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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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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08
글자수 :
33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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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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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제3장 (마지막) 무수히 피어있는 빛의 잎사귀

DUMMY

현재의 나무탈은 변함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여전히 하건의 잠재의식 안이었다.


현재라고 해도 나무탈이 처음 하건의 잠재의식으로 들어온 2019년에 비하면 아직 과거였다.

2010년쯤부터 그는 시간을 세는 것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건은 가끔씩 나무탈 앞에 나타났다.

꿈에서라도 아버지 현섭과 만나고 싶은 상황이었다.


그럴 때면 그는 기쁘게 현섭이 되어 하건을 맞이해주었다.


하건이 특별히 고민하는 것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눌 수 있는 대화는 근황 보고나 맥락 없는 이야기 정도였다.


그의 잠재의식 속 여기저기에서 아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는 작품에 출연한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나무탈이 초조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시간도 그 옛날 나무탈이 그 일을 행했던 ‘1주일’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광대패 필이이로 하얀이와 함께한 인생뿐 아니라 현섭을 만나 여기까지 온 시간 또한 자신의 일부분이었다.


지금은 더 이상 나무의 흔적이 없었지만 나무탈을 쓰게 된 것도 그 일의 결과 중 하나였다.


나무탈은 필이로 돌아왔고, 자신이 누군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자신이 꾸며 놓은 그 일에 대해서도 상세히 떠올랐다.


그는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

소원을 들어주었던 얼굴이 창백한 청년은, 필이의 움직임을 놓친 1주일간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인상적인 그 모습이 적절한 때가 찾아올 거라는 거라는 증거였다.


* *


그러던 어느 날 하건의 잠재의식 속 태양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쪼개진 태양은 무수한 빛 알갱이가 되어 나무탈 필이 위로 쏟아졌다.

그 빛은 한번 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태양이 있던 자리에서 실처럼 연결이 되었다.


빛의 실은 순식간에 나무탈 필이의 점혈 하나하나와 연결이 되었다.

그러자 그의 몸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점혈로 분해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빛의 실에 흡수되었다.

분해된 나무탈 필이를 머금은 무수한 빛의 실은 다시 태양으로 합쳐졌고 그 태양은 그곳의 천장을 향해 솟구쳤다.


태양은 하건의 잠재의식에서 하건의 머리 밖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온 의식의 태양은 작은 빛의 덩어리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나뭇잎 같은 모양이었다.


이윽고 나무탈 필이가 하건의 잠재의식에서 빠져나간 날이 온 것이었다.


이른 아침 하건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정겨운 풍경이었지만 자세히 살펴볼 수 없었다.

나무탈 필이의 전부가 담겨있는 빛의 나뭇잎은 그의 의도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무심히 빛의 나뭇잎에 실린 채 하늘하늘 날아갔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닫힌 창문을 통과해 하건의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나무탈 필이는 본체를 갖지 못했지만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었다.

빛의 나뭇잎 안에는 모든 것,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있었다.


그건 나무탈 필이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 *


언덕진 좁은 골목이 복잡하게 엮여있는 길에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골목 옆으로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동네였다.

김미영은 멍하니 남편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자국이 선명한 얼굴이었다.


유종근은 심장병으로 응급 수술을 받았지만 이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015년 4월, 나무탈은 유종근과 김미영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그들 앞에 있었다.


빛의 나뭇잎 속 나무탈 필이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과거의 자신이었다.

이때의 나무탈은 모르고 있는 것이 많았다.


미영과 종근이 빈 소원이 과거의 나무탈을 곤란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면 아내가 바라는 것 무조건 이루어 주세요.”


그게 유종근의 소원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미영을 바라보며 하늘로 올라갔다.


빛의 나뭇잎이 나무탈에게 스며들어 과거의 본체와 현재의 필이가 하나가 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본체를 되찾은 나무탈 필이는 놀랐다.

이번 2015년에는 소원 관계자들과 자신의 상황이 이전의 모습들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행복하게 해줘 봐요!”


그것이 미영의 소원이었다. 당장은 이 소원 업무를 마무리해야 했다.


예전의 자신은 여기서 화를 냈었다.

광재와 아리를 위해 영혼의 미라를 자신의 몸에 가두었지만 김미영이 소원을 비는 바람에 다시 놓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 와중에 미영은 ‘행복’이라는, 당시로서는 나무탈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빌었다.


그건 절규였고, 남편밖에 없었던 그녀가 다시는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선언 같았다.

행복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행복 두 글자에만 집착했다.


그런데 달라진 15년에서 자신은 화를 내지 않고 있었다.

