기운이었다.

그 기운과 존재감이 너무나도 넓게 퍼져 있어서 꿈속의 왕자와 꿈을 꾸는 왕자 둘 다 한 순간 자신의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할 정도였다.



-가볍게 그분들을 찾지 말라.



천상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신들의 힘조차도 무색해질 정도로 파괴된 영역 전체를 감싸는 힘의 주인이 입을 열고서야 왕자는 그 끔찍한 기운의 주인이 바로 자신의 앞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신이시여! 저를 사랑하신다면 한번만 저를 구해주소서! 신들이시여!


-공허한 기도를 올리는구나 왕자여. 감히 그분들께 헛된 사랑을 갈구하며 그분들을 귀찮게 하지 마라. 너나 내가 지금 당장 사라진다 할지라도 이 오래된 게임은 절대로 중단되지 않는다. 그저 링 위에 올라올 장기말이 바뀔 뿐. 내가 그토록 말을 해줬건만 아직도 자신이 진실된 사랑을 받고 있다 착각을 하고 있구나.



그 끔찍한 기운과 존재감의 주인은 꿈속의 왕자의 머리채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갔다.

왕자가 손에 들고 있는 황금빛의 검은 이미 반으로 부러져 있었고 부러진 검을 휘둘러보았지만 부러진 검으로는 그자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너무나도 강하고 억센 힘에 왕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질질 끌려갈 뿐이었다.


그자에게 끌려가면서 왕자는 뒤에 남겨진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시체 더미 안에는 그가 사랑하는 세 여동생 올룬, 헤르보르, 흘라드구드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자신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꿈속의 웰란드 역시 여동생들에게 손을 뻗었지만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웰란드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나는 아주 오래 전에, 내 한계를 깨달았다.



하늘의 신들의 기운조차 가로막는 사악한 존재는 왕자를 질질 끌고 가다가 왕자가 휘두르는 부러진 검이 성가셨던 것인지 왕자의 손목을 짓밟아 검을 놓게 하고는 이번에는 왕자의 머리채가 아닌 목을 잡고 질질 끌고가며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끌려가고 있는 꿈속의 왕자는 계속해서 기도를 올렸지만 느껴지는 것은 신들의 따스한 손길이 아닌 활화산처럼 뜨겁게 타오는 거인의 타오르는 주먹이었다.



-누군가는 내가 그릇된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항상 이 길을 걸어왔고, 후회를 할지언정 여기서 벗어나지도,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왕자의 목을 잡고 질질 끌고가던 거인은 왕자를 내던졌고 왕자는 어두운 허허벌판에서 뭔가에 부딪쳐서 날아가던 것을 멈췄다.

꿈을 꾸는 왕자는 꿈속의 자신과 부딪친 그것이 거대한 석판이며 그 위에 맑고 투명하면서도 저 위의 별이 수놓여진 검은 하늘과 똑같은 보석들이 잔뜩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동전을 휘감은 뱀의 조각상 역시 보았다.



-누군가는 나를 미쳤다고, 내가 변했다고 말하고 기록하겠지. 아직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걷어차고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만을 위해서 기회를 낭비한다고!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생각을 바꾼 적이 없다. 이 생각 때문에 지금껏 수많은 종족들이 나를 증오해왔음에도 단 한 번도... 단 한 번을 말이다.



거인은 갑자기 허공에 손을 올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뭔가가 있는 것처럼 주먹을 움켜쥐었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꿈속의 왕자의 뒤쪽에서 들려왔고 꿈을 꾸는 왕자는 꿈속의 자신의 뒤에 있는 석판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걸 보았다.



-어떤 신께서는 우리가 운명을 피할 수 있음에도 우리의 선택이 불행을 불러왔을 때 운명이 자신을 파멸시켰다고 울부짖는다고 비웃으셨지. 우리를 지배하는 운명이 전지전능하다 착각하지만 사실 사람은 자신의 업보대로 대가를 치르는 법이라고 말이야.



거인은 한손으로 석판을, 다른 한 손을 옆으로 내밀고 천천히 들어올렸고 그 손짓을 따라 주변에 널려있는 시체들로부터 피가 뽑혀나왔다.

수십, 수백의 시체로부터 뽑혀나온 피의 선율이 스스로 소리를 내면서 석판으로 모여들었고 거인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꿈속의 왕자에게 말했다.



-두려운가? 눈앞에 다가와서 얼굴을 들이미는 패배가 두려운가? 이번에 지면 끝장이라는 걸 알면서도 짐승처럼 자신에게 다가온 운명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싶지 않다고 발버둥치지조차 못하는구나. 당장 도망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다리에서 힘이 풀려서 움직일 수 없는 무력함이 영혼에 남기는 상처가 얼마나 큰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상처가 남은 내가 이번에는 남에게 똑같은 상처를 남긴다는 게 얼마나 슬프면서도 우스운 일인지!



그 말이 끝나고, 무언가 유리구슬이 갈라져서 파편들이 서로 엇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 뒤 피와 재와 비명으로 더럽혀져 있던 밤하늘을 물러나게 하는 태양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태양은 지평선이 아니라 꿈속의 왕자의 등 뒤의 석판으로부터 떠올랐고 왕자는 빛 속에서 눈을 뜰 수 없었다.

하지만 급격하게 이 꿈속의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면서도 거인의 목소리만큼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제 일어나소서 욕망의 뱀이시여!



