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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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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글자수 :
33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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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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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제2장 (마지막) 다시 만난 하건과 아리

DUMMY

하건은 처음 맡은 주연이었기에 그 책임감도 새로웠다.

창규를 비롯해 주변에서 걱정과 충고를 해왔지만 정작 본인은 부담보다는 긍정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훨씬 많았다.

책임감은 더 잘하고 싶은 하는 마음으로 연결되었고, 긴 합숙 기간도 불편함보다 연기만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으로 여겼다.

대사가 많은 것도 힘들기보다는 여러 가지 패턴을 시도할 수 있어서 즐거움이 더 컸다.


말들은 점점 하건을 따르기 시작했다.

승마는 물론이고 말 목욕도 시킬 줄 알게 되었다.

엄청 귀여운 망아지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하건의 낙이었다.

공부도 틈틈이 했지만 오디션을 보기 전만큼 걱정되지는 않았다.

얻는 것이 훨씬 많은 현장이었다.


딱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최아리였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건도 아리가 아주 크게 다칠 뻔한 것을 목격했다.

그녀가 마장으로 끌고 가던 말들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행히 말들이 바로 진정을 해주어 무사히 넘어가긴 했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 이후였다.


아리에게 안 좋은 일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밥을 먹어도 화장실을 이용해도 차량으로 이동을 해도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건 언제나 아리였다.


음식물이 묻거나 물을 뒤집어쓰기도 했고, 도구가 아리의 몫만 없거나 엄한 데서 미끄러질 뿐 아니라 그녀가 탄 차만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다.

그건 승마장 합숙이 끝나고 마사축산 고등학교 합숙으로 넘어와도 달라지지 않았다.


* *


마사축산 학교에서는 배역에 맞게 학생들이 각각 연수를 받는 내용이 달랐는데 마필 관리 코스 소속 역인 하건은 아리와 같은 조였다.

합숙 내내 안 풀리는 그녀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는 아리와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아리는 인간관계도 잘 안 풀리고 있었다.


즐겁고 긍정적인 하건과 달리 다른 학생들은 긴장이 많이 된 상태였다.

연기에 목숨을 건 아이는 너무 잘하려고 하다가, 재능이 없는 아이는 또 여기서 버티는 게 힘들어서, 각기 이유는 달랐지만 다들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그때 아리가 성격이 안 좋은 여학생에게 찍히는 일이 있었다.


하건은 합숙 초반부터 아리가 되도록 웃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괜히 안 좋게 본 조연 여학생이 있었고, 그녀의 주도로 단체로 아리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원래는 주연 네 명 중에 하나로 아리가 정해져 있었는데 팔이 다쳐서 내려갔다는 소문도 같이 돌았다.

꼴좋다느니, 다쳤는데 왜 여기서 저러고 있냐느니 그런 부정적인 말들이 하건의 귀에도 들려왔다.


아리를 ‘아리스’라고 부르는 그녀의 친구가 현장에 있었는데 굉장히 수다스러웠다.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더라도 그것도 좋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스탭들은 그들대로 비중이 높은 학생들을 위주로 일을 해야 하니, 아리를 챙겨줄 수는 없었다.

아리가 친절하게 다가갔는데 오히려 스탭이 귀찮아하는 것을 하건이 목격한 적도 있었다.


평상시에는 분위기를 주도해 다 같이 즐겁게 지내는 것을 항상 의식하는 하건이었지만, 여기서 섣불리 나섰다가는 그녀에게 더 안 좋게 될 것 같았다.

주연과 조연, 조연과 단역 사이에는 벽이 있었고, 처음 현장에서 아리를 보았을 때 하건의 예상과 다르게 아리는 단역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건은 아무리 바빠도 마음 한 구석에 여유를 조금이라도 만들어 놓았다. 아리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아리가 나오는 광고, 작품은 주욱 봐온 하건이었다.

그녀는 밝게 미소 짓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하건이 아리를 보면서 같이 웃을 수 있게 된 것은 몇 년 안되었었다.


아버지를 잃은 하건이 태어나서 가장 슬퍼하고 있을 때, 작은 아리는 치약 광고에서 그 미소를 전국적으로 알리게 되었다.


