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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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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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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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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2장 (11) 현섭의 소원을 위한 조정

DUMMY

2차 오디션 장소는 벽이 거울로 된 넓은 연습실이었다.


1차 때처럼 응시생이 다른 응시생의 연기를 볼 수 있는 형태였다.

그 많던 청년들은 스무 명 안팎으로 줄어 있었다.


카페에서 나온 하건이 찾아 헤매던 아리는 거기 구석에 앉아있었다.


그녀와 주변에 앉은 사람들 모두 지정대본이 적힌 종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누가 다가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건과 눈이 맞은 아리는 목례를 한 번 하고는 다시 대본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건은 그녀와 같이 오디션을 통과해서, 본 공연을 위한 연극 연습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면 자신이 1차 연습에 진심이었던 것도, 나송화의 아들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었다.


카페에서 임 대표가 갑자기 나타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임 대표가 한 말을 그녀가 의식하고 있던 아니던 이렇게 된 이상 하건은 자기 입으로 설명을 하고 싶었다.


그러니 오디션에 합격하면 될 일이었다.

하건도 집중해서 지정대본을 외웠다.


* *


아리는 지정 대본이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카페의 그가 임창규라는 것은 아리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건은 인맥으로 이미 배역을 따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 1차 오디션은 왜 그렇게 열심히 한 거지?’


그리고 이 공연에 그의 모친이 나온다면 연령에 비추어 봤을 때 배역은 왕비뿐이었다.

왕비가 진짜 나송화라면.


‘나송화 선생님한테 그렇게 큰 아이가 있었단 말야?

자기 어머니면 서완식 감독님 환갑 때 그건 뭐야?’


그때 하건은 나송화가 별로라고 했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고 가족한테 어떻게 대할지 상상도 안 간다고 말한 것을 아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날 놀린 건가?

아니면 가족이니까 더 비꼬았을 수는 있겠다.

아냐 아냐. 왕비는 아예 다른 사람인가?

박하건의 어머니인 배우?

다 떠나서 나한테는 왜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한 거지?’


아리는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어 어떤 감정을 해야 할지 몰랐다.

혹시나 하건이 자신에게 마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일부러라도 더 하지 않았다.


‘그치만··· 보람찼어.

연습 같이해서 즐거웠어···.’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모든 게 그냥 우연이라고 여겼다.

어차피 하건의 인생에 자기가 낄 리가 없으니 생각해 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믿었다.


‘어찌 됐건 겨우 여기까지 왔잖아.

이번 오디션은 절대 놓치면 안돼.

잘하자! 박하건은 잊는 거야!’


하지만 1차 오디션 때 하건이 아리에게 해준 것은 다 긍정적인 것뿐이었다.

그를 배제하려고 하자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더 잘하고 싶을수록 긴장감만 더 고조되었다.


아리의 2차 오디션은 그녀 본인이 생각해도 최악이었다.

머릿속이 뿌옇게 되면서 대사조차 온전히 외우지 못했다.


* *


미라의 연기는 하건을 포함해 연습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관자놀이에 들어갈 수 없었다.


아리의 목을 조르던 미라의 잿빛 모래 손이 다시 그녀에게 스며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경직되었다.


* *


순서는 아리가 먼저였다.

그녀는 1차 오디션을 연습했을 때 보여주었던 반짝이는 모습은 사라지고 입술이 파래져 있었다.

하건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예감이 안 좋았다.


그는 설마 했는데 심사를 받는 아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누가 봐도 그날 본 아리의 모습 중에 최악이었다.

떨어져도 할 말이 없는 컨디션이었다.


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를 쫓아가고 싶었지만 명석 아저씨에게 더 이상 민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하건이 오디션을 마치고 나갔을 때 아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합격자 발표 때도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발표 때 나타나지 않았고, 오디션에도 떨어졌다.


* *


아리는 오랜만에 즐거웠고 흥분되었으며 보람찼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을 완전히 망쳤기 때문에 더 엉망으로 안 좋은 기분이 되어있었다.


학교를 빠져나갈 때 그녀는 거기가 광재네 학교라는 걸 깨달았다.

광재는 군대 가기 전보다 일이 없다고 했다.

오랜만에 광재가 보고 싶었다.

전화를 해 보았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가게들이 늘어선 번화가였다.

그녀는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전신을 볼 수 있었다.

정신이 나간 오필리아가 따로 없어서 쓴웃음이 나왔다.

넘치는 피로가 급격히 몰려왔다.


‘오늘 뭐냐···.’


결과적으로 그날은 아리가 며칠 뒤 연기를 완전히 그만 두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 *


아리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뻗어버렸다.


나무탈은 아리의 기억을 확인했다.

