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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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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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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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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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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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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9) 하건이 아껴둔 카드

DUMMY

창문 밖 아래로 서울의 야경이 펼쳐졌다.


아리가 경험한 적 없는 부류의 고급 바였다.

그녀는 서완식의 환갑잔치 때문에 기분이 상해 있었다.


효순과 광재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는 광재의 군대 공백을 걱정해 인사를 보낸 것이었는데, 효순이 경험한 여러 날 중에서도 특히 의미가 없었다.

심지어 사람들한테서 광재가 싫어진 듯한 인상까지 받았다.


아리는 광재가 시키는 술을 따라 시켜보았다.

그가 이렇게 까지 술을 많이 먹는 줄 몰랐다.


진토닉이니 하이볼이니 별세계에 온 것 같았던 아리는 기분이 좀 풀렸다.

그런데 좋은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광재가 겨우 웃으면서 말을 꺼내나 했더니 자기는 사실 지금 여자 친구랑 잘 안돼서 힘들다고 했다.

아리가 예전에 본가에 놀러 왔던 여자애의 이름을 꺼내자 광재는 해맑게 웃어 보였다.


“하이튼 아리스, 완전 귀엽다니까.”


아리는 그런 그에게 몇 명 사귀어 봤는지까지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자 광재는 더 이상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광재는 언제나처럼 아리의 이야기를 상냥하게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날은 그게 다였다.


처음에는 효순 없이 둘이 놀고 싶었던 아리였다.


‘넌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데?’


취기가 올라온 아리는 광재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효순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


하건은 서완식 감독이 최아리에게 화내는 걸 보고 그에게 조금 실망했다.

또 촬영할 때는 몰랐는데 드라마 본방송을 봐보니 하건이 참가한 지난 작품보다 새 작품이 덜 재밌는 것 같았다.


그래도 서완식은 서완식이었다.

그의 신작 드라마는 방영되기도 전에 한류 인기 작품으로 전 세계에 팔려나갔고 하건의 인지도도 덩달아 올라갔다.

군대 소재 독립영화에서 호평을 받은 것도 겹쳐져 하건에게 광고 섭외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하건이 처음 주연한 상업영화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기획사 대표인 창규는 연기 학원을 차렸다가 망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방심하지 않았다.

그는 이 기회에 하건의 인지도를 더욱 올리기 위해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기획을 하나 꺼내 들었다.


하건이 나송화의 아들인 것을 세상에 알리고자 한 것이다.

송화는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연극계에서는 굉장히 유명해져 있었다.


창규는 이 이야기를 이미 명석과 나누었었다.

그 의견에 긍정적이던 명석은 현재 4년 만에 ‘햄릿’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시기가 맞아떨어졌다고 느꼈다.


하건은 모친이랑 같은 무대에 서는 것이 미묘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통과해야 할 길이라고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하건이 연극 무대 출연 경험은 많지가 않았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창규는 원래 연극인이었기 때문에 처음 기획사에 그가 소속되었을 때부터 무대 연기의 훈련도 꽤나 혹독하게 시켜 왔다.


* *


아리가 출연한 독립영화는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촬영장에서 민원과 트러블도 끊이지 않았고 스탭끼리 인간관계가 망가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촬영이 무사히 끝났다 하면 감독이 완성을 못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또한 그녀는 소속사를 찾기 위한 오디션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었다.

몇 년째 결과를 못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성취감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대학교 4학년도 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서완식 감독에게 혼난 여름에서 다시 1년이 지난 것이다.


게다가 아리는 영어나 취직 준비등 대학생으로 해야 할 것도 거의 하지 못했다.

졸업 후 계획도 막연했다.

일단은 패스트푸드점에서의 근무시간을 늘릴 예정이었다.

신입생 때부터 알바를 하던 곳이었다.

물론 그녀는 직업이 연기자인 생활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알바에서 정규직 전환을 위해 해야 할 것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리가 ‘햄릿’의 오디션 소식을 안 것은 그 무렵이었다.

몇 개의 배역을 제외하고 주명석 감독이 오랜만에 열린 오디션을 본다고 했다.


남자는 햄릿, 여자는 오필리아가 과제였지만 결과에 따라 떨어지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역으로 배치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리는 지금까지 연극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너무 독립영화 쪽에 가있었던 것도 이유였다.

정식 발표는 없었지만 정해진 배역에 나송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햄릿 책을 꺼내 폈다.

오래전에 송화가 나온 햄릿을 더 잘 관람하려고 산 녀석이었다.


한 작품을 준비하기 시작하면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는 아리였다.


* *


하건에게 주어진 특혜는 1차를 면제받고 바로 2차 오디션으로 가는 것까지였다.

아무리 창규가 부탁을 했다고 해도 칼자루는 제작자와 명석이 쥐고 있었다.