아리의 미소에 같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하건이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극복했다는 의미였다.


그건 하건에게 소중한 증거였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서 친해지면 좋겠는데···.’


하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대본 후반부를 다 외우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집중하자!

박하건 주연이다 주연.’


* *


하건이 바라던 기회는 갑자기 찾아왔다.


마필 관리를 위해 하건과 학생들이 포크 삽을 들고 말들이 쉬는 마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소변이 묻은 톱밥을 퍼내고 마분도 거두어내야 했다.


가까운 마방에는 왼팔에 깁스를 한 아리가 한 손으로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꺅!”


아리가 또 넘어진 모양이었다.

너무 잦은 일이라 하건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였다.


“으아아···.”


그런데 이번에는 굉장히 곤란한듯한 탄식이 들렸다.

하건도 일을 해야 했기에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방을 나가려는데,


퍼억.


갑자기 하건의 볼따구니에 묵직한 충격이 왔다.

꽤나 아팠고, 굉장한 냄새가 났다.


순간적으로 하건이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데 아리가 다가와 어쩔 줄 몰라하며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어떻게··· 정말 죄송합니다!”


아리의 깁스에 얼굴을 맞은 게 분명했다.

문제는 그녀의 깁스에 묽은 마분이 묻어있었던 것이었다.

또래에 비해 상당히 침착한 편인 하건도 당황하며 수돗가로 달려갔다.


물로 흘려보내고 비누로 박박 문질러도 안 지워지는 독한 냄새였다.


아리가 수돗가까지 쫓아와서 연신 사과를 해댔다.


“조심한다고는 했는데, 갑자기 말이 고개를 제 쪽으로 들어서 그만···.

여기, 깁스에 묻은 건 청소하다 그런 건데, 진짜 죄송합니다!”


이런 냄새 속에서 ‘그 최아리’가 사과를 하고 있었다.

상황이 너무 말이 안돼서 하건은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어느새 사람들이 하건과 아리 주위로 몰려들어 일단 한 번은 참을 수 있었다.


“읖푸, 그거, 냄새 장난 아니에요.”


아리의 깁스에 묻은 마분을 보니 그의 웃음보가 또다시 터질 것 같았다.


“아!

죄송합니다!”


아리도 자신의 깁스를 박박 문질러 닦았다.

그제야 냄새를 느끼면서도 하건에겐 미안함이 가득한 아리는 신묘한 표정이 되었다.


“악 냄새···.”


그건 상황에서 튀어나온 아리의 말에 하건은 빵터쪘다.


“푸하하하하!”


가뜩이나 당황했는데 하건의 웃음까지 겹쳐 저 얼굴이 굳은 아리에게 하건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 표정··· 하하하.

뭐야··· 영혼만 탈출시켰어, 하하하.”


하건의 유쾌한 대응은 아리를 평상시 안 좋게 보던 아이들에게도 분위기 전환이 되어주었다.

그제야 자신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웃게 되자 아리의 마음은 훨씬 편해졌다.

그래도 그녀의 미안해하는 표정이 풀리지는 않았다.


* *


그곳에는 마침 이동환 감독도 있었다.

지나가다가 하건과 아리의 상황을 보고 그때부터 굉장히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틈만 나면 작품에 뭐 좋은 걸 추가하고 싶어 하는 동환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


수돗가에서 아리와 하건은 영원할 거 같은 비누질을 해댔다.


“냄새 진짜 장난 아니다··· 그치.”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아, 나 지금 고3이니까 말 놀게.

너 고1이지? 최아리.”

“네···. 죄송합니다···.”

“난 박하건이라고 해.”

“알고 있어요.”

“오빠라고 불러.”

“아··· 제가 어렸을 때부터 너무 아무나 오빠라고 불러갖고···.

좀 안 그러기로 해서···.”

“하하하 뭐야 그게.

니가 나보다 연기 선배니까 어쩔 수 없잖아.”


어린 아리한테 이 아저씨 저 아저씨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곤 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따랐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위화감을 느낀 아리였다.

그러면서 또 하나 떠올랐다.

아리는 광재 이외에는 또래랑도 이야기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갑자기 긴장이 된 그녀는 마분을 더 열심히 닦았다.