오디션이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늘 있는 일이었다.

그의 관심은 그녀 기억 속의 하건이었다.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 아리는 미라를 더 쉽게 이겨냈다.


나무탈은 그 이유가 하건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았다.

하건은 항상 주변 사람들과 다 같이 즐겁게 되도록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그녀에게 소용이 없어 보였다.

아리는 그날의 막판에 미라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몇 년 전부터 그만두는 것을 고민했던 연기에도 굉장히 회의적으로 되어있었다.


그날은 나무탈에게도 비일상적이었다.

오랜만에 하건의 점혈이 느껴진 것이다.


* *


하건은 서울의 베란다가 넓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가 베란다에 있을 때가 나무탈이 기억을 확인하기도 좋았다.


오디션이 끝나고 잡지 인터뷰가 있어서 하건이 집에 들어오니 밤 10가 넘어 있었다.

그는 씻지도 않고 베란다에 앉아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탈이 그의 기억을 살펴보니 임창규가 나타난 때를 기점으로 그의 심정에 변화가 있었다.

하건은 그 이후가 즐겁지가 않았다.


아들로 하여금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즐거울 수 있게 노력하는 삶을 살게 해 달라.

그것이 하건의 부친 박현섭의 소원이었다.


나무탈은 하건과 즐거움에 대한 점혈 조정을 계속적으로 해오고 있었다.

그의 원래 성격이 박현섭과 닮아있어서 나무탈이 할 일은 많지 않았다.

그는 알아서 자기가 즐거워할 것을 찾아갔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했다.


이런 식으로 그가 즐겁지 않아 한 적도 거의 없었다.


나무탈은 오늘 있었던 일들 중 아리와 함께 했던 장면들이 흐릿하게 되게 조정해주었다.

전철을 탔을 때 몇 번째 칸에 탔었나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잊혀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상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하건이 다시 즐겁지 않아 하는 것이었다.

살펴보니 아리의 기억이 어느새 선명하게 돌아와 있었다.


그건 하건이 오늘 아리와 있었던 일은 다른 많은 것들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무탈은 여기서 아리와의 기억을 지우는 게 오히려 하건의 즐거움을 빼앗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계획을 바꾸어 하건이 술을 많이 마시고 싶게 되는 점혈을 조정했다.


하건은 절친한 옛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상업 현장에서 촬영 조수를 하면서 독립 영화판에서는 촬영 감독을 하는 이덕수라는 사람이었다.


나무탈은 덕수의 점혈이 느껴졌다.

그 길로 날아올라 한강을 건너 덕수에게로 향했다.

늦은 시간에도 하건과 만날 수 있도록 덕수가 마음에 여유를 갖도록 조정했다.


그날 하건은 덕수에게 자기는 감독이 하고 싶다고 주구장창 떠들어 댔다.


* *


밤이 깊었고 나무탈은 남산타워 위에 떠있었다.

박현섭이 많이 힘들어할 때 그가 차갑게 대한 적이 있는 곳이었다.


서울은 요즘 들어 희뿌연 날들이 부쩍 는 것 같았다.

그날도 야경이 선명하지 못했다.


하건이 즐겁게 살아가는 것은 명희의 소원 이후 나무탈이 하는 소원일 중 유일하게 보람된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하건 마저도 즐겁지 않았고 그 원인은 아리였다.


명희의 소원이었지만 명희의 잘못은 아니다. 그녀는 미라의 존재를 모른 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결국 나무탈이 있었기 때문에 미라는 아리를 저렇게 만들고 하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다.

나무탈은 소원에 대해 본격적으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었다.


예전에 현섭의 육체와 정신에 갇혀있을 때 그가 술을 마시면 생각이 둔해지고 육체도 무뎌지는 걸 알았다.


지금 나무탈은 술의 그 효과가 필요했다.


나무탈에게는 하건 외에도 소원 관계가 종료되지 않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클레이 아트를 하는 김상철이었다.


* *


상철의 아내 조연정은 세상을 떠나면서 남편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갈 것을 소원으로 빌었다.


무뚝뚝하지만 작은 동물 같은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했던 상철은 아내가 문화센터에서 배우던 클레이 아트에 꽂혔다.


바로 회사를 그만두려는 상철을 나무탈이 막았다.

그의 생활을 위해서였다.


벌써 16년 전이 되어가는 옛날이야기였다.


클레이 아트를 컨셉으로 한 카페를 차리기 위해 열심히 해온 상철은 몇 년 전 교외에 주거를 겸한 카페를 차렸다.


그의 점혈이 한동안 느껴지지 않았는데 나무탈은 걱정이 되었다.


