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writingbot 님의 서재입니다.

형의 사령마를 떠맡게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WritingBot
작품등록일 :
2020.05.11 10:54
최근연재일 :
2021.10.15 14:05
연재수 :
303 회
조회수 :
31,374
추천수 :
749
글자수 :
1,838,883

작성
20.12.28 20:00
조회
40
추천
2
글자
13쪽

한 세계의 최후와 멸망9

DUMMY

이렇게 날아가는 상대의 모습만 얼핏 보면 정말로 거칠기 그지없다. 마치 허수아비들을 상대로 하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창을 휘두르지 않았나 싶을 정도의 모습이다.



살짝 흥분해서 들떠있는 시우의 얼굴을 보면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착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카메라를 통해서 영상을 보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런 시각으로 시우를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시우의 창을 보면서 감탄을 삼키고 있다.



지금 시우가 휘두르고 있는 창은 손시훈의 것이 명백히 아니니까.



애당초 손시훈이 쓰는 무기는 일방적인 창과는 쓰는 법이 아주 많이 다를 수밖에 없는 극도(戟刀). 미늘창이라고도 부르는 폴암들에 가까운 무기다. 거기다가 거대한 월아의 생김새까지 살짝 독특한 것이, 거기서 또 평범한 폴암들 하고는 사용법이 꽤 달라진다.



손시훈이 했던 말을 좀 빌려오면 그가 원하는 전장을 선택하기 힘든 환경에 놓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거기다 해야 할 일은 많고, 몸은 혼자인 악조건이 더해진다.



이 악조건들이 합쳐진 결과물은 정말로 독특하다는 수준을 넘어섰다. 그건 절대다수를 일방적으로 학살하거나, 반대로 일대일의 결투에만 어울리는 괴랄한 무언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시훈의 싸움을 본 것이라고는 촬영된 영상인 날개가 네 쌍인 천사를 맨몸으로 상대하는 것이 전부. 그러나 그 싸움만으로도 손시훈의 기초와 정석을 한참 벗어난 극단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형과는 달리 시우의 창은 정말로 탄탄한 기초를 바탕으로 한 정석적인 창이다.



말 위에서 거칠게 흔들리는 것 같지만, 창대가 그리는 선은 직선이든 곡선이든 흐트러짐 없이 말끔하다. 마치 투명한 자를 대고 움직이는 연필과도 같이 깔끔한 움직임이다.



요컨대, 살짝 들떠있는 건 시우의 얼굴과 무지갯빛을 길게 흩날리고 있는 창날뿐이란 소리. 그를 움직이는 창대와 적운흉풍에게 명령을 내리는 몸에는 자신에게 맞춰진 묵직함이 실려있다.



도대체 어떻게 1년이라는 시간에 그걸 담아낼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적운흉풍을 다스리는 기술 또한 마찬가지다.



어지간한 기마병도 전투가 계속되면 흥분한 말에 조금은 이끌리기 마련. 그러나 지금의 시우는 마구잡이로 이끌려서 달려 나가는 게 아니다. 자신의 창이 방해받지 않고 꾸준히 휘두를만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거기까지는 적운흉풍이 특출 난 말이라서 그런 게 아니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맞다. 여기까지는 시우가 대단한지, 적운흉풍이 대단한지 구분하기가 조금 힘들 수도 있다.



몇몇이 그렇게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가운데, 시우가 시연을 향해서 말했다.



"시연아! 테이밍 몬스터 등록 때 기억나냐?"



오빠의 말을 듣고, 대답 대신 높게 뛰어오르는 손시연. 그를 보자마자 시우 또한 자세한 말 대신 적운흉풍의 허벅지를 세게 후려치면서 외쳤다.



"이-랴!"



주인의 신호에 맞춰서 뒷발로 가볍게 뛰어오르고, 무겁게 앞발로 땅을 짓누른다. 그러자 주변의 땅이 춤을 추듯이 갈라지면서 솟구쳤다.