“··· 박 배우님?”

“됐어. 얼어 죽을 배우님이야. 그냥 오빠라 부르고,

넌 배우 누구 좋아해? ”


그 이야기라면 아리에게도 부담이 없었다.

얼굴이 조금 밝아진 그녀가 하건을 바라보았다.


“나송화 선생님이요!”


하건은 허를 찔린 것 같았다.


“나송화?”

“네. 아, 저 연극 중심으로 활동하는 분이신데, 완전 압도적이에요.

그분 연기 보면 모든 걸 잊게 되는 거 같아요.”


솔직함은 하건의 자랑이었다.


“난 나송화는 좀 별론데···.”


아리는 충격과 함께 화도 올라왔다.

지금까지 자기 의견을 부정당해본 적이 많이 없었던 아리의 얼굴은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네?”

“그니까 표정 편하게 해. 하하.”

“웃지 마시고요!”


그녀의 입에서 갑자기 말이 날카롭게 나왔다.

그러곤 그녀 스스로도 당황했다. 기분이 좀 상했지만 화를 낼 것까지는 없는 일이었다.

바로 또 꾸벅 사과를 했다.


“아, 죄송합니다.”


주의 깊게 보던 이동환 감독은 거리를 더 좁히면서도 학생들에게 들키지 않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니다. 내가 미안, 자기 좋아하는 거 아니라 그러면 열 받지.”

“아니에요. 아닙니다···.”


아리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바로 후회가 되었다.

나송화는 또래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배우라고는 할 수 없었다.

누군가와 송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이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건은 송화의 연기에 대해 제대로 고민한 적은 없었다.

다만 예전부터 묘하게 모친의 연기는 포근하지가 않았다.

그때 아리가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그동안 모친에 대해 생각했던걸 편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나송화 연기는 진짜 잘해. 인정.”


아리가 하건을 쳐다보았다.

겨우 하건이 좋아하는 그 똘망똘망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나송화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하건의 머리 한편에, 갑자기 아리에 대해 생각이 떠올랐다.

최아리는 왜 이쁘지?


“근데 왜 별로냐 하면···.

원래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안 보이는 거 같아.

하는 역마다 다 다르고···.”


아리는 하건의 말이 이해가 안 되었다.


“하는 역마다 다른 거 최고로 좋잖아요?”

“아! 이렇게 말하면 되겠다. 가족들한테 어떻게 대할지 상상도 안되던데?”


가족들하고 그렇게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아리의 말투가 다시 세어졌다.


“가족들하고 연기하고 무슨 상관이죠?!”

“연기자 본인···.”


연기자 본인의 원래 모습이 안 드러나는 송화의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던 하건은 아리의 얼굴에서 잠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리는 좋아하는 배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굉장히 열심히였다.


그때 하건이 순간적으로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는 그녀의 깁스를 들어다가 냄새를 맡았다.


“뭐하시는 거예요?!”

“오, 냄새 이제 거의 안 난다.”


엄청 박박 문질러댔으니 당연할 수도 있었다.

아리의 말투에 놀라고 당황함이 더해졌다.


“아니, 연기랑 선생님 원래 모습이랑, 가족이랑, 상관없지 않냐구요!”


불현듯, 하건의 머리에 예전에 본 ‘봄 다시 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야, 너 봄 다시 봄에서, 이사 트럭 위에서 뛰어내린 거 있잖아.

그거 원래 NG 지?”


아직 미안함도 남아있어 온갖 감정에 휩싸이고 있던 아리에게 어이없음이 추가되었다.


“네?”

“그거 달리는 트럭에서 뛰어내리다가 무릎 까졌는데 그냥 간 장면 그대로 방송됐잖아.”


갑작스러웠지만 하건이 말한 건 비공개된 사실이었다.


“··· 네, 맞아요···. 근데 그게 나송화 선생님이랑 무슨···.”

“최아리는 진짜 맨날 필사적이구나···.

이 상황에서도 그렇게 눈 부릅뜨고 하하.

아 너 이뻐서 웃는 거야.”


아리는 더 이상 어떤 감정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 모든 게 합쳐져서 놀라움이 되었다.

