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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들맨 님의 서재입니다.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완결

레이들맨
작품등록일 :
2021.05.15 22:05
최근연재일 :
2021.07.22 08:16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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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글자수 :
33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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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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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2장 (19) 두 사람의 피 분장 기념사진

DUMMY

아리에게서 또다시 미라가 빠져나갔다.


그걸 안 나무탈은 얼굴을 씻고 나오는 그녀에게 다시 미라를 붙여 주었지만 처음으로 미안함보다 즐거움이 앞섰다.


* *


황태식 감독이 이 정도면 배우를 믿을 수 있다는 단계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배우가 태식의 의도와 조금 다른 연기를 한다 하더라도 먼저 배우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했다.


태식에게 아리가 연기자였던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신뢰할 수 있는 배우였다.


통로 리허설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 시작한 아리는 그 이후에 완전히 감을 잡은 것 같았다.


아리 덕에 태식의 피로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 의욕이 불타고 있었다.

귀신 할머니 순옥 역의 여배우는 워낙에 베테랑이라 태식이 연기 지도를 하기가 어려웠다.

또 감독에 맞추기보다는 자신이 해온 연기를 고집했다.

시간에 쫓긴 태식이 촬영감독 이덕수와 상의해, 앵글과 조명으로 얼버무리듯 넘어간 장면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최아리가 대역을 해주면서 귀신 할머니를 태식이 생각하는 이미지로 담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시체가 쌓인 지하 보일러실 씬은 태식이 가장 찍고 싶었던 장면 중 하나였다.


사실은 나쁜 사람이었던 혁수와 모든 악의 근원이지만 안타까움도 분명히 있는 순옥이 발버둥 치며 싸워야 했다.


이 장면에서 최아리가 나와 주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태식은 욕심이 났다.

지금까지 잘해온 박하건도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 *


보일러실 리허설에서 하건은 아리한테 창피했다.


마취가 되어가면서도 귀신 할머니에게 저항하는 혁수를 연기하면서 자기 때문에 몇 번이고 NG가 났다.


그동안 리더십 있는 사회적인 모습에 가려져있던 혁수의 악한 내면이 더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 NG 때 아리가 하건만 들리게 한마디 쏘아주었다.


“평상시 너무 착한 역만 해서 잘 못하시는 건가.”


짓궂게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이 굉장히 밝아 보였다.

하건은 분하면서도 기뻐서 웃고 말았다.


“하하하.”


그는 그녀가 자신의 출연작을 얼마나 봤는지 궁금했지만 참았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힘이 솟았다.

아리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이야 말로 수백 번 읽고 분석한 대본을 연기로 보여줄 때였다.


남자 주인공 혁수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1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어디 쓰여있지는 않았지만 종반에 친구의 증언으로 나오는 그의 삶의 행태를 보면, 혁수는 남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혁수는 귀신 할머니가 무섭지 않고 화가 날 것이다.


‘니까짓 게 감히 날 죽이려고 해?’


자식 때문에 슬픔에 휩싸인 채 분노한 그녀보다 어쩌면 더 괴물 같은 놈은 혁수 일지도 몰랐다.


하건은 괴물을 연기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 *


리허설을 오케이 한 태식은 시체 역의 배우들을 준비시키라고 했다.

혹시 배우들이 그 연기를 잊어먹을까 봐 당장이라도 촬영을 시작하고 싶었다.


다행히 혁수와 순옥은 슛이 들어가서도 리허설 이상의 연기를 해 보였다.

마취되어가는 혁수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격렬했다.


순옥은 이곳에서 그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가장 증오하는 혁수를 편하게 죽이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기다리는 그들의 거처까지 끌고 갈 생각이었다.

거기까지만 가면, 마취가 풀릴 때까지 기다린 후 생지옥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각인시킬 것이었다.


그들은 무겁고 처절하게 뒹굴었다.

혁수는 마취가 되어 몸이 굳어갔고 순옥은 갖고 있던 송곳으로 그를 찌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했다.


시체 역의 배우 때문에 NG가 두 번 났다.

그래도 하건과 아리는 집중을 놓지 않고 있었다.


태식은 막간을 이용해 촬영감독 덕수에게 상담했다.

아리의 연기가 아까워 귀나 턱만이라도 좋으니 얼굴의 부분을 하나라도 더 넣고 싶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이를 꽉 물고 연기를 했는데 잇몸에서 피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걸 살리고 싶었다.


이미 공감하고 있던 덕수는 조명을 한층 더 기술적으로 쳤고, 그녀의 눈 코를 아슬아슬하게 가리면서 예정에 없던 컷을 찍었다.


통로를 끌고 걸어가는 씬도 한 테이크만에 오케이가 났다.


아리가 대역을 할 예정은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태식의 머릿속에 또다시 예정에 없던 좋은 컷이 떠올랐다.

그는 바로 덕수를 불러 상담했다.

