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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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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3
추천수 :
108
글자수 :
335,404

작성
21.06.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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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제2장 (12) 회의적인 나무탈과 김상철

DUMMY

나무탈은 박현섭을 통해 즐거운 감정을 알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아리와 광재 사이에서는 고민을 안게 되었다.

지금까지 단순하게 일해오던 것에 염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급기야 그는 소원 관계자의 심정을 엿보려 하고 있었다.


상철의 기분을 알고 싶었다.

소원에 관한 일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상철은 또래의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이른 시간에 이미 잠이 들어 있었다.


사실은 다른 소원 관계자들을 위한 행동이었지만 상철의 점혈을 조정하기 위한 이유가 필요했다.

나무탈은 상철의 소원을 이루어나갈 때 그의 심정을 참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게를 내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하면서 사는 것은 알 것 같았다.

더 세세하게 나무탈이 조정해야 할 것은 없나 궁금했다.


현섭의 육체와 정신에 갇혔을 때 나무탈의 본체는 현재에 있었다.

그의 의식만이 과거 현섭의 기억 속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그 느낌을 되살려서 점혈의 운용을 재현해 보았다.

단지 이번에는 상철의 과거 기억이 아니라 현재 잠재의식으로 이동하고 싶었다.


그때 상철의 이마가 아지랑이 같은 빛에 감싸 졌다.

나무탈이 한 번도 본적 없는 색채였다.


그러자 나무탈의 이마에도 점혈이 열렸다.

상철의 점혈에서 나오는 빛과 나무탈의 점혈에서 나오는 빛의 색이 같았다.


나무껍질처럼 까끌까끌한 검지 손가락 하나는 자신의 점혈에, 하나는 상철의 점혈에 갖다 대었다.


‘김상철 씨, 우리가 대화를 못 나누니 내가 이렇게 실례를 하오.

당신의 지금 기분을 알려주면 고맙겠소.’


나무탈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 *


나무탈이 눈을 떴다.

자신의 본체는 현실에 두고 온 그는, 움직이는 그림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상철의 가게가 있는 곳의 풍경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의 가게로 보이는 건물뿐 아니라 비슷한 단층 카페 같은 건물들이 주위에 훨씬 더 많이 세워져 있었다.

높은 건물이 없고 차도 안보였다. 녹음이 풍성한 곳이었다.

구름이 풍성한 파란 하늘에 날씨는 맑았지만 기온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묘한 이질감이 있었다.


건물이나 하늘의 구름, 나무와 흙바닥 까지도, 현실과 다른 질감을 하고 있었다.

사실적이었지만 겉이 맨질 맨질한 느낌이 났다.


그곳은 점토로 만들어진 세상이었다.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건물 창문 안에는 가구 같은 게 다 놓여 있었다.

사람이 없고 점토의 느낌이 났을 뿐이었다.

나무탈이 건물의 문을 열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 동네 전체가 그림자인 나무탈에 반응했다.

그림자인 그가 이동을 하니 지면이 출렁거리며 길이 없어졌다.

위치가 바뀐 건물들이 그의 길을 막았다.


나무탈 그림자는 일단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 구름에 얹혀져 보았다.

세상은 멀리 뻗어있지 않고 같은 동네가 또 반복되어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건물들 뒤쪽으로 숲이 보였는데 그 중간에 그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을 조준해서 내려갔지만 숲이 다시 출렁이며 길이 바뀌어 있었다.


나무탈 그림자는 숲 속에 떨어졌다.


숲도 사실적이었지만 점토의 질감이 났다.

나뭇가지나 풀들이 묘하게 둥그랬다.


동네의 건물들처럼 숲이 나무탈을 거부했다.


나무들이 길을 막고 풀들이 자라나 길을 없앴다. 그들은 살아있었다.


나무탈 그림자는 속도를 내었다.

미끄러지듯 그 방해를 피해서 숲의 중심으로 들어가는데 초롱초롱한 눈빛이 느껴졌다.


점토로 만든 짐승들이었다.

실제 짐승보다 맨질맨질하면서 묘하게 귀여웠다.

그것들이 수십 마리가 나무탈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나무탈을 향해 달려왔다.

점토 염소가 방심하고 있던 그림자 나무탈의 끄투머리를 뜯어먹었다.


* *


상철의 침상 앞에서 나무탈은 움찔했다.

하마터면 그의 의식에서 튕겨져 나갈 뻔했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상철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한층 더 집중했다.


* *


나무탈은 다시 상철의 의식 안이었다.

그림자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는 급습으로부터 가까스로 몸을 피했다.


점토 염소들이 달려들었고 점토 곰이 앞에서 덮쳤다.

그들의 공격에 몇 번 스쳤지만 나무탈은 집중해서 움직였다.


나무탈 그림자는 속도를 올렸다.

숨바꼭질의 요령으로 숲의 구석구석에 숨었다.

동물들이 지나가자 그림자는 숨을 죽여서 다시 이동했다.


숲 한가운데에 하얀 나무로 만든 건물이 있었다.


