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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굴림실패 님의 서재입니다.

치킨 없는 판타지에 구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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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6굴림실패
작품등록일 :
2019.10.28 19:34
최근연재일 :
2021.03.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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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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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카르바노그 #7

DUMMY

쾌락에 굶주린 신들의 공허한 조소가 세상을 뒤덮는 이 시대에 작은 공이 던져졌다.

비록 공 자체는 아주 작고 수면에 퐁당거리는 작은 소리를 낼 뿐이었지만 그 공이 만들어낼 파문이 어디까지 커질지 신들은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신들 중에서도 강하고 넓은 시야를 가진 진실의 신은 이번 사건이 불러올 파장이 아주 심각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비록 확정된 미래를 볼 수는 없더라도 미래로 뻗어나가는 가지들을 볼 수 있는 그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기괴한 웃음을 짓고는 자신의 옆에서 소형 마사지기를 목에 감고 있는 창조신에게 말했다.



"이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개입할지 말지 결정은?"


"그으으으으으러어어어어어냐아아아아아"


위이이이이잉!



한동안 온갖 이상한 사태와 버그와 룰치킨 짓에 대응하느라 지쳐있던 창조신은 마사지기가 가져다주는 시원함에 대충 대답하면서 눈을 감고 있었고 진실의 신은 창조신을 내버려두고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 속에는 옛 아펩 신의 영토에 있는 금속 채굴 던전에 들어선 포이부스 일당이 던전핵을 가지고 던전을 조작하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던전의 특성을 이용해서 카르바노그의 탐지능력과 메데이나의 눈을 무력화시킬 생각인가?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모자랄 텐데?"



카르바노그의 탐지능력은 단순히 그 좋은 청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위장이나 은폐마저 꿰뚫어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탐지 능력이 동반된 복합적인 탐지이기에 쉽게 무력화할 수가 없다.

게다가 카르바노그가 아무리 제대로 된 이성이 없는 괴물이라고 해도 부모나 다름없는 메데이나 여신의 말에는 제대로 복종하기 때문에 카르바노그를 속이기 위해서는 메데이나 여신의 시선까지 피해야 했다.


하지만 카르바노그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아예 세상과 다른 법칙으로 움직이기에 반쯤 격리된 이계 취급을 받는 던전 밖에서 던전 안에 펼쳐진 은폐까지 꿰뚫어볼 수 재주는 없고, 신들조차 작정하고 탐지를 하려고 해야 간신히 던전 내부의 정보를 조금 알 수 있을 뿐이니 메데이나와 카르바노그 양쪽의 탐지를 피하기 위해서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만약 신들이 마음대로 던전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면 벌써 지상에 가까워진 수많은 던전들이 공략되어 무한하게 아이템을 뱉어내는 보물 주머니가 되었겠지만 아직까지 정복되지 않은 던전이 꽤 많다는 것은 이 세계의 던전의 기초 시스템을 만든 이그니와 악신들이 얼마나 보안에 쓸데없는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진실의 신은 자신의 눈에 비춰지는 시야 중 하나를 신들이 머무는 첫번째 달의 개인실 쪽으로 옮겼다.

그의 눈에는 오늘도 강화버튼을 연타하고 있는 메데이나 여신과 같은 만신전 소속인 모트 투오넬, 델링그 신이 보였고 그중에서 진실의 신의 시선은 죽음의 신 모트 투오넬에게로 향했다.


모트 투오넬은 델링그 신의 눈치를 보면서 슬쩍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고 그 메시지가 전송되는 동시에 다른 구역에 있는 하로나스의 만신전 멤버들이 머무는 방에 있는 드모'우레스의 메시지창에 알림이 울렸다.



"투오넬은 하로나스 측에 이미 매수된 상태인가? 하긴 메데이나는 같은 만신전 소속임에도 지금까지 델링그와 투오넬에게 공헌을 한 게 없으니 아니꼬왔겠지."



델링그와 투오넬은 지금은 비록 서로 다른 대륙으로 떨어져나갔지만 제2시대까지만 해도 서로 열심히 돕고 살았던 반면 메데이나는 이 둘에게서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고 도움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협력하라고 카르바노그를 보내도 이 미친 토끼 괴물이 적아 구분 없이 전부 죽이고 다녀서 되려 피해가 더 커진 적이 꽤 있었고 그 뒷수습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힘이 있는 모트 투오넬이 도맡아서 하였다.


그런데 제3시대 들어와서 카르바노그가 투오넬의 아카이아 왕국에 도움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감정이 안쌓이면 되려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투오넬도 그냥 하로나스 측에 붙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하고 순순히 매수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의 신의 눈에는 카르바노그가 죽는 장면이 쉽게 비춰지지 않았다.

현재 필멸자들 중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들 대부분은 전투능력과 내정능력이 생각보다 균형잡힌 이들이 대부분이다.