그리고 창규는 오디션의 내용을 전해 듣지도 못했다.


오디션 장소는 한양 예술 전문학교였다.

한국의 영화, 연극, 방송계 등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역사 깊은 곳이었다.


하건은 이곳에서 영상 연출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입시에 실패하고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가장 다니고 싶었던 학교였기 때문에 고급 밴 뒷좌석에 앉은 하건의 눈이 반짝였다.

그때 눈에 익은 그녀가 보였다.


최아리는 학교 건물 뒤 그늘에서 혼자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건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린 후 다시 아리를 보러 갔다.

시계를 보니 시작 시간까지 30분 정도 남아 있었다.


하건뿐 아니라 재학생들 몇 명이 그녀의 연습을 보고 있었다.


오디션 과제, 햄릿과 오필리아.

햄릿이 삼촌의 음모에 휘말리고 광기에 휩싸여갈 때 그의 연인이었던 오필리아 또한 비극적인 상황에 미쳐갔다.


아리는 오필리아의 감정을 세 가지 단계로 분리해서 연습하는 것 같았다.

극 초반의 햄릿도 오필리아도 평범한 일상에 가까운 모습.

중반의 미쳐가는 햄릿에 곤란해하는 오필리아의 모습.

후반의 오필리아 또한 정신이 나가버린 상태였을 때 모습.


‘하이고··· 최아리.

저번에 봤을 때 보다 더 어두워졌네···.’


하건은 그녀가 예전의 밝게 웃는 그 아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안 웃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렇게 되자 그는 오히려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다.


재학생들 중에 하건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다.

아리는 연습에 집중하느라 관객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기 위해 더 몰려들자 자리를 피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하건은 연락처를 열고 ‘주명석 아저씨’라고 등록된 번호를 눌렀다.


“안녕하세요, 저 하건인데요.

아저씨··· 예전에 뭐든지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고 하셨잖아요.

도와주신다고. 네. 옛날에 대기실에서 약속한 거요.

어머니가 오셀로 처음 나왔을 때.

네. 그거 지금 써도 돼요?”


현섭의 옛 동료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명석은 현섭이 떠난 뒤로 특히 더 하건을 챙겨주었다.

그건 송화가 좋은 연기자인 것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이럴 때 하건이 그를 감독님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었다.

전화 저편에서 명석이 “이제 와서?” 라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1차 오디션 내용 뭐예요?”


명석에게 오디션 내용을 들은 하건은 상황을 파악하고 짧은 시간 동안 집중해서 머리를 써 봤다.

이내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섰다.

그거라면 하건도 좋고 아리에게 민폐도 안 끼칠 것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하건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자기도 모르게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차도를 걷고 있었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해서 흥분을 잘 안 하는 하건으로서는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그 자신이 주변을 살피지 못한 게 얼마만인지 기억나지도 않았다.


* *


집합장소는 연극동 제1스튜디오였다.

공연을 할 때는 훌륭한 소극장처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 날은 간이 의자도 들여 놓지 않고 휑하게 밝은 조명만 켜 놓았다.

1000명 정도는 들어갈 수 있는 회장이 젊은 청년들로 북적였다.


하건은 미리미리 아리가 어디 있는지 보고 있었다.


개중에 하건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각기 목적이 있어서 싸인을 요구하거나 기뻐하지는 않았다.


개시시간 1분 전에 명석이 들어왔다.

마이크를 툭툭 치더니 바로 안내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연출가 주명석입니다.”


청년들이 박수를 쳐주자 명석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햄릿 오디션에 응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1차를 진행하겠습니다.

과제는 햄릿과 오필리어로 페어를 이루어, 2분 동안 연기를 해 보이는 것입니다.”


명석 뒤에 있는 큰 스크린에 그 내용에 맞는 파워포인트가 띄워졌다.


“남자 남자 페어도 상관없고 여자 여자 페어도 상관없습니다.

장면과 대사도 아무거나 상관없고요.

대신 조건은 이거입니다.

한 명은 햄릿, 한 명은 오필리아를 연기해주세요.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파트너를 찾아서 연습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청년들은 당황하여 웅성거렸다.


“연극동에 있는 모든 시설을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페어끼리 자유롭게 상의해서 연습해주세요.

지금부터 90분 후 다시 이곳으로 오시면 선착순으로 1차 오디션 진행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질문 있으신가요?”


청년들의 팔이 여기저기서 올라갔다.

회장에 모인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당황하고 있었다.


아리도 연출가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그녀의 눈 앞에 서는 남자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박하건이라고 합니다.

제 파트너 좀 돼주실래요?”


첫 번째 질문자가 발언권을 얻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어서 두 사람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웠다.


일단 아리는 명석의 대답을 듣고 싶어서 멀건히 하건의 얼굴만 본채 침묵했다.


