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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bot 님의 서재입니다.

형의 사령마를 떠맡게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WritingBot
작품등록일 :
2020.05.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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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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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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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정령용5

DUMMY

저게 어딜 봐서 자존심을 챙긴 건지 모르겠다.



'항복을 하려거든 너나 갈리나에게 해야지, 카닌한테 하는 게 말이 되냐? 갈리나는 둘째 쳐도, 죽어도 마나를 못 쓰는 인간에게는 하기 싫다는 거지.'

'나는 그렇다고 쳐도 갈리나는 왜?'

'정령까지는 아니지만 인간도 용종하고는 좀 안 맞는 종족이거든.'



관점의 차이.



컵 안에 물이 반 정도 남아있는 객관적인 사실에 '반 이나 남아있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물며 모순의 종족이라 불리기도 하는 인간에게 관점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가 특출 난 인간을 보며 황무지와도 같은 사막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장미라고 여긴다면.



'누군가는 운이 좋은 복권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대부분의 복권들은 10원의 가치도 없는 종이조각이지만, 그중 10억의 가치가 넘는 한 장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평균치를 따지는 종족에게 있어서 인간은 수만 더럽게 많아서 운빨로 버티는, 가치가 상당히 떨어지는 종족이다. 특히 그 평균치의 기준을 마나로 잡는다면 시우는 지구의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지를 증명하는 존재다.



반면에 카닌은 마나를 기준으로 잡는다면 꽤나 훌륭한 종족에서 훌륭한 일족의 후예. 죽어도 그냥 항복은 못 하겠으니 이 와중에 선별을 한 것이다.



그 모든 게 다 부질없다는 듯이 갈리나는 바로 소년으로 변해서 너커의 등을 짓밟았다. 이어서 높이 도끼를 들자 흉흉한 그림자가 너커의 머리를 가린다. 그걸 느꼈는지 너커는 카닌에게 추하게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너커의 간절한 애원을 고개를 돌리며 살짝 외면하는 카닌이었다. 하긴 좀 전에 협상의 여지를 줬는데도 '죽어'라고 말한 상대. 처절한 저 모습에 찜찜함을 가질 수는 있어도, 무조건적인 동정심을 주기는 힘들다.



그래도 아주 효과가 없지는 않았는지, 목소리만으로 약간의 여지를 주는 카닌이었다.



"정령용이 있으면 복구 작업이 더 빠르지 않을까요?"

<할 수 있어! 할 게! 마나에 맹세코!>



시우에게는 죽어도 말할 것 같지 않은 맹세를 카닌에게는 바로 한다. 그에 시우는 살짝 뒤틀렸다. 그런 시우에게 이어지는 카닌의 조건이 들려왔다.



"시우씨에게 목걸이로 쓴다고 한 것도 사과하고요."

<그, 그건.. 끄악!>



바로 갈리나의 도끼가 날아들었다.



참 추잡해진 모습이지만 그래도 용은 용인지 단번에 목이 잘려나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목이 찍혀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데도 살아있는 그 모습은 어쩌면 죽는 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다. 그 상태에서 힘겹게 말을 하는 너커였다.



<주, 죽고 싶지 않아.>

"시우씨에게 사과하고 싶지 않은 것보다는 덜 한 것 같으신데요."

<땅바닥만 얼어붙지 않았어도, 마나도 없는 하등생물과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사령과의 싸움에서는 내가 지지는.... 끄악!>



이번에는 순식간에 땅에 내려앉은 하늬가 찍혀서 피가 나오고 있는 상처를 부리로 쪼았다. 상처를 쪼는 것도 쪼는 거지만 하늬가 평범한 매가 아닌 크호콘펠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장도리로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런데도 아직 죽을 때까지는 거리가 조금 있어 보이는 게 용은 용이라는 것을 안 좋게 알려주고 있다.



차라리 자신이 목을 깔끔하게 쳐내는 게 저 너커를 위한 행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시우에게 그의 형은 저러는 건 너커뿐이고, 너커 중에서도 저 녀석이 특히 더 비굴한 편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비굴해서 다행인 것 같기도...'



비슷한 수준으로 지성과 지능이 있다고 해도 끝까지 싸우는 경우도 있다.



하위급 용종중에서 가장 흉폭한 건 거대한 뱀이랑 외형적인 모습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는 시 서펜트나(Sea Serpent)나 웜(Wyrm). 그들이었다면 목이 완전히 잘려가도 머리와 몸통이 힘이 빠질 때까지 꿈틀거렸을 거란다.



피를 잔뜩 흩뿌리면서도 꿈틀거리면서 저주의 말을 퍼붓는 것보다는 저게 조금은 더 낫지 않겠냐는 거다. 잔인한 건 둘쨰쳐도 용이 거는 저주가 좀 곤란한 상황을 부를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까지 살려달라고 하는데도 죽이면 저주를 걸 것 같은데.'

'저주도 나름대로 복잡한 마법이라서. 투지가 한 번 꺾인 이상 이제 와서 날리는 저주는 반푼이지.'