왕자는 또 다른 자신이 태양 속에 삼켜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이제 왕궁에 있는 자신의 침실에 있었고 주변은 새벽녘의 별빛만이 유리창을 통해 들어와 어두웠지만 왕자 본인은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온몸이 따끔거리는 착각을 느꼈다.

그러나 착각과 환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왕자는 얼마 있지 않아 식은땀이 몸을 차갑게 적시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시종을 부르는 대신 침대에 걸터앉은 채 오랜시간 숨을 고르며 자신이 꾼 꿈에 대해 생각하였다.


그냥 개꿈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섬뜩하고 선명한데다 오늘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하필 중요한 일이 있는 오늘 이런 꿈을 꾸게 된 것이 과연 우연인가?

그렇다면 이 꿈은 미래에 대한 경고인가?

아니면 무언가 불행이 닥쳐올 것을 암시하는 것인가?

자신에게 마법적인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왕자였기에 더더욱 이 꿈이 단순한 악몽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계속 고민했으나 결국 아침해가 떠오르는 걸 보게 되었다.


동이 터오를 때까지 고민을 계속하던 왕자는 햇살이 자신의 몸을 뒤덮자 다시 태양이 자신을 불태우던 꿈을 떠올리며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었다가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다시 햇빛으로 몸을 내밀었다.

왕자는 시종을 불러 옷을 갈아있고 하루 일과를 준비하면서도 계속해서 꿈이 마음에 걸렸고 헤이메 왕국의 왕성 브레이다블리크를 나와 세바르스토드 섬으로 향하면서도 계속해서 고민했다.


하지만 섬에 도착해서 지하통로로 진입해 햇빛을 받지 않게 된 순간부터 고민은 사라지고 그의 머릿속에 신을 영접하는 일이 들어찼다.

대장장이 신의 지하 대장간으로 통하는 길에는 그 어떠한 경비도 없었지만 안으로 들어선 순간 신비로운 기운이 그들을 감쌌다.

꿈속에서 느껴지던 거인의 끔찍한 존재감과 달리 아주 편안하게 느껴지는 기운이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고 왕자 일행은 대장간 안으로 아무런 제지없이 진입할 수 있었다.



[잘왔다]



대장간 안에서는 모루 앞의 의자에 걸터앉은 거대한 존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라빛에 가까운 구리색 피부에, 발목에 큰 흉터가 있고, 겨드랑이 근처의 날개죽지에 진짜로 작은 날개가 달린 백발이 듬성듬성하게 난 회색빛 눈의 거인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왕자는 즉시 살면서 몇 번 해본 적이 없는 극상의 예를 표하며 무릎을 꿇고 말했다.



"헤이메 왕국의 주인이자 선조이신 볼룬드 신을 뵙나이다."


[인사치례는 됐다. 오늘 너희를 부른 것은 전해줄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신의 허가가 떨어지자 왕자 일행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감히 신의 얼굴을 함부로 보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신의 손을 바라보았고 그 위에 3자루의 검과 성작과 지팡이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부하들이 줄을 서서 순서대로 각자 하나씩 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물건들을 가지고 나왔고 그들 중 마지막 사람이 들고 온 검을 보고 왕자는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뱉었다.



"헙!"


[뭐냐? 그 검이 마음에 드냐?]



그건 다름이 아닌 꿈속에서 봤던, 꿈속의 웰란드 왕자가 쥐고 있던 검이었다.

왕자는 자신이 검을 마음에 들어해서 놀라는 걸로 착각하는 신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검을 든 시종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신이 내려준 검을 감히 받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그에게 없었다.

왕자는 얼떨떨한 얼굴로 검을 받아들었고 볼룬드 신은 왕자가 왜 떨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검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 검의 이름은 그람, 의미는 분노다. 원래는 바른스톡크의 나무에 박아놨다가 뽑는 놈한테 줘야 하는데 상황이 상황이니 그냥 네가 써라]



꿈속의 거인은 어떤 신이 필멸자들이 운명을 피할 수 있음에도 거기로 돌진한다고 비웃었다고 했지만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원치않더라도 그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을 운명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신이시여"


[응? 뭐냐?]



왕자는 자신의 신에게 꿈에 대해 말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고 어떤 것을 택해야 파멸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자신의 신에게 꿈에 대해 말하기로 하였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기에 웃으셔도 상관없지만 끝까지 들어주소서"


[그래, 해봐라]



볼룬드 신은 왕자가 검을 받아놓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게 있어서 그런가 싶은 얼굴이었지만 왕자가 오늘 새벽에 꾼 꿈의 시작에 대해 듣고는 그냥 개꿈인데 뭘 그런 것까지 이야기를 하느냐는 얼굴이었지만 왕자가 말하는 꿈의 내용을 들으면서 점점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꿈속의 거인이 운명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왕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왕자의 말이 끝났을 때 볼룬드 신의 눈은 갈곳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아바리투스가 깨어날 거라고 예고하는 건가? 대머리 악신 놈,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지? 그래, 잘 말해줬다. 고생했을 텐데 가서 쉬고 있어라.]



볼룬드 신은 왕자를 비웃거나, 혼내는 대신 고생했다 말하고 물러가게 하고 대장간에 홀로 남아 계속 고민하였다.


작가의말

구야방 님 선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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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카르바노그 #8 +12 20.12.22 960 4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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