워낙에 호흡이 잘 맞는 태식과 덕수였지만 그들이 서로 같이 하는 작업을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무리 회의를 많이 하고 준비를 했어도 현장에서 받는 ‘삘’을 중요시했다.


귀신 할머니의 거처에서 아들과 함께 의식이 있는 혁수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이었다. 아리는 여기에도 대역으로 나와 세 컷을 촬영하게 되었다.

꽤 오랜 시간 두 사람은 피투성이 분장을 하고 촬영에 임했다.


베테랑 여배우를 배려해서, 노파심으로 대역 부분도 찍는다고 설명했지만 태식과 덕수는 처음부터 아리의 컷을 사용할 작정이었다.


* *


마지막 컷이 오케이를 받았을 때도 아리와 하건은 함께였다.


스탭들이 묶여있던 하건의 팔과 다리를 푸는 동안 아리도 현장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먼저 현실로 돌아온 건 하건이었다.


그녀는 하건의 모습을 보더니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리도 하건과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하건의 매니저, 개인 메이크, 스타일리스트들이 다가와 그에게 온갖 찬사를 쏟았다.


아리는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광재가 스탭들을 데리고 와주어 있었다.

조감독도 아리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를 해주며 씻을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었다.

웃지는 않았지만 광재도 부드러운 표정으로 아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리 씨, 잠깐만요!”


이제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하건이라는 걸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아도 더 이상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만 두근 거림이 있었다.

아리는 현장에서 동료의식을 느끼는 게 학생 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이라 그러는 거라고 여겼다.


“아리 씨도요. 우리 사진 찍어요!”


하건은 자신의 핸드폰을 이미 카메라 기능으로 해놓은 상태였다.


“이것 봐요.”


하건이 자신과 아리의 모습을 셀카 모드로 해서 보여주었다.

아까까지는 서로의 연기에 집중하고 있어서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피투성이 분장의 위화감이 심하게 와닿았다.

일상과 동이 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진 꼴이었다.


“우와···.”


즐거움, 피곤함, 신기함, 보람···.

아리에게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왔다.


“하하···.”


그 가운데 하건 앞에 제일 먼저 튀어나온 것은 아리의 웃음이었다.

하건이 그 웃음을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그녀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젊은 매니저가 눈치 좋게 다가왔다.


“형 제가 찍어드릴게요.”


매니저가 하건의 핸드폰을 가져갔고 아리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하건이 한 팔로 자신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싼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주위에서 아무도 뭐라 말 안 했다.

아리도 그가 이런 것에 익숙하겠거니 생각했다.


매니저는 능숙하게 몇 장 찍은 뒤에 핸드폰을 다시 하건에게 돌려주었다.


“이거 보세요.”


하건이 아리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한껏 웃는 그에 비해 그녀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난 영화의 이런 순간이 좋아요.

이런 분장 평상시에는 절대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아리가 독립영화에서 피 분장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 알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근데 이거 아리 씨는 얼굴 굳어있는데 나만 활짝 웃네?

좀 사이코패스 같은데? 다시 찍어야겠다.”

“하하하.”


매니저에게 핸드폰을 건네는 하건의 눈은 아리를 향했다.

이번에는 그녀도 한껏 미소 지었다.


그가 아까보다 더 꼬옥 감싸 안았다.

그건 아리의 착각이 아니었다.


하건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맞았다.

아리는 금방 얼굴을 돌렸지만 그녀의 미소는 점점 더 부드러워져 갔다.


이제 하건이 이 현장에서 아리를 만났을 때 목표로 했던 것들도 하나만 남게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자신이 기분 좋아하는게 어색했던 아리는 사진을 확인해보지도 않고 거기서 떠나려 했다.


“사진 보내드릴게요. 카톡 아이디 갈켜 주세요.”


아리가 놀란 건 하건의 질문이 아니라 자신이 아이디를 술술 불었던 점이었다.


“오케이! 떴다. 바로 보낼게요.”


광재의 스타일리스트가 갖고 있던 아리의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아리 카톡에 사진이 뜨는 순간 소중하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왔어요···.”


아리는 하건과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를 붙잡을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벌써 프로듀서, 감독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하건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스탭들과 사라지면서도 그녀를 돌아봤다.


“뒤풀이 때 봬요?!”

“··· 네.”


아리의 미소는 피투성이와 너무나 안 어울리게 밝았다.

그 모습이 하건의 눈에 선명하게 박혔다.


하건은 자신이 이런 큰 보람을 느끼는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그리고 기념사진 찍을 때 두 번 그녀를 안아보고 비로소 인정했다.


‘아-. 나 최아리 좋아하는구나.’


* *


박하건이 저러는 것은 아리의 연락처를 따는 작업이었다.

광재도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해온 짓이었다.


그런데 처음 느껴지는 감정이 있었다.