날개를 펼치면서 높게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반 박자 느린 대응. 상당수의 천사들이 발밑이 위로 솟아오르는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꼴사납게 넘어지면서 파편들과 함께 하늘로 튀어 올랐다.



그런 꼴사나운 천사들의 품속으로 적운흉풍이 파고든다. 하늘을 나는 것보다 더욱더 각진 움직임. 솟구치는 파편들을 밟고 도약을 반복하는 것이다.



딱 저 모습만 보자면 언덕에 놓인 바위들만을 밟고 뛰어오르는 산양을 보는 것 같다. 물론 그 모습 또한 대단한 것이겠지만 거기서 발 밑은 비어있고, 머리 위와 눈 앞의 허공에 떠 있는 파편들을 헤치는 모습까지 더해보자.



이걸 하는 것은 적운흉풍이지만, 판단을 내린 것도, 고삐를 최적의 방향으로 모는 것도 시우다. 전혀 단순하지도 않은 행동.



그걸 한 손으로 하는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묵직하게 창을 내지른다.



일반적인 공중에 뜬 적을 상대로는 휘둘러 베거나, 내질러서 찌르나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중에 뜬 천사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날개를 움직여서 공중으로 충격을 흡수하거나 방출할 수 있으니까.



거기서 한 단계 더



평범한 급소가 아니라 갑옷의 빈 틈을 노려야 한다. 겨드랑이 바로 아래의 갈비뼈든, 허리와 배의 미묘한 경계선, 허벅지와 가랑이 사이. 이 틈들 중 하나를 찔러진 천사들이 맥없이 땅에 떨어져 빛줄기를 흩뿌리며 사라져 간다.



다시 적운흉풍을 몰고 땅에 내려와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씁쓸해하는 시우였다. 그런 오빠를 향해서 시연이 숨을 돌리며 말했다 말했다.



"이제 와서 천사들이 죽였다는 사실에 뭔가 착잡해진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좀 전에 니가 했던 말 있었잖아."

"아. 폭도들의 시체는 있었는데, 그에 저항하는 시체들은 없었다고?"

"그래. 그 시체들이 저렇게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겠지. 나는 그걸로 정답을 추측했어."

"거기에 더해서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이 세계의 진짜 최후를 가져오는 게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고..."



오빠의 중얼거림에 시연 또한 좀 전의 시우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멸망한 세계라고 해도 사실 좀 애매한 감이 있다. 환자로 비유하면 회복될 여지가 하나도 없이, 산소호흡기에 연명하고 있는 상태. 지금 차남과 장녀분이 하는 짓은 그 산소호흡기를 거칠게 떼어내는 거이나 마찬가지다.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장남분은 그냥 산소호흡기를 때려 부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매였다.



팔괘로가 부서지면서 들리는 손시훈의 외침. 평상시의 목소리가 아닌, 마왕이나 그 비슷한 무언가를 죽일 때 내는 목소리다.



절대로 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썩 좋은 모습도 아니었다. 온몸에 성에가 잔뜩 낀 것이 습기가 가득 찬 냉동창고에 넣어둔 물건 같으니 말이다.



이에 비해서 여신의 모습은 상당히 멀쩡해 보이지만, 이기고 있다면 날개를 펼치면서 도망칠 리가 없겠지. 당연히 손시훈이 '놓치지 않는다!'라고 외칠리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두 동생들의 앞에서 손시훈은 처음 보는 기술을 쓰고 있었다.



"선법 : 보패(寶貝) - 오작신화조(四雀神火罩)!"



외침과 함께 불꽃으로 만들어진 다섯 마리의 새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부리가 쩍 벌려진 것이 무엇이라도 금방 쪼아 부술 것 같은 모양새. 그걸 보고 움찔거리는 여신은 자신이 아닌 서로를 날개들을 무는 새들의 모습에 약간 안도를 기색을 보였다.



아무래도 사납게 꿈틀거리는 것이 소환수를 제어하는 걸 실패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긴 하다.