행복이 무엇인지 몰라 곤란해하는 정도였다.


그랬던 나무탈도 이제는 나무탈 필이와 합쳐진 상태였다.


현재 필이가 알지 못하는 달라진 정보와, 15년 당시 나무탈이 잃어버렸던 감정들이 더해지고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모든 것이 정돈되었다.


행복을 경험한 필이가 어그러진 시간 속에서 행복을 몰랐던 나무탈에게 채워진 것이다.

때문에 이제는 미영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했다.


“행복 말이오···?

내가 느끼고 있는 거라도 좋다면, 이루어 주리라.”


현재의 나무탈 필이는 그렇게 완전체가 되었다.


미영은 비웃었다.

강한 불신을 표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미영의 점혈은 열렸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자세였지만 어쨌든 그녀는 필이가 생각하는 행복을 받아들였다.


나무탈 필이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을 그녀가 느낄 수 있도록 조정을 해주었다.


“당신의 소원이 성취되기 시작했소.”


그건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 거라 앞으로도 점혈 조정이 계속 필요했다.


‘혹시나, 내가 곧바로 저 세상으로 떠나야 하면 어쩌지?’


만에 하나 그 창백한 놈이 소원 업무를 이어가면 미영에게 좋을 게 없을 것이었기에 그는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모든 것이 완결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무탈이 원래 세상에서 하건의 과거로 돌아간 것은 2019년이었다.

도착한 과거는 1999년이었고, 그때부터 하건의 잠재의식 속에 있던 나무탈 필이가 다시 돌아와 본체와 합쳐진 것은 2015년이었다.


2019년부터 나무탈의 삶은 16년 동안 진행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무탈 필이는 완전체가 되었지만 시간 축까지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2035년이 돼야 했다.


2015년인 지금으로부터 20년이 더 지나야 하는 세월이었다.

다른 것은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던 나무탈 필이에겐 크게 두 가지 걱정이 있었다.

하건과 아리의 관계, 그리고 그 창백한 놈이 또 어떻게 나올까 하는 것이었다.


그놈, 천사의 미라는 잠에서 깨어난 필이 앞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필이가 전능한 능력을 얻은 직후에 그의 기억을 읽어낸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 *


모든 감정을 잃은 하얀이는 다시 장정들에게 잡혀갈 위기였다.

창백한 그는 필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필이는 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전능해지는 것을 소원으로 빌었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기 직전에 막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본디 저 세상에 속한 자였다.

저 세상에는 천사에게도 인간에게도 계급이 없었지만, 질서를 어지럽힌 천사였던 그는 저 세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가 가진 질투심, 이기심,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습성 등이 이유였다.


그렇게 다시는 저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그는 이 세상을 떠도는 천사의 미라가 되었다.


그는 미약한 인간들이 저 세상에서 전능한 자신과 동등했던 게 싫었다.

그런데 이 세상으로 쫓겨와 보니, 자신은 이제 들어갈 수조차 없는 저세상에 수많은 인간들이 가서 살 수 있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심지어 이 세상에서는 인간에게 직접적인 해를 입힐 수도 없었다.

인간의 영혼이 부패해 주변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정도의 힘도 없었다.


저 세상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의 힘은 전능했지만 오히려 이 세상의 부패를 갖지 않았던 터라, 사람에 한해서는 겨우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정도였다.


* *


천사의 미라가 이 세상을 떠돈지는 수천 년이 지나 있었다.


그는 살아있는 인간과 죽은 인간의 영혼에 말을 걸 수 있었다.

인간들이 살아있을 때에는 그들의 정신을 연약하게 하기 위한 유혹에 열심이었다.


죽은 사람이 영혼의 미라가 되는 것은 놈이 가장 즐거워하는 순간이었다.

저 세상에 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미라가 될 싹수를 보이기 시작한 인간의 영혼 옆에 나타나, 더 확실히 미라가 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그의 주된 일이었다.


안타까운 부부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천사의 미라가 최근 몇백 년 전에 시작한 유희였다.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유혹을 비교적 쉽게 이겨낼 수 있어서 불만이 많았다.

그런 사람일수록 죽어서 영혼의 미라가 되는 일도 없었다.


특히 부부 중에는 그 궁합이 너무 잘 맞아 그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전능함을 이용해 그들을 망가뜨리기 위한 악질적인 놀이를 시작했다.


천사의 미라는 처음부터 사람들을 괴롭힐 생각밖에 없었다.


꼭 궁합이 맞는 부부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영혼이 되면 저 세상에서 만나고 싶던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될 것이었다.