동천청와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지난 2천년 동안 지혜의 신이 없는 해양 제국을 잘 이끌어 온 정치가이며, 고룡들 역시 단순무식하게 힘만 강한 것이 아니라 동족을 다스리고 통치하며 다른 종족들로부터 정보를 얻어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현재 각 종족을 대표하는 강자들은 스스로를 단련한 시간보다 종족과 집단의 통치에 생각 이상으로 많은 힘을 쏟아부었기에 명성에 비해 개인의 무력은 조금 떨어지는 편이었다.


반면 동해청와, 카르바노그 이 둘은 앞서 말한 이들과 달리 오로지 자신의 단련을 위해 살아왔다.

동해청와는 뇌옥에 감금되어 부하들과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카르바노그는 애시당초 이성이 없이 오로지 여신과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폭군이었기에 자신들과 비슷한 다른 이들보다 강한 힘과 기술을 지니게 되었다.

이 둘의 힘과 기술은 앞서말한 이들을 확실하게 압도한다고 할 수 있으나 이들은 너무 강하면서 난폭했기에 고독했다.


애시당초 자의라는 게 없는 짐승인 카르바노그와 오랜세월 뇌옥에 감금되어 끝내 정신이 나가 혈마인이 된 동해청와가 제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다른 이를 제대로 통치하고 이끌 수 있는가?

오로지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드는 이를 신을 대신한 지도자로 내세울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재미로 필멸자를 굴리는 신들 외에는 모두 '아니'라고 답을 할 것이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때마침 마사지가 끝난 창조신이 목에서 뚜둑거리는 소리를 내며 스트레칭을 하더니 화면 앞으로 돌아왔고 그는 잠깐동안 정보 취합만으로 금세 상황을 파악하였다.



"저런 함정에 누가 걸려?"



남쪽 국가에서 가져온 코코넛 껍질을 두드리며 말이 달리는 소리를 내는 팔라딘들과 엘프 기사들이 피가 흘러내리는 고기를 짊어지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심지어 셋 혹은 다섯 명씩 조를 짜서 움직이고 있었고 템플리 나이트들은 대체 왜 이짓을 해야 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고기의 피 냄새로 유도하면서 동시에 청각으로 주의를 끌어서 끌어들일 생각이군. 평범한 짐승도 안 걸려들 함정이지만"


"하지만 지금 카르바노그는 자만심이 엄청난데다 심지어 배고픈 상태지."


"메데이나가 안 말리면 바로 뛰어들겠지."


"하지만 그 메데이나는 지금 강화중독에다 투오넬이 감시하고 있으니"



카르바노그의 최대 단점은 자기자신조차도 통제를 못한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유일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인 메데이나가 강화기 돌리는데 빠져서 카르바노그를 돌보지 않을 때는 특히나 더더욱.

포이부스 일당은 이미 메데이나 여신이 강화 중이라 카르바노그 쪽을 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정찰로 카르바노그 주변에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한 상태였다.


벌써 하루나 굶주린 참을성 없는 카르바노그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귀를 거슬리게 하는 코코넛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따라 서서히 던전 도시로 접근하였다.

엘프 팔라딘들은 수많은 건물들 뒤에 숨어서 거리 곳곳에 피를 묻히고는 조미된 고기를 으슥한 뒷골목에 놔뒀고 피 냄새에 이끌린 카르바노그는 소리와 냄새에 이끌려 뒷골목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달그닥 달그닥 달그닥



그렇게 팔라딘들과 카르바노그가 서로를 시야에 잡은 순간, 팔라딘들은 잽싸게 고기를 집어들고는 허리춤에 달고 있는 코코넛들이 크게 흔들려 다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차원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소리는 이제 도시 반대편에서 나기 시작했고 카르바노그는 엄청난 속도로 소리의 근원을 향해 돌진하였다.

경로상에 있던 모든 건물과 구조물이 순식간에 관통되었으나 소리의 근원지에 도달한 카르바노그가 본 것은 작은 고기 한점 뿐.


카르바노그는 이미 자신의 탐지 범위 밖으로 사라져버린 엘프들을 찾으려는 노력 대신 눈앞에 놓여있는 고기를 앞에두고 코를 킁킁거렸다.

고기는 구워지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사과와 당근을 갈아서 재워놨던 것인지 상큼한 냄새가 고기의 미세한 누린내와 함께 섞여서 풍겨왔다


카르바노그는 독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게걸스럽게 고기를 먹어치웠고 생각보다 괜찮은 맛에 한순간에 사라진 고기가 있던 자리를 아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그때 카르바노그의 예민한 귀에 다시 도시 반대편에서 코코넛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카르바노그는 몸을 돌려 고기가 있을 곳을 향해 나아갔다.

이번에는 배가 조금 채워져서 그런지 건물을 부수고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타고 올라가 건물들의 지붕을 뛰어넘으며 향했고 소리가 나는 곳 근처로 가자 다시 코코넛 부딪치는 소리가 끊어지고 대신 야채와 과일에 재워진 고기 냄새가 풍겨왔다.


이번에도 아까와 비슷한 고기만 남아있을 뿐이었고 카르바노그는 그 작은 고기를 먹어치웠다.