다만, 시야를 조금 더 넓혔으면 좋겠다. 그럼 서로의 날개을 쪼아 얽혀있는 새들이 자신의 주위를 완전히 감쌌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



여신이 그 사실을 눈치채는 것보다, 서로를 문 새들의 날개가 쇠사슬로 고정시키는 것이, 그리고 그 안이 달구어지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



달구어진 공기가 이글거리는 소리를 찢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고 보니 겉은 금속이지만, 속이 곡식 낟알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이거 완전...



"오늘 간식은 여신(이었던) 팝콘 되겠네"

"미친 새끼야!"



아직도 성에가 잔뜩 낀 얼굴을 자신들을 향해 돌리면서 한 말이다. 저걸 농담이라고 던진 건가? 동생인 시연이 바로 욕을 박아도 할 말이 없다.



자신도 동생의 그 기세에 가세하는 시우였다.



"팝콘이 그렇게나 먹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구워버리지 그랬어?"

"선법으로 불러내는 보패들은, 대부분 뭔가 하자가 있거든. 처음부터 이거 썼다면 차단 당했을 걸?"



짜증나도 입을 다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부터 안 하는 이유는 대부분 생각이 안 나서가 아니라, 안 되기 때문. 그래... 이 사람은 늘 그랬지.... 눈을 감고 그런 말을 하는 시우에게 손시훈은 팔괘로와 신화조의 문제점을 늘어놓고 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선법들이 정령이나 마왕들을 상대하기에는 좋지만, 용이나 신들을 상대로는 쉽게 막히는 경향이 있다.



추가적으로 팔괘로는 무기가 아닌 공구. 그렇기에 물리적으로 엄청난 내구도를 자랑하며 연비 효율도 훌륭한데, 태우든, 얼리든, 지지든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



반대로 신화조는 내구도가 영 좋지 못하다. 최고의 신화조인 구룡신화조(九龍神火罩)쯤 된다면 내구도도 탄탄하고, 탈출을 하기도 전에 불타서 사그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수준이 모자라지. 만약 내가 그 수준의 선법을 다룰 수 있었다면, 인생을 조금 더 날로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뭐?"

"왜, 카푸스네 집을 보면 어지간한 건 다 인공 정령인 운디네들에게 맡기잖아. 선법을 잘 쓴다면 인공 천사인 식신(式神)들을 만들 수 있거든."

"..."



'뭐?'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손시훈은 친절히 대답해주고 있다. 이 대답들을 한 귀로 흘러버리면서 형이 선법으로 만들어낸 두 보패를 사용한 이유를 스스로 생각해본 시우였다.



아마도 팔괘로를 이용해서 여신이 최대한 냉기에만 집중하게 유도했을 것이다. 팔괘로에서 탈출시킨 건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고, 그 빈틈을 노려 신화조로 마무리



"투선이나 무신이라면 팔괘로에 집어넣는 것부터 문제가 있었겠지만 말이야. 손오공부터 안 죽었잖아. 뭐 그건 태상노군 양반의 자만도 있었지만..."

"서유기가 어느 세계에서는 실화였냐?"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등장인물 대부분이 왜곡과 약체화를 당해버린 피해자로 가득 찬 소설이지. 아무튼 끝난 것 같구만."



오작신화조의 틈새에서 밝고 붉게 빛나는 무언가가 뚝뚝 흘러내린다. 그를 보면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손시훈의 개소리가 이어졌다.



"그냥 말하는 건데, 좀 전의 팝콘은 농담이었어."

"안 먹어!"

"형, 그냥 잊게 아무 말도 안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땅에 뚝뚝 흘러서 퍼지고도 금과 은이 섞인 액체는 쉽게 굳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속은 거의 끓고 있을 거다. 여신상 안에 있던 낟알들은 그놈의 팝콘을 넘어 진작에 숯에 가까운 탄소덩어리가 되고도 남았으리라.



그리고 손시훈이 손가락을 튕기자 오작신화조가 해제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공기가 차단된 환경에서 달아오른 탄소 덩어리가, 공기와 만나면서 급격히 불이 붙고 폭발했겠지. 그 모습을 보면서 입을 달싹이는 형에게 시우가 말했다.