<살려줘... 살려줘...>

'의지가 강할수록 저주의 위력이 강해지는데 저 딴 녀석이 의지가 있겠니?'



이제와서 동생에게 목숨 구걸을 하는 너커를 보고 하는 말이다. 참 가차 없다고 생각하는 시우를 두고 주변의 헌터들은 처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살려주자는 의견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불쌍해서 살려준다기보다는 살아있으면 부려먹을 수 있으니 그게 낫지 않을까란 의견. 그걸 또 들었는지 자신은 도움이 꽤나 많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너커였다.



그건 모두가 알고 있다. 신뢰도가 없어서 문제지. 손시훈이 그걸 제일 잘 알고 있기에 처음부터 죽여라고 말한 것이다.



그랬던 사람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갈리나에게 거기 좌표 좀 말해달라고 부탁하겠어?'

'좌표?'

'이 쪽도 어제 일이 끝나서 말이지. 갈 여유가 있거든. 가벼운 위협만 할 거야.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말이지.'



어쩐지 이것저것 조언을 많이 해준다 싶었는데, 그쪽도 이 쪽처럼 위기상황을 해결했나 보다. 그에 시우는 모두 일이 잘 풀려서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안도와는 별개로 자신도 모르게 팔을 높이 들어 올렸지만 말이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손시훈이 나선다면 일이 해결되겠지. 마신급인 드레이크도 쑤셔 죽이는 인간이 너커 한 마리를 굴복시키는 건 쉬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단순히 너커를 뛰어넘어서 모든 헌터들까지도 만만치 않은 위협이 될 것도 뻔하다.



'당근과 채찍을 둘 다 쓸 거야. 그리고 무조건 설득을 하지도 않을 거고. 형 몰라? 형 못 믿냐?'



대충 알아서 못 믿는다. 그래서 망설이는 시우에게 바깥으로는 너커의 처절한 목소리가 안쪽으로는 형의 징징거림이 들려왔다.



거기에다가 자신에게 몰려있는 주변의 시선은 시우의 어깨를 한 층 더 무겁게 만들었다. 사실상 자신이 주도적으로 처치했기에 자신의 의견이 최우선인 건 알지만, 그래도 그럴듯한 의견과 그 이유 정도는 말할 수 있잖은가.



'확신이 안 든다면 내가 처리할 게! 형은 베테랑이야아아아!'



끝의 목소리가 쭉 늘어졌다. 이만하면 용이 싫은 사람이 그냥 용의 목을 치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는 의심도 든다. 그래도 그 정도로 막장은 아닌 사람이니 한 번 그 의견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아, 그런데 이미지 연출이 조금 있을 거야. 너한테는 솔직하게 먼저 고백하는 것도 있고. 그리고 저 녀석한테는...비유하자면 침팬지의 앞에 오랑우탄의 머리를 들고 가는거지.'



바로 후회가 들었다. 좌표를 듣자마자 요란한 빛의 기둥이 솟은 것이다.



영웅의 등장도 결코 평범하지는 않겠지만, 그를 감안해도 너무 거창한 등장이다. 이건 하늘의 심판자가 강림하는 분위기기에 더 걸맞다. 그 등장과 함께 손시훈은 상반신을 드러낸 채로 한 손에는 비아취월을, 다른 한 손에는



<흐으으으....으아아>



침팬지의 앞에 오랑우탄의 머리를 들고 간다는 비유의 한 이유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 비유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비아취월을 들고 있지 않은 빈 손에 들려 있는 건 사람의 머리다. 그 머리와 너커 사이의 공통점이 있다면 폴리모프를 썼다는 것과 용종이라는 것.



하지만 그 두 가지를 제외하면 차이점이 많다는 것을 보자마자 알 수 있다.



뒤통수 쪽에서 난 한 쌍의 뿔은 앞쪽으로 굽어져 머리를 감싸고, 이마 가운데에 난 뿔은 위로 솟은 게 마치 왕관을 쓴 느낌. 살아있었을 때는 진짜로 왕과 비슷한 힘과 분위기를 풍기던 존재였을 것이다. 절대로 땅바닥을 긴 너커처럼 굴복하지는 않았으리라.



대가로 그 용종은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잘린 목의 반은 깔끔하고 반은 지저분한 것을 봐서는 목의 반을 베어내고, 남은 반을 뜯어내서 마무리를 지었는 것 같다.



당연히 산 채로 의식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목이 뜯겨나갔으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산채로 그 죽음을 경험한 표정을 마주 본 너커는 목구멍에서 공포와 섞여서 흘러나오는 신음을 내뱉었다.



거기다가 손시훈의 상태도 마냥 멀쩡하지는 않았다. 고통스럽게 죽는 과정에서 온갖 저항을 했는지 그 몸에는 이리저리 긁히고 찢어진 상처가 한가득. 상처의 크기로 봤을 때는 내장에도 구멍이 났을 게 분명하다.



솔직하게 고백하는 건 이걸 말하는 것이었나 보다.