영원히 저 세상에 갈 수 없는 그로서 가장 짜증 나는 것 중에 하나였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아무리 힘들게 헤어져도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또 저 세상의 정보가 수천 년 전에 이미 차단되었다 해도, 그가 아직 그곳의 주민이었을 때 경험한 좋은 것들 중 대표적인 것은 이 세상에 없는 평안함이었다.


천사의 미라는 비록 이 세상에서 전능하기는 했지만, 집도 동료도 없었던 그는 매일이 가시방석처럼 불편한 삶이었다.

나무탈 필이가 경험한 소원 관계자들이 괴로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천사의 미라는 필이가 자신과 같은 전능함을 소원으로 빌었을 때 처음에 당황했다.


원래는 저세상에 가기 전까지 필이를 마음껏 괴롭힐 생각이었고, 더 나아가 그의 영혼이 미라가 되기를 바랐던 게 다였다.

그런데 자신처럼 전능하게 되어 버린 그가 저 세상에 가기 전까지 괴롭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는 점혈을 조정해 필이가 전능해졌을 경우를 파악하고 앞으로의 일을 예측했다.


결과적으로 천사의 미라는 필이가 하얀이에게 감정을 다 주기만 하면 속이 빈 꼭두각시처럼 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필이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수하처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필이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반면에 이 세상에서 전능했던 그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건 저 세상으로 가는 통행증인 빛의 팔찌였다.


처음 놈의 정보를 알게 되었을 때 그 사실도 깨달은 필이는, 하얀이를 지켜보면서 틈이 나는 대로 빛의 팔찌를 분석했다.


* *


빛의 팔찌는 영혼이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약속이었다.

그건 현재의 사람들 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천사의 미라는 그 빛의 팔찌로 인해 인간에게 해를 가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게 없었다.

필이가 그 팔찌를 분석하고 있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저 세상으로 가는 통행증은 사망했을 때 발행되었다.

자동적으로 영혼의 팔목에 빛의 팔찌처럼 차여지는 것이었다.


천사의 미라가 그걸 감쪽같이 몰랐던 것은 저 세상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


한편 전능하게 된 필이는 그 순간부터 천사의 미라가 하는 일들을 해야 했다.

그가 정한 법칙에 따라 소원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그의 증표인 붉은 가시넝쿨을 뜯어내긴 했지만 그 일을 해야 하는 것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빛의 팔찌를 이용해 저 세상으로 떠나버리면 천사의 미라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하얀이가 감정이 없는 채 살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필이는 하얀이 옆에서 같이 떠돌며 방법을 간구했다.

날이 갈수록 자신의 영혼이 부패해 가면서 하얀이에게 피해를 주기 시작했다.

놈의 꿍꿍이 대로 놀아나지 않으면서 하얀이를 위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때 빛의 팔찌의 능력을 파악한 필이는 저 세상의 힘과 소원을 들어주는 일을 접목하기로 했다.


빛의 팔찌에는 어떤 사람이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는지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건 태어났을 때 감정을 온전히 사용한 자였다.


그 정보를 토대로 필이는 현재 조선의 사람들 중 저 세상에 갈 수 있는 사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저 세상에 갈 수 없는 자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천사의 미라가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었다.


필이는 저 세상의 힘을 빌리기 위해 빛의 팔찌를 자신의 왼손에 다 머금는 느낌으로 점혈을 조정했다.

그러자 왼손에 빛의 장갑 같은 것이 씌워졌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방문해 각각의 점혈을 파악했다.

그들의 감정과 빛의 팔찌 속 조건을 대조해 보았다.


필이의 부패한 영혼 때문에 온 땅에 가볍게 역병이 돌았다.

그러나 빛의 장갑 덕에 한 명 한 명을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하지는 않았다.


또한 빛의 팔찌를 토대로 점혈을 조정했기 때문에 천사의 미라는 필이의 행동을 알 수 없었다.


그 결과 필이는 방해를 받지 않고 천사의 미라가 어떤 부부를 노리는지 목록처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곤 빛의 장갑을 낀 채로 자신의 점혈을 조정했다.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놈의 전능함을 사용해, 여러 가능성을 그려보았던 것이다.

아직 부부가 아닌 자들, 어린이들을 통해서도 어떠한 부부가 되어 천사의 미라의 질투를 살지 예측할 수 있었다.


이 작업을 하는 데 하루가 걸렸다.


이 단계에서 이미 천사의 미라는 할 수 없는 조사였지만 이것 만으로는 감정과 기억을 잃게 될 필이가 목적을 이룰 수는 없었다.