자신이 필사적이라는 하건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맞다 그러고보니, 옛날에 치약 꼬마도 마찬가지 아냐?!

애가 뭔 이를 그렇게 빡빡 닦아···.

그냥 힘이 넘치는 게 아니라 필사적이었던 거야!”


당황한 아리였지만 하건의 살가운 중저음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건 분명 눈치채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하건은 송화의 연기보다 아리의 연기가 훨씬 좋았다.


“나송화는 연기를 그냥 해. 뭐든 그냥 휙휙 다른 사람 되거든?

본인이 전혀 안 들어 있어.”


그 이야기도 납득이 된 아리에게 하건의 다음 말에 순수하게 놀랐다.


“아, 내가 말 안 했구나.

나송화, 우리 어머니야.

근데 집에서는 아직도 날 어린애 취급하고 예전하고 하나도 안 변했거든.

무대에서는 진짜 다른 게 좀 치사하달까 거짓말 같달까···.”


여러 가지로 할 말은 없어진 아리였지만 하건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근데 넌 막 사과하고, 미친 듯이 그거 닦고, 애가 많이 바쁘잖아.”

“아니요···.”

“난 지금 너처럼 필사적인 게 좋아.”


아리가 눈을 크게 뜨고 하건을 바라보았다.


“아! 나송화보다 너같은 연기 스타일이 좋다고. 하하.”

“이··· 그··· 저···.”


이상하게 바로 전 현장 때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한 아리의 버릇이 또 나왔다.


“얘들아-.”


이동환 감독이었다.

아리뿐 아니라 하건도 당황했다.


“나 이 상황, 영화에 쓰고 싶은데-.

니들은 어떻게 생각해?”


동환은 아리가 깁스를 한 채 애를 쓰는 것을 보고 흥미가 있었다.

그런데 다친 애를 이용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참고 있었는데 아리처럼 다친 사람이 쏘아붙이면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얘만 괜찮다면···.”

“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리의 군인 같은 답변이 하건의 말을 지웠다.


동환은 짧게 아리의 부상과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건도 옆에서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라면 아리를 어떻게 연출할지 생각을 해보았다.

군인 같다고 해서 진짜 군바리처럼 보이는 건 싫었다.


그러는 사이, 언젠가 진짜로 최아리를 배우로 써서, 필사적인 애가 나오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우연이었던 그 일을 계기로 아리는 단역에서 조연이 되었다.


동환은 아리에게 ‘수철’을 짝사랑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주었다.

두 사람이 극 중에서 만난 계기는 실제로 마방 청소때 있었던 일을 농축한 짧은 씬이었다.

이야기 내용이 나송화 대신에 왜 말산업 학교에 왔나로만 바뀌어 있었다.


본편에서 안 쓰인 장면도 있었지만 아리는 무시 못 할 정도의 분량을 새로 받았다.


특히 영화 후반에 새하얀 눈밭에서 아리가 하건을 향해 온갖 저주를 퍼붓는 씬은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화제가 되었다.


아무도 그걸 아리의 저주로 보지 않았다.

아리는 ‘수철’ 역 하건을 너무 사랑하고 축복하지만 하건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싫다는 감정을 원 테이크만에 소화해 냈다.


하건은 시나리오 수철과 다른 심정이 있었다.

자기라면 아리에게 갈 거였다.


그리고 눈밭에서 하건이 다른 여자에게 가기를 바라지 않은 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아리가 돌이켜보고 이때 자신의 감정을 깨닫기까지는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있었다.


* *


나무탈은 여전히 하건의 잠재의식 속에 있었다.

잠들지 않은 그는 계속해서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때 풍경의 일부분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곳에서 처음 보는 장소가 생겨났다.


목장이었고 말들이 있었다.

꽤 사실적인 장면이었지만 한 가지 특징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리가 왼팔에 깁스를 한 채 말을 타고 있는 것이었다.


나무탈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 자신의 모든 것이 녹아서 없어질 것처럼 간절히 기다리던 장면이었다.


현섭이 되어 하건과 이야기를 나누고 한 달이 될까 말까 하는 시간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기간 동안 나무탈은 매 순간 속이 타들어갔다.


만약 하건과 아리가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심각하게 걱정했다.