숲 앞에 있던 집들보다 지붕과 기둥이 높았고 커다란 창문이 붙어 있었다.

그 건물은 신전에 가까웠다.

창문을 통해 상철이 신전 가운데 식탁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림자가 된 나무탈은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문이 잠겨있었다.


‘김상철 씨! 문을 좀 열어주지 않겠소?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보니 기분이 어떻소?’


나무탈은 그곳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창문에 붙어 안쪽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상철은 그 앞에 책상을 놓고 클레이 아트를 하고 있었다.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간 것이 미소가 틀림없겠지?

그런데 왜 이리도 게슴츠레할까.’


그때 신전 제일 안쪽에 그녀를 보였다.


세장을 떠난 그의 아내 조연정이었다.

그녀가 앉아있는 의자는 크고 곧아 엄숙한 왕좌 같았다.


그녀는 언뜻 웃고 있었지만 그 얼굴이 굳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조연정은 점토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순간 그림자가 된 나무탈과 상철의 눈이 맞았다.

입가에 미소가 사라진 그는 나무탈을 노려보았다.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인상이었지만 눈동자가 달랐다.


박현섭이 나무탈을 바라보던 눈,

나무탈이 박현섭 속에서 경험한 사람들이 현섭을 쳐다본 눈,

그런 눈빛과는 완전히 다른 눈이었다.

일체의 빛이 감돌지 않는 충혈된 눈은 어떠한 교류도 거부하는 듯했다.


따뜻함을 기대하고 상철의 의식으로 넘어온 나무탈의 마음에 섬뜩함만 남았다.


그때 그는 자신이 점토 짐승들에게 둘러싸였다는 걸 알았다.

갈색의 예쁘장한 점토 토끼가 다가와 나무탈을 단숨에 먹어치웠다.


* *


나무탈은 튕겨져 나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상철의 주거형 카페의 상공이었다.


밤하늘에 거꾸로 떠 있던 나무탈은 자세를 바로했다.


그가 땀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그 감각은 식은땀에 절어버린 느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소가 게슴츠레한들 어떠하리.

나를 거부했던 그 눈빛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구나.

소원은 김상철 씨에게 필요한 것이었을까···.’


상철의 잠재의식은 얼핏 보기에 아름다운 세계였다.

하지만 그건 나무탈에게 악몽이었다.


* *


상철에게 다녀온 나무탈은 가슴이 불편한 채 멍하니 며칠을 보냈다.

그는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몰랐으나, 그 감각은 체했을 때와 비슷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하건의 점혈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아리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하건은 모친 나송화 때문에 상심해 있었다.

그는 점심 먹을 힘도 없어 기획사가 있는 건물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무탈은 하건의 기억을 확인했다.


오디션이 끝나고 명석은 하건을 햄릿으로 낙점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건 나송화였다. 그는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나송화가 집중을 할 때면 상대역을 압도하는 기운을 뿜어내는 듯한 특징이 있었다.

하건이 아무리 그녀의 아들이라도 무대 위에서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힘이었다.


혹은 하건이 그녀의 아들이라 오히려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명석은 제작자와 상담을 해서 하건만의 오디션 시간을 마련했다.

햄릿으로서 왕비 거트루드와 같이 연기를 해보는 것이었다.


하건과 송화는 3막 4장을 통째로 연기해야 했다.


햄릿이 연극을 공연해 삼촌의 살인을 확신하게 되고 그런 삼촌과 결혼한 어머니를 격하게 추궁하는 부분이었다,

그때 격앙된 햄릿은 판단력을 잃고 실수로 관계없는 사람인 신하 폴로니어스를 죽이게 되었다.


명석은 폴로니어스 역의 배우도 일부러 불렀다.

창규네 회사에서 연습실을 제공해주었고 창규도 견학을 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였다.

하건은 나송화를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연기를 시작하면서 하건을 완전한 햄릿으로 여겼다.

가족 요소가 일체 배제된 연기였다.

그러나 하건은 그녀가 어머니라는 것을 의식해 연기가 과장되며 자연스럽지 못하게 되었다.


명석과 제작자가 얼마 전에 오디션에서 보았던 하건의 반도 안 되는 실력의 배우로 보였다.


하건이 상심한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오디션 결과는 정말로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그는 3막 4장이 끝나고 나서 송화의 태도가 싫었다.


하건이 느끼기에 모친은 연기를 시작하면 마녀가 되었다.

그러나 오디션이 끝나니 아들에게 민폐를 끼쳤다고 어쩔 줄 몰라했다.


그녀는 아직도 하건이 초등학교 4학년인 줄 알고 있었다.

연기자로서는 한 순간에 괴물처럼 되면서 어머니로서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에 멈추었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박현섭이 며칠 전에 죽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그런 것들은 하건의 마음속 불만에 불과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웃으며 모친을 응원했다.


명석과 제작자는 창규와 상담했다.

햄릿의 충직한 친구 호레이쇼라면 하건에게 맡겨도 좋다는 이야기였다.


창규는 그 말을 이해하면서도 동의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나송화와 하건의 모자 합동 공연이 이상한 모양이 된다고 생각했다.


