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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호 님의 서재입니다.

파인딩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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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나은호
작품등록일 :
2012.11.19 12:30
최근연재일 :
2012.12.26 01:01
연재수 :
59 회
조회수 :
86,391
추천수 :
696
글자수 :
242,379

작성
12.10.16 01:48
조회
3,045
추천
13
글자
8쪽

파인딩 스타 - 독설공주

DUMMY

지나연은 잠이 들 때마다 먼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다. 한 번 잠이 들면 좀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수면시간은 남들과 비슷했지만 잠에 너무 깊이 빠지는 게 문제였다.


주변사람들이 아무리 세차게 흔들어도 도무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독사과를 먹고 누워있는 백설공주 같았다. 어느 때는 혼이 나가버린 사람처럼 보여서 섬뜩할 때도 있었다. 하늘이 갈라지고 태산이 흔들린다고 해도 잠들어 있는 그녀를 깨우지는 못할 것이다.


집에 화재가 발생하는 위급상황만 아니라면 밤에 깊이 잠에 빠지는 일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낮에는 상황이 달랐다. 낮에도 한번 잠이 들면 좀처럼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버스를 타고 잠이 들면 종착역까지 투어를 하기 일쑤였고 학창시절에는 점심시간부터 6교시까지 잠든 적도 많았다. 친구들이 필사적으로 흔들고 선생님이 몽둥이로 책상을 내리쳐도 미동조차 안했다. 5교시 선생님이 6교시 선생님에게 신경쓰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지나연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오래 잔다고 해서 ‘롱키스 굿나잇’이란 별명으로 통했고 동명의 영화 주인공인 ‘지나 데이비스’로 불리기도 했다. 집에서는 ‘독사과 먹은 백설공주’를 줄여서 ‘독설공주’라고 불렀다.


본인은 그런 자신이 정말 당혹스럽고 괴로웠다. 잠이 깨었을 때의 낭패감 때문에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낮에 졸음을 느끼지 않도록 밤에 잠을 많이 자려고 애썼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기도 했지만 의사들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도 수면장애라고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환자들을 수없이 만나봤지만 이런 경우는 생소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적당한 스트레스를 조제해서 주무시는 동안 뇌의 신경안정 활동을 방해시켜 드리고 싶군요.”


차라리 솔직한 의사가 나았다. 어떤 의사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로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다그치는가 하면 다른 의사는 몇 가지 소득없는 검사를 받게 해서 괜한 돈만 날리게 했다. 학문은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속성이 의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의사들은 저마다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대부분 자기 말이 옳다는 확신을 환자가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다.


그녀는 낮잠만 조심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마다 수면시간을 충분히 가져서 학창시절 동안 더 이상 수업시간을 수면시간으로 대체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힘들게 재운 아기가 깰까봐 조심조심 행동하는 엄마처럼 보였다.


지나연은 괴이한 수면체질로 학교생활 초기에 유명세를 탔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지속되자 점차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갔다. 모든 일과를 밤에 일찍 잠드는 것에 맞추다 보니 친구들과 실컷 놀아보지도 못했고 공부에도 열의를 가질 수가 없었다. 그저 혹시라도 학교에서 잠이 드는 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며 조용히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에서 직장을 구했다. 집은 충청도 시골이라 돈을 벌기 위해서는 대도시로 떠나와야 했다. 회사는 아파트용 인터폰과 비디오폰을 만드는 작은 중소기업이었다.


이 과장이라는 사람이 간단한 신상내용만 물어보더니 다음 날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지나연은 같이 올라오신 아버지와 함께 버스로 15분 거리에 자취방을 구했고 필요한 살림도구도 마련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게 잘 지내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곧바로 내려가셨다.


집에서 가져온 짐을 풀어놓고 간단히 저녁을 해먹자 어느새 밤 9시가 넘었다. 본능적으로 빨리 잠을 자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낮선 곳에서의 잠자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집을 떠나온 막막함과 직장생활에 대한 걱정도 그 순간 사라졌다. 낮에 조금이라도 졸음에 빠지지 않으려면 서둘러 잠들어야 했다. 도도하게 흘러가는 거대한 강물처럼 지나연도 깊은 잠의 흐름을 숙명처럼 이어갔다.