* *


필이는 저 세상으로 가는 통행증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른 다는 것에 주목했다.

죽고 3개월이 지나면 저 세상으로 못 간다고 했는데 그건 영혼이 미라가 되어 감정을 다 잃어버려서이지 빛의 팔찌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영혼이 미라가 된다 해도 원칙적으로 본래의 감정만 다 되찾으면 저 세상으로 다시 갈 수도 있었다.

미라가 되면 감정을 되찾을 수 있는 감정조차 없어져서 그게 거의 불가능할 뿐이었다.


빛의 팔찌 자체에는 불변하는 힘이 있었다.

과거 현재 미래, 그것은 영원이었다.

필이는 영원을 분석했다.


빛의 장갑을 낀 왼 손을 자신의 머리에 얹었다.

이 땅 위 모든 사람의 정보는 이미 필이의 안에 있었다.

그걸 토대로 응용을 해야 했다.


그 빛의 힘이 빛의 장갑을 통해 필이의 머리로 스며들었다.

저 세상의 힘이 들어오자 가지고 있던 정보들이 엄청나게 조합되기 시작했다.

영혼인데도 불구하고 고통이 엄습했다.

필이는 이 세상의 전능한 힘을 지닌 오른손으로 왼 팔목을 잡고 저 세상의 정보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빛과 열이 혼재하며 필이를 휘감았다.


이미 조사한 현재 궁합이 좋은 부부, 궁합이 좋은 부부가 될 사람들을 토대로, 그들

이 서로 만나 자손을 나을 경우가 펼쳐졌다.

그 자손들의 정보가 필이 머릿속에 입력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영원의 점혈이었다.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는 현재가 된다.

다시 현재는 과거가 되는 그 과정 속에 무수한 사람들이 죽고 태어난다.

그들의 정보를 파악되었다.


이 세상의 전능함, 소원을 들어주게 될 가능성도 함께 조정했다.

그것은 천사의 미라가 미래에 괴롭힐 궁합이 좋은 부부를 미리 상정하는 작업이었다.

그 숫자는 물론 무수했다.


10년 후, 100년 후, 200년 후의 정보가 축척되었다.

미래에 천사의 미라가 괴롭힐 부부는 몇백 쌍 정도였다.


그 작업을 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


* *


그다음 필이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그 부부의 소원을 이루었을 때 감정을 되찾게 해야 할 것이었다.


만나게 될 부부들 중에 필이의 감정을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변수를 입력해서 골라낸 부부들을 한번 더 추려내었다.

조건은 최단기간이었다.


필이는 천사의 미라가 시키는 일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찾을 수 있는 부부만 만날 수 있도록 장치를 해놓았다.

쓸데없이 천사의 미라가 원하는 소원 들어주기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작업을 하는 데 하루가 걸렸다.


* *


이제 기억과 감정을 잃을 예정인 자신이 이 장치를 실행할 수 있게 해야 했다.


필이는 모든 정보가 기록된 빛의 장갑을 벗었다.

빛은 다시 띠가 되어 팔찌가 되려 했다.


그는 빛의 띠를 팔찌가 되게 하지 않고 무수한 실로 쪼갰다.

무수한 실을 무수한 선으로 나누고 무수한 선을 무수한 점으로 나누었다.


필이는 이 세상의 전능함과 저 세상의 능력을 조합해 무수한 빛의 점을 하늘에 심었다.

저 세상의 능력은 영원이었고 영원은 크기와 상관이 없었다.

무수한 점 하나하나를 필이의 눈에도 보일 수 있게 확대시켰다.

그건 지도의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모양은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나무줄기에 무수한 나뭇가지, 그 가지가지에 빈틈없이 피어난 빛의 나뭇잎 같았다.


그 나뭇잎은 불변하는 필이의 통행증이어서 그 근본은 모두가 필이와 연결되어있었다.


결과적으로 필이는 모든 계획이 유기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자신의 빛의 팔찌를 무한대로 잘개 쪼개서 정보를 입력한 후 하늘에 넓고 빼곡히 심어 놓았다.


하늘 가득 필이와 연결된 초고성능 연산장치, 현재의 슈퍼 컴퓨터가 펼쳐져 있는 격이었다.


그 작업을 하는데 이틀이 걸렸다.


* *


이레 동안 작업을 한 필이는 마지막 장치를 자신의 몸에 설정해놓았다.

이 작업에는 시간이 거의 소요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중요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지만 깨어났을 때 알기 쉽게 감정을 찾을 수 있도록 나무 갑옷 같은 것을 입게 해두었다.