아직 그는 그게 질투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 *


‘죽음의 피피티 엠티 (PPT·MT)’ 뒤풀이 장소는 전세 낸 삼겹살 가게였다.

제작사 대표가 와서 더 좋은 것을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하며 대신 그날은 무엇이든 무한리필이라며 분위기를 띄워주었다.


대역으로 출연하기는 했지만 아리는 어디까지나 광재의 매니저였다.

하건이 뒤풀이 때 보자고 했을 때 주제넘게 그러자고 한 것 같아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박하건은 감독을 비롯해 배우 스탭 할거 없이 수많은 사람들과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교성이 없는 아리는 예 아니요 외에 말한 게 없었으며 그 마저도 초반에만 잠깐이었다.

광재도 이 테이블 저 테이블에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광재가 이 작품에 나온 걸 기획사에서도 좋아하고 있었고, 아리는 이걸로 됐다고 몇 번을 되뇌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했다.


촬영이 끝나고 하건에게서 한 번도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봐도 마음이 따라와 주지를 않았다.


그때 아리의 핸드폰에 카톡이 왔다.


(최 배우님!)

(아 이렇게 부르지 않기로 했지 ㅎㅎ)


그녀는 깜짝 놀랐다. 보낸 사람이 하건이었다.

힐끗 그를 보니 다른 사람과 이야기 중에 자기 핸드폰을 만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하는데 바로 다음 문자가 왔다.


(근데 나송화 별로지 않아요?)


아리는 예전처럼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연기와 나송화는 추억이었다.

또다시 어떤 답을 보낼지 고민하는데 대화를 이끌어주는 건 하건이었다.


(왜 별론지 듣고 싶지 않아요?)


그 질문에는 비교적 빨리 손가락이 반응했다.


(듣고 싶어요.)


하건의 문자는 그가 미리 준비를 해놓은 것처 빨리 답이 왔다.


(최 배우님 밥도 다 드신 거 같은데 저기 밖에서 바람이나 좀 쐴까요?)


아리가 한참을 아무것도 안 먹고 있긴 했지만 그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줄 리는 없다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밖으로 나가는 속도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빨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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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에필로그 (최종회) 운명의 사람이 소원을 이룰 때가 오기 전에 21.07.22 21 0 15쪽
54 제3장 (마지막) 무수히 피어있는 빛의 잎사귀 21.07.21 20 0 21쪽
53 제3장 (5) 그 옛날 나무탈이 된 필이 21.07.20 25 0 16쪽
52 제3장 (4) 하얀이의 소원, 필이의 소원 21.07.19 21 0 15쪽
51 제3장 (3) 창백한 얼굴의 청년과 한 가지 소원 21.07.18 24 0 13쪽
50 제3장 (2) 그 옛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21.07.15 25 0 14쪽
49 제3장 (1) 그 옛날 필이와 하얀이 21.07.14 33 0 12쪽
48 제2장 (마지막) 다시 만난 하건과 아리 21.07.13 26 0 18쪽
47 제2장 (23) 모든 것을 건 나무탈의 연기 21.07.12 21 0 16쪽
46 제2장 (22) 현섭이 되어 만난 하건 21.07.11 22 0 15쪽
45 제2장 (21) 인정할 수 없는 장례식 21.07.08 30 0 15쪽
44 제2장 (20) 하건안에서 변하지 않은 아리 21.07.07 25 0 16쪽
» 제2장 (19) 두 사람의 피 분장 기념사진 21.07.06 24 0 12쪽
42 제2장 (18) 감독 오케이 속에 하건과 아리 21.07.05 27 0 14쪽
41 제2장 (17) 하건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 21.07.04 24 0 13쪽
40 제2장 (16) 주연 겸 메이킹 박하건 21.07.01 30 0 16쪽
39 제2장 (15) 하건의 봄 다시 봄 21.06.30 30 0 14쪽
38 제2장 (14) 나무탈의 분노와 행복을 빈 여자 21.06.29 31 0 15쪽
37 제2장 (13) 나무탈의 적극적인 행동 21.06.28 24 0 15쪽
36 제2장 (12) 회의적인 나무탈과 김상철 21.06.27 30 0 13쪽
35 제2장 (11) 현섭의 소원을 위한 조정 21.06.24 25 0 12쪽
34 제2장 (10) 오디션, 아리와 하건 페어 21.06.23 27 0 17쪽
33 제2장 (9) 하건이 아껴둔 카드 21.06.22 26 0 13쪽
32 제2장 (8) 나송화와 아리스 21.06.21 27 0 14쪽
31 제2장 (7) 아리와 스치는 하건 21.06.20 26 0 15쪽
30 제2장 (6) 아역 탤런트 최아리의 끝 21.06.17 29 0 14쪽
29 제2장 (5) 나쁜 날들과 상관없는 하건 21.06.17 40 0 14쪽
28 제2장 (4) 즐겁지 않은 나무탈 21.06.16 3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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