"팝콘은 지구에서 먹자"

"네."

[전... 단지...]



재로 뒤덮인 금과 은이 뒤섞인 쇳물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건 최후의 단말마와도 같은 느낌. 그것만큼은 형이 망치지를 말기를 바라는 시우였다.



아무리 사랑을 근원으로 두고 한 행동이라도, 저 여신이 한 행동은 객관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긴 하다. 그러나 그 사랑만큼은 아무튼 진짜였으니까. 그런 시우를 두고 시훈은 터벅터벅 여신이었던 잔해를 향해 앞으로 걸어갔다.



이어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살짝 숙인다. 아무래도 나름대로 시선을 맞추려는 행동일 것이다. 그 상태에서 나온 목소리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목소리였다.



"조롱이 될지, 위안이 될지는 네 의지에 맡기겠다. 난 사실만을 말할 테니까."

[당신들이... 이 세계를 완전히 죽였어... 내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곡식들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겠지. 우리가 이 세계의 진정한 최후와 멸망을 가져왔어."



마지막이라 당연히 나올만한 원망을 담담히 받아주고는 사실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손시훈이었다.



"옛날 일이라서 기억이 날 지 모르겠군. 무언가가 죽은 자리에서 곰팡이와 이끼가 피어나고, 완전히 썩고 바스러져서 흙이 되는 모습을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 시체는 썩지 않고 천천히 말라비틀어지다가 햇볕과 비바람에 닳아서는 모래로 흩날릴 뿐이야"

[그래서요?]

"네가 죽고, 이 세계가 완전히 죽는 것으로 그것도 끝이다. 이 세계는 '진짜 시체'가 돼서 잠깐은 썩어가겠지. 그리고 완전히 썩고 바스라진 땅의 위에서 꽃이 피어나듯이, 새로운 생명들이 이 세계에서 다시 피어날거다."

[새로운 생명...]




여신의 마지막 목소리가 흐릿해지는 것과 함께 시우는 신성력이 흩어지며 자신의 눈앞이 완전히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형의 사령마를 떠맡게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7 진짜와 가짜6 21.02.03 25 2 13쪽
216 진짜와 가짜5 21.02.02 21 2 14쪽
215 진짜와 가짜4 21.02.01 18 2 13쪽
214 진짜와 가짜3 21.01.29 17 1 13쪽
213 진짜와 가짜2 21.01.28 20 1 13쪽
212 진짜와 가짜 21.01.27 20 1 13쪽
211 우직하고, 굳세게4 21.01.26 19 1 14쪽
210 우직하고, 굳세게3 21.01.25 24 1 13쪽
209 우직하고, 굳세게2 21.01.22 20 1 13쪽
208 우직하고, 굳세게 21.01.21 26 1 13쪽
207 난관6 21.01.20 23 1 13쪽
206 난관5 21.01.19 23 1 13쪽
205 난관4 21.01.18 20 1 13쪽
204 난관3 21.01.15 21 1 14쪽
203 난관2 21.01.14 20 1 13쪽
202 난관 21.01.13 23 1 13쪽
201 전력을 다해5 21.01.12 21 1 13쪽
200 전력을 다해4 21.01.11 27 1 14쪽
199 전력을 다해3 21.01.08 40 1 13쪽
198 전력을 다해2 21.01.07 19 2 13쪽
197 전력을 다해 21.01.06 23 1 14쪽
196 잠깐의 평온6 21.01.05 24 1 13쪽
195 잠깐의 평온5 21.01.04 30 1 14쪽
194 잠깐의 평온4 21.01.01 29 2 13쪽
193 잠깐의 평온3 20.12.31 27 1 14쪽
192 잠깐의 평온2 20.12.30 29 1 13쪽
191 잠깐의 평온 20.12.29 29 1 14쪽
» 한 세계의 최후와 멸망9 20.12.28 41 2 13쪽
189 한 세계의 최후와 멸망8 20.12.25 24 1 13쪽
188 한 세계의 최후와 멸망7 20.12.24 27 0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