2007년 이후 두 사람이 스쳤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계획을 짜 보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번 현장만큼 기회가 좋지는 않았다.


안심이 되어 온몸 의 힘이 다 풀리는 것 같던 나무탈이 자기도 미소 지었다.

그때 그의 심장을 덮고 있던 마지막 나무 조각이 바스러져 없어졌다.


그 순간 나무탈의 가슴에 복받쳐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현섭의 과거 장면도 나무탈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주 빠른 속도였지만 나무탈에게는 하나하나 명확히 새겨졌다.


예전에 30년 현섭과 함께 했을 때 나무탈의 감정이 비어있어서 놓쳤던 장면들도 다 해석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현섭이 만났던 여학생 김은애에 대한 마음, 현섭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슬픔, 나송화를 만났을 때의 기분, 그리고 아들 하건이 태어났을 때의 심정.


현섭이 가장 좋아했던 연극을 그만둘 수 있었던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감정이 허락되어 가능했다는 것을 되었다.


나무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렸다.

하건과 송화가 현섭을 잃었을 때 슬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도 현섭이 그리워졌다.


아직 아리와 하건이 나무탈이 원했던 삶을 살아가는지는 확신할 수없었다.

하건의 잠재의식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무탈은 확실히 알았다.

자신은 지금 아리와 하건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고 있었다.


이제는 다 회복된 그의 감정과 함께, 그의 기억도 전부가 다 선명하게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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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에필로그 (최종회)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가 오기 전에 21.07.22 21 0 15쪽
54 제3장 (마지막) 무수히 피어있는 빛의 잎사귀 21.07.21 20 0 21쪽
53 제3장 (5) 그 옛날 나무탈이 된 필이 21.07.20 25 0 16쪽
52 제3장 (4) 하얀이의 소원, 필이의 소원 21.07.19 21 0 15쪽
51 제3장 (3) 창백한 얼굴의 청년과 한 가지 소원 21.07.18 24 0 13쪽
50 제3장 (2) 그 옛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21.07.15 26 0 14쪽
49 제3장 (1) 그 옛날 필이와 하얀이 21.07.14 33 0 12쪽
» 제2장 (마지막) 다시 만난 하건과 아리 21.07.13 27 0 18쪽
47 제2장 (23) 모든 것을 건 나무탈의 연기 21.07.12 22 0 16쪽
46 제2장 (22) 현섭이 되어 만난 하건 21.07.11 23 0 15쪽
45 제2장 (21) 인정할 수 없는 장례식 21.07.08 30 0 15쪽
44 제2장 (20) 하건안에서 변하지 않은 아리 21.07.07 25 0 16쪽
43 제2장 (19) 두 사람의 피 분장 기념사진 21.07.06 24 0 12쪽
42 제2장 (18) 감독 오케이 속에 하건과 아리 21.07.05 27 0 14쪽
41 제2장 (17) 하건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 21.07.04 25 0 13쪽
40 제2장 (16) 주연 겸 메이킹 박하건 21.07.01 31 0 16쪽
39 제2장 (15) 하건의 봄 다시 봄 21.06.30 30 0 14쪽
38 제2장 (14) 나무탈의 분노와 행복을 빈 여자 21.06.29 31 0 15쪽
37 제2장 (13) 나무탈의 적극적인 행동 21.06.28 25 0 15쪽
36 제2장 (12) 회의적인 나무탈과 김상철 21.06.27 30 0 13쪽
35 제2장 (11) 현섭의 소원을 위한 조정 21.06.24 25 0 12쪽
34 제2장 (10) 오디션, 아리와 하건 페어 21.06.23 28 0 17쪽
33 제2장 (9) 하건이 아껴둔 카드 21.06.22 27 0 13쪽
32 제2장 (8) 나송화와 아리스 21.06.21 28 0 14쪽
31 제2장 (7) 아리와 스치는 하건 21.06.20 27 0 15쪽
30 제2장 (6) 아역 탤런트 최아리의 끝 21.06.17 29 0 14쪽
29 제2장 (5) 나쁜 날들과 상관없는 하건 21.06.17 41 0 14쪽
28 제2장 (4) 즐겁지 않은 나무탈 21.06.16 3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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