소원 관계가 종료되면 나무탈한테서 바스러져 나오는 잿가루 때문에 그들에게 다가갈 수조차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날은 그에게 누군가 필요했다.


* *


나무탈이 근처에 있어도 김상철이 별다른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나무탈은 안심했다.


상철은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적은 나이가 아니었지만 젊었을 때 나이가 들어 보여서 그런지 외모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섬세한 성격의 그는 샤워를 한 후 깨끗하게 면도를 하고 간단하고 정갈 한 아침 식사를 마쳤다.


가게 청소도 오픈 시간 전에 구석구석 꼼꼼히 했다.

전통 찻집이지만 특별히 한국적인 모양새를 집어넣지는 않았다.

나무의 질감을 살리는 인테리어였다.

테이블이나 계산대, 창가나 화장실, 벽등에 꽃이나 동물 캐릭터들이 소극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장식되어 있었다.


클레이 아트 작품과 점토를 판매하는 작은 부스도 있었다.

2명 이상이 사전에 신청하면 간이 클레이 아트 교실도 열어주는 모양이었다.


저녁이 되고 그는 가게를 정리했다.

또다시 혼자 정갈한 저녁을 먹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하루 종일 상철을 관찰한 나무탈은 의아한 점이 있었다.

그는 웃지를 않았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혼자였다. 같이 일하는 사람도 없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틀림없는데 위화감이 있구나···.

그게 무엇일까.’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상철은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전통차 같은 음식 반응도 괜찮았다.

그런데 그는 너무 무뚝뚝했다.


그의 표정만 보면 조연정이 죽었을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나무탈은 그의 기분이 알고 싶었다.

하건이 즐겁게 살아가는 것을 보았던 것처럼, 상철이 소원 덕분에 좋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자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때 나무탈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영혼의 미라가 자신의 안으로 들어왔던 일례나 자신이 현섭에게 갇혔던 세월들이었다.


그는 잘만하면 상철의 잠재의식 속에 들어가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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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에필로그 (최종회)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가 오기 전에 21.07.22 22 0 15쪽
54 제3장 (마지막) 무수히 피어있는 빛의 잎사귀 21.07.21 21 0 21쪽
53 제3장 (5) 그 옛날 나무탈이 된 필이 21.07.20 25 0 16쪽
52 제3장 (4) 하얀이의 소원, 필이의 소원 21.07.19 22 0 15쪽
51 제3장 (3) 창백한 얼굴의 청년과 한 가지 소원 21.07.18 24 0 13쪽
50 제3장 (2) 그 옛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21.07.15 26 0 14쪽
49 제3장 (1) 그 옛날 필이와 하얀이 21.07.14 33 0 12쪽
48 제2장 (마지막) 다시 만난 하건과 아리 21.07.13 27 0 18쪽
47 제2장 (23) 모든 것을 건 나무탈의 연기 21.07.12 22 0 16쪽
46 제2장 (22) 현섭이 되어 만난 하건 21.07.11 23 0 15쪽
45 제2장 (21) 인정할 수 없는 장례식 21.07.08 30 0 15쪽
44 제2장 (20) 하건안에서 변하지 않은 아리 21.07.07 25 0 16쪽
43 제2장 (19) 두 사람의 피 분장 기념사진 21.07.06 24 0 12쪽
42 제2장 (18) 감독 오케이 속에 하건과 아리 21.07.05 27 0 14쪽
41 제2장 (17) 하건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 21.07.04 25 0 13쪽
40 제2장 (16) 주연 겸 메이킹 박하건 21.07.01 31 0 16쪽
39 제2장 (15) 하건의 봄 다시 봄 21.06.30 31 0 14쪽
38 제2장 (14) 나무탈의 분노와 행복을 빈 여자 21.06.29 32 0 15쪽
37 제2장 (13) 나무탈의 적극적인 행동 21.06.28 25 0 15쪽
36 제2장 (12) 회의적인 나무탈과 김상철 21.06.27 30 0 13쪽
» 제2장 (11) 현섭의 소원을 위한 조정 21.06.24 26 0 12쪽
34 제2장 (10) 오디션, 아리와 하건 페어 21.06.23 28 0 17쪽
33 제2장 (9) 하건이 아껴둔 카드 21.06.22 27 0 13쪽
32 제2장 (8) 나송화와 아리스 21.06.21 28 0 14쪽
31 제2장 (7) 아리와 스치는 하건 21.06.20 27 0 15쪽
30 제2장 (6) 아역 탤런트 최아리의 끝 21.06.17 29 0 14쪽
29 제2장 (5) 나쁜 날들과 상관없는 하건 21.06.17 41 0 14쪽
28 제2장 (4) 즐겁지 않은 나무탈 21.06.16 3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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