창규도 하건에게 햄릿은 무리라는 것을 납득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는 하건이 출연하지 않기로 했다.

아주 젊을 때 같은 극단에 있었던 명석과 창규의 오랜 우정이 있었기에 아무런 응어리 없이 이야기는 잘 끝났다.


* *


나무탈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소원을 이룬 후 나송화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상철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연기자라는 소원을 이룬 것이 그녀의 인생에 더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하건의 기억을 살폈을 때 정보로는 현섭이 떠난 이후 나송화가 어떤 남자도 만나지 않고 있었다.

그건 그거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 하건이 실망한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연애를 하지 않는 것조차 건강하지 못하게 느껴졌다.


나무탈이 송화의 소원을 이루어줄 당시에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그가 그때처럼 행할 수는 없었다.


나무탈의 속에 얹힌 것처럼 자리 잡고 있던 고민이 점점 커져갔다.


그녀에게 소원이 의미가 없다면 그건 상철과 마찬가지였다.


그때 또 한 명 소원 관계자가 생각났다.

예전에 상철이 소원을 빈 처남 조용호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효도라는 명목으로 처남이 자립해서 그의 부모님께 용돈을 부치며 살아가는 소원을 빌었다.


나무탈은 다시 한번 상철에게로 날아갔다.

자세히 알 수 없더라도 상철의 기억을 통해 조금이나마 확인하고 싶었다.


* *


상철은 손님이 없는 틈을 타 테이블 하나에 점토를 펴놓고 클레이 아트를 만들고 있었다.

나무탈은 상철의 기억 속에서 조용호에 관련된 장면만 모아서 확인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어느 정도 자립할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 가게를 확장하거나 더 큰 꿈을 갖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만나는 상철에게 그게 불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조용호 씨가 김상철 씨에게 보이는 웃음은 쓴웃음에 지나지 않는구나···.’


나무탈은 확신했다.

소원을 들어주는 일 따위,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무탈 자신의 기억을 찾는 다면 조금이나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망설이고 있던 마음이 다 정리가 되었다.


그는 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자기가 눈을 잘못 내려서 아리에게 피해를 준 이후 고민했던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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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글 수정, 연재 계획 안내입니다. 21.07.02 39 0 -
55 에필로그 (최종회)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가 오기 전에 21.07.22 21 0 15쪽
54 제3장 (마지막) 무수히 피어있는 빛의 잎사귀 21.07.21 20 0 21쪽
53 제3장 (5) 그 옛날 나무탈이 된 필이 21.07.20 24 0 16쪽
52 제3장 (4) 하얀이의 소원, 필이의 소원 21.07.19 21 0 15쪽
51 제3장 (3) 창백한 얼굴의 청년과 한 가지 소원 21.07.18 24 0 13쪽
50 제3장 (2) 그 옛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21.07.15 25 0 14쪽
49 제3장 (1) 그 옛날 필이와 하얀이 21.07.14 32 0 12쪽
48 제2장 (마지막) 다시 만난 하건과 아리 21.07.13 26 0 18쪽
47 제2장 (23) 모든 것을 건 나무탈의 연기 21.07.12 21 0 16쪽
46 제2장 (22) 현섭이 되어 만난 하건 21.07.11 22 0 15쪽
45 제2장 (21) 인정할 수 없는 장례식 21.07.08 29 0 15쪽
44 제2장 (20) 하건안에서 변하지 않은 아리 21.07.07 24 0 16쪽
43 제2장 (19) 두 사람의 피 분장 기념사진 21.07.06 23 0 12쪽
42 제2장 (18) 감독 오케이 속에 하건과 아리 21.07.05 26 0 14쪽
41 제2장 (17) 하건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 21.07.04 24 0 13쪽
40 제2장 (16) 주연 겸 메이킹 박하건 21.07.01 30 0 16쪽
39 제2장 (15) 하건의 봄 다시 봄 21.06.30 30 0 14쪽
38 제2장 (14) 나무탈의 분노와 행복을 빈 여자 21.06.29 31 0 15쪽
37 제2장 (13) 나무탈의 적극적인 행동 21.06.28 24 0 15쪽
» 제2장 (12) 회의적인 나무탈과 김상철 21.06.27 30 0 13쪽
35 제2장 (11) 현섭의 소원을 위한 조정 21.06.24 25 0 12쪽
34 제2장 (10) 오디션, 아리와 하건 페어 21.06.23 27 0 17쪽
33 제2장 (9) 하건이 아껴둔 카드 21.06.22 26 0 13쪽
32 제2장 (8) 나송화와 아리스 21.06.21 27 0 14쪽
31 제2장 (7) 아리와 스치는 하건 21.06.20 26 0 15쪽
30 제2장 (6) 아역 탤런트 최아리의 끝 21.06.17 28 0 14쪽
29 제2장 (5) 나쁜 날들과 상관없는 하건 21.06.17 40 0 14쪽
28 제2장 (4) 즐겁지 않은 나무탈 21.06.16 3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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