감정을 하나씩 되찾을 때마다 둘러싸고 있는 나무가 쪼개질 것이었다.


‘하얀이가 내 전부다.

그녀에 대한 감정만 다시 되찾는다면 다른 기억도 자연스레 따라오리라.’


모든 준비를 마친 필이는 하얀이 앞으로 향했다.

그녀에게 남김없이 감정을 다 전하고 나면 그는 깊은 잠에 빠질 셈이었다.


필이가 준비해놓은 미래의 정보는 어디까지나 저 세상을 통한 사람의 정보였다.

때문에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상상할 수 없었다.


어떤 의미로 역사 속에서 문명이 발달해도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은 것과 같은 원리였다.


따라서 필이는 자신이 어떤 식으로 깨어날지 몰랐다.


다만 깨어나기만 하면, 최단기간이라는 조건 아래 하늘에 펼쳐진 거대한 연산장치가 똑똑하게 움직여 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 *


잠에서 깨어난 나무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의 낙엽 같은 것으로 움직였던 것은 그런 이유였다.

소원을 들어줄 사람들의 기록은 하늘의 연산장치 속에서 이미 수백 차례 경신되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무탈은 천사의 미라가 원하는 짓은 최소화하면서 필이가 감정을 찾을 수 있는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필이에 의해 미리 작성된 지도가 스스로 움직이며, 기억과 감정을 잃은 작성자를 안내한 것이었다.


이 일의 모든 근원은 저세상에 속한 빛의 팔찌였기 때문에 천사의 미라가 알 수는 없었다.


* *


2015년 4월.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었지만 아직 빛의 팔찌가 돌아와 있지 않았다.

진정으로 완결이 되려면 아직 20년이 남아있었다.


나무탈 필이는 그 사이 자신의 소원 관계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천천히 살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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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에필로그 (최종회)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가 오기 전에 21.07.22 21 0 15쪽
» 제3장 (마지막) 무수히 피어있는 빛의 잎사귀 21.07.21 21 0 21쪽
53 제3장 (5) 그 옛날 나무탈이 된 필이 21.07.20 25 0 16쪽
52 제3장 (4) 하얀이의 소원, 필이의 소원 21.07.19 22 0 15쪽
51 제3장 (3) 창백한 얼굴의 청년과 한 가지 소원 21.07.18 24 0 13쪽
50 제3장 (2) 그 옛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21.07.15 26 0 14쪽
49 제3장 (1) 그 옛날 필이와 하얀이 21.07.14 33 0 12쪽
48 제2장 (마지막) 다시 만난 하건과 아리 21.07.13 27 0 18쪽
47 제2장 (23) 모든 것을 건 나무탈의 연기 21.07.12 22 0 16쪽
46 제2장 (22) 현섭이 되어 만난 하건 21.07.11 23 0 15쪽
45 제2장 (21) 인정할 수 없는 장례식 21.07.08 30 0 15쪽
44 제2장 (20) 하건안에서 변하지 않은 아리 21.07.07 25 0 16쪽
43 제2장 (19) 두 사람의 피 분장 기념사진 21.07.06 24 0 12쪽
42 제2장 (18) 감독 오케이 속에 하건과 아리 21.07.05 27 0 14쪽
41 제2장 (17) 하건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 21.07.04 25 0 13쪽
40 제2장 (16) 주연 겸 메이킹 박하건 21.07.01 31 0 16쪽
39 제2장 (15) 하건의 봄 다시 봄 21.06.30 30 0 14쪽
38 제2장 (14) 나무탈의 분노와 행복을 빈 여자 21.06.29 31 0 15쪽
37 제2장 (13) 나무탈의 적극적인 행동 21.06.28 25 0 15쪽
36 제2장 (12) 회의적인 나무탈과 김상철 21.06.27 30 0 13쪽
35 제2장 (11) 현섭의 소원을 위한 조정 21.06.24 25 0 12쪽
34 제2장 (10) 오디션, 아리와 하건 페어 21.06.23 28 0 17쪽
33 제2장 (9) 하건이 아껴둔 카드 21.06.22 27 0 13쪽
32 제2장 (8) 나송화와 아리스 21.06.21 28 0 14쪽
31 제2장 (7) 아리와 스치는 하건 21.06.20 27 0 15쪽
30 제2장 (6) 아역 탤런트 최아리의 끝 21.06.17 29 0 14쪽
29 제2장 (5) 나쁜 날들과 상관없는 하건 21.06.17 41 0 14쪽
28 제2장 (4) 즐겁지 않은 나무탈 21.06.16 3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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