다음 날 회사에서 경리업무를 배웠다. 전임자는 출산 때문에 그만둔다고 했다. 전혀 정을 느낄 수 없는 얼굴과 짜증스런 말투를 지닌 여자였다. 금전출납부, 매입매출장, 계정원장 같은 장부들을 서둘러 넘겨가며 경리가 해야 할 일들을 브리핑했다.


대충 인수인계를 끝내고 떠나려는 심산이었다. 미처 이해도 하기 전에 진도가 끝나버렸다. 직원들의 급여관리, 공과금 납부, 통장관리, 거래처 관리 등. 실무전수가 아니라 간단한 용어설명에 가까웠고 질문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전임자가 떠나자 머릿속이 뿌연 느낌이 가득 찼고 아프리카에 혼자 버려진 것처럼 암담했다. 당장 도망쳐 버리고 싶었으나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처음에는 하루하루가 고비였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급한 대로 기존 자료를 참고하고 직원들에게 하나씩 물어가며 일을 처리했다.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일이 계속 주어지자 마치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에 이자가 불어나는 기분이었다.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고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가기 무섭게 간신히 잠자리에 들었다.


두 달 정도 되자 업무에 많이 익숙해졌고 회사분위기도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하루에 두 개의 일과만 존재했다. 회사생활과 취침생활. 사는 것이 삭막하고 각박하게 느껴졌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수면시간을 고수해야 했다.


그 무렵에 지나연이 입사하고 처음으로 삼겹살집에서 전체 회식이 있었다. 직원들은 고기를 구워먹으며 서로에게 소주잔을 돌렸고 홍일점인 그녀에게 가장 많은 술잔이 배달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마셔보는 술이었다. 살짝 입술에 대어도 독한 알코올 기운에 감전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숨을 참아가며 세 잔까지 겨우 삼켰고 네 잔째 들이키자 순식간에 의식을 잃고 상 위로 쓰러져 버렸다.


이 과장이 지나연을 일으켜 세우고 세차게 흔들어 보았지만 그녀는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는 지나연을 업고 음식점을 나왔다. 택시를 잡아타고 계속 그녀를 깨워보려고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 과장은 지나연의 집이 정확히 어디인지 몰랐다. 회사로 돌아가서 집주소를 알아낼 수도 있었지만 취기가 올라오자 귀찮은 기분에 그냥 단념해버렸다. 그는 지나연을 근처 모텔로 데려가서 방에 눕혀 놓고 나서 다시 회식장소로 돌아갔다.


다음 날 모텔에서 지나연은 평소 기상시간에 눈을 뜨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변을 둘러보고 나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지난 밤 일을 아무리 기억하려고 애를 써도 술 세 잔을 마신 이후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 죽고 싶다. 초저녁에 술자리에서 잠들어 버리다니.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왜 여기서 자고 있는 거지.’


어제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지만 어떤 나쁜 놈이 몹쓸 짓이라도 한 것 같은 공포감이 짓누르기 시작했다. 머리가 멍해지고 가슴이 심하게 쿵쾅거렸다. 세상이 새카만 지옥으로 변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나, 이 과장이야. 지금 일어난 거야? 어제 잠든 걸 깨우는데 도대체가 꿈쩍을 해야지. 그래서 거기서 재웠어. 모텔 건너편에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준비되는 대로 나와.”


안도의 한숨이 끝없이 쏟아졌다. 사람 몸속에 그렇게 많은 공기가 들어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대충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서둘러 모텔을 빠져나왔다.


회사에 가자 직원들이 웃으면서 지나연을 반겨주었다. 늑대들이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며 음흉한 농담을 던지는 직원도 있었다.


지나연은 학창시절의 낮잠 사건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원수로부터 멀리 달아나서 이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낯선 곳에서 느닷없이 마주친 느낌이었다. 그녀에게 술이란 독약이나 다름없었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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