명석은 방금 알려준 1차 오디션 내용을 거의 똑같이 다시 한번 반복해주었다.


* *


광재는 케이블 채널의 여행 방송 녹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요즘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익근무를 하기 전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고 회수가 적었다.

회사에서는 광재가 군대를 너무 빨리 간 게 아닌가 하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녹화는 어리지 않은 남녀 사회자가 매번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고 매회 게스트로 한 두 명 부르는 컨셉이었다.

광재는 저번에 게스트로 왔을 때 남녀 사회자 양쪽에 살갑게 붙어며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잘했다.

그가 출연한 화에서는 아무것도 모르척 백치미도 살짝 보이면서도 비주얼까지 담당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좋았고 출연진과 사이도 좋았다.


그래서 이번에 또 불려 올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었지만 광재 본인은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갈 수 있을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딱히 연예인으로 더 성공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하고, 마음에도 없는 오버액션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 *


나무탈은 강원도 계곡 상공에서 광재를 지켜보고 있었다.

최근에는 아리뿐만 아니라 광재도 일이 잘 풀린다고 할 수는 없었다.

광재가 아리보다 운이 좋아야 하는데 이미 압도적이 성공을 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미라가 광재를 직접 공격하는 날도 많았다.

광재의 연예활동이 예전처럼 활발하지 못했다.


그는 미라의 모래 손 6개가 엮여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아리가 무언가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공중에서 나무탈과 모래 손이 속도를 겨루듯 비행을 했다.

미라가 아리를 향하는 것도 꽤나 오랜만이었다.


산과 들밖에 없던 풍경은 점점 도시로 바뀌고 모래 손은 대학 캠퍼스로 향했다.

여기라면 그녀가 크게 다칠 일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교통사고 이후 고민한 ‘그 방법’을 쓰지 않고 있었다.

미라의 기세가 한 풀 꺾인 것과 자신의 기억을 찾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나무탈은 즐겁지 못함과 답답함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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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에필로그 (최종회)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가 오기 전에 21.07.22 21 0 15쪽
54 제3장 (마지막) 무수히 피어있는 빛의 잎사귀 21.07.21 20 0 21쪽
53 제3장 (5) 그 옛날 나무탈이 된 필이 21.07.20 25 0 16쪽
52 제3장 (4) 하얀이의 소원, 필이의 소원 21.07.19 21 0 15쪽
51 제3장 (3) 창백한 얼굴의 청년과 한 가지 소원 21.07.18 24 0 13쪽
50 제3장 (2) 그 옛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21.07.15 26 0 14쪽
49 제3장 (1) 그 옛날 필이와 하얀이 21.07.14 33 0 12쪽
48 제2장 (마지막) 다시 만난 하건과 아리 21.07.13 26 0 18쪽
47 제2장 (23) 모든 것을 건 나무탈의 연기 21.07.12 21 0 16쪽
46 제2장 (22) 현섭이 되어 만난 하건 21.07.11 22 0 15쪽
45 제2장 (21) 인정할 수 없는 장례식 21.07.08 30 0 15쪽
44 제2장 (20) 하건안에서 변하지 않은 아리 21.07.07 25 0 16쪽
43 제2장 (19) 두 사람의 피 분장 기념사진 21.07.06 24 0 12쪽
42 제2장 (18) 감독 오케이 속에 하건과 아리 21.07.05 27 0 14쪽
41 제2장 (17) 하건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 21.07.04 24 0 13쪽
40 제2장 (16) 주연 겸 메이킹 박하건 21.07.01 31 0 16쪽
39 제2장 (15) 하건의 봄 다시 봄 21.06.30 30 0 14쪽
38 제2장 (14) 나무탈의 분노와 행복을 빈 여자 21.06.29 31 0 15쪽
37 제2장 (13) 나무탈의 적극적인 행동 21.06.28 24 0 15쪽
36 제2장 (12) 회의적인 나무탈과 김상철 21.06.27 30 0 13쪽
35 제2장 (11) 현섭의 소원을 위한 조정 21.06.24 25 0 12쪽
34 제2장 (10) 오디션, 아리와 하건 페어 21.06.23 28 0 17쪽
» 제2장 (9) 하건이 아껴둔 카드 21.06.22 27 0 13쪽
32 제2장 (8) 나송화와 아리스 21.06.21 27 0 14쪽
31 제2장 (7) 아리와 스치는 하건 21.06.20 26 0 15쪽
30 제2장 (6) 아역 탤런트 최아리의 끝 21.06.17 29 0 14쪽
29 제2장 (5) 나쁜 날들과 상관없는 하건 21.06.17 41 0 14쪽
28 제2장 (4) 즐겁지 않은 나무탈 21.06.16 3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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