이제 조금 배가 꽤 찬 상태였지만 다그닥 거리는 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그런식으로 하루의 끝을 알리는 해가 저물었을 때 카르바노그는 충분히 배가 채워진 상태였다.


카르바노그는 혹시 밤에 코코넛 소리를 내는 녀석들이 기습을 해오는 게 아닌가 싶어 귀를 쫑긋세우고 대기했지만 도시는 텅 비어 카르바노그 혼자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엘프 팔라딘들은 고기의 냄새와 코코넛 소리로 카르바노그를 천천히 옥죄이기 시작하였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듯이 카르바노그는 2일 동안 코코넛 소리를 따라가면 고기가 나온다고 학습하였다.

2일째의 고기는 1일째에 먹었던 고기보다 훨씬 훌륭하였다.

3일째 되던 날에는 코코넛이 달그닥 거리면서 말이 뛰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면 바로 뛰쳐나갈만큼 학습이 충분히 된 상태가 되었다.

3일째의 고기는 2일째의 고기보다도 더 상태가 좋았고 카르바노그의 기대감은 점점 커져갔다.

심지어 밤에 기습조차 없었기에 4일째가 되어서는 편안하게 숙면을 취하기까지 하였다.

4일째의 고기 역시 3일째의 고기보다 훨씬 신경써서 숙성시킨 티가 드러나 지성이 없는 카르바노그조차 차이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5일째가 되어서는 구워진 고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날고기만 먹던 카르바노그는 조금씩 적당하게 구워진 고기 맛에 익숙해졌다.

6일째에는 왕후장상조차 자주 먹을 수 없는 맛의 드래곤 스테이크가 나오기 시작했고 카르바노그는 완전히 눈이 돌아가버렸다.


메데이나 여신 역시 카르바노그가 공격당한다거나 배고파서 미쳐 날뛰고 있다는 메시지는 안뜨고 카르바노그가 만족한 상태라는 메시지가 뜨고, 도시 전체가 피범벅이 되어 있는 걸 대충 보고 넘겨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닫지 못하고 계속 라시아 대륙의 토끼 괴물을 강화하는데 집중하였다.

자신이 보지 않을 때만 누군가가 나타나서 카르바노그에게 고기를 던져준다는 사실을 모른 채 여신은 방심하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그런식으로 일주일 째의 아침이 되었을 때, 카르바노그는 다시 코코넛 두드리는 소리인지 말이 달리는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오자 바로 일어섰다.

오늘은 분명 어제보다 맛있는 고기가 나올거라고 굳게 믿으며 편하게 맛있는 고기를 먹기 위해 카르바노그는 오늘도 편안한 발걸음으로 거리를 지나쳤다.



다그닥 달그닥 달그닥 다그닥



그 소리는 도시 중심부의 지하로 이어지는 커다란 균열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카르바노그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고기를 의미하는 소리는 그 균열 안쪽의 드래곤도 지나갈 수 있는 거대한 지하통로의 거대한 문 안쪽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한순간 카르바노그는 던전의 이질적인 기운에 멈칫했지만 그때 문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치이이익! 화르륵!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고기가 익어가면서 내는 소리와 냄새였다.

그것도 어제 나온 드래곤 스테이크!

순간 카르바노그의 식욕이 위험감지 본능을 앞서버려 카르바노그가 즐겁게 그 문을 통과한 순간, 그 거대하고 경첩조차 없는 커다란 문이 천천히 움직이며 닫혀버렸다.


메데이나 여신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았을 때는 금속 채굴 던전은 굉음을 내면서 지하의 맨틀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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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결착의 시간 #8 +7 21.01.26 900 44 17쪽
280 결착의 시간 #7 +12 21.01.21 931 45 12쪽
279 결착의 시간 #6 +10 21.01.19 938 45 18쪽
278 결착의 시간 #5 +9 21.01.14 963 49 15쪽
277 결착의 시간 #4 +10 21.01.12 920 43 12쪽
276 결착의 시간 #3 +6 21.01.07 967 41 12쪽
275 결착의 시간 #2 +3 21.01.05 954 51 12쪽
274 결착의 시간 #1 +12 20.12.31 1,002 48 13쪽
273 카르바노그 #10 +18 20.12.29 1,036 50 23쪽
272 카르바노그 #9 +6 20.12.24 928 42 14쪽
271 카르바노그 #8 +12 20.12.22 960 41 18쪽
» 카르바노그 #7 +10 20.12.17 936 38 13쪽
269 카르바노그 #6 +6 20.12.15 994 38 11쪽
268 카르바노그 #5 +6 20.12.10 937 40 15쪽
267 카르바노그 #4 +5 20.12.08 918 41 12쪽
266 카르바노그 #3 +14 20.12.03 950 48 11쪽
265 카르바노그 #2 +9 20.12.01 943 44 15쪽
264 카르바노그 #1 +5 20.11.26 985 42 12쪽
263 혈마인 #11 +4 20.11.24 948 39 16쪽
262 혈마인 #10 +4 20.11.20 949 46 14쪽
261 혈마인 #9 +8 20.11.17 952 4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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