아무튼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죽지는 않아도 붕대로 온 몸을 꽁꽁 감싼 채 누워있어야 할 정도의 상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서 있는 모습은 더 큰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갈리나를 제외한 모두가 그 모습에 굳어버린 가운데, 손시훈은 밝은 목소리로 너커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친구야?"



목소리만 듣는다면 첫 만남에 괜히 친한 척을 하는 철부지 같다. 하지만 사람의 머리를 들고 그 말을 하고 있으니 진짜로 미친놈이 따로 없다. 하필이면 그 미친놈은 '마나도 없는 하등생물'과 똑같이 생겼다.



너커의 가랑이 사이에 작은 웅덩이가 퍼져나가는 건 무리도 아니었다.



"소식을 들었어. 이 주변, 니가 이렇게 만든 거라며?"

<원, 원래대로 되돌리겠습니다! 고귀하신 분이자, 이 세계의 지배자여!>

"이를 어쩌나, 나는 이 세계의 지배자가 아니라..."



고귀하신 분이라는 말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부정을 하는 게 기만이다. 인간보다 마나에 훨씬 더 민감한 용의 입장에서 손시훈의 존재는 종이 쪼가리들 속의 복권으로 정신승리를 하기에도 너무 거대하다.



그래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있다. 그런 너커에게 손시훈은 고문과도 같은 명령이 담긴 말들을 계속해서 건넸다.



"내 얼굴을 봐."

<크으으으>

"그리고 저기 얼굴을 봐. 똑같지? 내 쌍둥이 동생이야."

<죽, 죽여...>

"그냥 죽기에는 니가 한 잘못이 좀 있지 않아? 뭔가 찔리는 게 있지?"

<흐아아아아>



마나도 없는 하등생물이란 말을 함부로 꺼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더 이상 가랑이 사이에서 물이 나오지는 않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는 게 공포를 억누르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손시훈은 그런 건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 아주 자연스럽게 비아취월을 땅바닥에 꽂아 고정시키고는 용의 머리를 안은 채 너커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 친구가 한 사고 수습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저, 저는..>

"용들은 극단적이지. 자신의 생명보다도 타인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가 있는 가 하면, 한 방울의 눈물 없이 가차 없이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자도 있지. 또한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보고도 끝까지 꼿꼿한 의지를 유지하는 자가 있는 가 하면."



꼿꼿한 의지를 말하면서 자신이 들고 있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행동에 자신의 형이지만 진짜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시우의 앞에서 손시훈은 말을 맺었다.



"그 누구보다 비겁한 겁쟁이도 있는 법이겠지. 현재 상황만 빠져나가면 된다...."

<아닙니다! 저는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야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만 생각을 바꾼다고 이 상황이 해결되는 건 아니거든."



잘려나간 마왕의 머리를 쓰다듬던 피 묻은 손으로 거칠게 너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건 어지간한 마왕도 엄두를 내지 못할 짓이다.



그러니 손시훈의 오라는 손짓에 카닌이 움찔거리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님의 친구이니 실시간으로 미친 짓을 하고 있는데도 착하게 다가온 카닌. 옆에 너커를 두고 손시훈이 말을 이어나갔다.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제안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나쁜 제안을 한 개 건네려고 하는데. 들어보겠니?"

"어...네"

"카푸스만 봐도 알겠지만, 지나치게 실력이 좋아도 당주가 될 수 없단다."

"등가교환이군요."

"나름대로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대신 이 녀석을 통해서 너도 당주의 자리에는 연연하지 않을 정도로 여러 면에서 성장을 할 수 있겠지. 물론 중국-인도-파키스탄 정부가 이 녀석을 살려준다는 동의를 먼저 해야겠지만."

"동의와 별개로 제가 이 녀석을 잘 맡을 수 있겠어요?"

"어쩌겠니. 명색이 정령용인 이 비겁한 꼬맹이는 아직 지구의 인간을 인정할 수 없는 걸. 좀 전만 하더라도 내 동생에게 별별 말을 다 했는데. 이러니 너 말고는 없구나."

"잘해볼게요. 만약에 기회가 주어진다면요."

"그래. 기회가 주어진다면"



말을 마치고는 너커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는 손시훈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그 움직임은 카닌에게 쓰다듬기라도 하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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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뻔뻔하게 20.11.04 22 0 13쪽
151 누나들?10 20.11.03 22 0 13쪽
150 누나들?9 20.11.02 23 1 13쪽
149 누나들?8 20.10.30 22 0 13쪽
148 누나들?7 20.10.29 23 0 13쪽
147 누나들?6 20.10.28 26 0 13쪽
146 누나들?5 20.10.27 25 0 13쪽
145 누나들?4 20.10.26 26 1 14쪽
144 누나들?3 20.10.23 26 0 13쪽
143 누나들?2 20.10.22 29 1 13쪽
142 누나들? 20.10.21 38 0 13쪽
141 정령용6 20.10.20 43 0 13쪽
» 정령용5 20.10.19 24 0 14쪽
139 정령용4 20.10.16 2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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